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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68호 안녕!2009!] 용산에 관한 그치지 않는 수다, 레아 사랑방 이야기

이전호(78호 이전) 아카이브/안녕!2009!

by acteditor 2016. 1. 2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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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68호 / 2009년 12월 30일






용산에 관한 그치지 않는 수다, 레아 사랑방 이야기
 
김설해(‘촛불미디어센터,촛불방송국 레아’ 활동가)

 

 

 

 

 

올해 1월 20일 용산 참사가 있고나서 다시 겨울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용산 참사를 가슴아파했었고 지금도 용산을 생각하면 늘 마음에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고들 이야기 하는데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1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다. 요즘은 연말이라 그런지 용산을 찾는 기자들의 발걸음이 다시 잦아졌지만, 어떻게 그렇게 언론에서 용산을 쉽게 외면할 수 있었을까도 잘 모르겠다.

 


용산 참사 현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그 압도적인 공간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3월쯤, 용산 참사 현장에 촛불미디어센터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신용산역 2번 출구 계단을 밟았는데 뿌옇고 칙칙한 하늘과 고층 건물들, 참사현장을 에워싼 경찰들과 무너져가는 건물들이 나를 정말 심란하게 했던 것 같다. 처음 간 날 한 일은 레아의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었다. 하얗게, 파랗게, 난생 처음 페인트칠을 해보면서 이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시작할 거란 생각에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조금 펴지는 듯 했다.

 


레아는 용산참사로 희생되신 고(故) 이상림님의 가족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던 호프집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바로 뒷편에 자리한 3층 건물로, 참사 당일까지 장사를 계속했다. 참사 이후 이상림님의 아들이신 이충연님은 구속되었고 레아도 문을 닫게 되었는데 전재숙 어머니와 며느리 정영신님이 레아를 활동가들에게 맡겨 주시면서 만들어진 것이 ‘촛불미디어센터,촛불방송국 레아'다. 공간 구분이 명확하진 않지만 미디어센터와 방송국(영상과 라디오), 갤러리, 까페 등이 레아 안에 생겨났다.

 


이렇게 새로운 공간으로 레아가 다시 문을 열고 난 다음에는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었다. 화장실 앞에 서너명씩 줄을 서 있고, 까페 레아의 커피가 동나는속도는 잘나가는 별다방과 콩다방 못지 않았다. 갤러리 레아엔 끝나지 않는 전시(*주1)가 시작됐고 무수한 걸작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로테이션되었다. 그리고 여러 방송국과 신문사의 기자, 개인 활동가들이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미디어센터 공간에서 죽치고 지냈으며 촛불 모임이나 시민단체의 회의, 대학생 모임 같은 것들도 자주 레아에서 열렸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건 사실이다. 지금은 단란한 사랑방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늘 오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이런 사람들까지가 ‘레아 활동가'라고 정해져있는 건 아니다. 그때 그때 모이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레아가 채워져간다. 자발적이라고 해야할지 느슨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수다를 떨다보면 계획이 세워지고 프로젝트로 명명되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 뭐 그런 것들이 레아의 활동을 풍성하게 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붙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오고 그 모든 것이 실험인 동시에 행동이었고 또 다른 행동을 자극하는 토양으로 남았다.

 


촛불방송국은 철거민 뉴스 1호로 시작해 현장 속보와 광고 영상 등을 50편 가까이 만들어냈다. 철거민 뉴스는 철거민들이 직접 진행하는 꼭지별로 구성된 기획 뉴스였지만 이후 경찰폭력이나 용역과의 마찰 등 급박한 상황의 속보나 간단한 기획으로 빠른 제작이 가능한 광고 영상 등을 주로 만들게 되었다. 레아의 개관 즈음 액트에 실렸던 원고를 찾아보니 직접 미디어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사례를 기대한다고 쓰여 있지만 철거민 분들은 하루 일정 소화하기도 빠듯할 정도로 참 바쁘시다. 용산에서 시작된 철거민 구술사 프로젝트(*주2)가 그런 의미들을 어느 정도 구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런 저런 의미들을 평가하기엔 우린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라디오는 ‘행동하는 라디오-언론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200편이 넘는 방송을 만들고 용산참사 현장에서의 공개 방송과 음악 공연들로 용산 4구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요일별로 DJ들이 따로 있었고 자주 공개방송을 했지만 이후 DJ가 부족해지면서 현장 중계가 많아진 면도 있다. 또 용산과 행동하는 라디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 라디오를 만들어 보내는 액세스 방송도 몇 번 있었다. 요즘엔 라디오 드라마 제작이 한창인데 은근히 여기 저기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미디어센터는 정기적인 길거리 상영회와 집회 현장의 초상권 강의 등으로 많은 관심을 끄는 듯 했으나 이후 촛불 미디어 제작 워크샵이 잠정적으로 중단되면서 하는 일이 별로 없어졌다. 그것은 레아의 공간이 별로 구분이 없는데다가 늘 뭔가 만들어내야만 하는 촛불방송국으로 많은 활동가가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저 역할분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왜 미디어센터라는 이름이 용산과 딱 들어맞지 않았던 걸까에 대한 나의 의문은 남아있다.

 


모든 레아의 활동이 한 군데에서 만나는 건 역시 까페다. 대량으로 주문한 커피콩을 직접 만든 로스터에 구워 직접 갈아서 끓이는 커피로 만인을 배불리 마시게 해주는 감사한 곳일 따름이다. 용산에 주둔하고 있는 사제단, 범국민대책위원회 사람들, 남일당 분향소에 계신 철거민과 유가족들도 종종 이 까페에서 만나 수다꽃을 피우게 된다. 레아를 처음 찾은 사람들도 이곳에서 커피 한 잔 하고 나면 드디어 용산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만큼 스스로 뒷정리 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잘 안돼서 최근 까페의 야매 바리스타 박모 활동가는 파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처음에 비하면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치우는 개념을 확실히 익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뒷정리를 잘 안한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레아를 ‘복합투쟁문화공간 레아'라고 부르고 있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미술가들과 작가들, 음악가들이 레아에서 활동하고 있다보니 활동가들 간에 경계도 희미해져 미디어활동가가 연극을 하거나 작가가 카메라를 들거나 나 같은 사람이 노래를 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누가 요즘 뭐하고 사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나 요즘 밴드 해”라고 이야기한다. 1인시위 음악회(*주3)를 하며 길거리 직접행동의 참 맛을 보았다고나 할까. 다양한 활동 영역의 사람들이 만나서 생길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투쟁 현장에 작업 공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샘솟는 것 같다.

 


이름이야 어찌됐든 용산에 가면 레아가 보인다. 용산을 훈훈하고 북적이게, 다양하고 시끄럽게 했던 곳. 고 이상림님의 가족이 운영하던 것을 받아서 레아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건 사람들이 모여서 부대끼고 살던 예전의 모습을 복원하는 의미에서였다. 실제로 레아 사람들은 고 이상림님 가족이 살던 4층 옥탑방에서 종종 잠을 자고 남일당 건물에서 밥을 먹고 원래는 레아 호프의 주방이었던 까페 레아에서 커피 한 잔에 수다를 떨며 부대끼고 살고 있다. 그 모든 것에 공간이 주는 힘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사실 레아도 언제 철거가 강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는 레아가 참 좋지만 어서 빨리 용산 참사가 사람들의 바람대로 해결되고 레아도 정리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하지만 강제 철거만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더이상 소중한 것들을 헐리고 맥없이 떠날 수는 없다. 그들의 폭력의 끝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아의 상상력과 액션 또한 끝이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될 때까지 수다를 떨어볼 계획이다.

 


*주

 

1) 서울민족미술인협회에서 열고 있는 전시 제목. 용산참사 현장 일대와 갤러리 레아에 전시가 열리고 지역 순회 전시도 열고 있다. http://cafe.naver.com/sminart

 


2)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구술하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무차별한 재개발의 폭력의 과정을 밝히고 철거민들의 삶이 포괄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며 구술 자체로 치유의 의미를 갖고자 하는 의도로 시작되었다.

 

http://cafe.daum.net/Cmedia

 


3) 매일 저녁 5시 30분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열리는 길거리 공연. 누구나 원하는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하다.

 

http://actionradio.org 


 

[필자소개] 김설해 (‘촛불미디어센터,촛불방송국 레아' 활동가)

 

레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홍보팀의 멤버로, 발맛사지단 '발의 평화' 단원으로, 가끔 행동하는 라디오 DJ로, 1인시위 음악회에서 초짜 가수로 온갖 잡다한 활동들을 조금씩 건드려보고 있다.

 

* 레아 인터넷 까페 http://cafe.daum.net/C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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