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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9호 리뷰] 삶은 소꿉놀이가 될 수 있을까 -다큐 <소꿉놀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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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7. 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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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9호 리뷰 2016.7.20]


삶은 소꿉놀이가 될 수 있을까

- 다큐 <소꿉놀이> 리뷰


양주연(ACT!편집위원회)


  

 어린 시절은 저마다의 소꿉놀이들로 채워진다. 새삼스레 생각하면 소꿉놀이 장난감에는 부엌용품들이 참 많았다. 다양한 요리기구와 음식모형은 소꿉놀이에 한층 현실감과 재미를 부여했다. 놀이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여자들은 음식을 하고, 남자들은 음식을 먹는 시늉을 했다. 이 상황이 바뀌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을 구분지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학습된다. 영화 <소꿉놀이>는 혼전임신이라는 사건으로 며느리와 엄마라는 정체성을 갑작스레 갖게 된 23살의 수빈이, 어떻게 가부장제라는 세계에 적응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자전적 이야기이다.



▲ <소꿉놀이(2016, 김수빈)>



법도가 지켜지는 삶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예술가 집안의 외동딸 수빈이 뮤지컬 배우 강웅과 혼전임신을 함께 확인하며 시작한다. 이때 혼전임신에 대한 수빈과 강웅의 상이한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강웅은 혼전임신 사실에 대해 큰 어려움 없이 가족들에게 털어놓지만, 수빈은 가족에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예의와 법도를 중요시 여겨왔던 집안에서 자신이 치욕스러운 존재로 여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예의와 법도는 곧 가부장제를 뜻하는 말이다. 소식을 전해들은 강웅의 가족들은 “그 어린 것을 어쩌려고 그랬니”라며 혼전임신한 수빈을 동정한다. 이는 수빈의 엄마가 시댁에서 자신의 딸을 얕잡아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는 인터뷰와도 이어진다. 수빈의 두려움은 곧 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동안 얼마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혹한 순결성과 모성의 숭고함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외동딸인 수빈은 성장의 과정에서 부모에게 특별한 성역할을 강요받지 않았지만, 혼전임신이라는 사건은 부지불식간에 수빈을 여성으로 명명하고 역할을 부여한다.

 달라진 일상 속에서 수빈은 카메라를 든다. 출산, 임신, 결혼이라는 삶의 과정에서 가부장제라는 법도는 언제나 당연한 순리로 수빈에게 다가온다.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의 삶을 둘러싸 있기에, 수빈은 자신을 억압하는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수빈은 카메라를 통해 현실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뱃속의 아기, 남편, 시어머니를 탓하는 것에 그치는 아쉬움은 있다. 영화 <소꿉놀이>는 젠더적 문제의식으로 처음부터 기획된 영화는 아니지만 혼전임신이라는 사건과 함께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일상을 살아야만 했던 미시사로서 촘촘히 채워지고 있다. 



놀이가 작동하는 방식


 가부장제라는 세계 속에서 여성들은 복잡한 얼굴을 가진다. 제도에 억압받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의 대변자가 되기도 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수빈과 같은 여성이지만, 그녀들 역시 가부장제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빈의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본인 역시 부당한 시집살이로 겪었고, 현재까지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된 지금, 그녀는 수빈에게 시댁의 권위와 전통을 강조하며 수빈을 억압한다. 수빈의 친정엄마 역시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딸에게 어떤 성역할을 강조하지 않고 수빈을 키워냈지만, 딸의 혼전임신 앞에서는 전통적인 여성의 순결에 대해 걱정하며, 시댁 앞에서 주눅이 들고 만다. 

 ‘소꿉놀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세계는 곧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학습되는 세계이다. 영화 안에서 수빈의 시어머니는 “인생은 소꿉놀이 같아”라는 말로 웃으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며느리, 엄마, 여성으로서 대부분의 삶을 부엌에서 보내왔을 한 여성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버텨올 수 있었는지를 함축한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하는 수빈의 의지가 시어머니의 그 말과 만날 때, 영화는 묘한 울림을 준다.

 영화는 가부장제 속에서 엄마, 며느리,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유연함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적은 오히려 더 쉽게 싸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랜 기간 학습된 구조적 억압은 쉽게 알아볼 수도, 이길 수도 없다. 영화는 수빈이 자신의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부장제의 모순들 앞에서 싸울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들을 보여준다. “분명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맞는데 사실 감독이 누군지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수빈의 내레이션은 사실 가부장제 안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기분을 대변한다.



▲ <소꿉놀이(2016, 김수빈)>



법도에 대해 다시 묻기 


 그럼에도 수빈은 끊임없이 ‘꿈’을 붙잡는다. 처음엔 자신의 꿈을 잃을까 모든 것을 억울함으로 받아들이던 수빈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방법 대신 꿈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법을 택한다. 그녀의 꿈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일에서 ‘무언가를 꿈꾸는 과정’ 자체로 변모한다. 결과를 공백에 놓고 과정에 집중함에 따라 그녀의 일상은 열려있는 것이 된다. 영화 <소꿉놀이>는 23살의 수빈이 엄마, 며느리로서 어떻게 가부장제 일상에 적응해 가는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가능성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래도록 학습된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모순을 그녀는 극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그녀는 헤매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둘러싼 모순들을 응시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그녀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용기의 경계 속에서 오늘도 어디선가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 유연한 상상력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을 그녀‘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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