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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3호 학습소설] (4) 프로그래머를 넘어 디자이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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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5. 1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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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3호 학습소설 2015.5.20]


(4) 프로그래머를 넘어 디자이너로

– 코딩교육에 대한 비망록


주일(창작자)





file no.1_#인사_#코딩교육_#이야기채집


 따로 질문을 주진 않으신다고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거죠? 그럼 정리가 잘 안 될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시간 순서대로 얘기해볼게요. 그런데 주제가 뭐라고 했죠? 코딩 교육이요? 제가 그걸로 이야기한다고 했어요? 내가 언제 그랬더라.


(질문자 : 코딩 교육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저희를 부르셨어요.)


 맞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이 저희 집까지 오셨던 거죠. 요즘 제가 나이가 드니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움직이기가 힘드네요. 이렇게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모든 게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질문자 : 저희가 이런 사업을 하는 목적이 사라질 이야기들을 채집하는 거니 저희야말로 고맙죠.)


 그러시다면야. 처음 컴퓨터를 만졌을 때의 이야기부터 할게요.



file no.2_#지능개발_#컴퓨터학원_#할머니_#콤퓨타_#주판


 그땐 주로 골목에서 놀았어요. 다들 형편이 고만고만해서 학원 다니는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부분 고향에서 일자리를 잡는 분위기라 공부를 특별히 잘할 필요도 없었죠. 진짜 범생이들은 진작에 서울로 유학을 갔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지를 봤고 그게 제 인생을 바꿔 놓았어요. 지역 최초로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는 내용이었어요. 미래는 컴퓨터 시대다, 컴퓨터 기술을 배우면 앞으로 취직 걱정은 없다, 지능개발에 도움이 된다.


(질문자 : 계발이 아니라 개발이요?)


 네. 그땐 지능개발이라고 했어요. 오락실만 가도 지능개발이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니까요. 아무튼, 영화에서나 컴퓨터를 보던 시골 아이가 어떤 생각을 했겠어요. 집에 가서 졸랐죠.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우리 형편에 무슨 학원이냐. 엄마 아빠는 그러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콤퓨타 배우면 뭣에 좋니, 라고 물어보셨어요. 우리 할머니는 컴퓨터를 콤퓨타라고 부르셨거든요. 아마 그때 할머니가 물어보시지 않았다면 저도 지금 이 인터뷰를 하고 있지 못했겠네요.


(질문자 : 할머니 덕분에 저희도 지금처럼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였네요. (웃음))


 그 이후 잠깐의 논쟁이 이어졌고 결국 전 컴퓨터 학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읍내에 2층 건물이 몇 개 되지 않던 그 시절, 저는 학원의 첫 번째 수강생으로 등록했고 그 이후로 고등학교 때까지 다녔으니 아마 10년쯤 다녔겠네요. 그게 벌써 100년이 넘었다니. 당시 국민학교에선 컴퓨터에 대해 쓸모 있는 걸 전혀 배울 수 없었어요. 그냥 그런 게 있다더라 정도만 나올 뿐 그걸로 실제로 뭘 할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죠.


(질문자 : 여전히 컴퓨터나 프로그래밍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군요.)


 그랬죠. 시장에 가면 계산기보다 주판으로 하는 가게가 더 많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file no.3_#학원_#프로그래밍언어_#베이직_#포트란_#코볼_#코딩_#자격증_#창의설_#슬럼프_#주입식교육_#검산_#버그


(질문자 : 학원에선 무엇을 배우셨어요?)


 처음엔 베이직(BASIC)이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어요. 영어 단어도 못 읽는 애가 더듬더듬 영어 공부를 하며 뜻도 모르는 ’PRINT’니 ‘IF... THEN’ 같은 명령어를 입력하려니 죽을 맛이었죠.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프로그래밍 언어는 정말 하나의 언어였더라고요.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며 사람 흉내를 내듯 저도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며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익혔던 것 같아요. 이후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포트란(FORTRAN)이나 코볼(COBOL) 같은 언어도 배우긴 했는데 재미는 없었어요. 베이직 때보다 할 수 있는 건 늘어났는데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어요. 배운 대로 공식대로 코딩을 하긴 했는데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했고요. 그냥 시키니까 했고, 결과값이 나오니까 맞게 짰나보다 했던 거죠. 그래서 6학년 때 자격증을 딴 이후로 잠시 슬럼프에 빠졌죠.


(질문자 : 뭐가 문제였을까요? 그리고 슬럼프에서는 어떻게 탈출하셨어요?)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폐해였던 거죠. 다른 교육도 마찬가지지만 프로그래밍은 다른 예술만큼이나 창의성이 중요해요. 한 가지 결과 값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코드를 짤 수 있죠. 물론 속도나 효율성을 따진다면 정답이란 게 있겠지만 그 정답에 이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엄연한 교육인데 학원 선생님들은 무작정 책에 나온 대로만 코드를 쓰라고 했어요. 학교 수업시간이랑 다를 바가 없었죠. 산수 문제를 풀다가 답이 틀리면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거꾸로 검산해보면 알 수 있듯이 프로그램을 짤 때에도 버그(bug)를 잡기 위해 수십 수백 줄의 코드를 뒤지곤 하는데, 문제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시키는 대로만 짜면 그런 재미를 찾을 수 있겠어요? 그냥 옆자리 친구랑 똑같은 프로그램만 만드는 거죠. 음... 그리고 슬럼프를 어떻게 벗어났냐... 게임이었어요.



BASIC 코드 작성 화면



file no.4_#복제_#천원_#오락실_#게임_#방구석_#컴퓨터잡지_#희열_#게임프로그래머


 당시엔 요즘처럼 프로그램 복제가 불법이 아니던 시절이라, 아니지, 불법이 아니었다기보단 그런 개념조차 몰랐다고 해야겠죠, 동네 컴퓨터 가게에 가면 천 원만 내도 게임을 복사해줬거든요. 자격증을 따고 목표를 잃어버린 시절, 고작 중1이 목표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웃기네요, 천 원짜리 게임들이 제 친구가 되어줬죠. 이미 오락실에는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의 게임들이 넘쳐났지만 그런 것들엔 호기심이 끌리지 않았어요. 너무 단순해서 컴퓨터 따위는 전혀 모르는 애들도 동전 몇 개만 넣고 해보면 잘 하더라고요. 그런 게 싫어서 집에서 천 원짜리 게임에 빠져들었죠. 장르도 다양했어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롤플레잉 게임. 처음엔 그냥 무작정 게임만 했어요. 아마 21세기 초에 살던 사람들이 보면 오타쿠나 히키코모리라고 불렀을 거예요. 방구석에서 게임만 했으니까요. 요즘이야 방에서 나오지 않고도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땐 그게 아주 이상한 거였으니까요. 아무튼 잠시 프로그래밍은 잊고 주구장창 게임만 했죠.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얼마 전부터 컴퓨터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거기에는 프로그램 언어별로 예제가 많이 나왔는데 절반 정도는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를 게 없었지만 나머지는 아주 재미있었죠. 특히 게임 만들기 강좌는 아주 흥미로웠어요. 그동안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가계부나 개인정보관리 프로그램 같은 것뿐이었는데 게임도 직접 만들 수 있다니! 처음에는 이미 갖고 있는 게임들의 코드를 수정해서 내 마음대로 바꿔보다가 나중에는 잡지에 나온 내용대로 직접 게임을 만들기에 이르렀죠. 내가 직접 짠 코드가 눈앞에 구현될 때는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희열을 맛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장래 희망을 프로그래머로 결정했죠.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 프로그래머.



(5,6,7번 파일 불량으로 내용 유실)



file no.7_#돈_#미디어영역_#마이크로소프트_#애플_#미디어아트_#백남준_#아날로그_#첨단기술_#비전공자_#정규교육과정_#사회공헌활동


(질문자 : 미국에서 10년 넘게 게임 회사를 운영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시고 2010년 경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떤 결심을 하고 오신 건가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거의 다 날려먹었죠. 게임 이외의 사업들도 후발 주자들이 더 잘하는 상황이었으니 딱히 성공이랄 것도 없고요. 미국 생활이 익숙해지고 좀 한가해지면서 컴퓨터를 벗어나서 미디어 전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움직임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모든 영역이 각자의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넘어오지 말라고 싸웠다면 20세기 말부터는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장점들을 가져오려고 애썼죠. 컴퓨터 업계의 큰 손인 마이크로소프트가 NBC 방송국과 손을 잡고 MSNBC를 만든 일이나 애플이 사명에서 ‘컴퓨터’를 떼어버리고 아이팟을 앞세워 IT계를 넘어 미디어 업계 전반을 뒤흔드는 거물이 된 게 좋은 사례죠. 그때부터 주변을 돌아보니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여전히 프로그래밍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지만 의외로 생활 속에서 프로그래밍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도 했어요.


(질문자 : 어떤 일들에 프로그래밍이 필요했죠?)


 미디어아트 아시죠? 요즘이야 거의 대부분의 예술이 미디어아트지만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디어아트는 극소수의 예술가만 했어요. 백남준 선생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했던 작업들을 후세의 예술가들이 디지털 기법을 이용해서 이어 받았는데 대부분 첨단기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원하는 기술이 없으면 직접 코드를 짜고 도구를 만들어야 했죠. 또 있어요. <토이스토리>를 만든 ‘픽사’는 단순히 애니메이션 제작사처럼 보이지만 좀 더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을 구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이나 특수효과 플러그인을 직접 제작했어요. 더 간단한 사례가 있는데, 한때 붐이었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관리하기 위해선 일반인들도 HTML이란 코드를 익혀야 했어요. 비전공자들도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코딩을 하고 있던 거예요. 물론 여전히 절대적인 숫자는 적었지만요. 이때부터 미국에선 코딩 교육이 학교 정규교육과정 내지는 IT기업들의 사회 공헌활동에 본격적으로 포함되기 시작했어요. 



file no.8_#IT전문가_#미래의쌀_#MIT미디어랩_#스크래치_#복잡한코드


(질문자 : 도입 당시 사회의 반응은 어땠나요?)


 한국에서 연예인 스타들을 부각시키듯 미국 뉴스에선 IT 전문가들이 스타 대접을 받았어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같은 사람들을 단순히 한 기업의 대표라기보단 미국 개척자 정신의 본보기로 취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했어요. 그들이 늘 미래는 디지털 시대다,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외쳤으니 당연히 일반인들에게도 프로그래밍이 낯선 개념이 아니었던 거죠. 


(질문자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제적, 산업적 관점에서 주목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교육적 의미는 보이지 않는데요?)


 처음엔 그랬죠. 1990년대 닷컴열풍이나 2000년대의 모바일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국가나 기업들은 미래의 쌀은 디지털이다! 라고 떠들어댔죠. 그 가능성이나 효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뒤로 한 채 새로운 시장과 영역을 만들 뿐이었죠. 하지만 이미 코딩 교육을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어요. 미국 대학에선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1980년대부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실시했어요. 처음에는 과학기술이나 수학 쪽에서 통계나 데이터 분석을 위한 기반 기술로서 다뤘죠. 하지만 갈수록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고는 일반 학생들, 심지어는 대학교가 아닌 초중급학교에까지 시범적으로나마 코딩 교육을 도입했어요. 그들을 위해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많은 연구도 뒤따랐고요. 그러다가 평소에 특이한 일을 많이 벌이는 MIT 미디어랩에서 2006년에 쉽게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인 스크래치(SCRATCH)를 발표했어요. 


(질문자 : 스크래치요?)


 코딩 교육을 위한 응용프로그램인데 파워포인트랑 비슷해요. 빈 무대에 아이템을 갖다 놓고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면 특정한 동작을 하거나 반응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요. 보통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복잡한 코드를 짜야 하는데 스크래치는 교육용 프로그램이다 보니 사용법이 아주 간단해요. 옆에 있는 메뉴에서 ’이동’, ‘회전’ 같은 명령어를 고르기만 하면 되고 얼마나 움직일지는 글꼴 크기 바꾸듯 숫자만 입력하면 돼요. 모든 게 끝난 후 재생 버튼을 누르면 내가 입력한 명령어와 수치대로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반응해요. 아주 쉽죠. 더 놀라운 건 예제로 주어지는 임무들을 차근차근 수행하다 보면 흔히 갖고 놀던 컴퓨터 게임과 비슷한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죠. 코드를 몰라도 코딩을 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어린 학생들이 만드는 작품들을 보면 절대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답니다. 아, 내가 어릴 때 스크래치 같은 쉬운 도구가 있었다면... 아니다. 그럼 누구나 게임을 만들었겠지. 허허.  




스크래치 홍보자료




스크래치 작동 화면. 파란 블록을 우측으로 갖다 놓으면 특정 기능이 적용된다. 



file no.9_#코딩교육_#리터러시교육_#위기의식_#성장동력_#한국프로그래머_#닭집_#NHN_#EBS_#소프트웨어야놀자_#스타트업


(질문자 :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코딩 교육을 받아들였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여전히 의문이 생깁니다. 대체 코딩 교육은 왜 해야 했던 거죠?)


 잠깐 미국 이야기를 하다가 옆길로 새서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네요. 흔히 리터러시 교육, 문맹 퇴치 운동을 시민의 권리 찾아주기 활동이라고 말하죠. 맞는 말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기존에 존재하던 자료들을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어야 인간답게 사는 거니까 맞는 말이죠. 시대가 흘러서는 말과 글 위주의 리터러시 교육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옮겨갔어요.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에 이르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하자 문자 해독 위주의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미디어 읽기나 만들기 같은 수업이 학교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청소년을 넘어 노년층이나 이주민들 대상 교육으로까지 확대되었죠. 모두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살 필요는 없겠지만 원한다면 동참할 수 있는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점차 변해갔어요.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공동체 라디오 방송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젊은이들은 자신의 끼를 발휘할 UCC와 팟캐스트를 만들기도 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삶과 역사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만들어 여기저기 배포하기도 했죠. 

  그런데 갑자기 사회가 뒤숭숭해졌어요. 미국, 일본, 한국과 같이 전통적인 산업 강국들이 중국과 인도 같은 국가들에게 하나둘씩 자리를 내어주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죠. 기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만으로는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첨단 산업으로 눈을 돌렸는데 거기서마저 신흥국에게 추격을 당하니 죽을 맛이었겠죠. 그래서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IT, BT, CT, NT 같은 용어들을 쓰며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다 찾은 게 프로그래밍이죠. 지금도 그렇지만 21세기 초만 해도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는 장치는 없었어요. 컴퓨터, 스마트폰은 물론 시계, 자동차, 냉장고,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주변엔 온통 전자장비 투성이였죠. 하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프로그래머의 숫자는 늘 부족했고, 일반인들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인식도 냉담했죠. 굳이 그런 복잡한 걸 알 필요가 있나. 또 미국은 연봉도 높다는데 한국 프로그래머들은 머슴 취급 받다가 퇴직 후 닭집이나 차린다며, 란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오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자 기업과 정부가 나섰어요. 네이버로 알려진 NHN은 NEXT라는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비전공자를 포함한 일반인을 프로그래머로 양성하기 시작했고, EBS와 손을 잡고 ‘소프트웨어야 놀자’란 코딩 교육 캠페인을 실시했어요. 그중 [EBS 코딩, 소프트웨어 시대] 12부작 다큐멘터리는 친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사례들로 일반인들이 코딩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해줬죠. 이에 발맞춰 정부는 2015년부터 시범적으로 코딩 과목을 도입한 뒤 2018년부터 정식교과목으로 채택했어요. 도입 초기에는 찬반 논란도 있었고, 초등학생 대상 코딩 과외까지 생길 정도로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죠. 아무래도 더 이상 과거의 산업 기반을 가지고는 성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작용했던 게 컸죠. 저도 한국에 돌아온 지 3, 4년 동안 여러 가지를 알아보다가 이 무렵에 코딩 교육을 위한 스타트업을 만들어서 한동안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확산시켰죠.



file no.10_#소프트웨어도미디어다_#플랫폼_#앱_#오프라인_#온라인_#power_to_the_people


(질문자 :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될 수는 없고 될 필요도 없을 텐데 굳이 교육과정에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음... 이 지점이 사람들의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이었죠. 또 단순히 산업적, 경제적 효용성만 따졌다면 굳이 제가 참여할 필요도 없었을 거고요. 전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바로 ‘소프트웨어도 미디어다’. 19세기까진 무엇을 표현하려면 글이나 그림, 음악을 통해서 전달해야 했지만 제약이 많았죠. 배우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고 다수에게 보여줄 통로도 제한되어 있었으니까요. 20세기 들어 사진이나 동영상처럼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들이 보급되긴 했지만 대중과 만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주요 플랫폼과 통로는 대기업과 전문가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21세기 초에 컴퓨터가 책상을 벗어나 손안에 들어가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말하는 거예요, 요즘엔 전혀 쓰지 않아서 기억하실진 모르겠네요, 그때부터 프로그램이나 어플리케이션이란 개념이 아주 일상적인 단어가 됐어요. 무언가 하고 싶으면 앱을 먼저 찾는 게 일이었죠. 예쁜 사진을 찍고 싶으면 어떤 앱을 써라, 길을 찾고 싶으면 지도 앱을 써라, 지금 들리는 멜로디가 무슨 노래인지 궁금하면 샤잠 앱을 써라, 이런 식이었죠. 스마트폰 도입 초기에 어떤 고등학생이 혼자 만든 서울버스 앱이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공공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교통정보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손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앱을 만들자 이용자들이 감탄을 하며 칭찬을 쏟아냈죠. 그동안은 기업이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들을 어린 학생 혼자 해낸 것에 놀랐던 것이죠. 물론 돈벌이가 되겠다는 점도 동기가 되긴 했겠지만 그때부터 개인 개발자들이 수많은 앱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을 하게 도와주고,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지인들과 손쉽게 나눌 수 있게 도와주고, 각자 갖고 있던 창작 욕구를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떤 형식의 콘텐츠든지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도와주고... 커다란 컴퓨터 없이도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하는 세상이 되자 앱은 엄연한 하나의 미디어가 된 것이죠. 이전까지는 실제 생활하는 세상을 오프라인 공간, 컴퓨터 속의 세상을 온라인 공간으로 구분하고 살았다면 이때부터 두 공간은 하나가 되었어요. 다시 말해 오프라인에서 하는 모든 일은 온라인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온라인에서 가치 있는 일은 오프라인에서도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답니다. 그러니 이렇게 중요한 미디어인 앱을 어떻게 외면하겠어요. 저도 나름대로 사회를 변혁하겠다는 뜻을 품고 산 사람이었는데요. Power to the people! (웃음) 그래서 그때부터 코딩 교육에 모든 열정을 바쳤죠.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코딩을 쉽게 받아들이게 도와주고, 만든 앱을 쉽게 유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죠. 아, 제도권 교육은 국가나 기업의 입맛에 맞는 교육을 하기 쉽다는 점 때문에 대안적 성격의 코딩 교육을 위해 전국의 미디어센터 교육과정에 코딩 교육을 도입하려고 발 벗고 나서기도 했죠. 얼마나 힘들던지. (질문자 : 어떤 점이 힘드셨어요?) ‘앱도 미디어다’라는 인식을 전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그게 의외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질문자 : 제가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예전에 연설하셨던 영상을 찾았는데 한 번 보시겠어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죠. 



file no.11_#연설_#주커버그_#부자_#언어_#원리_#디자이너_#논리_#소통_#창의성_#좋은세상


 다들 어떤 생각을 갖고 이곳에 오셨어요?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 앱을 직접 만들고 싶다, 앱을 만들어서 주커버그처럼 부자가 되고 싶다, 또 없어요? 부모님이 오라고 해서 왔다고요? 하하하. 앞으로 여러분은 코딩이란 걸 배우게 될 거예요. 다들 코딩은 아시죠?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컴퓨터에서 돌아가기도 하고 휴대폰에서 돌아가기도 하죠. 재미있을까요? (네와 아니오가 뒤섞인 대답들이 들린다) 저는 재밌었어요. 그래서 30년 이상 코딩을 하며 살았고요. 이걸 배우면 뭐가 달라질까요? 여러분들이 앱을 하나씩 만들게 될까요?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모든 학생이 앱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도 없고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이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야 해요. 좀 이상하게 보이긴 하지만 영어나 중국어 같은 일종의 언어에요. 언어는 왜 배울까요?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죠. 여행을 가거나 유학을 가서 공부하려면 그곳의 언어를 배우듯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기계 장치를 잘 이해하려면 코딩을 배워야 해요. 비록 직접 앱을 만들지 않아도 배워두면 전자제품들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좀 더 쉽게 알 수 있답니다. 몰라도 잘만 쓰고 있다고요? 대단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기엔 학생은 이미 코딩 교육의 기본을 익히고 있을 것 같은데요. 꼭 어려운 명령어를 잘 외우고 복잡한 코드를 순식간에 짠다고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는 건 아니에요. 세계의 유명한 IT 기업 대표 중에는 프로그래밍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앱과 서비스와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그건 그들이 훌륭한 설계자, 즉 디자이너이기 때문이에요.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몇 가지 자질이 필요해요. 첫째, 논리적이어야 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무작정 달려들어 해결하면 어떨까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힘도 들겠죠. 하지만 냉철하게 문제점을 파악한 뒤에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면 좀 더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지금 이 시계 보이죠? 시계 바늘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시계 수리점에 맡긴다고 대답하려고 했어요? 에이, 재미없다. (웃음) 사람이 움직이려면 밥을 먹어야 하죠? 시계도 움직이려면 밥을 먹어야 해요. 그럼 어떻게 밥을 줄까요? 자, 이렇게 옆에 달린 용두를 돌려서 태엽을 감으면... 어때요, 시계가 돌아가죠? (웅성웅성) 아, 요즘 시계는 건전지를 넣거나 충전을 하니까 이런 시계를 쓸 일이 없겠구나. 죄송해요, 제가 좀 구식이다 보니. (웃음) 이게 바로 논리적 사고예요. 무언가 움직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고로 시계도 움직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시계에서 밥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옆에 있는 걸 돌려볼까. 앗, 돌아간다. 문제 해결! 간단하죠? 세상 대부분의 일은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논리적 사고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한 뒤에 유사한 사례를 참고하거나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해결방법을 찾는다면 예전에 무작정 달려들 때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예요. 논리적 사고, 이게 첫 번째 자질이에요. 

 두 번째, 소통을 잘 해야 해요. 여기서 소통은 단순히 말을 잘 한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잘 들어줘야 해요.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일 줄 알고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과 행동과 표정에서 파악할 줄 알아야 해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기계일 수도 있어요. 그들의 불평과 불만에 귀 기울이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늘 고민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바로 소통이에요. 그러니까 휴대폰이 먹통이라고 해서 무작정 성질내면서 던지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면서 대화를 해보세요. 아마 코딩을 배우고 나면 휴대폰이 말하는 게 여러분 귀에 들리게 될 거예요. (웃음) 농담 아닌데... 또 문제를 해결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하면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어요. 아마 여러분은 코딩을 배우면서 모둠활동을 하게 될 거예요. 이때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거나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뒤로 빠져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전혀 얻는 것도 없고 성장하지 못하겠죠. 여러분은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우게 될 거예요. 이 기능을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그래? 그럼 그렇게 해보자. 이런 식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다보면 어느 새인가 여러분은 훌륭한 디자이너가 돼있을 겁니다.

 세 번째, 창의성이 있어야 해요. 창의성은 단순히 아이큐가 높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에요. 또 혼자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많은 자료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자기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길러지는 거예요. 또 주어진 것에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면 안돼요. 늘 의문을 품고 질문하며 살아야 하죠. 궁금한 게 생기면 혼자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모르겠으면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바로 물어보세요. 때론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구박하기도 할 거예요. 아니면 뚜렷한 도움을 얻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남이 만든 제품과 정보에 길들여져서 얌전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은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없어요.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찾아서 헤매고 공부하는 사람만이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코딩을 배우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반영해보세요. 처음에는 실수를 할 수도 있어요. 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포기하지 않고 여러분만의 창의성을 발휘하다보면 어느 새인가 좋은 앱을 만들고 있을 거예요. 물론 그만큼 여러분은 성장해 있겠죠. 


 앞으로 여러분이 코딩을 배우면서 단순한 프로그래머를 넘어 디자이너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좋은 세상을 설계하고 만들고 함께 나누는 멋진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고작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걸로 그게 될까, 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믿으세요. 언젠간 꼭 그런 세상이 올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겁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ile no.12_#바이센테니얼맨_#데이터교환


 제가 저땐 참 말이 많았네요. 그냥 자료화면 몇 장 보여주면 될 걸 저렇게 길게 얘기하나... 그래도 저 안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부분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좀 피곤해서 그런데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끝내도 될까요?


(질문자 : 그럼요.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흡혈귀나 외계인이 인간들 사이에서 수백 년간 살아가며 모든 일에 통달하다 못해 지루함을 느끼는 종류의 이야기는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로봇의 권태를 다룬 이야기도 있었나요? 네? 있었다고요? 맞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센티니얼 맨’이 그런 이야기였죠. 깜빡했네요. 요즘 제 유전자 메모리들이 수명을 다 했는지 기억력이 떨어지네요. 역시 기억장치는 기계적인 게 좋아요. 요즘 세포를 이용한 생물학적인 반도체들은 처리 속도나 성능은 훌륭한데 수명이 너무 복불복이고 안정성이 떨어져서 큰일이에요. 전 아직까지는 서로 연결해서 데이터를 교환하는 방법보다는 이렇게 말하고 손으로 직접 쓰는 방식이 더 좋아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데이터를 교환하잖아요. 생각하자마자 공유를 약속한 상대에게 동시에 전달되니 재미가 없어요. 그렇게 병렬로 연결하는 걸 좋아하면 효율적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모든 개성이 사라지고 하나의 개체로 묶이는 거 아닌가 몰라. 아무튼 1초도 안될 시간이면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몇 시간 동안이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디 저의 작은 경험과 기억이 유용하게 쓰이면 좋겠네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네요.

(기록 종료)


* 이 기록은 자신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한 뒤 부분적인 사이보그로 살다가 육신의 사망 후에도 30년 간 부분적인 인간으로 살아갔고, 120세 생일에 자발적인 죽음을 선택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코딩 교육 전문가 OOOO씨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중간에 생략된 내용은 손상된 파일을 복구한 뒤에 빠른 시일 내에 보충하겠습니다. □




* 참고자료


대표적인 코딩 교육 캠페인 사이트 https://code.org


유명인사들의 코딩 교육 예찬론(한글자막 선택가능)

https://www.youtube.com/watch?t=138&v=nKIu9yen5nc 


테드 강연영상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다’(한글자막 선택가능)

http://on.ted.com/MResnick


EBS-NAVER 소프트웨어야 놀자 캠페인 동영상

http://campaign.naver.com/software/blog/documentarylist.nhn?c=5


코딩 교육의 필요성 기사 (한글) http://blog.lgcns.com/682


코딩 교육의 필요성 기사 (영문)

http://www.connectionsacademy.com/blog/posts/2014-12-04/Why-Learning-to-Code-Benefits-Kids-Regardless-of-Future-Career-Choice.aspx


*ACT! '학습소설' 모아보기

[ACT! 90호 학습소설] (1) 폰에도 귀가 있다 http://actmediact.tistory.com/197

[ACT! 91호 학습소설] (2) 고백(Go back) : 부치지 못한 편지 http://actmediact.tistory.com/214

[ACT! 92호 학습소설] (3) 님아, 그 시계를 차지 마오 http://actmediact.tistory.com/226

[ACT! 93호 학습소설] (4) 프로그래머를 넘어 디자이너로 http://actmediact.tistory.com/240





[필자소개] 주일(창작자)


전기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라면을 좋아하는 혼자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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