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2호 리뷰 2017.3.10]
폭압에 맞선 순진한 이들의 싸움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김주완(경남도민일보 이사·출판미디어국장)
[편집자주] 지난 1월 12일, YTN과 MBC에서 부당하게 해직된 언론인들의 투쟁을 다룬 김진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해직의 부당성 뿐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의해 이뤄진 언론장악의 구체적인 과정과 이로 인해 붕괴된 저널리즘의 실태입니다. <ACT!>에서는 지역 언론인으로서 오랜 시간 활발히 활동해오고 계신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이사님께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리뷰를 부탁드렸습니다.
‘사익에 충실한 사람들은 성실하고 집요하며 뻔뻔하고 잔인하다. 반면 대의를 중시하고 공익에 충실한 사람들은 순진하고 여리다. 약간 게으르고 안일해보이기도 한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는 내내 머리에 맴돌았던 생각이다.
예컨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그의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이 YTN 사장으로 왔을 때 출근저지 투쟁에 나섰던 현덕수(해직) 노조위원장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부의 핵심과 가까운 분이 경영자로 오는 것이 회사 발전 내지는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긴 언론사이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곳인데, 그런 낙하산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참 순진하다. 하지만 여기까진 대의에 충실한 말이다. 차기 노조 집행부가 구본홍 사장과 타협하려 하자 이후 노조위원장이 되는 노종면(해직)은 당시 집행부를 설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들과 싸우는 게 위험하지 않다. 그런 시대 아니다. 지금이 무슨 5공 때도 아니고…, 창피하진 않을 정도로는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
위험하지 않다고? 순진을 넘어 안일한 인식이다. 그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냉정한 인간인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막상 해고를 당한 후 현덕수의 말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었어요. 내가 해고를 당할 만큼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조승호(해직)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크게 걱정은 안 했어요. 왜냐면 해직이 되어도 아마 한두 달 내로 다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이렇게까지 길어지리라고는 아마 저도 생각 못했고, 우리 동료들도 아무도 생각 못했고, 아마 제 느낌으로는 사측에서도 그렇게까지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이들의 순진한 생각은 배석규가 전무로 왔을 때도 이어진다.
“선배가 이왕 오셨으니 이 사태를 좀 풀어 달라, 다만 지금 상황이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스크럼을 짜고 있으니 선배가 이해해주십시오. 그때 배석규 씨는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대접해줄 줄 몰랐다. 고맙다. 너희들이 이 스크럼을 풀지 않는 이상 전무실에 안 들어가겠다’ 그랬던 사람입니다.” -노종면
그러나 이 기대는 곧바로 배신당한다. 다음날 전무실로 찾아간 현덕수는 이렇게 배석규에게 따진다.
“어제 여기 앉아서 차분하게 얘기했잖아요. 본인 입으로 노력하겠다고…. 고소 취하하십시오.”
그러자 배석규는 차가운 표정으로 짧게 내뱉는다.
“나가줘!”
그들은 이렇게 뻔뻔하다.
△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중에서
그 이후에도 노종면은 여전히 그들의 ‘선의’를 이해하려 애쓴다. 착해도 너무 착해빠졌다.
“구본홍 사장은 저희가 아주 강하게 막았지만 인간적인 미안함도 있고요. 그리고 그 양반이 자신의 한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법원의 판결에 기대는 방식일지언정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요. 그런데 그 의지가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 정권에 의해 포착되는 바람에….”
설사 이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에게 ‘인간적인 미안함’까지 느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구본홍에 이어 사장 자리를 꿰어 찬 배석규는 해직자들의 노조사무실 출입까지 물리적으로 막는다. 퇴근하는 그에게 조합원들이 몰려가 항의한다.
“이렇게 후배들 죽이고 사장 자리 차지하고 싶으세요?”
“웃기지 마 임마!” -배석규
“왜 노조사무실 가는 것까지 막는 겁니까?”
“방문증 받아서 들어가!” -배석규
“왜 반말이야?”
“너도 반말해!” -배석규
출발하려는 승용차 앞에 드러누워 “얘기 좀 합시다”는 절규를 끝내 외면하는 배석규.
이렇게 그들은 권력에 충성하여 사익을 취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
노종면의 순진함과 착함은 그래도 이어진다. 2009년 11월 6명 전원이 해고 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한 후 노종면은 이렇게 말한다.
“사측이 이번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항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항소할 가능성?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않은 말투다.
웬걸? 사측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항소한다. 물론 노조 출입도 여전히 금지한다.
이처럼 권력과 그 하수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폭압적이었고, 훨씬 집요했다. 그들은 물에 빠진 개를 몽둥이로 때리라는 루쉰의 교훈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건 MBC 김재철 사장도 역시 똑 같았다. 그는 “관제 사장 필요 없다”는 조합원들의 외침에 “여러분이 정치투쟁하고 있는 겁니다. 정치투쟁에 이용당하고 있는 거예요”라며 당당하게 받아친다. 그리곤 이런 뻔뻔스런 거짓말을 태연히 늘어놓는다.
“방송 독립성 제가 지키겠습니다. 우리 MBC를 권력으로부터 지켜내겠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사원들이 한강에 저를 매달아서 버리세요.”
그 후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MBC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기구) 이사장이 김재철 사장에게 ‘좌파 척결 제대로 하라’며 조인트를 깠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그러자 김재철은 이를 부인하며 김우룡 이사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후 기자회견에서 왜 아직 고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예. 아주 좋은 질문을 해주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 달 되었습니다. 아까 지적하신대로. 제가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저도 2~3년 지나면 나이가 60입니다. 이제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월드컵이 어떻게 될지 지금, 그리스전이 어떻게 될까? 상암동에 그걸 갖다가 우리도 응원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현안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걸 좀 하고, 저에게 좀 시간을 줘야 제가 고소를 하든 말든 결정을 할 것 아닙니까? 이 송사란 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래 놓고 김우룡에 대한 고소 대신 노동조합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한다. 그들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앞서 현덕수는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워' 싸움에 나섰다고 말했지만, 구본홍, 배석규, 김재철에게 부끄러움 따윈 없다.
△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중에서
그렇게 하여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은 해고상태가 1년, 2년, 1200일, 2000일을 넘어가니 두렵다. 잊히는 것이다.
“이게 처음에는 한두 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장기화되니까 잊힌다는 것. 2009년 1심 판결 때 승소한 후 주변 사람들도 우리가 복직된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주변 사람도 그런데 많은 국민들은 해피엔딩으로 끝난 걸로 알고 있겠죠. 그런데 좋은 기억은 오래 가지만, 안 좋은 기억을 사람들에게 ‘우릴 기억해라 우릴 기억해라’ 그러기도 그렇고….” -조승호
영화는 전반부에서 YTN 상황에 초점을 맞추다 중반에 접어들면서 MBC를 비춘다. 그렇게 하나하나 해고자가 늘어 20여 명이 방송사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울러 김재철 사장이 잠적해 서울의 특급호텔을 전전하며 숙박비로만 1억 5000만 원을 탕진하는 이야기, 그 와중에도 자신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수배 전단을 붙인 노조 간부들을 알뜰하게 챙겨 고소·고발하는 김재철을 보여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저널리즘은 철저히 망가지고 국민들은 방송에 등을 돌린다. 이 상황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건!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전원 구조됐고 현재 사망자는 없는 상태입니다.” -MBC
"육해공 총동원 입체 수색, 투입된 경비함정만 81척, 헬기 15대가 동원됐고…, 현재 무인로봇이 선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KBS
다음날인 17일 거의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KBS 여기자가 진도 팽목항에서 생방송 리포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긴박한 사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군과 해경은 조명탄과 서치라이트를 밝히고 야간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순간 생방송을 통해 누군가가 “야 씨발년아, 거짓말 하지 마”라는 욕설이 들려온다. 그래도 기자는 당황하지 않고 꿋꿋이 대본을 읽는다.(역시 사익에 충실하면 뻔뻔하다.)
“해경은 해경특공대와 잠수부 등을 침몰선 내부로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씨발년아.”
“선체 내부수색에 필요한 중앙 산소공급장치 등을 갖춘 청해진함과 평택함이 사고지점에 도착해 구조 활동에 착수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체온증이나 산소 고갈에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당국에 보다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도 욕설은 계속된다.
“구조대들이 도착할 이곳 진도 팽목항에는 구조…”까지 하다가 결국 리포트는 중단되고 화면은 스튜디오로 전환된다.
△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중에서
이렇게 영화는 그냥, 7년 동안 있었던 주요 장면들을 드라이하게 보여준다. 나레이터도 없고 그냥 보여줄 뿐이다. 아! 해설은 있다. 그것도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서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 또한 현장에 있던 목포MBC 기자가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했음에도 그렇게 내보낸 거예요. 그 당시 전국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랬을까요? 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오보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그게 편했기 때문이죠. 정부가 말하고 있는, 정부가 내놓은 입장과 다른 이야기를 되살펴보기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최승호(해직) MBC PD
대체로 다큐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재미’를 기대하고 봐선 안 된다. 별로 친절하지도 않다. 예컨대 타이틀 장면에서 바닷가의 파도와 모자 쓴 한 남자 모습이 나오는데, 그 남자가 누군지, 왜 그가 거기에 바지를 걷고 서 있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이런 맥락 없는 장면이 군데군데 나온다. 거칠다.
그러나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보여주듯, 대한민국이 왜 이리 망가졌는지, 사익 집단이 정권을 잡으면 왜 방송부터 장악하려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꼭 봐둬야 할 영화다. 다큐의 소임 중 하나인 ‘기록’에 충실한 영화다. 기록은 역사다.
그래도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이 질기게 싸울 때 결국엔 이기는 역사를 남길 거라고 이 영화는 복선을 깐다. □
[필자소개]
김주완
27년 간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왔다.
시민주 신문으로 창간한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지금은 출판미디어국에서 책을 만들며 뉴미디어와 영상뉴스 실험도 함께 하고 있다.
<풍운아 채현국>, <별난 사람 별난 인생>,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등 책을 쓰기도 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imjoowan
유튜브 https://www.youtube.com/user/kjw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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