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9호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 2018.05.30.] 


    “마음의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장혜영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진행자


    이세린(ACT!편집위원)


    "제가 원하는 사회는 단 하나의 시설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단 한명의 장애인도 격리당해 살지 않고 모두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탈시설'을 말하는 그녀의 말에 세상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녀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페미니즘 미디어 탐방'에서 만난 장혜영 씨는 '생각 많은 둘째언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다. 작년부터는 동생과의 일상을 전하는데 노력을 쏟고 있다.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던 중증 발달 장애인인 동생과 시설 밖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현재는 작업을 마치고 공동체 상영과 영화제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동생과의 자립 생활을 힘들게만 그려내지 않았다. 그녀의 영상에는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움,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의 안정감이 두드러진다. 동생 혜정 씨는 영상 속에서 거듭 노래하고 춤을 춘다. 미비한 제도에 분노하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상을 마주하면서도 그런 순간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기에 혜영 씨의 영상은 특별하다. 유튜브 영상과 다큐멘터리 영화 너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혜영 씨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59일 진행되었고, 사진 촬영에 ACT! 편집위원 주현이 함께했다


    왼쪽부터 <생각 많은 둘째언니> 진행자 장혜영 씨, ACT! 편집위원 이세린.


    생각 많은 둘째언니가 된 이유

    이세린(이하 세린) : 지난 2016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셨어요. 어떻게 지금의 생각많은 둘째언니채널을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혜영(이하 혜영) :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 초기 컨셉을 고민하다가 해외 채널을 봤었어요. 한국에는 그 당시에는 많이 없었지만, 영미권에서는 그냥 비디오 켜놓고 정치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채널이 꽤 있었어요. , 먹방이나 뷰티만 해야 하는 건 아니구나 싶었죠.

     그러다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시리즈를 봤었어요. 거기에 되게 명확한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콘텐츠여야 오래 할 수 있다." 뭐가 먹힌다고 생각해서 그걸 컨셉으로 하면 처음에는 좋지만, 그게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점점 하기 어려워질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죠. 인권이나 누군가의 권리가 부딪히는 지점들이 제 관심사고,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는 것이 저였어요. 그리고 그 때부터 제가 왜 생각 많은 인간이 되었는가의 연원은 저의 동생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둘째 언니라는 정체성이 중요했고, 그렇게 '생각 많은 둘째언니'라는 컨셉이 탄생을 했죠



    생각 많은 둘째언니유튜브 채널.

    동생과의 일상 뿐 아니라 정치, 인문학, 페미니즘 관련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channel/UCGdB-lgTS2sOhJIxgP550qw)

     

    세린 : 혹시 이전에도 영상 작업의 경험이 있었나요?

    혜영 : 이런저런 일들을 했었는데 공통적으로 미디어영역에 있었던 것 같아요. 10대 때는 청소년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는 미디어센터나 재단을 통해 창작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게 되게 소중한 기억이었어요. 내가 뭔가 만들려고 하면 내가 그걸 만들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다음세대재단 유스보이스에 수혜자이자 멘토로 오래 참여했었어요.

     

    세린 : 다른 채널 분들과도 교류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굴러라 구르님이나 수낫수같은 분들이요.

    혜영 : 맞아요. 실제로 만나지 못했어도 이미 여러 번 만난 것 같은 사람들이죠. 한국 사회에서 자기만의 윤리관이라거나 정치관을 밝히는 게 터부시되었잖아요. 그래서 성소수자라거나 페미니스트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작업하는 사람들 간에는, 뭐랄까 만났으면 드디어 만났다! 싶은 느낌이 있어요. 닷페이스도 그렇고, 지금까지 정치화되지 않았던 의제들을 정치화하는 사람들 간의 강력한 유대가 있죠.



    혜영 씨와 혜정 씨가 닷페이스와 진행했던 인터뷰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14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링크 : https://www.facebook.com/facespeakawake/videos/488394288184397/)


    오랜 숙제를 마주하듯 시설과 싸웠다

    세린 : 혜영 씨의 콘텐츠를 보면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운동과의 접점이 만들어진 과정이 있을까요.

    혜영 : 저는 동생과 지내면서 장애인과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경험했지만, 처음부터 장애인 인권을 운동의 관점에서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여기 바로 뛰어들게 되면 내 인생에 다른 세계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 저한테 탈출구가 되어줬던 것이 인터넷이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소리바다를 통해서 음악을 접했던 세대죠, 그래서 카피레프트같은 저작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점차 프라이버시나 망중립성 같은 이슈로 뻗어가게 됐어요. 그러니까 제가 처음 접하게 된 사회운동은 정보인권 영역이었어요. 잠깐 정보인권 NGO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일하던 와중에 동생네 시설에서 인권 침해 문제가 터졌었어요. 당시 저는 제게 변호사 친구가 있다거나 하는 게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전혀 아니었어요. 저는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어 했지만 모두가 쉬쉬하고, 고소는 쉬운 일이 아니고. 거기서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오래 두었던 숙명처럼 동생의 시설로 향하게 되었죠.


    <생각많은 둘째 언니> 진행자 장혜영 씨


    세린 : 장애인시설과의 싸움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혜영 씨가 단호하게 탈시설을 주장하게 된 이유도 그 시간들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요.

    혜영 : 그 당시 제가 놀랐던 것은, 다른 부모님들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해서 보인 반응이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드린다 해도 알고 싶지 않다 하고, 때린 것에 대해서도 집에서도 때린다고 하고. 그게 무슨 얘기인지 저는 알아요. 공론화가 되면 시설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가족들은 그 사람 없이 빈틈없는 삶을 꾸려가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힘들고 여력이 없다는 거죠. 그 때 시설의 본질이 돌봄과 보호가 아닌 격리일 뿐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저도 처음부터 탈시설을 주장했던 건 아니예요. 시설과 싸울 때만 해도 시설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시설 밖에서 혜정이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공론화를 준비하면서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의 활동가들을 만났어요. 어느 날 활동가인 준민이 저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혜정 씨의 자립은 준비하고 있냐고. 제가 거의 코웃음을 쳤어요. 중증장애인이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면서. 그런 저에게 준민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모든 생각을 시설에서 출발하면 시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시설이 있지 않았다, 혜정 씨의 삶에서 생각을 시작해보면 다른 게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뭔 소린지 그 때는 몰랐는데, 그게 제 마음속에 계속 박혀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그 사건은 잘 풀리지 않았어요. 시설은 바뀌지 않았고, 저는 혜정을 데리고 나올 준비를 시작하게 됐죠.


    자립과 함께 촬영을 시작하다

    세린 : 동생과 시설 밖 생활을 꾸려나가는 와중에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셨는데,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혜영 : 저는 빡돌면 뭔가를 하는 타입이에요. 시설을 나왔는데, 제가 일하는 시간 동안 혜정을 돌보아줄 공적 지원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와중에 서울시 돌봄 서비스를 찾았는데 조건이 서울시 거주 6개월인 거죠. 그래? 그럼 6개월 살아주지!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지만 그만두게 됐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른이 되고, 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상태로 처음으로 내 동생하고 뭔가를 해볼 수 있는 6개월이 생긴 거예요. 이런 경험을 우리만의 경험으로 갖기는 너무 아까웠어요. 유튜브 업로드는 좀 분절적이니까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6개월간 촬영을 하기 위한 비용을 계산해보니 최소한 5천만원 정도가 필요하더라고요. 큰 돈이지만, 그래도 좀 궁금했어요. 이런 얘기를 사람들이 필요하다 느낄 정도로 사회가 변해왔는지가. 그래서 비용을 줄이지 않고, 전액을 달성해야만 하는 텀블벅을 골랐어요. 안되면 안 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덜컥 돼서. 됐으니까 이제 해야죠.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진짜 안 했다! 정말 눈물을 머금고 했습니다. (웃음)


    텀블벅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 페이지.

    동생과 일상 패턴을 만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받아내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전하겠다는 목표가 적혀 있다.


    세린 : 촬영하는 과정은 좀 어떠셨나요. 영화에서 함께 촬영하는 스탭들이 직접 드러났는데, 그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혜영 : 제가 개인적으로 탈시설 이후의 삶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계예요. 동생이 나를 나로 인정하고, 예뻐해주고, 혹은 내가 또 예뻐하고 싶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관계들이 앞으로 혜정의 삶을 규정해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영화 속에서 스탭들과 혜정의 관계로 드러나고, 그건 저희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있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든 것에서는 생활이 우선이라는 원칙이 있었어요. 그래서 촬영할 팀은 혜정에게 카메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탈시설 전 1년 정도 시설에서 최대한 자주 나와서 사람도 만나고 재밌는 것도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그 때 자주 만났던 친구들이 이 다큐멘터리에 스탭으로 참여했던 친구들이었어요. 사전 구성안이라고 하는 건 그렇게 팀을 세팅한 게 전부였어요.

    촬영 감독한 정민이가 영화 작업 현장에 되게 많이 있었던 친구인데. 보통 촬영할 때 아이레벨을 잡는 포지션이 있잖아요. 근데 혜정을 계속 그렇게 잡으니까 초기 푸티지에는 정수리밖에 안 보여요. 혜정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찍던 대로만 찍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점점 앵글이 낮아지고. (웃음) 그래서 나중에는 다 로우앵글로 찍혀있는 거죠.

    혜정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건 그런 거였어요. 혜정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가 해석하는 세상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다들 혜정 뿐 아니라 저를 위해서도 노력해줬어요. 심지어 음악 선생님 해줬던 친구는 이제 동생의 활동보조인이 될 예정이라서. (웃음) 프로젝트를 통해 고마운 사람들이 생겼죠. 저는 결국은 사람들 힘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6개월 간 촬영된 영상은 유튜브의 <어른이 되면 v-log>로 업로드되고,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으로도 만들어졌다.

     

    세린 : 요즘 영화제와 공동체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계세요. 어떤 걸 느끼시나요?

    혜영 : 최근에 영화 상영이 끝나고 한 중년 남자분이 질문을 하셨어요. 자기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의 아버지이고 혼자서 딸을 케어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시설에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이 영화를 보니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건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부딪혀오는 것들을 걸고, 이 사람이 책임지는 삶의 고통을 전하는 말이라 생각해요. 굉장히 눈물이 많이 났어요.

    시설에 아직 가족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과 제가 뭔가 반대 전선에 있다고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우리 몫이라고 생각하는 고통이 절대 우리만의 몫이 아니고, 저는 그걸 사회로 돌려내는 작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당사자나 활동가분들 중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세요. 너무 좋은데 혜영 씨 같은 언니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 그럴 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는 비관이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좌절이 있으니까 홀로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거죠. 세상이 정말 바뀐다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저의 대답은 변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없을 때에는 과거를 돌아보는 게 위로가 돼요. 특히 우리 사회는 불과 2년 전, 3년 전과도 전혀 다른 모습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른다는 생각을 잃지 말자, 마음의 힘을 잃지 않으시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결국은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많은 둘째 언니> 진행자 장혜영 씨

     

    세린 :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게 된 것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혜영 : 사실 목표하는 바는 굉장히 명확해요.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새로운 대화들. 아직 우리 사회가 한 번도 갖지 않았던 대화들을 촉구하는 씨앗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 그런데 그런 대화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실제로 변화의 동력이 될 거라고 느껴지는 것이 이 작품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어른이 되면>은 지난 4월 열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초대되었고, 오는 6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된다. 영화제 상영을 마치면 다큐멘터리 또한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혜영 씨는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영화에 등장했던 노래들을 음원으로 공개하고, 그간의 작업을 책으로도 갈무리하고 있다. 영화가 온라인에 공개되고 나면 채널을 통해 감상을 모아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다. 다양한 채널 속에서 혜영 씨를 만나며, 그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앞으로도 잔잔히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글쓴이 이세린

    공동체미디어의 힘을 믿는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넷 인간'이라 불리는 SNS 중독자. 다양한 사회 운동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Posted by ACT! act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