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8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2018.03.14.] 


    일본 공동체라디오 전사(前史), 미니 FM

    - 일본의 주파수 운동과 사회적 실천 -


    최성은(전주시민미디어센터 센터장)

     


      한국의 공동체라디오 운동과 제도 도입 과정에서 여러 해외 국가들의 사례가 참조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공동체라디오나 시민미디어에 대한 경험과 실천 그리고 제도가 성숙되어 있지 않다보니 선진 사례를 많이 참고했다. 특히 일본 공동체라디오 사례와 제도는 많은 정책 연구나 시민사회 진영에서 소개되고 참조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공동체라디오와 관련된 사례 중 주목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 공동체라디오 제도화 전에 있었던 라디오 전파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과 전파운동의 실천과 경험들이다. 일본에서 공동체라디오가 제도화 된 1992년 이전, 특히 1980년대에 시민들이 라디오를 사회적 미디어로 활용하기 위한 실험과 노력들이 있었으나 조명받지 못했다. 


      공동체라디오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활성화되어 있는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전파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에 대한 운동과 실천이 있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국가들은 공동체라디오가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주파수 활용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실천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공동체라디오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제도화 되었다. 전파를 이용하는 경험과 활동들이 모여 공동체라디오의 토대가 된 것이다.


      유럽의 경우 공동체방송에 대한 초기 운동은 무면허(unlicensed) 방송의 출현에 의해 주도되었고, 규제 틀이 뒤를 따랐다. 흔히 해적방송을 통한 저항과 실험 그리고 제한적 전파허가 제도 등을 거치면서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상설면허가 제도화되었다. 


      일본의 공동체라디오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발전했다. 일본의 공동체라디오가 제도화 된지 25년 되었지만, 일본에서 시민들이 라디오를 사회적 미디어로 활용한 것은 더 오랜 역사와 경험을 지니고 있다. 70~80년대에 기성방송국의 획일적이며 상업적인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써 주파수의 자유로운 이용을 주장하는 프리라디오 등 전파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과 매체운동 등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미니FM이라는 소출력 라디오가 있다. 미니 FM은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표현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며 연대하면서 대중적 현상을 만들어 냈다. 미니 FM은 공동체라디오가 제도화된 이후에도 다양한 실험과 접근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일본에서 주파수 운동, 자유라디오운동과 공동체라디오의 토대가 되었던 일본의 미니 FM과 그 실천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미니 FM 이란? 면허 필요 없는 적은 출력의 방송국! 

    1980년대 일본 사회의 대중적 현상!


      미니FM은 면허가 필요 없는 아주 적은 출력의 FM 방송국을 말한다. 미니FM은 전파법이 규정하는 “미약전파”중 FM 방송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는 미약 무선국이다. “미약전파”는 발사하는 전파가 매우 약한 것으로, 일본의 전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무선설비로부터 3미터 거리에서 전계강도가 매 미터 500마이크로 볼트 이하의 것”으로, 이 전계 강도를 다이폴 안테나를 사용한 경우의 전송 전력으로 환산하면 50nW(0.00005와트)이다. (*주1) 미약전파를 이용한 무선국들은 주로 FM 방송 대역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니FM 방송국이라고 불렸다. 


      미니 FM은 적은 출력이다보니 한정적인 범위에서만 수신이 가능하다. 무선마이크처럼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가청 영역은 반경 100m 정도다. 이처럼 적은 범위에서 사용가능한 전파이다보니 무선국 면허나 무선 종사자가 필요 없다.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는 것이다. (*주2) 방송법상 방송도 아니다. 면허가 필요 없다 보니, 누구나 관심 있는 사람들은 쉽게 접근 할 수 있었다. 


      매우 적은 출력과 한정된 범위의 전파이지만, 미니FM은 일본 사회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미니 FM은 1970년대 출현해 1980년대 대중화 된다. 특히 미디어 평론가이자 활동가인 코카와 테츠오가(*주3) 자유라디오를 제창한 1982년에서 1984년 무렵 미니 FM의 대중적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1년 사이 천 개 이상이 생겨나고, 일본 전역에 2천 개 정도의 미니FM이 존재했다.


      대중매체 역시 미니 FM의 열풍에 주목했다. 여러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에 미니 FM 소개나 관련 기사들이 실렸다. (*주4) 미니 FM 기자재나 운영방법, 해외사례 등이 소개되었으며, <전국 미니 FM 방송국 맵> 이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대중매체 미니FM 소개 사례]


    ▐ POPEYE, 1979년 7월 25일호. 100m 방송 소개 기사

    - 1976년 창간된 ‘POPEYE’ 라는 남성용 패션 잡지. POPEYE이 잡지에는 특집으로 ‘100M 방송국의 재미있는 사용법’이라는 제목으로 미니 FM 방송으로 게임 방법, 기자재 소개 외에 이른바 ‘해적방송’이나, 미국 등 해외 FM 방송국의 사정도 소개되었다. 

    - 출처

    http://diary.awane-photo.com/2007/070711.htm&usg=ALkJrhhsmyDzzjDx8l1A6l4Xk0qd-zTvBw.



    ▐ 미니FM 전국지도-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라디오, 1986. 아키서점亜紀書房

    - 여기에는 전국 130개 미니 FM 방송국에 대한 다양한 기사와 미니 FM 방송국 목록이 담겨있다.

    - 출처http://diary.awane-photo.com/2007/070710.htm



      당시 일본에서 미니FM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호의적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미니 FM을 “아메리칸 DJ 바람‘, ’멋진 것‘ 또는 ’주류‘로 취급했다. 매스미디어의 이런 호의적 기사들은 미니FM 방송국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본의 미니 FM 붐은 한국에도 소개되기도 했다. (*주5)


      관리 당국도 어느 정도 호의적이었다. 일본 전파 관리국은 규정보다 조금 더 상향된 범위까지는 묵인했다. ‘미약전파’ 규정에 따르면, 그 서비스 영역(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범위)은 100m정도이다. 그러나 전술한 <미니 FM 전국지도>에 따르면 당시 전파관리국은 서비스 지역이 500m정도 까지는 묵인한다는 방침이었다고 한다. 


      관련 장비도 대중화되었다. 미니 FM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송신장치들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송신 기능을 갖춘 새로운 오디오 제품들도 상용화되었다. 오디오 송신을 할 수 있는 조립 키트들이 곳곳에 판매되고 있었다. 오디오 제품의 옵션 또는 아예 송신 기능이 내장된 제품들도 등장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턴테이블에서 간단하게 음성이나 음악을 FM 주파수로 송신할 수 있게 하는 장치들도 출시되었다.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미츠비시 등 10여개 이상의 전자회사들이 미니 FM 용도의 송신기를 판매했고, 많은 수의 미니 송신기들이 판매되었다. 전자제품 기업뿐만 아니라 주요 광고 대행사도 미니 FM 흐름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미니FM에 대한 열기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캠퍼스, 대규모 주택단지, 커피숍, 거리 상점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미니 FM 방송국을 시작했다. 


     


    ▲ 소니가 1980년 출시한 FM 송신기를 장착한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 “무선 마이크로 프레스맨 M-320”. 이 제품은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지만, FM 송신기로 큰 출력의 FM 라디오를 통해 녹음 내용을 청취할 수 있다.  (출처 : http://cafe.naver.com/cassettewalkman/4219 )



      FM 송신기를 오디오기기 출력단자에 연결하면, 오디오 출력을 FM 라디오 주파수로 바꾸고 근처에 있는 FM 라디오가 이 신호를 수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FM 송신기는 30미터 정도까지 신호를 송신 가능하고, 고층건물에서는 더 멀리까지 송신 가능했다. 


     

    ▲ 1982년 파나소닉의 테크닉스가 발매한 FM 송신기를 내장한 턴테이블


    ▲ 1983년 소니가 발매한 FM 송신기 장착 텐테이블 “헬리 플레이어”

    (출처 : http://cafe.naver.com/cassettewalkman/4219 )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미츠비시 등 10여개 이상의 전자회사들이 미니 FM 용도의 송신기를 판매했고, 많은 수의 미니 송신기들이 판매되었다. 전자제품 기업뿐만 아니라 주요 광고 대행사도 미니 FM 흐름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미니 FM에 대한 열기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캠퍼스, 대규모 주택단지, 커피숍, 거리 상점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미니 FM 방송국을 시작했다.


     미니 FM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1991년 공개 된 영화 ‘파도의 수만큼 안아(波の数だけ抱きしめて)’가 미니FM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82년 쇼난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 젊은이들의 미니 FM 방송국 운영과 사랑을 다룬 청춘 영화이다. (*주6) 미니 FM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외에도 <FM89.3MHz>(2006), <너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애니메이션, 2017) 등이 있다. 미니FM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은 미니FM이 80년대 일본사회의 대중적 문화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니 FM 열풍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해져갔다.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미니FM 방송국의 수가 줄어들었다. 일부 미니FM은 전파 출력을 법정 한도 보다 높게 송출했는데, 이들은 적발되거나 체포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니FM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했다. 이후 이들의 활동은 합법적인 이벤트 방송국과 공동체라디오방송으로 전환되었으나 상당기간 미니FM은 지속되었다. 미니 FM은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현재도 일본 전역에서 운영중이다.



    미니FM! 일본 공동체라디오의 토대가 되다


      공동체라디오와 미니FM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혼동은 피해야 하지만, 미니FM의 존재가 있었기에 공동체라디오가 탄생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제도적 측면에서 미니 FM은 공동체라디오가 법제화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미니FM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88년 이벤트 방송(임시목적방송)이 법제화 되었고, 이후 1992년 공동체라디오가 합법화 되었다.


      이벤트방송은 제한된 지역에서 한시적으로 전파를 이용하는 것이다. 각종 박람회, 전시회, 스포츠, 축제 등의 행사 기간(6개월 이내)에 FM 주파수를 통해 이벤트 장소나 그 주변을 대상으로 행사 개최 기간 중 임시 또는 일시적으로 개설하는 방송이다. (*주7) 1988년 방송법 개정 이전까지 이벤트방송은 방송시험국으로 허가되어 왔으나, 법 개정에 의해 이벤트방송국의 면허방침이 결정되었다. 이벤트방송은 80년대 미니 FM 붐이 일어날 당시, 이를 이용해 매장이나 행사장에서 방송을 진행하던 것을 확대해 제도화 한 것이다. 수요가 제도를 만들어 냈다.


      공동체라디오방송은 1991년부터 체계화되기 시작해 1992년 전파를 쏘기 시작했다. 공동체라디오 방송도입 기본정책방향에서 전국 각지에서 실험되어지는 공동체방송의 방송대상 지역마다 하나의 방송이 보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전역에서 미니 FM이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실험적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초기 이벤트방송이나 공동체라디오방송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니FM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공동체라디오방송에 대한 일본의 제도화 과정을 보면 자유라디오에서 합법적 한시적 라디오 그리고 공동체라디오방송의 제도 도입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유럽의 공동체라디오 방송의 제도화 과정과 유사하다. 


      미니 FM은 공동체라디오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2년 도입된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초기 출력이 1W로 제한되었으며, 그 숫자도 많지 않았다. 1995년까지 전국에 30개 방송국만 존재했다. 그러나 1995년을 기점으로 공동체라디오가 폭발적으로 증가되었는데, 미니 FM이 큰 전환점을 제공했다.


      1995년 일본 관서지방의 큰 지진(한신 고베 대지진) 당시 오사카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 미니 FM 방송 <FM사랑>이 (*주8) 재난지역인 고베로 옮겨와 지역 한국인 커뮤니티와 연계해서 방송을 시작했다. 이 방송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지진상황과 구조물품의 정보를 알리면서 피해를 입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후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얻었고 출력증강과 더불어 확산되었다. 출력은 초기 1W에서 1995년 10W, 그리고 1999년에 20W로 늘어났다. (*주9) 2017년 12월 현재 일본 전역에 315개의 공동체라디오가 운영되고 있다. (*주10)


     

    미니 FM은 사회문화운동, 매체운동의 매개체


      미니FM은 기술적 취향만으로 머무르지 않고 사회문화운동으로도 발전했다. 1970년대 미니 FM은 유럽의 해적방송과 비슷했다. 당시 해적방송이 표방한 ‘자유’는 국가의 전파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전파 송출을 하는 정도의 의미였다. 더 중요한 목적은 국영방송의 단조로운 프로그램에 식상해하는 청취자들의 욕구에 맞춰 오락 지향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11)


      일본 역시 1970년대 미니FM의 시작은 밋밋한 기성방송의 프로그램에 대한 하위문화운동이었다. 기존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아키하바라와 오사카 니혼바시의 부품 가게에서 팔던 FM 송신기를 개조해 무면허 언더그라운드 방송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일본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도시에 FM 방송국이 하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욱 개방적인 프로그램들을 원했다. 사람들은 문화적인 다양성을 갈구했지만 일본에서 하위문화를 다룰 수 있는 라디오나 TV 방송국은 없었다. 다양한 문화를 원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미니 FM은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고, 문화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미니 FM은 10대와 젊은이들의 대안문화, 하위문화의 창구가 되었다. (*주12) 다양한 문화를 원하는 욕구와 이를 실천하는 매개체로 미니FM이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미니FM이 전국적인 열풍이었을 때 조사에 따르면, 미니FM 방송국의 스텝은 평균 5명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중·고·대학생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미니FM을 개국한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와 ‘기성 라디오 방송에서 부족함을 느낀다’는 이유가 공통적이었다. (*주13)


      당시 청소년 잡지 등 대중 매체들은 미니FM을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시대였다. 음악 FM을 듣거나 카세트에 더빙을 하는 문화가 다였다. 그런 가운데 미니 FM은 유일한 정보 전달 수단이며 자유로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어졌을 것이다. 


      미니FM은 문화적 운동뿐만 아니라 매체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미디어 실험을 통해 개인의 자기표현, 지역사회와 연대와 의사소통 그리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전파 이용 등 급진적 운동도 병행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전파의 자유에 대해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아사히 신문 등은 미니FM을 “시민운동‘의 하나로 파악하기도 했다. 실제 그런 활동의 거점으로서 기능하고 있던 미니FM도 있었다. (*주14) 당시 몇몇 미니FM은 규정 이상의 출력으로 방송을 하는 사례가 있었고, 이들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들이 전파 자유에 대한 긍정적인 논조를 보였다. “전파 자유화의 새로운 기운을 억제한다”거나 “미니 FM 시민의 자유를 생각하는 모임의 설립 준비위원회 동향” 같은 기사들이 보도 되었다. 


      적은 출력으로 인한 좁은 신호 범위는 어쩌면 방송을 위해서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본의 미디어 비평가이자 활동가인 코카와 테츠오는 1982년 자유라디오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프리라디오 운동과 가타리의 사상을 받아들여 기성 대중매체와 급진적으로 다른 기능을 하는 자유라디오 운동을 전개했다. (*주15)


      테츠오는 미니FM의 낮은 출력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라디오 수신기가 발전해 미약 전파 출력으로도 반마일에 달하는 지역에 방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니FM의 가능성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가 발간한 책 <이것이 프리라디오>라는 당시 일본사회의 강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1982년 대학에서 제자들과 함께 미니FM 방송국을 시작했다. 그는 또 1983년 도쿄의 캠퍼스에서 <라디오 홈런>이라는 방송국을 개국하고, 매일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토크쇼나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방송에는 정치적·문화적 활동을 하는 게스트를 초대됐다. 게스트들은 자신들이 출연한 방송을 녹음해 그들의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방송국 주변에 사는 청취자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방송국은 학생, 활동가, 아티스트, 노동자, 작은 가게 사장, 지역 정치인들, 남성, 여성과 노인을 위한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주16) 


      테츠오가 주창한 자유라디오 운동은 전파의 공공적 이용에 대한 주장의 일환이었다. 전파에 대한 국가 독점에 대한 저항 운동이다. 일본 역시 전파가 국가 재산이라는 인식이 공공연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 정부는 단파 라디오 수신을 강력하게 금지했고, 이러한 인식은 전파의 송출과는 무관한 것이었지만 전파는 정부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주17)

      


    미니 FM!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를 지향


      미니 FM은 공동체라디오, 마을미디어의 지향점인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주 미약한 전파로 100m 이내의 좁은 수신 범위때문에 방송을 위해서는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이라는 방법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범위를 넓혔다. 


      간사이 지역의 미니FM 사례연구에 따르면, 간사이 지역에서는 개인의 취미에서 시작된 미니FM 방송국들이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이웃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간사이 지역의 경우 미니FM 방송국들이 160개 이상이 존재했는데 서로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방송국간 그리고 청취자들간의 소통을 실행했다. 서로 연대를 통해 청취자들과 오프라인 미팅을 하기도 했다. CB무선처럼 전파로 접속하는 교신을 하고 서로 만든 프로그램을 교환하고 널리 전달했다. 또한 전화나 편지로 청취자와 소통을 지향했다. 청취자들은 미니 FM 방송국에 테이프를 가져오거나 회보를 만들어 이벤트로 배포하기도 했다. 각각의 미니 FM들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청취자가 송신자가 되고 연결을 통해 연대와 변혁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많은 미니FM들이 기성 라디오 방송을 모방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대안적인 정보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지향한 부분도 있었다. 미니FM은 공동체를 조직화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라디오를 통해 사람들과 친분을 시도하는 고립된 사람들이 방송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소극적인 사람들이 마이크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화를 위한 공간을 발견하기 했다. 미니FM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자신들의 욕구를 표현하고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대중적 현상을 만들어 냈다. 



      미니 FM은 개인의 취미에서 시작했지만 새로운 문화운동, 주파수 운동 등 사회적 실천을 이끌어 냈으며 공동체라디오의 토대가 되었다. 물론 미니 FM이 개인의 기술적·문화적 취향 욕구로 시작되거나 상업적 부분과 결합이 되었던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의 공동체라디오 제도화 과정에서 민관협력모델이나 상업적 모델이 일부 포함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미니 FM을 통한 사회적 실천과정 속에서 일본 방송의 시민 참여 제도가 발전되어 갔으며, 공동체라디오 제도를 정착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공동체라디오의 콘텐츠, 시민참여, 공동체 조직, 연대 등 다양한 운영모델의 토대를 제공했다. 특히 시민들의 주파수 활용에 대한 경험과 주파수의 공적이용에 대한 사회적 공론과 공감대를 이끌어 냈고 이를 제도화 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미니 FM에서 이벤트방송, 공동체라디오방송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미니 FM이 일본사회 내 시민미디어와 전파의 공공적 활용, 시민들이 자유롭게 주파수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실천과 운동이 정책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도화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시민들의 주파수 활용 경험은 공동체미디어의 제도화에 영향을 주는 것 뿐 만 아니라,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고 경험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영국의 경우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임시방송면허(RSL, Restricted Service Licence)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임시방송면허를 통한 방송경험이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단체의 방송경험을 쌓고, 자극과 성취도를 높이고, 공동체라디오 방송에 대한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더 많은 파트너와 자원활동가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주18) 영국에서는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이 제도화되기 전에 임시방송면허를 통한 시민들의 주파수 활용경험과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었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제도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공동체라디오가 제도화되기 전이나 후에도 주파수 활용에 대한 사회적 실천과 경험이 거의 전무했다. 유럽사회의 68혁명이후 전 세계적으로 자유라디오 운동이 발전해 나갔고, 일본 역시 이러한 영향 속에서 미니 FM을 통한 자유로운 표현과 주파수 이용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 형성되어 갔다. 그러나 한국은 1960년대 군사정권의 홍보 일환으로 농촌에 라디오 보급운동을 했고, 50년대 말 서울의 몇몇 대학에서 소출력 라디오를 운영하였으나 70년대 정치적 이유로 모두 폐지되었다. 또한 군사적 이유로 전파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무척 심했다. 시민들은 수신자로서 머물렀지, 송신자가 되지 못했다. 시민들의 전파 활용에 대한 제도적 허용은 2000년대 미니 FM과 소출력 라디오(공동체라디오)로 일부 허용이 되었지만, 대중적 확산은 되지 못했다.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전파 활용 경험을 할 수 있는 한적면허제도가 있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활용되고 있지 않다. 


      최근 팟캐스트와 마을라디오가 활성화 되면서 시민들의 제작 경험은 많이 축적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제약이 있다. 오로지 PC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접근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 스마트폰이나 PC가 없을 때 들을 수 없다. 팟캐스트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미디어의 발전 방향이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을 통한 전달과 수신으로 간다고 하지만, 접근성과 매체파워는 제약이 있다. 


      마을라디오의 다음 단계로 진화하려면 주파수에 대한 접점이 필요하다. 지난 5년여간의 축적된 마을라디오 제작 경험과 노하우가 주파수를 만난다면 지역주민들의 자기표현과 소통, 공론장 형성에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한시적 전파를 이용할 수 있는 소출력 라디오 제도(미니FM)를 활용한 전파 경험과 함께 한국의 주파수 운동에 대한 사회적 실천과 논의가 필요하다. 



    * 주


    1. 위키미디어


    2. 한국의 전파법 제 19조의 2 제2항, 전파법 시행령 제25조, 전파법 시행규칙 제 2조~4조 참조


    3. 코카와 테츠오는 비평가, 영화평론가, 프리라디오 활동가,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30년 넘게 일본에서 라디오 운동을 해왔으며, 다양한 개인이 제작하고 개인이 송신하는 라디오 송신기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그는 한국에서도 자유라디오 관련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4. 미니 FM 이라는 명칭은 전국적으로 붐이 일어날 때 ‘작은 방송국’이라는 의미에서 잡지에서 사용한 명칭이다. 


    5. 日서  미니 FM 방송국 붐, 경향신문, 1983.4.11.


    6. http://www.ne.jp/asahi/abyu/abe/jh1eaf/minifm.html


    7. 우리나라의 미니 FM(소출력방송)과 유사한 제도. 일본의 미니FM을 참조해 국내에서도 임시목적 방송을 미니 FM방송이라 했다. 지금은 소출력방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8. <FM사랑>은 1993년 12월에 재일 동포가 한인동포를 위해서 개국된 미니FM 방송국이다. FM 사랑은 당시 일본의 방송법에 외국인이나 외국인법인단체가 방송국을 소유할 수 없도록 국적 조항이 있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미니 FM 방송을 개국했다. 일본 내  한인 동포사회가 처음으로 갖게 된 전파매체이다(한겨레 신문, 1993.6.22.) 한신 대지진 이후 한인 미니 FM의 자세한 내용은 -<정지혜, “해외 퍼블릭 액세스 운동 사례 1. 일본, [FM와이와이] : 공동체 라디오 - 시민의 힘으로, 재난을 극복해낸다!”, [미디액트 뉴스레터] 제15호, 2003년 2월 25일 > 참조하면 된다.


    9. 한은영·박종혁(2001), ‘소출력 FM방송의 국내 추진방향-주요 국가의 제도분석을 중심으로’, 정보통신정책 제13권 11호.


    10. www.jcba.jp


    11. 윤수종(2010), ‘이탈리아의 자유라디오 운동’, 지중해지역연구 제12권 제2호


    12. Toward Polymorphous Radio, 코가와 테츠오.


    13. 아사히 신문, 1985.9.9.


    14. http://www.ne.jp/asahi/abyu/abe/jh1eaf/minifm.html


    15. ミニFMによるパーソ\ナル・ネットワーキング〜関西地域の事例をもとに〜, Takashi Wada 


    16. Toward Polymorphous Radio, 코가와 테츠오


    17. Toward Polymorphous Radio, 코가와 테츠오


    18. 영국공동체라디오만들기 핸드북, 라디오리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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