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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6호 독립영화] 이주노동자 영화제, 팍팍하지만 재미있게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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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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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6호 / 2006년 11월 16일

 

이주노동자 영화제, 팍팍하지만 재미있게 한걸음
 
홍진(이주노동자의 방송 활동가)
 
* 제 1회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진행 중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문제와 실수들. 문제가 많아서 급기야 생기는 문제의식(?), 이주노동자 영화제와 사회적 소통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1. 이주노동자 영화제, 간단하게 소개하자

1) 소개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각 지역으로 이주하며 진행되는 독특한 영화제입니다. 올해에는 이주노동자가 만든 영화,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한 영화 등 국내외 작품 30여점을 모았으며 전 상영은 무료로 진행됩니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관객 모두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함께 본다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2) 목적
* 이주노동자가 문화를 향수하고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됨으로써 문화적 소외를 극복하여 이주노동자 스스로 문화적 자각과 자기 성찰을 통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 한국인 또는 이주노동자 사이의 문화 교류를 통한 경계허물기로 상호간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 이주노동자의 노동과 인권상황에 관한 영상기록을 자료화하여 한국사회, 나아가 국제사회에 실상을 알리고 인권상황 개선의 발판으로 삼는다.
* 감상 위주의 영화제를 탈피하여 이주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영화제를 통해 관객참여형 영화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3) 상영 일정
날짜
10. 1 10. 6 10.14,15 10.22 10.29 11. 5 11.19
지역 포천 안산 서울 대구 부산 마석 의정부
송우리
부천 시흥
장소 반월
아트홀
국경없는
거리
놀이터
서울아트
시네마
성서노동
조합옥상
시청자
미디어
센터
샬롬의
동사무소
강당
근로복지
공단강당
작은자리
종합
복지관


2. 시작은 이랬다“요새 영화제가 많이 생기는데, 우리도 영화제 하나 하면 안 될까?”
“그럼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되나? 그럴듯해요. 히히.”

시작은 비록 싱거웠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대화를 나눌수록 이 영화제가 열려야 하는 진지한 이유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주노동자의 방송’ 활동가들의 토론에서 나온 이러한 이유들은 영화제를 꾸리고자 하는 목적과 방향으로 연결 됩니다.
1)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이주하며 진행되어야 한다 
* 이주노동자의 이동권이 아직 확실히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화제가 움직여야 한다. 인간이건 영화제건 이주가 필요하다.
*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적어도 영화제가 진행되는 각 지역 이주노동자들에게 똑같은 의미로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이를 계기로 각 지역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만드는 문화 / 정치 생산 활동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2) 이주노동자가 직접 영화제를 만들며, 참여하여야 한다
* 그동안 몇몇 행사들이 일방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고 위로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들고 참여하는 영화제를 통해 미묘한 차별과 편견의 선을 넘어 대화와 소통의 순간을 직접 만들어 내야 한다.
*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로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깨고 당당한 문화적 주체로서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 재미있는 놀이를 위한 커다란 멍석이 깔려 있어도 개인적인 취향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거나 인간적인 끈과 노력 등으로 연결되어 엮이지 않으면 참여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또한 일방적인 동원이 되기 쉽다. 조그마한 스스로의 멍석들을 이어 붙여 함께 만드는 느낌이 있다면 이것이 취향이 되고, 인간적인 끈이 되고, 소통이 되며,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발전할 것이다.

3) ‘영화’와 ‘문화’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정체성을 함께 나누면 더욱 좋겠다
*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 중에서는 고향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경제적 생활을 누렸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에게 행해지고 있는 부당한 대우를 잠시 참아내야 하는 고통으로 여기며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혹은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포기상태에 있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 자신과 똑같은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만나고 우리가 노동자 중에서도 왜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잠시 묶여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한다면 좋을 것이다.

위와 같은 기본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시작되었습니다. 딩동댕 ♬

3. 상영작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몇몇 작품들을 중심으로 꾸릴 예정이었습니다.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이 서로에게 더욱 공감이 가고, 의미가 깊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해외 프로그래머였던 린다 씨가 의외로 너무 열심히 영화들을 모아 주셨습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영화는 이주노동이 보편적인 만큼이나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분명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대만에서 온 영화 속에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지의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힘든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었으며, 캐나다와 같은 부자 나라에서도 남미에서 올라온 이주노동자들이 나쁜 대접을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사실 서울 상영에 비중을 두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이제 안정적인 상영관에서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영화들을 한데 모으고 또 그 정보를 여러 영화제, 단체에 알리고 다른 나라에서의 상영 등을 준비하고, 온 우주에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서울 상영에서 문화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고 이틀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주구장창 영화를 틀게 되었습니다. 여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영화들 몇 편을 소개합니다.
'21세기 (21centuries)' 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작품입니다. 감독인 ‘자히드’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강제 단속으로 본국에 돌아간 이주노동자이며 고향인 방글라데시에서 수백만 의류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파업을 하는 모습을 영화로 찍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는 ‘이주노동자가 찍은 영화’로 감독과 함께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수입 아내 (My imported wife)' 는 충격적인 제목만큼 임팩트가 강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 캄보디아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장애와 여성, 이주, 계급, 이질적인 문화의 문제가 얽히고설킨 부부싸움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하지만 동등한 대화를 통한 백주 대낮의 싸움은 일종의 소통이고, 그들은 그만큼 건강합니다. 모든 소수자의 문제가 사실 그렇지만, 특별히 이주의 문제는 이주노동자 영화제와 소통합니다.
'국경을 넘어 (Borderless)' 는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초청한 몇 개 안되는 최신작입니다.-_- 
‘계약’을 만든 캐나다의 이민숙 감독의 작품으로 세 명의 이주노동자의 삶과 싸움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잡았습니다. 이 영화를 '다큐포엠(Docu-poem)' 이란 장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8동 병원 (Ba Dong Hospital Wing 8 East)' 는 대만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잔잔한 만큼 삶의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옵니다. 돌보던 환자가 임종을 맞을 때 - 가족들보다도 오히려 정으로 맺어져 있는 - 이주노동자들이 펑펑 우는 순간은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순간이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하거나,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전체 상영작 안내
☞ http://www.mwtv.or.kr/mwff/program/program.php


4. 과정에서 생각나는 문제들

1) 네트워크와 연대가 필요해
배짱 좋게 시작한 영화제지만, 영화제 관련된 일에 많이 미숙했습니다. 사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영화제 실무 부분을 아끼지 않고 함께 해 줄 단체들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연대할 시간이 없어서 아쉽기도 했고요. 이주노동자가 직접 준비하는, 준비해야만 하는 영화제의 색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할 시간도 없었고, 이런저런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뭐. 이주노동자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주노동자와 미디어 단체들 사이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밀려 있습니다.

2) 영화 선정 : 언어
스크린은 넓지만 사실 넓지가 않더라구요. 10여개의 언어가 한 화면에 자막으로 들어가기에는 말이지요. 처음 생각대로 수급한 영화들에 영어와 한글 자막을 넣었지만, 지역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두 가지 언어로 영화를 감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만 해도 한국어가 모국어라 그렇지-_-) 올해 지역의 상영작들은 언어가 별로 없는 애니메이션과 상영 시간이 짧거나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단편들이 주로 뽑혔습니다. 내년에 계속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우선 생각해 본 것은 화면 밖에 영사하는 스크립트 보드입니다. 영어로 진행하는 뮤지컬 등에 설치되는 스크립트처럼 동시에 여러 나라 말로 구성된 자막 뭉치를 쏘는 것이지요. 감상에 불편한 시야 문제와 준비하는 데 드는 약간의 노력을 생각하면 사실 마음이 썩 시원하지는 않습니다.

3) 지역 주체는 이제 시작이야!
말로는 잘도 이주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변화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만, 지역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특정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특근이 있는 날은 16시간 가까이 노동을 하고서야 지친 몸을 뉘입니다. 노동에 지쳐야 하는 현실을 깨기 전에 분명히 현실에 지치는 언니, 형님들의 작지만 분명한 활동에는 식상하지만 ‘대단하다’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처음 시작된 영화제에서 지역 이주노동자의 역할이 우리가 단언했던 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첫 번째 영화제와 함께 서로 알게 된 지역의 네트워커들은 내년 영화제가 진행될 경우 빛을 발하리라 생각합니다.

4) 영화제는 왜 할까?
사실 영화제라는 것. 재미있지만 자칫하면 그만큼의 번들번들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매체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일시적인 관객 동원과 원래 보다 조금 더 과장된 흥분은 매력이자 독입니다. 정부와 기업의 돈은 시네마떼끄보다 영화제를 좋아할 것입니다. 각 나라 말로 된 번역, 자막작업을 거친 영화들을 계속 공급하여 적지만 일정 수의 이주노동자 집단과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이 꾸준히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작업들은 조금 더 고단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고단한 시네마떼끄의 방식이 아닌 영화제의 방식이라면. 또한 기본적으로 유지에 일정한 돈이 드는 영화제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파는 것’이라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팔고 싶습니다. 영화제는 번역영화의 공급과 이주노동자 문화활동과 그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힘을 동시에 키워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5. 가고 싶다. 어떻게 가고 싶을까?

문화라는 것. 어떻게 보면 제일 먼저 한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들에게 노동비자 쟁취와 강제추방 박살의 목소리, 정치적인 구호는 들리지 않지만 이주노동자들의 문화. 방글라데시의 전통 옷과 네팔의 전래동화, 몽골의 생활습관은 땡큐입니다. 이들의 문화는 타자화 되어 상품이 되기도 하고, 눈물과 섞여 목숨을 걸고 도약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싸우고 싸워서 언젠가는 얻게 될 자그마한 정치적인 승리. 비자도 얻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을 얻게 되는 때는 인종을 가르는 피부색과 문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정치적인 권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전근대적인 차별이 없어졌을 때 조금 더 은밀하고 조용한 폭력이 벌어지겠지요. 문화의 문제는 정치적인 해결이 아직 요원한 지금의 시점에서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걸음 빨리 걷지만 마지막까지 뒤떨어 질 수 있는 문화의 위치는 흥미롭습니다.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바로 이 문화의 자리에서 정치적인 힘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의 힘으로. □



* 이주노동자영화제 웹싸이트 http://mwf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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