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11호 인터뷰 2018.10.05]


    수목을 만났다. 

    15년 동안 나를 이끈 건 '사람' - 김수목 감독


    진행/정리: 이세린, 최은정


      수목을 만났다. 잘 웃고, 강단 있고, 교육과 다큐를 좋아하는 15년차 활동가. 수목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수목의 동력이 바로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풍을 보고 울다 찾은 ‘나를 지키는 방법’은 덤이다.


    ▲ 김수목 감독, 교사, 활동가



    = 요즘 자기소개 어떻게 하나?

    - 미디어교육을 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한다. 얼마 전 이마리오 <더 블랙> 감독이 나에게 직업이 감독인데 작품이 안 나온다는 말을 했다. 뜨끔 했다. 장편은 2014년 <니가 필요해>가 마지막이니까. (웃음) 몇 년째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교육과 다큐 제작은 계속 할 것이다. 둘 다 정말 좋아한다. 예전엔 미디어 활동가라고도 소개했었는데, 요즘 활동이 뜸해서 뺀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회의만 겨우 나가고 있다.


    = 원래 어떤 사람이었나?

    - 착하고 무난한 학생. 대학에서 많이 바뀌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경제학과가 적성에 안 맞아 사회학과에 다시 들어갔었다. 정말 재밌었다. ‘바위처럼’ 같은 민중가요도 좋았고, 노동자 집회에 앉아 있는 것도 좋았다. 왜 좋았는지는 설명 못하겠다. 그냥 좋았다. (웃음) 역사 모임도 참여했는데 제주4.3항쟁에 대해 알아가며 충격을 받았었다. <밥.꽃.양>(임인애, 2001),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이마리오, 2001), <버스를 타자!>(박종필, 2002) 같은 다큐도 그 때 봤다. 


    = 지금도 그 다큐들을 좋아하나?

    - 난 확실히 날 것 그대로의 다큐를 좋아한다. 거칠어도 생생한 느낌이 좋다. 얼마 전 <버스를 타자!>를 다시 봤는데 여전히 좋았다. 최근작 중엔 <퍼스트 댄스>(정소희, 2014)나 <불빛 아래서>(조이예환, 2017)가 좋았다.


    = 다큐 제작은 어떻게 시작했나?

    - 난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성격이 아니다. 꽂히면 그냥 간다. 졸업을 앞두고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을 다룬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이조훈, 2003)를 봤다. 바로 감독에게 전화를 해서 만났고,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조훈 감독은 많이 말렸다. (웃음) 서울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어이없어 하시면서도 100만원을 주셨고 그 돈으로 고시원을 얻었다. 사실 길게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뒤로 부산에 안 내려갔다. 엄마는 1년 지나면 돌아올 줄 알았다고 했다. (웃음)


    = 그 뒤 노동넷에서 활동했다. 어땠나?

    - 사람들이 정말 좋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좋았다. 한 동안 서울 생활이 힘들어 부산엔 KTX로 빨리 내려가고 서울엔 버스로 천천히 올라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올라왔다. 서울에서 나를 찾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노동넷 활동을 하며 ‘비정규직 완전 철폐를 위한 영상팀’에도 참여했었다. 활동 자체도 재밌었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도 정말 좋았다. 그 시기는 나에게 중요했던 때였다. 미디어교육도 그 때 시작했고 사람들도 그 때 많이 만났다. 


    ▲ <니가 필요해>(김수목, 2014)



    =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니가 필요해>가 인디다큐페스티발 관객상을 받아 사실 좀 놀랐다.

    - 나도 놀랐다. (웃음) GM대우 비정규직 노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을 비롯해 영화에 숨을 불어넣고 의미를 실어주고 영화가 더 살아날 수 있도록 해준 모든 분들 덕분이기도 하다.


    = 요즘 노조는 어떻게 지내나?

    -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올해 1월 정문에 천막을 쳤다. 복직도 됐고 조합원도 늘었지만 불법파견으로 인한 일상적 해고가 있었다. 하청업체 계약이 끝나면 고용도 끝나니까. 불안한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천막 위치가 서문에서 정문으로 바뀌었을 뿐. 재밌는 건, 투쟁에 다시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제 노하우가 생겨서 예전보다 편하다고 말한다. 천막이 정문으로 옮겨져 위상이 높아졌다는 농담도 한다. (웃음) 촬영은 안 하고 있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인물 중심으로 유쾌하게 만들고 싶다.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 즐겁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단편 작업도 많다.

    - 대부분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이다.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요청 덕분에 남은 기록들이다.


    = ‘다큐 유랑’ 활동은 어땠나?

    - 1년 반 정도 직접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배급과 상영을 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이 과정을 스스로 한다는 보람이 있었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적극적인 시도가 계속 됐으면 좋겠다. 


    ▲ 김수목 감독이 4년째 참여 중인 ‘안산줌인’ 영상 제작 교육

    (2017년 9월, 명화극장, 사진 출처: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 



    = 미디어교육은 얼마나 하나? 오늘도 교육 때문에 바빠 보인다.

    - 안산 영상 제작 동아리인 ‘안산줌인’ 교육을 마치고 ‘우리 동네 깐 영화제’를 함께 준비하고 있어서다. 3일 남았다. (웃음) 6~8월은 교육이 많았다. 어르신 교육, 청소년 다큐 제작 교육, 특수학교 교육을 했고, 미디액트에서는 ‘짧고 굵은 다큐 제작’ 교육을 했다. 교육은 일정이 워낙 들쭉날쭉해서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웃음)


    = 4~5년씩 꾸준히 하는 교육이 많은 것 같다.

    - 기획자와 참여자가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안산 영상 동아리 교육이 그렇다. 지금은 안 하고 있지만 강동 장애인 교육이나 안산 이주민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단기 교육이 더 많다. 


    = 교육의 어려움?

    - 불안정함은 늘 있다. 게다가 가끔 내가 꼭 아니어도 된다는 느낌을 주는 교육 기획자를 만나면 힘이 더 빠진다. 긴 교육의 경우에는 4~5년이 늘 고비다. 교사들도 쉼이 필요한데, 몇 년 동안 매주 같은 요일에 시간을 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 김수목 감독, 교사, 활동가



    = 전업할 생각은 없나?

    - 하려면 예전에 했어야 하는데, 늦었다. (웃음) 다큐 작업의 기쁨이 있다. 내 안에 쌓이는 느낌이고, 하면 할수록 즐겁고 매력적이다. 작업할 땐 힘들어도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하는 느낌이 다 좋다. 게다가 정년퇴임도 없고 몸만 성하면 할 수 있다. 아네스 바르다나 켄 로치처럼 오래 작업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있어 보인다. 작업을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다. 


    = 다른 취미는 없나?

    - 3년 전 가을, 교육 때문에 강릉에서 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었다. 버스 안에서 단풍을 보는데 정말 예뻤다.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내가 뭐하고 있나 싶었다. 그 뒤로 해마다 여행지를 정하고 일정을 박아두기 시작했다. 그 시간을 항상 빼놓는다. 물론 타격도 있다. 여행하면서 돈을 탕진한다. (웃음) 그래도 즐겁다.


    = 지키고 있는 원칙이 있다면?

    - 사람들의 아픔을 기록하면서도 자신이 아픈 건 잘 모르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내가 아픈 것도 봐야 한다. 나 역시 상대방 사정에 맞춰 내가 무리하게 맞춘 적이 많았다.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도 지켜야 한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단호해져야 한다. 


    = 원동력이 있다면?

    - 작업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많이 받는다.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결국 ‘사람’이다. □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