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철공소와 예술 창작소가 공존하는 마을 문래동. 살면서 철공소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던 나에게, 철공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 ‘피에타’의 스산한 장면들이거나 또는 영화 ‘청계천 메들리’에서 철이 제련되는 강렬한 금속성 빛과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문래동의 철공소들은 정당하게도 장인의 오랜 작업실처럼 보였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장님들은 철공 장인들처럼 보였다. 이웃한 예술가들에 의해 그들의 고단한 작업이 기록되고 예술적 퍼포먼스로 재해석되기도 해서일까. 작년에 작가들과 철공소가 함께 진행한 행사(* 주1.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지원센터인 문래예술공장에서 매년 하는 지역문화 프로그램 MEET)에서, 작가들은 철공소 사장님과 함께 하는 용접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주물할 때 쓰는 목형 도면을 회화로 만들거나 기계 부품을 작품처럼 전시하고 열쇠고리로 만들거나 함으로써 거친 작업 공간을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문래동의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면(*주2. ‘문래동네’ 2011. 8월호, 통권 2호. ‘문래동을 소개합니다-작업실이 모여들기까지’ 참조), 해방 전부터 공업 지대였던 영등포구에 60년대 초부터 경인로를 따라 철재상이 들어섰다고 한다. 철재상은 80년대까지 우후죽순 늘어났고, 이에 따라 단독주택들이 빠르게 임대공장으로 개조되었으며, 아직도 문래동에서는 이런 공장들을 볼 수 있다. 90년대 들어 제조업이 쇠퇴하고 공장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문래동 철재상가 건물의 2, 3층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대형공장 자리에 쇼핑센터, 아파트 등이 세워지면서 문래동의 풍경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지만, 위층이 비워진 건물 1층의 철재상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상가 2, 3층에 2000년대 초반부터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 비어 있던 공간, 가득 찬 쓰레기, 철재상에서 내뿜는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 밤이 되면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임대료를 낮췄고,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던 건물주들이 건물을 어떻게 변형해서 쓰든 상관하지 않은 것이 예술가들이 작업하기에 좋은 조건이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술가들을 점점 더 모이게 한 계기가 되었고, 특히 2007년부터 ‘경계 없는 예술축제’ ‘물레아트페스티벌’ 등을 통해 문래동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현재 문래동에는 80여 개의 작업실에 200여 명의 작가들이 터를 잡고 작업하고 있다고.
그래서 문래동은 예술가들과 철공인들이 공존하는 특별한 개성을 지닌 곳이 되었고, 주말이면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다.
현재 문래동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예비사회적기업 ‘안테나’의 나태흠 대표를 만났다. 디자인 회사인 안테나는 4~5년 전에 문래동으로 들어와 디자인 일로 돈을 벌면서, 월간지 ‘문래동네’ 발간, 문래창작촌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 문’ 운영, 아트숍 ‘헬로우 문’ 운영, 영화축제 ‘인디필름데이’ 주관, 아트페스티벌 ‘헬로우 문래’ 참여 등 신선한 아이디어로 문래 예술인 마을을 예술인 공동체로 이끌어가고 있는 중심 단체 중 하나다. 나태흠 대표를 만나면 현재 문래 예술창작촌이 가고 있는 길이 일부 선명하게 보일 것 같았다. 그에게 문래동에서의 활동과 앞으로의 구상 등을 물어봤다.
▲ 나태흠 안테나 대표
작가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
현: 안테나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안테나를 소개할 때 ‘예비사회적기업’이라고 하더라. 예비사회적기업이 뭔가?
나태흠: 사회적기업 신청을 하면,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이 될 수는 없고 2년 동안 예비사회적기업이란 타이틀을 달고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라든지 그런 게 다 이루어진 다음에 다시 심사를 해서 사회적기업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결정나는 거다. 안테나는 지금 그 단계에 있는 거다.
현: 안테나는 사회적기업이 되면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나태흠: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와 함께 수익의 30%를 사회에 다시 환원하게 돼 있다. 처음엔 사회적기업이란 걸 잘 몰랐다. 그냥 돈만 벌지 않고 공유를 생각하는 괜찮은 회사를 그렸던 것뿐인데, 주변에서 사회적기업이 되면 여러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게 사회적기업이랑 비슷하더라. 그래서 사회적기업으로 계속 가려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는, 노인복지재단이나 고아원 등과 연계해서 활동하는 것이다. 즉, ‘아트라운드’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만들고, 여기서 작가들의 작품을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사람들이 구매한다. 작품이 비싸니까 한 사람이 다 구매할 순 없고 일종의 공동구매 형식으로 일부만 투자하는 것이다. 구매한 퍼센트만큼 소유권을 갖고 있고. 그리고 이 작품을 5~10년 후에 재판매에서 지분율대로 수익을 배당한다. 그 기간 동안에는 노인복지회관이나 고아원에 위탁 전시를 해놓는 거다.
노인회관이나 보육원에 방문하면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보고 좋은 에너지를 느끼는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의 다 프린트물이더라. 작가의 진짜 작품을 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다 구매할 수도 없고 작가들한테 대여해달라고도 할 수 없으니까,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1, 2만 원으로 작품을 소유할 수 있고, 작품이 팔리면 또 그만큼 배당을 받을 수도 있고. 소유권자들은 나중에 그 돈을 받을지 사회에 기부할지 선택할 수 있다.
나 대표도 얘기했듯이, 이 구상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크라우드 펀딩에 취약계층 서비스를 접목한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팔 수 있고, 노인이나 고아 등 취약층은 작가들의 실제 작품들을 가까이서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내가 생각해도, 주변에 ‘고흐나 피카소 그림의 인쇄물’ 같은 것만이 ‘나 예술이오’ 하는 환경과, 동시대 작가들의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주변에 살아 펄펄 뛰면서 ‘우리 모두 예술이야’ 하는 환경은 삶의 질이 다를 것 같다. 이것은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거리의 인문학 강좌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보였다. 또 구매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면서 취약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보람도 느끼고 잘 되면 작으나마 배당에 대한 기대도 가져볼 수 있다.
나 대표는 현재 문래동에 문래동 작가들의 작품을 위탁 판매하는 아트샵 ‘헬로우 문’을 운영하고 있다. ‘헬로우 문’은 온라인으로도 문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나 대표의 관심사는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데 있는 것 같았다.
△ 아트샵 ‘헬로우 문’
나태흠: 우리나라에서 예술작품이 매년 수천억대가 팔리고 있다지만, 그것은 큰 금액대로 팔리는 1~5% 의 작가들에게만 돌아가는 거고, 작가들의 90% 이상이거의 팔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더 취약하다. 다만 행정기관이 정해놓은 취약계층 조건에 맞지 않으니까 취약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뿐이다.
현: 이쯤에서 아트 페스티벌인 ‘헬로우 문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헬로우 문래’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는, 말하자면 예술작품 시장이다. 나 대표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나태흠: 문래동이 예전에는 창작 공간이 주였다면 이제는 발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 거다.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이 오도록 해야 하는데 뭘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일반적인 아트 마켓과는 달리 문화예술을 판매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여러 단체가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달시장(*주3. 영등포에서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지역주민과 예술가, 영등포의 사회적 기업이 함께 하는 마을 장터. 아트 마켓, 문화 공연, 벼룩시장, 문화예술워크숍 등이 열리는 마을 축제이다.)을 운영하는 ‘방물단’, 혁신형 사회적기업인 ‘위누’, 20대 초반 아티스트 그룹인 ‘본거지’, 이번에 새로 들어온 ‘문래예술공방’, 그리고 우리 안테나가 조합원이다. 목적은 외부인들을 문래동으로 많이 유입시켜 작품 판매를 돕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총 일곱 번 열었다. 비가 오면 쉬고,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쉬기도 하니까.
현: 그럼 위의 다섯 단체가 조합원인가? 다른 작가나 일반인 조합원은 없고?
나태흠: 그렇다. 개인을 조합원으로 받지는 않고 있다. 작가에게는 매달 셀러 참가를 받고 있다. 참가비는 만 원. 참가하면 오천 원짜리 쿠폰을 주고, 판매금은 전액 다 작가 몫이다.
현: 판매금을 다 주면 협동조합은 수익을 어디서 내나?
나태흠: 우리 협동조합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각 조합원 단체들이 여기서 금전적인 수익이 아닌 다른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상하고 있는 판매 플랫폼을 헬로우 문래와 연계시킬 수 있고, 방물단은 새로운 예술 시장을 운영할 수 있고, 위누는 현재 네이버랑 ‘헬로우 아티스트’라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작가들을 계속 연계시킬 수 있고, 문래예술공방은 지역 주민들이 아트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게 할 수 있고, 본거지는 20대 아티스트들이니까 여기를 데뷔 무대로 삼을 수 있다. 각 단체는 이처럼 헬로우 문래에 참가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으니까 돈은 좀 적게 벌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다.
또한 아직은 큰 수익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좋은 시장을 만들자, 그런 생각으로 임한다. 지속가능하려면 수익을 내야 한다는 고민도 많은데, 기업 쪽에서 후원을 받거나 구청이나 다른 단체에서 이런 시장을 열어달라는 문의도 꾸준히 오고 있는 상태라, 그런 쪽에서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현: 나 대표는 예술작품의 유통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구매자들의 기호를 고려하지는 않나? 아무래도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파악하면 더 시장이 넓어질 거 같은데. 그렇게 되면 장사가 되나? (웃음)
나태흠: 뭐 정답은 없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봤을 때 더 좋은 작품이 우선이 된다. 상품성이 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런 거보다는 디자인 상품을 떼다가 파는 게 수입은 훨씬 나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대로 안목도 더 높이기 위해서는 각자가 그만큼 노력과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전국적 배포망을 가진 지역잡지 ‘문래동네’
사회적기업 얘기부터 하다 보니 아트 페스티벌 얘기가 먼저 나왔지만, 사실 안테나가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작업은 단연 월간지 ‘문래동네’다. ‘문래동네’는 2011년 7월에 첫 발간해서 올해 9월로 통권 20호를 맞이했다. 지역잡지라고는 하지만 디자인 회사에서 만들어서인지 여느 전문 잡지 못지않게 디자인적 요소가 강하고, 내용도 문화예술 전문지 급이다. 3천 부 발행하고, 문래동 곳곳에 비치되는 것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50군데 정도 배포된다고 하니 ‘지역잡지를 넘어선 지역잡지’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잡지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나태흠: 시각디자인하는 사람들의 목표 중 하나가 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자기 브랜드를 키우거나, 인쇄물 쪽으로는 ‘나의 잡지’를 만드는 것이다. 문래동 행사를 알리는 책자를 만들어 곳곳에 뿌리고 싶어서, 거래하는 인쇄소에 가서 A4 반짜리 사이즈로 8페이지짜리 인쇄물 500부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인쇄소에서 종이 재고가 많아 종이를 지원해주겠다고 한 게 계기가 됐다. 그때 이주호 씨라고, 지금은 다른 일 하는데, 문래동 작업실 탐방기를 쓰던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을 찾아가 편집장 맡아달라고 제안했고 그 분이 받아들여서 시작하게 됐다. 우리는 디자인 회사라 디자인밖에 몰랐는데 그 분에게서 많이 배웠다.
‘문래동네’는 지금까지 20호를 내면서 판형이 다섯 번 정도 바뀌었다. 쪽수도 정해진 것 없이, 원고가 많으면 페이지수를 늘리고 적으면 줄이고 한단다. 19호와 20호는 넓적하고 큰 판형으로 내면서 커버를 펼치면 큰 그림이 나오게 디자인했다.
△ 다양한 판형의 ‘문래동네’
현: 편집이 자유로운 것 같다.
나태흠: 잡지를 낸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일이다. 매달 나와야 하고 기획부터 원고, 편집까지 다 돼야 하니까. 그런데도 굳이 하려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끼리는 그냥 ‘힐링된다’고 이야기한다. 클라이언트가 따로 없지 않나.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읽는 독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가 편한 대로 간다. 책을 넘기는 게 좀 불편하더라도. 문래동에 오는 분들은,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는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과도 연관이 있고. 이런 모습이 문래동과 더 맞는 거 같다.
현: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나태흠: 인쇄소에도 제때, 제때 드리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돈 조금 벌면 드리고, 그런 식이다.
현: 2011년 7월에 시작했는데 지금 20호다. 못 낸 달이 많은 거 같은데?
나태흠: 이주호 씨가 그만두면서 못 냈고, 올해 초반에 6개월 정도 쉬었다. 게으른 것도 있고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다. 또 사무실 이전하고 헬로우 문 오픈하면서(안테나는 현재 아트샵 헬로우 문 자리에 있었는데, 가게를 그 자리에 오픈하고 사무실을 이전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가 과연 ‘문래동네’를 계속 내는 게 맞나. 굳이 왜 이걸 내야 하나. 그러다 결론이 났다. 이건 계속 가야 한다고.
현: ‘문래동네’는 독특한 거 같다. 지역잡지인가 하면 문화예술 교양지 같고. 지역 얘기도 많으면서 해외 작가 소개라든가 그런 글도 많고. 전국적으로 배포하고. 성공적인 거 같다. 이렇게 많이 알려지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태흠: 우리가 가장 헷갈렸던 것도 그거다. 지역잡지냐 문화잡지냐. 동네에서만 공감하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지역잡지라면 또 많은 곳에 배포할 수도 없다. 우리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작가들을 외부에 많이 알리자는 거였다. 그래서 전국의 문화재단 같은 곳에 다 연락해서 배포해도 되겠냐고 일일이 물어봤다. 안 된다고 하면 최소한 담당자들에게 세 부씩 보냈다. 이런 게 작으나마 작가들을 알리는 데 밑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문래동에서 영화 보며 놀자, ‘인디필름데이’
나 대표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문래동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매년 열리는 인디필름데이는 올해로 4회를 맞이했는데, 단 하루 날을 잡아 아침부터 밤중까지 문래동 곳곳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다. 상영장이 떨어져 있어, 관객들은 다음 영화를 보기 위해 문래동 골목골목을 이동해야 하는, 문래동 골목 순례 겸 영화제가 아닐까 상상해봤다.
현: 4년 전이면 ‘문래동네’도 발행하기 전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나태흠: 문래동에서 문화기획을 하는 이소주 씨가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독립영화 정기 상영회를 열고 있었다. 2010년 초에 이소주 씨 개인 사정으로 내가 넘겨받아 계속 진행하다 보니, 애초 취지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객들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는데, 언젠가부터 작가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가줘야지, 하는 것 말이다. 주최하는 우리도 오라고 하기도 뭣하고, 오라고 안 하면 또 관객이 없고. 사람마다 영화에 대한 취향이 있는데, 순전히 친분으로만 오니 어느 순간부터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러다가 하루에 모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릴레이로 장소를 이동하면서 영화를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2010년 11월에 첫 회를 했다. 날이 무척 추웠는데도 사람들이 너무 재밌어했다. 문래동은 재밌는 게, 외부인들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궁금해 하더라. 영화는 작업실에서 하니까. 그때 사람들이 2011년에도 꼭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다음 해는 9월에 했다. 그때는 옥상에서 영화 보고 맥주도 마시고, 감독과의 대화도 하고. 스크린도 없이 벽에다 막 틀고. 감독들도 와서 분위기 너무 좋다고 좋아하시고.
현: 영화제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틀을 깨고 그냥 마을 축제 같은 컨셉?
나태흠: 영화제가 아니라 그냥 영화 보면서 놀자는 컨셉이다. 맥주도 마시고 또 저쪽에서 하는 공연도 보고. ‘문래고양이 상’이라고 있다. 영화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영화 제일 많이 본 사람에게 주는 거다. 그런 식으로 일반인들이 즐기는 형태다. 서로 즐기다보면 얘기하면서 고민이 많이 해소될 거라고 본다.
△ ‘문래고양이 상’ 트로피
현: 외부에서도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많이 보러 오나?
나태흠: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이 온다. 원하는 사람들이 오는 딱 그 정도. 큰 축제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고, 소소하게 즐겼으면 한다. 문래동은 좋은 게, 여기 계신 분들도 오래된 향수 같은 걸 갖고 있어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함께 정리하고 함께 치운다. 서로 부족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으니까. 안 부족하면 차라리 부산영화제 같은 것을 만들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네가 도와줄 수 있으면 고맙고, 뭐 그런 거.
현: 평균 관객 수는?
나태흠: 매번 다르다. 조조는 몇 명 안 된다. 올해는 좀 적고, 작년까지 조조는 20~30명. 저녁때 많이 온다. 50명 이상. 애프터 파티 때가 가장 많다. 70~100명 와서 놀았다.
현: 구청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가?
나태흠: 마음은 있는데 예산이 많지 않다. 영등포구 문화체육과에서는 매년 문래동에 4~5천만 원씩은 지원을 해준다. 올해 영등포문화재단도 생겨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인디필름데이도 거기서 4백만 원 지원받아서 하는 거다.
동네 사람들의 깨알 같은 수다, ‘팟캐스트 문래동네’
안테나가 하는 일을 한 번씩은 짚고 넘어가려니 하는 일이 워낙 많아 끝이 없다. 한 사람이 이걸 다 한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태흠 대표가 특별한 눈으로 보이려 한다.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만, 최근에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팟캐스트 ‘문래동네’는 서울시 ‘마을미디어공방’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열어 시민들의 미디어 교육을 지원해왔다. 올해부터 시작한 마을미디어공방은 미디어 교육을 받은 시민들이 스스로 마을 이야기를 미디어로 담아내는 제작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 팟캐스트를 찾아보려 해도 눈에 잘 안 띄더라.
현: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소개해달라.
나태흠: 살아가는 얘기들이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작업실 월동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작업실은 난방이 안 되는 데가 많으니까. 월간지 ‘문래동네’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10월호에는 문래동 백반집을 다루려 하는데, 그런 것.
세 코너로 이루어져 있다. 2주에 한 번 나오니까, 지난 2주 동안 있었던 동네 일, 앞으로 2주 동안 있을 동네 일, 그리고 작가나 동네 주민들이 사는 얘기들.
현: 기왕 하는 거 촬영해서 TV 식으로 할 생각은 없는가?
나태흠: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라디오가 더 편하고, 좀 더 자리잡으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작가들이 대체로 얼굴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웃음)
현: 몇 명이나 청취하는 것 같은지?
나태흠: 이제 3회째. 몇 명 안 된다. 내년 이맘때 말해주겠다. (웃음)
▲ 왼쪽부터 나태흠 안테나 대표, 현 ACT! 편집위원
문래동에서 활동한다는 것
시각디자인과 영상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디자인 경영을 공부한 나 대표의 원래 꿈은 ‘세계 정복’(!)이었다고 한다. 디자인이든 영상이든 뭐든. 외국으로 나가려 했다가 뜻대로 안 되자 문래동으로 들어왔다는 나 대표를 보며, 글로벌 인재로 성공을 자신하던 야심만만한 청년이 문래동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꿈을 꾸고 새로운 능력을 꽃피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음악만 빼고 전방위적으로 다 하는데,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나태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다 궁극적으로 하고픈 거다. 처음에 우리 회사는 ‘비주얼 컬처 안테나’라고 불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 영상, 디자인, 만화… 그런 것들이 모여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개념.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다 디자인을 베이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페가 됐든(나 대표는 북카페 ‘치포리’도 계획하고 있다) 아트샵이 됐든, 잡지가 됐든.
현: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나태흠: 돈 문제.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
현: 나 대표의 활동에 대해 일반 주민들 반응은 어떤가?
나태흠: 도움 주시는 분들이 많다. 우려도 하시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려 하냐고.
현: 마지막으로, 문래동은 재개발 지역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소문만 무성할 뿐 확실한 소식은 하나도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게 싹 밀어질 것이다. 이 아쉬움을 어쩔까나. 어디 가서 이처럼 예술가들과 철공인들이 공존하는 마을을 만날까. 하지만 나 대표는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일까.
나태흠: 문래동 사람들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최대한 불태우자,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거를 최대한 하고 표현하고 싶은 거를 최대한 표현했을 때, 나라에서 높은 사람들이 보든 국민들이 보든 여긴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 재개발은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올바른 거 같지 않다. 우리가 여기 계속 있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단지 살고 있다는 게 아니라, 좋은 문화 컨텐츠를 계속 만들고 외부에 계속 알리고, 그런 역할을 하다보면 조금은 더 오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문래동은 없어져도 문래동 같은 곳은 많이 있을 것이다. 공장지대는 임대료가 싸서 예술가들이 또 모일 수도 있다. 아쉬운 건 사람들. 초등학교 졸업하는 느낌이다. 친한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또 볼 수 있는 건 분명한데, 초등학교 때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 가면 볼 날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인쇄매체도 그렇고, 팟캐스트나 영상으로 내가 하는 일이 문래동을 기록하는 일이다. 잡지 문래동네 곳곳에 자세히 보면 큐알코드가 있다. 큐알코드로 들어가면 작가의 인터뷰, 문래동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우리끼리만 얘기하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는 거다. 그런 작업들을 계속 해오고 있다. 언젠가는 사라질 문래동을 인쇄물로, 영상으로, 이야기로 기록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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