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1호 나의 미교 이야기 2016.12.23]
우리는 계속 교감할 수 있을까요?
정소희 (독립영화 감독)
[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 나의 미교 이야기] 5화
<ACT!>에서는 최근 교육 영역의 확장과 매체의 다양화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미디어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소개하고자 [미디어교육 스토리텔링- 나의 미교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 교사들이 자신의 교육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미디어교육의 오늘을 파악하고 발전적인 교육 담론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이번은 그 다섯 번째 순서로 독립영화 감독이자 미디어교사인 정소희 선생님의 노인 미디어교육을 소개합니다.
“띵똥”
“선생님, 언제 전화 통화가 가능할까요?”
아침 9시 반에 들어온 문자. 이것은 노인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메시지이다.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 현장을 가다보면 참여자에 따라 교육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청소년의 산만함과 신선함, 성인들의 진지함, 그리고 노인 분들의 열정....
노인 교육은 어느 교육보다 열정이 넘친다. 이른 시간에 수업해도 지각도 잘 안 하시고 결석률도 낮다. 언제나 많은 질문을 쏟아 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수업에 임하신다. 2시간의 수업 동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한다. 그 시간 동안 강사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것은 다 뽑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수업에 조금이라도 일찍 가면 어김없이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하며 시간과 상관없이 수업은 시작된다.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 항상 10~20분은 붙잡혀 궁금증을 풀어드려야 한다. 그래서 수업 일지를 쓰는 순간이 오히려 감사하다. 일지를 쓰고 있으면 질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노인 미디어교육을 한 지 8년의 시간이 다 되어가니 어느새 나도 영악해지고 있다.
△ 종로노인복지관 교육-극영화 촬영 중
이 원고를 준비하며, 2008~2009년쯤 내가 처음 노인 미디어교육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뭐가 달라져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일단 교육 환경이 많이 발전했다. 이제 미디어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 70~80%는 촬영 장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분들은 조명부터 무선 마이크, 붐마이크 등 모든 장비를 다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편집 컴퓨터가 있는 분들도 꽤 있는 편이다. 장비 활용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분부터 강사보다 장비 및 기술 용어를 더 잘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물론 모든 현장에서 그렇지는 않다. 교육이나 미디어 동아리 활동을 오래 한 경우가 주로 해당한다). 초창기 노인 영상 미디어교육에서는 수강생들 사이에 수준 차이가 난다고 해도 강사들 보기에는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분들을 한 반에 모아놓고 수업하는 게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이제는 수준별 교육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하지만 장비가 좋아지고 수준이 높아졌다고 그 안에서 제작되는 작품의 내용이 더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수업하기 더 수월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수업 경험이 많은 노인 미디어교육 수강생들은 강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자신들이 알아서 만들 테니 기술만 가르쳐 달라고 하신다. 기획이니, 진정성이니 이런 머리 아픈 얘기는 싫다고 하신다. 심지어 강사에게 기획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당신들은 거기에 맞춰 제작할 터이니. 아,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이전에 교육에서처럼, 제작 능력은 떨어져도 서로를 신뢰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작품에 대해 함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던 시간은 어디로 갔나?
△ 성북실버IT센터 교육- 수료 작품 시사회
초창기 노인 미디어교육에서는 순수한 호기심, 여가 시간에 새로운 것을 배워보겠다는 열정이 중심이었다면, 차츰 노인영화제와 각종 영상제, 퍼블릭액세스 채널로의 활발한 활동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상영과 방영, 수상 여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젊은 세대, 전문 영상 제작자들에게도 영상제 수상과 좀 더 많은 상영 기회는 중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배급과 소통의 통로로써 영상제와 퍼블릭 채널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세계에서는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가 되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상영되고 수상 될 만한 작품을 만드는 데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한동안 노인영화제에서 내가 가르친 분들의 작품이 많이 상영되고 수상을 했다. 그러자 수업에서 내 말발이 먹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노인영화제 작품 상영을 위한 족집게 선생처럼 취급받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말을 들으면 노인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다고. 아, 다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이분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는 것인지, 상영될 만한 작품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인지... 올해는 내가 지도한 영상이 노인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실망했지만 난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저 선생의 수업을 들으면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수상할 수 있을 거야’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다시 초창기 교육에서처럼 어르신들과 나 사이의 포지션을 재배치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감이 든다.
어르신들이 결과와 성과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경쟁 중심의 사회, 성과 중심의 사회를 평생 치열하게 살아오며 굳어진 습성 탓이지 않나 싶다. 또한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되어 이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잉여의 삶을 사는 듯한 자괴감이 어르신들을 결과에 연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분들에게 영상제에서의 수상은 단순히 상이라는 결과이기에 앞서, 사회에서 잊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이자 사회의 인정을 구하는 수단이 아닐까.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 강남시니어플라자 교육-인터뷰 촬영 중
미디어 교육과 인문학 교육의 융합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평생 자신의 경험과 고집으로 살아오신 분들에게 생각의 전환이란 쉽지 않다). 왜 영상을 제작하는지, 이러한 활동이 자신의 삶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돌아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노인 미디어 교육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강의 방법은 ‘질문’과 ‘인내’다. 끊임없는 질문과 소통 속에서 서로가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강사인 나의 방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이야기 방식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찾아낸 것들이야말로 중요하다 할 것이다. 아마 그것은 다큐멘터리에서 피사체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과 같지 않을까?
노인 미디어 교육을 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노인영화제 상영이나 수상이 아니었다. 물론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그보다는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에서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함께 찾아낸 것 같은 그 느낌이 좋다. 같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촬영과 편집을 거치면서 어르신들과 교감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 생각들, 어르신 자신도 잊고 지내거나 깨닫지 못했던 감성들... 그것은 영상이 만들어져 나가는 것을 함께 느끼는 순간이다. 어르신들의 생애 중 열정 넘치고 빛나는 순간 중 한시기를 같이하는 기분이 들 때, 그 감동이 내가 노인 미디어교육을 계속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
[필자 소개]
정소희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이주민문화예술단체인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 다큐멘터리 <퍼스트 댄스>를 연출했다.
지속적이고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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