[ACT! 107호 이슈와 현장 2017.11.22.]
독립적임에 대해서
- 미디액트 15주년 ‘다시 그리기’
최종호(독립다큐멘터리 감독, 구로FM 활동가)
지난 9월 15일, 열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미디액트가 ‘다시 그리기’ 라는 이름으로 포럼을 열었다.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미디어운동의 동향과 전망을 소개하는 1부와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토론하는 2부로 구성된 자리였다. 그 후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독립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일과 마을공동체라디오 활동을 겸하고 있는 제작자, 활동가이다. 11월을 시작하는 현재, 글을 쓰려 지난 기록들을 들춰보니 그 날의 메모로 ‘독립적임에 대해서’ 라는 말을 적었었다.
“ ‘반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탁 받은 게 92개월, (정권 탄압으로 위탁이 끊긴 후) 이렇게까지 끌어올리는 데 92개월이 걸렸습니다. 두 개의 기간이 지나는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번째 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권력을 바꿔내고 새로운 일을 할 때가 됐습니다. 독립영화와 같은 전문적이고 전업적 활동이 많아져야 하고 공동체미디어와 같은 시민들의 참여도 확장돼야 합니다. 두 개의 날개 갖고 가겠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합시다.” -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의 인사말 중
▲ 2017.9.15. 미디액트 15주년 ‘다시 그리기’
2002년 서울 광화문에서 개관한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는 매스미디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를 사용하고 펼칠 권리를 돌려준다는 기조 아래 미디어 교육, 독립영화 지원, 퍼블릭액세스 활성화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들을 벌여왔다. 그러다 개관 8년차였던 2009년, 정권의 탄압으로 영진위 지원이 끊기고 공간을 빼앗기게 되었다.
나는 그해의 여름에 미디액트를 처음 만났다. 여름방학 중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동기들과 함께 단기 다큐멘터리 제작수업을 들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카메라를 통해 처음으로 내 감정, 내 마음을 던져봤다는 것이 묘한 쾌감으로 다가왔었다. 그때의 시간들을 계기로 나는 카메라를 드는 것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 해가 미디액트에 큰 위기가 찾아왔던 시기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몇 년 후 다시 찾은 미디액트는 홍대 인근, 전보다 조금 작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고 전화번호는 하나 더 생겨있었다. 6300번과 6390번. 하나는 미디액트, 다른 하나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였다. 2009년 이후 독립기관으로서 존재를 지켜온 미디액트는 기존의 활동들과 함께 2012년부터 서울시에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을 위탁받아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로서 지역 공동체 방송 지원에 힘을 쏟고 있었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미디액트 수업을 들으며 학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한편을 만들었고, 학교를 나와서는 구로 지역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2년째 해오고 있다. 미디액트 다큐멘터리 수업을 통해 미디어 언어를 익히고 펼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마을공동체미디어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그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러한 의미 앞에 당당하지 못하다. 다소 민망한 마음을 안고 15주년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는 아직도 소수 문화로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극장 개봉을 해도 퐁당 퐁당 상영, 몇 천 명을 겨우 넘기는 관객 수, 그나마 개봉하는 것은 장편이고, 단편은 영화제가 끝나면 보기도 힘듭니다.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어려운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독립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임팩트를 충분히 주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 보고 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 김주현 미디액트 팀장의 발표 중
“마을미디어를 하면서 갖게 된 고민은, 커뮤니케이션, 커뮤니티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게 쉬운 과정이 아니다보니 내부적으로는 우리의 미디어가 어떻게 지역에 기여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첫째 조례, 둘째 중간지원조직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 정수진 부산민언련 마을미디어연구소 소장의 발언 중
“마을미디어 조례가 서울시에 없는데, 네트워크의 노력도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마을미디어사업의 근거가 시장의 제안사항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매년 공모를 통해 선정이 되어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 정은경 미디액트 실장의 발언 중
환경적인 문제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다. 나의 이야기, 내가 활동하는 곳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잘 전해지고 있지 않다는 것. 불안한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것. 나의 일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러한 인식들이다.
3년 전 미디액트에서 만든 나의 작품은 10번이 안 되는 상영회 횟수를 남기고 하드디스크 속에 잠들어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구로FM은 서울시 지원이 없으면 당장 내년에라도 방송국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런 사실들이 당장 대단히 큰 아픔으로 다가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단, 뭔가 힘껏 해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내 카메라에 사람들을 담고 그들의 입을 빌리는 일이 익숙할 뿐인 나는 마을 사람들이 만드는 이야기를 뒤에서 지원 하는 일이 서툴고 어색하다. 방송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신경을 못 쓰다 떠나보내게 된 일들이 많다. 어떤 일들은 내가 직접 다 해내려다가 그르친 때도 있었다. 그런 한편으론 대개 책, 노래 같은 취미에 관련된 주제 아래 진행되는 마을방송들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야 하지 않나 하는 답답한 마음을 가진다. 고민이 된다. 퍼블릭액세스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미디어 언어를 돌려주는 일이라는데, 나는 사람들을 잘 바라보고 대할 생각은 못하고 말해주고 싶은 것만 많다. 자신이 튀는 일에 혈안이 돼있는 녀석이 다른 이들의 배경에 서려니 아무래도 열심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 철없는 마음을 다잡고 좀 괜찮은 활동가가 되고 싶지만, 눈앞의 일들에 허덕이다보니 어느덧 2년차의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더 잘, 열심히 움직이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 내가 과연 뭔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침울한 마음으로 포럼의 풍경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발표 자리에 선 미디액트 스탭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MJ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월 1~2회 세미나를 해오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미디어운동사 공부를, 작년부터는 국내외 혁신적인 미디어운동 사례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많은 실무들과 함께 몇 년째 꾸준히 진행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으나 돌아서 생각해보면 이런 시간이 있어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척박한 현실에 지치지 않고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쇼미더액트’라는 이름으로 액트 스탭들의 학습결과와 고민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단순히 이런 정보가 있다는 정보공유 차원이라기보다 여기 계신 분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싶다는 제안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주현 미디액트 팀장의 발표 중
“(해외 팟캐스트 ‘더 키친 시스터즈 프리젠트(The Kitchen Sister Present)’를 소개하며) 이 팟캐스트는 두 여성 독립 프로듀서가 만들어가는 콘텐츠로 다루는 주제는 세상의 음식에 담긴 인문학,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키친 시스터즈’에서 눈 여겨 볼 건 다루는 주제뿐 만이 아닙니다. 오디오 다큐멘터리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DJ의 멘트로 진행되기 보단, 특정 주제에 대한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따와 틀고, 아카이브를 뒤져 관련 주제의 오래된 음성 자료를 연결 시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갑니다. 이런 방식은 실제 이 콘텐츠가 교육용으로 쓰이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오디오 콘텐츠의 교육적 활용에 대한 어떤 힌트로 다가 오진 않으신가요?” - 조한철 미디액트 실원의 발표 중
“(해외 독립영화 지원제도 소개 파트에서 미국 비영리조직 ‘ITVS’를 소개하며) 첫 번째로, ITVS에서 제작지원한 다큐멘터리는 매주 밤 10시, 미국공영방송인 PBS에 방영됩니다. 독립다큐멘터리가 공영방송을 통해서 지원되고 방영되는 것을 법적으로 명시화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ITVS는 조직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위해 이사회가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사회의 조직 추천권은 ‘독립영화관련협회’에 그 권한을 부여하여, 강력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ITVS의 주요 예산의 98%가 CPB, 즉, 공영방송기금에서 기금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2%는 시민후원이구요. 그리고 예산사용은 90%가 제작지원에 사용되고, 나머지 10%는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 새로운 콘텐츠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 김송이 미디액트 실원의 발표 중
현장 음성을 채집하여 만드는 오디오 다큐멘터리, 퀴어 자녀와 어머니가 함께 꾸리는 라디오 등 다양한 시도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공영기금 지원 아래 독립영화협회가 끌어가는 제작지원 및 배급 시스템, 교육 현장에서의 독립영화 공동체 상영을 위한 웹 아카이빙 시스템 등 독립미디어들이 사회에 잘 자리 잡은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세계 곳곳의 혁신적인 콘텐츠, 시스템들이 소개되었다. ‘제안’, ‘힌트’ 와 같은 말들로 마무리되는 발표들이 참 반가웠다. 그냥 자료로서 살폈다면 나에겐 먼 얘기로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내용들도 누구보다 현실의 문제와 변화의 어려움들을 가까이 체감해왔을 미디액트 사람들이 밝게 던지는 목소리 안에서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 들려왔다.
발표 시간이 끝나고 연단에 의자와 테이블이 차려졌다. 얼굴은 낯설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이 하나 둘 의자에 앉았다. 수원, 대구, 부산, 전주에서 온 마을공동체미디어 활동가들의 토론 자리였다.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지역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이 활동 앞에 어떤 과제가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가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순탄치 만은 않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감추지 않으며 차분히 의미들을 밝히는 활동가들의 얼굴이 부러웠다.
“ ‘마을공동체미디어’를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서 당사자, 주민의 필요와 욕구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미디어’ 영역은 정책의 확장의 측면에서 초기에 공급자 중심의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중략) ‘마을공동체미디어’가 활동의 성과를 축적하고 기록하는 역할, 시민 스스로 다양한 활동욕구를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마을공동체미디어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김영숙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의 토론 자료 중
“처음에는 내 얘기, 가족 얘기로 시작하지만 차츰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크고 작은 이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론하게 되고 작당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빚어지는 갈등조차 사회 변화의 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은경 미디액트 실장 토론 자료 중
“주민들 간의 소통이 일상화되어, 서로 간의 소식을 전하고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것을 토대로 지역에서 공동체를 위해 지켜내고 변화시켜야 할 문제들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논의하는 도구로 활동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경험이 보편화, 일상화되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래서 미디어가 일상적인 정치참여를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 김노경 수원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의 토론 자료 중
토론회가 마무리 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한 참여자 분이 어려운 문제를 고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고, 패널들은 자신들이 아닌 방송주체 분들이 토론하는 자리가 곧 열렸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나는 이 문답을 되새겨보며 자리를 나섰다.
1년여 전부터 구로FM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오류시장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50여년 그 자리를 지켜온 오류시장은 현재 주상복합건물식 재개발 추진으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개발에 맞서고 있는 시장 사람들은 서울시에 청원을 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여왔지만 그 한편으로 개발에 공조하는 지자체 측의 외면과 보상 더 받으려고 그런다는 주민들의 뒷말들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기도 했다.
나는 시장 사람들을 내가 진행하는 마을인터뷰방송에 모시거나 카메라를 들고 활동 현장을 기록하는 정도의 일을 해오고 있다. 미디액트 15주년 행사가 있던 날 얼마 후 시장에서 연락이 왔다. 다시 한 번 서명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영상기록을 부탁받았다. 나는 카메라와 함께 라디오 장비들을 챙겼다. 현장 공개방송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급히 준비를 하며 함께 인터뷰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정금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화기 너머로 즉시 돌아온 “얼마든지요.”라는 답이 참 고마웠다.
하지만 역시나 현장에서의 진행은 원활하지 못했다. 오디오 믹서가 말썽을 부리는 중에 한 시간여를 흘려보냈다. 이번엔 그만두고 다시 준비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정금 선생님이 서명을 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1년여간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따라다녔지만 지레 부담스러운 맘에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결국 그날의 녹음은 잘 진행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서명운동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로서 홀로 온전히 서고 싶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그 의지를 다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알게 된 것은,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잡아주지 않고는 바로 서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 속에서 그 방법을 더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길 안에서 미디액트의 행보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 6300, 6390은 나에게 언제나 반가운 번호다. ■
글쓴이 최종호
독립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일과 마을공동체라디오 활동을 겸하고 있는 제작자이자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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