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1호 / 2006년 5월 3일
<노가다> 일본 상영회를 마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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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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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를 완성하면, 일본에서 첫 상영은 반드시 오사카 가마가사키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마가사키는 건설일용노동자들의 거리라고 불린다. 새벽이면 건설일용노동자들이 하루의 일거리를 찾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노가다>는 일본 가마가사키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 상영을 위해서 일본어 나레이션과 자막이 완성되었고, 상영회가 준비되었다. 나는 정해진 날짜에 출국을 해서 준비된 스케줄대로 상영회를 돌았다. 오사카, 도쿄, 요코하마, 나고야, 교토, 오사카... 십일 동안의 상영회가 끝났고, 상영회에 온 관객은 현장노동자와 일반관객을 모두 합해서 약 900명 정도가 되었다. 짧은 시간에 준비된 상영회 였지만,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거의 십일 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했다. 상영회 기간 동안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일본 사회의 우울과 불안이었다. 거리에서, 지하철 안에서, 상영회장 안에서 온통 어둡고 불안정한 눈빛으로 내일의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경제대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생활비용으로 항상 절약하며 여유가 없고 가난해 보였다. 90년대 거품경제가 무너진 이후로 계속 하락 하던 경기가 이제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유연화된 노동시장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파견, 일용직, 소위 프리타라고 불리면서 하루하루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개별화된 노동자들, 개별화되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듯 보이는 인간들. 너무 예민해 보여서 함부로 떠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긴장감. <노가다>촬영을 일본에서 코디네이터 해준 분은 가마가사키에서 30여년을 건설일용노조에서 활동을 해오신 분이었다. 그분이 오사카지부로 올라가셨고, 일년이 지나면서 심한 우울증과 정신병으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분과 함께 밤낮으로 통역을 도왔던 S. 그녀도 같은 노조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역시 심한 정신적인 병으로 병가와 휴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노가다> 작업을 열심히 도왔던 그들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였다. 일본사회에서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마가사키에 관심을 갖고 찾아 온 한국인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했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일본사회에서 널리 상영되게 하고 싶다는 그 마음으로 열심히 합세해서 작업을 도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노조에서 일하면서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도 일할 정도면 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영회를 준비하는 주체는 현장상영을 중심으로 하려는 목적 때문에, 일용전협(전국일용노동조합 협의회)과 가마가사키 파트롤회(가마가사키 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가 그룹)의 젊은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일본의 일용노숙노동자들과 함께 열심히 활동하거나 실제 자신들이 일용노숙노동자였다. 가마가사키에서 첫 상영의 준비는 이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준비되었다. 새벽, 요세바에서 선전전을 하고 상영회전까지 삐라를 뿌리면서 사람들을 부르고, 각자 맡은 기자재를 조달해서 설치했다. 수십 년 동안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던 각 조직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였다. 어두워지면서 상영회가 시작되었고, 많은 가마가사키 노동자들과 찬바람을 맞으며 함께 관람을 했다. 일본노동운동이 정파싸움으로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 노동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이후로 내부의 분열이 시작되었고, 이는 살인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수백 명의 노동운동의 상층부가 죽임을 당해서 사라져갔다. 각 조직에게는 심한 상처와 앙금이 남겨졌고, 같은 지역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서로 수십 년 간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가마가사키라는 아주 작은 지역에도 상황은 같았다. 걸어서 오 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다른 조직과 수십 년간 한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작은 지역에서 서로 얼굴을 수없이 마주쳤을 텐데 그래도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제는 너무나 약해진 노동운동으로 서로 “총력전”이라는 말을 하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총력전”이라고 해도 이미 고령화되고 소수만 남아있는 조직, 오랜 운동권 내부의 갈등으로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조직이다. 아니면 정부에 편입되어 관료화되어 있는 노동조합.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자신들의 과거와 노동운동의 현실에 대해서 말했다. 왜 일본은 투쟁하지 못하느냐? 젊은 사람이 노동운동에 관심이 없다. 왜 조직간에 싸우고 있느냐? 저토록 어려운 노동현실을 투쟁한다면 희망이 있겠느냐? 희망, 싸우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누구와 싸울 것인가? 이것이 이번 일본상영회를 마치고 난 후, 남겨진 질문이다. 알게 모르게 작은 조직 간의 갈등으로 마음 고생을 겪고난 후, 더욱 절실해진 질문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노동자의 조직과 단결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다. 조직보다 조직에 속해있는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조직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시키는 일본의 정서가 정말 불편하다. 돌이켜보니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많은 단상들이 떠오른다. 다시 상영회를 하기 위해서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할거 같다. 나도, 그들도. 이것은 어느 쪽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들도 나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거 같다. 나는 정말 가마가사키와 일본 노동운동에 많은 애정과 열정으로 작업을 했다. 현장상영이 끝나면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늙은 노동자들.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울었다는 사람들. 지금도 그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지는 이유를 좀더 명확하게 알고 싶다. 그래야 다음 상영회를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 * 김미례 감독 웹사이트를 통해 <노가다>에 대한 더 자세한 소식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r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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