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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3호 리뷰] ‘호스트 없는 호스트 네이션’의 탄생-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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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7. 5. 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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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3호 리뷰 2017.05.19]


‘호스트 없는 호스트 네이션’의 탄생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 리뷰


양주연 (ACT!편집위원회)

 

 ‘호스트 네이션’이란 말은 ‘미군 주둔국’을 뜻한다. 이때 ‘호스트’는 ‘미군’이라는 ‘손님’을 초대한 ‘주인국’, 곧 ‘한국’을 의미한다. 이고운 감독의 영화 <호스트 네이션>은 미군 주둔국인 한국의 미군 기지촌에서 이루어지는 성 산업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미군이 수십 년 전 벌려놓은 판(기지촌) 안에 있는 플레이어(player)들을 최대한 다 드러내서 이 링 자체를 보여주고자“(일다 인터뷰, 2017년 4월 27일자)하는 기획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주요 플레이어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필리핀 현지 매니저 역할을 하는 ‘욜리’이다. 이 역할의 핵심은 현지의 필리핀 여성을 ‘예비 이주 연예인’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욜리는 직접적으로 필리핀 여성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친근한 관계를 맺는다. 성모마리아상 옆에 앉아 욜리는 인자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감언이설로 속이지 않아. 이 일은 장단점이 있으니까. 어떻게 살 건지는 본인에게 달렸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나와 내 한국인 동료가 디딤돌이 돼서 아이들이 더 나은 인생을 살도록 돕는 거야.” 욜리는 자신이 한국에 매춘부를 송출하는 것이 아니라 탤런트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라고 카메라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 중에서


 두 번째 플레이어는 현지 매니저 욜리와 한국의 미군 클럽업주 파파 정을 연결시켜주는 한국인 브로커 ‘미스터 정’이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고운 감독이 그를 만남으로서 시작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IMF가 일어나기 전에는 공무원 생활도, 나이트클럽 운영도 해봤다는 그는 지금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욜리의 합숙생들의 E6(예술 흥행 비자) 준비를 돕고 있다. 그가 가장 신경써야하는 것은 합숙생들의 노래실력이아니라 욜리의 재정상태와 심경상태이다. 영화 내내 그는 욜리의 옆자리를 지킨다.


 세 번째 플레이어는 한국의 미군 클럽업주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국특수관광협회 군산 지부장 미군 클럽 업주’, ‘파파 정’은 본인은 술만 팔아서 돈을 벌뿐 성매매 같은 건 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카메라도 피하지 않고 성매매는 불쌍한 한국여자들이 했던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파파 정은 만약에 클럽에서 정말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인신매매’는 누가 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업주도 걸려야하고, 성매수를 한 사람도 걸려야 한다. 그런데 매수자가 없어. 이게 어떻게 법에 걸립니까?” 2011년 미군으로부터 내려온 ‘인신매매로 인한 미군 클럽업소들의 영업정지’조치에 대하여 그는 도리어 억울함을 호소한다.



‘감시’하고 ‘묵인’하는 ‘호스트’의 등장


 파파 정의 억울함을 통해 증명되는 것은 성 산업 생태계에서 국가가 지금까지 감시하고 단속하는 존재뿐만 아니라, ‘묵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군산 미군 기지촌은 언제부터 ‘국제문화마을 번영회 A TOWN’으로 불리어졌으며 E6비자는 왜 1999년부터 발급요건이 완화되었는가? “달러를 벌어들이라”는 미군 기지촌의 사명은 어떻게 ‘묵인’ 시스템을 만들어왔나? 링 위의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묵인’ 시스템과 어떻게 공조관계를 형성해오고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호스트가 감시하고 묵인하는 이중체제 속에서 호스트 네이션의 성 산업이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를 보게 된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에서 등장하는 호스트는 주로 기지촌 성산업을 감시하는 체제로서 등장한다. 감시체제로서의 국가는 링의 플레이어들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압박한다. 한국정부와 필리핀정부는 각각 2011년과 2007년에 이주 연예인 취업을 ‘인신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금지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두 나라의 막힌 국경을 통과하고 있다. 또한 욜리나 파파 정 역시 이러한 플레이를 계속 한다는 이유로 불법이라는 경고를 선고받지만 그렇다고 링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는 것은 아니다. 


 반면 영화 속에서 묵인하는 체제로서의 국가는 희미하게 등장한다. 묵인하는 모습이 국가에 의해 공식화 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영화 속에서 가시화하기는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묵인하는 호스트는 영화를 통해 가시화되어야한다. 호스트의 핵심은 가시화된 금지가 아니라 바로 비가시화된 묵인에 있기 때문이다. 합법성을 명분으로 가시화된 링의 이면에는 국가로부터의 묵인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맥락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국가가 만들어온 묵인의 체제를 가시화하지지 않음으로서 결과적으로 묵인에 동조해 온 호스트의 링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데 실패하고, 링의 한쪽 면만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국가의 묵인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욜리나 파파 정, 미스터 정의 불만들을 그대로 드러내고만 있을 뿐, 그 묵인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국가에서 금지를 했음에도 왜 계속해서 E6비자를 통해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으로 오는 지, 그 과정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채로 링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 중에서


‘가난한 필리핀 여성’은 왜 ‘피해자’가 되었나?


 이때 영화에서는 ‘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이주여성 쉼터 필리핀 동료 상담사’이자 ‘전 한국 이주 연예인’이라고 소개된다. 한국의 클럽업주와의 재판을 준비하며 평택의 쉼터에서 잠시 지내고 있던 조이는 성 산업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느껴졌었는지를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한다. “모든 여자가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가족을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조이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등장하던 링 위의 플레이어들과는 조금은 다른 조건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필리핀 다바오에 있는 욜리의 합숙생이었던 또 다른 필리핀 여성, ‘마리아’의 가난한 집으로 찾아간다. 조이와 마리아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기에 필리핀에서 버는 돈 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하는, ‘가족’과 ‘가난’이라는 교집합에 놓여있다. 자연스레 욜리, 미스터 정, 파파 정이 플레이하고 있는 링에서의 ‘여성’들, 구체적으로 ‘필리핀 여성’들의 위치를 물으며 영화는 나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가족과 가난 때문에 링 위에 올라서게 되었는가? 애초에 링은 왜 가난한 필리핀 여성들을 필요로 했는가?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왜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중요한 것은 그녀들의 가난이나 피해를 이야기하되 그것만으로 그녀들을 고립시키지 않도록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욜리가 카메라를 향해 “부자가 되려면 그만큼 희생을 해야 한다”는 말이나 파파 정이 “진짜 가수가 되려고 왔다는 아가씨들은 100% 거짓말이다”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다. 그들의 인터뷰를 들려주되, 어떻게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에 감시뿐 아니라 묵인하는 국가의 이중 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사람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링 위에 서면 호스트와 공조관계를 맺는다. 이때 호스트는 여성들을 위해 플레이어들을 감시하겠다는 역할뿐만 아니라 묵인하겠다는 역할 역시 오래도록 해왔던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들의 말만이 아니라, 바로 호스트라고 하는 또 다른 링의 플레이어의 감시와 묵인의 이중적 관리의 맥락들도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구체성이 함께 제시되었을 때 여성들의 인터뷰 역시도 그녀들을 고립시키거나 피해자화하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상호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 중에서



‘호스트 없는 호스트 네이션’의 탄생


 "미군이 수십 년 전 벌려놓은 판(기지촌) 안에 있는 플레이어(player)들을 최대한 다 드러내서 이 링 자체를 보여주고자“(일다 인터뷰, 2017년 4월 27일자)했다던 감독의 기획의도로 다시 돌아가 본다. 이 영화는 판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자신들이 맡은 플레이들을 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다만 이렇게 가시화된 한쪽 링만을 보았을 때 조이와 같은 여성들의 위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 생기는 간극을 통하여 영화는 묵인하는 호스트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간극에서 조이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도 크게만 느껴진다. 공적인 언어로 정의롭고 정당한 명분을 내세우는 호스트의 링 속에서는 세 명의 플레이어들도, 조이의 이야기도 ‘연출된 모순’이라기보다는 그냥 ‘정리되지 않음’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세 명의 플레이어들이 성 산업의 ‘중계자’임을 상기시켜보았을 때, 결국 물어야하는 것은 호스트의 위치이자 이중적인 모습이다. 중계자의 말들을 통해 드러나는 모순만으로는 호스트 네이션이라는 링이 갖고 있는 모순이 드러나기가 힘들다.


 중요한 것은 링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고 말하던 파파 정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 실시되었던 감시와 묵인의 여러 맥락들이 영화를 통해 밝혀져야만 한다. 국가는 어떻게 묵인 체제로 나타나고 그 묵인은 어떤 효과로 나타나는지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파파 정과 욜리, 미스터 정의 말들도 다시금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드러날 때, 이들의 위치뿐만 아니라 조이나 마리아와 같은 여성들의 위치들도 이중적인 링 위에서 함께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



<필자소개>



양주연


비판적 관점의 영상작업이나 글쓰기 작업에 관심이 많다.

<양동의 그림자>(2013), <내일의 노래>(2014), <옥상자국>(2015)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여성사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여성학을 배우며 여성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재미있는 작업들을 계속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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