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7호 이슈와 현장 2017.11.22.]
지역, 노동,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디어 실천
- 체인지온 컨퍼런스 @청주 후기
수수 (미디어활동가)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둔 어르신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그림 못 그리는디.. 손가락도 구버갖고(굽어서). 산수유랑 감 따고 와서 시방(지금) 사방간 데가(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전라남도 구례, 밤재 아래서 평생 농사일만 하시던 어르신들에게 ‘그림’이라는 건 무엇일까. 자식, 손주와 통화할 때 쓰는 휴대폰보다 어렵고 낯선 무엇인 건 분명해 보인다. 고된 노동으로 녹슨 손마디들은, 아무리 좋은 물감, 붓, 펜이 앞에 있어도 그걸 쥐기조차 힘들다. 하물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글자’를 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눈으로 보는 ‘법’과 그것을 그리는 ‘법’, 그리고 그걸 읽는 ‘법’이 제각각 따로 존재하다는 것을, 이 어르신들만큼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비록 ‘언어’를 통해 설명하기는 어렵더라도) 글과 그림 앞에 머뭇거리던 어르신들 앞에, 마포FM 시절 쓰던 작은 녹음기 하나를 들고 ‘칼로 쑤셔대는 듯 아픈 몸’에 대하여, ‘지들 바쁘다고 감 상자 하나 안 날라주고 도시로 내 뺀’ 자식새끼들에 대하여, ‘죽을 복이 있어서, (요양원 가지 않고) 혼자 집에 있다가 지난 주, 조용히 세상을 뜬 동네 할배’에 대하여 듣는다. 녹음기는, 이 말들을 잘 듣고 있는 걸까? 무엇이 중요하다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삶들과 마주할 때, 우리가 미디어 활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일을 하는가? 무엇을 가치 있는 사건과 삶, 그리고 사회로 ’유통‘하는가(선택하고 기록하는가, 또 해석하는가)? 우리가(혹은 각자가) 믿는 진실에 어떻게 권위(신뢰)를 부여할 수 있을까. 미디어 생태계를 사유화하는 시스템에 어떤 공유지를 스쾃squat(점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생산한다고 믿는 미디어들이 기존 배급과 유통 시장에 대한 신뢰를 더 확고하게 만드는 효과에 기댐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나?
얼마 전, 그러니까 2017년 10월 31일에 청주 동부창고34에서 열렸던 ‘미래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컨퍼런스 자리는, 이런 질문들을 생산하는 데 구체적 도움을 줬다. 그 날 오갔던 이야기들을 복기하며, 질문들에 다다른 여정을 함께 재구성해볼까? 올해 행사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주제 강연] 미래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 남미로부터의 교훈 / 박채은(미디어 활동가)
[발표1] 매체 제작 이후 누구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 김설해(공룡)
[발표2] 일본 다큐멘터리 제작 그룹 NDS의 지역 활동 사례 발표 / 사토 레오 (<달밤 가마 쟁탈전> 감독), 가지이 히로시(<달밤 가마 쟁탈전> 제작자) (통역: 이마마사 하지메)
[발표3]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노동을 주제로 사람들을 만나기 / 박영길(공룡)
[발표4] 서울노동광장 & 까페 봄봄 활동 사례 / 공군자 (카페 봄봄 매니저)
[발표5] 부산 노동예술지원센터 흥의 활동 사례 발표 / 이광혁 (노동예술지원센터 흥 팀장)
▲ 주제 강연 ‘미래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 남미로부터의 교훈’에서 발표중인 박채은 미디어 활동가.
‘공유지’ 주파수를 확장하기, 우리 입을 틀어막을 수 없을 때까지
"민중/시민들을 임파워해야 한다. 집단적 이해를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연대 강화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엘리트 지배를 뒷받침하는 억지스러운 동의가 아니라 차이를 통한 개방적 방식으로 진실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조건을 창조해야 한다."
대리자가, 사회 중요한 이슈들을 선별하고 적당한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미디어 활동인가? 박채은 활동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를 넘어서서, ‘차이를 통한 개방적 방식’과 ‘사회적 합의를 위한 조건 창조’라고 강조하면서 대표적인 예로 아르헨티나 민주주의방송연합(CRD) 투쟁역사와 21가지 원칙을 열거하였다. CRD는 10년 동안(2004-2014)의 활동 끝에 커뮤니티 커뮤니케이션 주권(인권)법제화에 성공한다. 여기서 정립한 21가지 원칙 중 발제자가 언급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표현의 자유와 인권은 근본적인 원칙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인권이다.
2. 방송은 사업이 아니라 권리다.
3. 미디어는 독립되어야 한다.
4. 라디오 주파수는 인류의 유산이다. 사적 재산이 아니다.
(중략)
13. 모든 주파수의 33퍼센트를 비상업적 미디어에 할당한다.
(후략)
▲ 대안적 플랫폼의 예시 Radio Mudo Real http://radiomundoreal.fm/?lang=es
공공자원인 주파수를 당연하다는 듯 몇 개 통신사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한국 현실을 반추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마을미디어 사업들도 돌아보게 된다. 마을을 공동체 내부의 ‘차이를 통한 개방적 방식으로 진실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는 과정이라고 봤을 때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사회 미디어 시장의 현실, 미디어활동 내용, 공공미디어 영역 구축 등을 돌아볼 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미디어 공유지가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보도지침, KBS/MBC 등 공중파 방송에서 일어난 부정의, 대도시에 일어나고 있는 강제철거, 젠트리피케이션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마을미디어’ 등을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직접 만들자'라는 슬로건에서, 다른 무엇으로 전환할 임계에 다다른 것은 아닐지. ‘우리’를 확장하는 구체적 물적/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서, 활동가나 당사자 정체성을 자임, 혹은 부여받지 못한 이들도 미디어로써 행동할 수 있다면. 엘리트, 전문가들에게 자격이나 권위를 인정받지 않더라도, 자율적 삶, 정치를 의제화 할 수 있는 미디어를 권리로 누리는 것.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인권이라는 의미 아닐까?
▲ ‘체인지 온 컨퍼런스 @ 공룡’ 참여자들.
무엇을 ‘미디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남미 미디어 운동을 중심으로 발표를 했던 박채은의 뒤를 이어, 김설해(생활교육공동체 공룡) ‘매체 제작 이후 누구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와 사토 레오, 가지이 히로시(일본 다큐멘터리 제작 그룹 NDS)의 지역 활동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제작, 교육, 배급/유통 등 여러 방면에서 지역 ‘노동’ 조합과 조직들과 함께 미디어활동을 해온 공룡에서는 ‘지역’과 ‘미디어’를 풀어내는 NDS 활동에 힘을 받았다고 한다.
“가마가사키는 오사카의 일용직 노동자의 거리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머무는 쪽방촌이 있고 거기에서 전국 건설현장이나 노동현장으로 나간다. (중략)... 그런데 가마가사키 외곽에서 있었던 변화들이 다른 공원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스타벅스나 편의점이 들어오기도 하고,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도 박탈되고 눕지 말라는 구조를 만들고, 공원에서 아저씨들이 장기를 두는 공간이 금지되는 변화가 있었다.”
오사카 번화가 근처 인접한 가마가사키는 싼 지대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 타겟이 되고 있다. 소위 ‘예술’행위를 통해 지역 이미지를 개선한 후, 대자본이 들어오는 식이라는 일본 젠트리피케이션 사례가 낯설지는 않다.
▲ 한때 스쾃(점거운동)으로 유명했던 베를린의 스쾃 지역들은 이제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이들은 <달밤 가마 쟁탈전>라는 영화를 만들고, 가마가사키 노동자, 노숙인과 함께 하는 상영회, 상영 홍보를 위한 카레 나누기, 일주일에 한 번 공동취사+상영 등을 쌓아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근거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 활동이 ‘예술’ 이나 ‘문화’활동으로, 스펙터클이나 볼거리고 환원되어, 오히려 재개발에 기름을 부어 버리는 격이 되지 않는 방법이 뭘까? 여기에서 ‘이치무라 미사코’라는 노숙인+예술가+여성을 떠올려 본다. 미사코는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10년을 넘는 시간, 노숙인으로 살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가 자본주의 경쟁, 검열, 타율적 노동과 부당한 지대에 저항하고자 하는 뜻은 NDS와 비슷해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독립다큐멘터리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아닌, 예술가, 여성 노숙인이라는 호명에 적극적으로 대답한다. 스스로 위치성을 부여하고 요요기 공원 여성노숙인과 함께 사는 방식으로 연대한다. 도시재개발 피해자, 아니면 그 역인 행위자나 주체로 노숙인들을 ‘대상화’ 하여 기록하는 실천과는 다르다. 오히려 피사체 속에, 대상들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규명하며 - 다변적이고 유동하는 위치성을 기반으로 활동을 펼쳐 나간다. 다음에는 극영화를 찍고 싶다는 NDS 계획들이 나온 배경엔 이런 일본 내 젠트리피케이션 반대운동/올림픽 반대운동 등의 영향 있지 않았을까. 오늘 한국 포항에는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있었다. 젠트리케이션 또한 존재들이 산 누적된 시간들을 깡그리 갈아 엎어버린다는 데서 ‘사회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지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지진 현장에서, 누군가기 이걸 찍고 기록하는 일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지진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일일 것이다. 그 속에 사는 누구로, 사물로, 동물로 존재하는 스스로들이 서로에게 내미는 손, 그것만큼 결사적인 미디어는 없을 것이다. 사라져 버릴 것들, 프로파간다 속에서 대상화하는 ‘민중’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우린 어쩌면 영화 작품, 작업이라는 위치보다 더 생생하고 다변적인 위치를 가져야할지도 모르겠다.
이후에 이어진 발표들 -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노동을 주제로 사람들을 만나기-박영길(공룡)>, <서울노동광장 & 까페 봄봄 활동 사례 – 공군자(카페 봄봄 매니저)>, <(부산)노동예술지원센터 흥의 활동 사례 발표 – 이광혁>- 은 과거 ‘미디어 컨퍼런스’라는 주제에 포함되지 않았을 법한 여러 활동들이었다. ‘마을 카페’는 노동을 주제로 지역 거점으로써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 중인 듯 했고, 자칭 예술가들은 도로집회 기획에 참여하고, 노조에서 밴드를 함께 하기도 한다. 미국과 한국정부가 성주 소성리에 배치한 사드에 반대하여 ‘새민중음악선곡집’을 만들었던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성주’와 연결되는 ‘미디어 활동’ 흐름이 아닐까 한다. 확장된 새로운 미디어 활동이 ‘희망’으로, 새로운 방법이 되어 돌파구가 된다면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돌파구나 새로운 방법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국면에 와 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토대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어떤 임계점에 와 있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과 지진, 기후변화와 핵위협, 전쟁 위기와 일상적인 폭력 등은 ‘우리’ 가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시간성들을 지워나간다. 무언가를 증언하고 기록할 것들도 지워지고 있으며 그것을 볼 누군가도, 앞으로 남길 무엇들도 실질적인 위협 속에 있는 아포칼립스. 미디어는 사유화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다 광범위한 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관련자료]
일본 노숙 예술인 이치무라 미사코 “그 어떤 검열도 반대”
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uid=459925
이치무라 미사코의 글 (리우올림픽의 그늘…빈민가에선 어떤 일이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 현지 르포)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667§ion=sc4§ion2=%BC%BC%B0%E8
글쓴이 수수
달차, 모변 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라디오 마포FM <야성의 꽃다방>(2005-2016), <L양장점>(2005-2007) 제작 활동을 했다. 지역 미디어 센터, 초/중등학교, 시민사회단체, 시장, 마을공동체 등에서 라디오 교육 활동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노래' 혹은 '소리'를 타고, 사람과 사물/비인간, 지역/공간과 시간을 네트워킹 하는 활동 영역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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