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100호 이슈와현장] 독립영화와 자본사이(4) 2016년, 한국 독립영화 기로에 놓이다

전체 기사보기/이슈와 현장

by acteditor 2016. 10. 6. 15:33

본문

[ACT! 100호 이슈와현장 2016.10.14]


독립영화와 자본 사이 (4)

2016년, 한국 독립영화 기로에 놓이다


성상민 (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2015년 많은 독자들에게 주목받은 연재 시리즈 ‘독립영화와 자본 사이’가 ACT! 100호를 맞아 약 일 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점점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독립영화는 늘어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대기업들이 독립영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일 년 사이에 한국 독립영화가 놓인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대체 대기업들은 어떻게 독립영화와 긴밀한 관계를 갖기 시작했으며, 과연 대안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2015년, ‘독립영화와 자본 사이’를 처음 쓸 때만 해도 한국 독립영화의 상황이 최소한 몇 년 간은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꽤나 위태위태한 위치에 놓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랜 세월 힘든 일들을 버티고 버티며 나름대로의 판을 유지했던 것이 한국의 독립영화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결과적으로 매우 안이한 것이었다. 2015년 하반기 이후로 갑자기 이상 반응들이 독립영화판 이곳저곳에서 관찰되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 영화사 진진이 운영하던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을 시작으로 2016년 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미로스페이스가 도미노가 무너지듯 줄줄이 무기한 휴관 또는 폐관을 선언했다. 이에 맞춰 영화진흥위원회도 독립영화전용관 지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개악을 시도하고 많은 항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추진되고 말았다.


 독립영화 정책도, 독립영화를 상영하던 극장도 모두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독립영화의 흥행 상황 역시 더욱 악화될 수밖에는 없었다. 단순히 독립영화 전체로만 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연상호의 <서울역>, 김종관의 <최악의 하루>처럼 화제선상에도 오르내리는 작품이 등장했고, 비록 이들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개봉관을 통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주목받은 독립영화들의 상당수는 대기업과 연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CJ 계열의 영화사들과 연계하여 개봉한 <4등>, <우리들>, <최악의 하루>, <죽여주는 여자>, NEW를 통해서 투자 배급된 <서울역>, <범죄의 여왕>, <카이 : 얼음 호수의 전설>이 대표적으로 대기업을 통해서 극장에 걸린 독립영화이다. 여기에 NEW는 김기덕의 신작 <그물>과 홍상수의 신작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 투자, 배급하며 더욱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귀향>의 배급을 결정한 중소 규모 영화사 와우픽쳐스의 사례처럼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회적인 이슈와 겹치며 350만 관객을 동원하는 엄청난 관심을 모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CGV 아트하우스나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등 대기업을 통해서 유통된 작품이 아닌 독립영화는 화제에도 오르기 어려운 건 물론 극장 개봉에 있어서도 차가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설행, 눈길을 걷다>와 <물숨>을 제외한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를 통해 유통된 독립영화들은 모두 오천 명도 안 되는 관객들을 만나야 했다.


 그나마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을 지원하고 롯데시네마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아르떼 클래식’을 통해 단독 개봉한 <설행, 눈길을 걷다>(인디플러그 배급)이 5,867명의 관객을, 배우 채시라와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이 각각 나레이션과 OST로 참여해 화제를 모은 제주 해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물숨>(영화사 진진 배급)이 10월 13일 기준으로 6,383명의 관객을 만났을 따름이다.


 이외에도 10월 중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운영 조직) 제작, 엣나인필름-시네마달 공동 배급의 다큐멘터리 <자백>이 개봉 전부터 꾸준히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그 화제성은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독립영화에 대한 보편적인 주목이라고 판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사진 1] 민병훈 감독의 예술 다큐멘터리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는 극장 개봉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공동체 상영 등의 대안적인 루트를 통해서만 영화를 상영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렇게 급속도로 한국 독립영화의 전반적인 배급 상황이 악화된 마당에서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택한 곳도 있었다. 독립영화 유통 플랫폼이자 전문 배급사인 인디플러그는 상반기에 배급했던 대다수의 작품들의 언론 시사회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대체하였다. 그간 한국 독립영화는 대다수는 상업영화처럼 크고 거대하게 언론 시사회를 열지 못해도 작은 규모로 계속 개최하며 언론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려왔었다. 하지만 더 이상 대관료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인디플러그가 상반기에 보였던 모습은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들이 놓인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전면적으로 극장 개봉을 포기한 작품도 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등 기독교 영화로 잘 알려진 민병훈 감독의 예술 다큐멘터리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는 단기간의 극장 상영이 끝나면 오직 공동체 상영을 통해서만 작품을 상영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민병훈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자발적으로 공동체 상영이라는 대안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운 대다수 독립영화가 처해있는 단면인 셈이다.


 적극적으로 대기업들과 연계를 통해 상황 타개를 시도한 영화사도 있었다. 엣나인필름은 자사가 배급하는 독립영화 <글로리데이>와 <우리들>에 CJ E&M으로부터 저예산, 독립영화 서브 브랜드 ‘필라멘트픽쳐스’ 명의의 투자를 받고 각각 400여개, 8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들>의 경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감독의 작품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CJ의 산학 협력 프로젝트로 제작되는 영화라는 점에서, 후술할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영화들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인디스토리 역시 <최악의 하루>와 <걷기왕>을 CGV 아트하우스의 투자, 배급을 통해 제작했다. 이번 협력으로 5년 만에 다시 CJ와 손을 잡게 된 것은 이전과는 경우가 같지 않다. <티끌모아 로맨스>의 경우 iHQ라는 거대 기획사가 제작에 참여한 상업영화였고, <파닥파닥>의 경우 50개 상영관 내외로 적게 배급된 독립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하루>가 첫 주 200여개관에서 개봉한 것을 생각하면, 인디스토리의 올해 CJ와 맺은 관계는 독립영화 차원에서 맺은 전면적인 협력인 동시에 원활한 배급을 꾀한 선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누군가는 삐딱한 시선으로 현 상황을 바라보기도 한다. 청주대학교 영화학과의 이용남 교수는 지난 6월 7일 <미디어펜>에 게재한 자유경제원 토론 발제문에 현재 독립영화가 처한 배급과 유통의 문제를 지적하는 몇몇 독립영화인의 반응들이 역설적으로 ‘독립영화계가 자본을 절실히 염원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참 친절하게도 작년 ACT!가 게재했던 <독립영화와 자본사이>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독립영화계는 자본을 희망한다. 그들이 피칭(pitching)을 통한 제작지원,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한 배급과 유통 지원의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본의 필요성에 대한 반증이다. 자본을 비난하던 독립영화계의 실상은 자본을 희망하며, 자본 중에서도 개인자본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본을 사랑한다. 그 요구의 수용과 미수용 사이에서 자본의 옹호와 비판의 시이소오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들은 자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평가를 거부하는 것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경쟁이 두렵기 때문이며, 발생할 격차가 두렵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경쟁하지 못하고, 캥거루처럼 공적자본의 주머니 속에서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주제와 내용적 측면에서 자본의 비판은 감독의 가치관이나 시선의 문제가 아닌 작품의 배급과 유통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소재주의의 선택 사항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존재한다. 그러나 다수의 독립영화인들은 각자의 흥행을 위해 자본을 희망하면서, 자본을 비판하는 위선과 모순을 생산한다.


(…) 묻고 싶다. 그들의 주장처럼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왜 공적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며, 그것을 위해 왜 영화관을 만들어주며, 상영을 확대해주어야 하는가? 진지하게 그들이 답할 차례이다. 


-  <곡성 · 밀정 · 워낭소리… 성공 이면에 자본의 법칙 있었다>, 2016년 6월 7일,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이용남 교수,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news/view/156071)

 


 영화 시장의 논리에서 독립된 방향을 지향하는 독립영화도 분명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제작되는 만큼 자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영화 정책이 여러 부침을 겪는 와중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로 대표되는 공적 지원이 어느 정도 숨통이 되고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곧바로 독립영화인들을 자본에 대해서 위선적인 태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용남 교수 나름대로는 독립영화인들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을 모순이라고 드는 근거들이 현재 한국 독립영화가 처해있는 환경이 무척이나 좋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만다. 독립영화는 흥행에 좌우되지 않고 제작되지만, 대기업들은 부수적인 흥행을 위해 독립영화판에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다시 이는 독립영화들 사이의 격차를 만들고 있다. ‘자본의 법칙’은 독립영화에도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공헌에서 시작해 ‘또 하나의 레이블’이 되다


 물론 산업적인 측면에서 최근 한국 독립영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산업의 변방에 위치하던 독립영화가 영화 대기업의 연간 배급 라인업 구축에 있어 주된 자리엔 오르지 못할지라도 세부적으로 다른 영화들을 뒷받침하는 위치에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후반 이전까지 합법적으로 영화를 자유롭게 제작하거나 퍼트리기 어려웠던 한국 독립영화의 성장사를 생각하면, 대기업이 따로 전용관이나 전용 레이블을 만들 정도로 독립영화를 취급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무척이나 생경하다.


 물론 처음부터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독립영화와 함께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오른 CJ CGV의 배급 및 전용관 레이블인 ‘CGV 아트하우스’는 004년 설치된 ‘CGV 인디영화관’을 전신으로 한다. 처음부터 수익을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CGV 인디영화관은 2004년 9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사회공헌 4대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기 때문이다.


 CGV가 발표한 4대 문화 프로젝트는 인디영화관 설치를 비롯해 CJ 아시아 인디영화제 개최, 문화연대와 공동으로 문화 소외계층에 영화 관람 기회를 주는 ‘나눔의 영화관’ 프로그램, 그리고 인디영화 지원 프로그램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당시 상무이사직을 맡고 있던 김종현은 “(인디영화관 운영이) 극장으로써는 연간 10억원 정도 부담을 지게 되지만 관객의 영화선택권을 보장해준다는 취지에서 이를 계속 추진할 방침”이라고 CGV가 지는 부담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인디영화관이 설치된 지점도 강변, 상암, 부산 서면을 비롯해 총 3개 지점에 불과했다.


 이후 2010년대 초까지 대기업과 독립영화 사이의 관계는 사회 공헌 이상을 넘지 않았다. CGV는 2007년 인디영화관의 이름을 ‘CGV 무비꼴라쥬’로 바꾸며 10개관으로 설치 지점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CJ 아시아 인디영화제도 평론가 정성일에게 운영의 권한을 일부 맡기며 ‘시네마 디지털 서울’(CINDI)로 일신하게 되었다. (이후 CINDI는 2013년 CJ문화재단의 지원 중단으로 인해 폐지되고 만다.) 


 인디영화 지원 프로그램 역시 시네마 디지털 서울을 통해 ‘버터플라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영화 제작 및 개봉 지원 프로그램, 그리고 2008년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와의 협약을 통해 장편 졸업 작품을 약 2주 정도 무비꼴라쥬의 상영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전환했다. 이외에도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후원하며 수상작 일부의 CGV 무비꼴라쥬 상영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바로 그 순간부터 대기업이 조금씩 독립영화를 통해서 가능성을 엿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국가적 영화정책기관의 산하 교육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졸업 작품의 유통과 배급을 CGV에 위탁한 것은 이미 그 당시에도 영화 산업에서 반독점적인 위치에 있던 대기업에 자신들이 육성하고 발굴한 인재를 활용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우려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CGV의 독립영화에 관련된 행보는 모두 회사가 손해를 감수하는 ‘사회 공헌’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진 2]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제작되어, 한국영화아카데미와 CJ CGV의 협약을 통해 극장에 상영된 <파수꾼>은 독립영화로써는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파수꾼>의 이러한 흥행은 CJ가 독립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사회 공헌에서 서서히 파생적인 수익 수단으로써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이러한 선택은 CGV가 독립영화에 산업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2011년 3월, 매년 그러했듯이 CGV 무비꼴라쥬에서는 약 2주 간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들의 장편 졸업작을 상영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작품이 독립영화로써는 가공할 만한 흥행을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바로 배우 이제훈과 서준영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영화 <파수꾼>이다.


 20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무척이나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러 몰려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적어 보이는 20개의 상영관은 한편으로는 CJ가 <파수꾼>에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다른 작품들은 단 1개관에서만 상영한 것에 비하면 <파수꾼>은 상대적으로 CJ가 밀어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파수꾼>은 CJ의 기대에 부흥했다. 영화는 총 2만 4천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잉투기>의 성공에서 독립영화가 상업적으로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덕분이었을까. CGV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영화의 적극적인 배급을 시도했다. 그 첫 번째 타자는 2013년 11월에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인 <잉투기>였다. <파수꾼>의 4배 규모에 달하는 총 92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한 <잉투기>는 <파수꾼>보다 적은 17,341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것에 그쳤지만, CGV의 도전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잉투기>가 개봉하고 약 2주 뒤, CGV는 이호재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파수꾼>보다는 많고 <잉투기>보다는 적은 30개관에서 개봉하여 약 3만 명의 흥행을 기록했다.


 두 영화를 통해서 독립영화 배급에 대한 노하우를 얻은 CGV는 2014년부터 거침없이 독립영화 개봉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201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 무비꼴라쥬의 배급지원상을 수상 받아 CGV 무비꼴라쥬의 상영이 확정된 이수원 감독의 <한공주>가 시작이었다. 2014년 4월에 개봉한 <한공주>는 무려 203개관에서 개봉하였다. 한국 독립영화로써는 전례 없는 대규모 배급이었다. 한창 세월호 사건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회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한공주>는 무척이나 큰 호응을 얻었고 최종적으로 22만 명이라는 높은 흥행 성적을 이뤘다.


 <한공주> 보다는 시원치 않았지만 8월에 개봉한 <도희야>는 300여개 관에서 개봉하여 10만 명이 관람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CGV는 ‘무비꼴라쥬’를 ‘아트하우스’로 바꾸고 2015년부터 설치 지점을 기존의 10여개에서 20여개 지점으로 확대할 것을 선언했다. 바로 뒤이어 시민 축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의 우승 도전기를 그린 다큐 <비상>으로 이름을 알린 임유철 감독의 신작 <누구에게나 찬란한>을 첫 주 50여개 관에서 개봉해 2만 1천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은 ‘독립영화와 자본사이 (1)’에서 상세하게 언급한 대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소셜포비아>를 200 ~ 300여개 관에서 개봉하여 각각 480만명, 25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특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흥행 성적은 2009년에 개봉해 독립 다큐멘터리로써는 이례적인 흥행을 달성한 <워낭소리>의 기록을 갱신한 것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

 이후로 CGV 아트하우스는 이 두 영화만큼의 흥행을 기록하지 못하지만,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기존 한국 독립영화들이 침체된 상황에서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직접 배급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4등>, <최악의 하루>가 흥행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CGV 아트하우스와 같은 계열인 CJ E&M의 서브 브랜드 필라멘트픽쳐스를 통해서 배급된 <거인>, <목숨>, <돌연변이> 역시 CGV를 통해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며 주목을 받았고, 투자로만 참여한 <글로리데이>와 <우리들> 역시 2016년 상반기 주목받는 한국 독립영화로 이야기되며 기존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를 통해 유통된 독립영화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인지도를 얻는 것에 성공했다.


 게다가 다른 대기업 영화사들이 가만히 있던 것도 아니었다. 2008년 ‘아르떼’를 통해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브랜드를 설치한 롯데시네마(롯데엔터테인먼트)는 2016년부터 <설행, 눈길을 걷다> 등의 작품을 독점 상영하는 행보로 CJ에 뒤이어 적극적인 독립영화 시장 개발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극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NEW 역시 2013년 연상호의 <사이비>를 투자, 배급하는 것으로 시작해 2014년에는 자사 영화의 2차 판권 관리와 독립영화 투자/배급을 전담하는 자회사 ‘콘텐츠판다’를 설립하며 독립영화 배급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특히 NEW는 현재 김기덕과 홍상수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투자, 배급하며 독립영화 관객들에게 무척이나 높은 인지도와 흥행성을 얻는 것에 성공한 상황이다.


 CJ, 롯데, NEW처럼 크지는 않지만 중앙일보라는 거대한 모회사 밑에서 3대 멀티플렉스로 자리 잡은 메가박스 또한 2015년부터 이돈구의 <현기증>, 박혁지의 <춘희막이>, 이성강의 <카이 : 거울 호수의 전설>을 투자, 배급하며 독립영화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기에 <귀향>의 배급으로 참여한 중견 영화사 와우픽쳐스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산업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대기업 외의 영화사들 또한 흥행의 측면에서 독립영화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는 ‘독립’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2010년대 중반 현재 한국 독립영화는 상업 영화사들이 자신들의 라인업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동시에 수익까지 넘볼 수 있는 수단으로써 여겨지고 있다. 분명 이러한 진출을 통해 이전에는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연출이나 전개를 시도하거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화의 매력을 소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비주류 장르인 좀비물, 그것도 성인 대상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인 연상호의 <서울역>이 NEW를 통해 투자, 배급되며 14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동시에 역설적으로 한국 독립영화가 산업적 논리에서 더욱 자유롭지 않아졌음을 의미한다. 독립영화들이 대기업의 배급망을 타고 전역에서 개봉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다양성의 증대’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대기업의 배급망을 타지 못한 독립영화들 대다수가 철저하게 소외되는 상황은 그렇게 형성된 다양성에 큰 한계가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CJ, 롯데, NEW, 메가박스와 같은 대기업이 아닌 리틀빅픽쳐스와 같은 중소 규모 배급사의 영화들이 연이어 몰락하는 상황이다. 독립영화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전반이 대기업에 갈수록 종속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이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기관 역시 손을 놓으면서 양극화와 종속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영진위의 산하 기관이자 신진 영화인을 주로 양성해왔던 한국영화아카데미는 2014년부터 ‘3D 영화제작교육과정’이라는 명목으로 중견 감독들의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을 CJ와 함께 추진하며 CJ가 독립영화에 미치는 영향력 증대에 더욱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기존 감독들의 영화 기술 재교육이라는 명목을 들며 계속 ‘3D 영화제작교육과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이렇게 제작된 영화가 제대로 3D로 개봉하지도 못하며 명분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10월 초 300개관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한 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는 3D 영화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3D 상영은 10월 12일 기준으로 4개관에서 단 22회 상영에 관객수도 322명에 그치는 등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같은 날을 기준으로 <죽여주는 여자>의 총 누적 관객수가 6만 8천여 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3D 기술 도입이라는 명분은 그야말로 허울에 불과한 셈이다.



[사진 3] 미국의 독립 영화관 체인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Alamo Drafthouse)의 로고. 영화관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자국 내외의 독립/예술영화를 투자-배급하고 있다.


 이제 한국 독립영화는 <두 개의 문>과 같은 작품처럼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내지 않는 이상, 대기업을 통해서 유통되지 못하는 이상 극장 상영은 엄두도 내지 못 할 지경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현상이 비단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유니버설(Universal)의 포커스 피쳐스(Focus Features), 소니(Sony)-컬럼비아(Columbia)의 소니 픽쳐스 클래식(Sony Pictures Classic) 같이 대형 영화 스튜디오들이 저예산, 독립, 예술 영화를 배급하는 서브 브랜드를 지니고 있다. 일본 역시 2000년대 중후반부터 영화 제작, 배급, 극장 운영업에 모두 관여하는 토호(東宝)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거세지고 있으며 자생적으로 생겨난 독립영화관이나 미니 씨어터들이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립영화의 자체적인 생태계를 계속 재생산하며 독립영화가 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려 노력한다. 미국의 독립 영화관 체인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Alamo Drafthouse)처럼 지점 수는 22개에 불과해도 이를 바탕으로 수입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자국 및 해외의 독립영화를 투자 배급하는 사례도 있으며, 계속 사라지는 중이라 해도 지역 영화 공동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일본의 커뮤니티 씨어터는 대기업과 거대 미디어 자본의 영향력이 거세지는 일본 영화에서 작은 틈바구니를 만드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영국의 BBC나 채널4-필름4, 프랑스와 독일의 아르떼(arte)처럼 공영 방송국이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선순환 구조를 굴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해외의 사례들처럼 비록 쉽지 않아도 독립영화의 자생적인 차원에서, 또는 공공의 영역에서 조금씩 쉽게 자본과 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영화의 생태계와 영역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독립영화 양극화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변경으로 위기에 놓이긴 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관여한 독립/예술영화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함께 꾸려나갔던 2009년 이전까지의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현재까지도 서울 신사동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운영 중인 영화진흥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등의 사례는 충분히 영화 운동과 공공의 차원에서 자체적인 생태계를 조금씩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해외 영화 위주로 운영되긴 했지만, KBS가 2000년대 중후반에 런칭했던 방송국 차원의 예술영화 상영 및 배급 기획 ‘KBS 프리미어’ 역시 해외 공영 방송국의 사례와 연결하여 볼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그리고 이미 아직까지는 제한적이지만, 자생적인 독립영화 상영 환경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전국 각지에서 관찰되고 있다. 서울영상위원회의 독립영화 상영회인 ‘인디서울’, 서울시 차원으로 문화소외지역에 다양한 종류의 독립,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행사 ‘우리마을 소극장’ 등의 사례는 다시 한 번 독립영화의 생태계 조성에 있어 공공의 개입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태원의 ‘극장판’이나 춘천의 ‘일시정지시네마’, 또는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이나 부산 모퉁이극장의 사례처럼 커뮤니티 시네마나 공동체 상영의 정례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체적인 상영공간 혹은 상영회의 확보로 독립영화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움직임 역시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두 장밋빛 미래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이미 CJ나 NEW과 같은 대기업들이 독립영화에 상당한 영향력을 구축한 상황에서 이들과 다른 독립영화만의 영역을 형성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계속 대기업들에게 독립영화가 종속되어 휘둘리는 상황에 가만히 놓이는 순간 지금보다 더 쉽지 않은 순간들이 찾아오리라는 점이다. 여전히 날이 차고 어두울지라도, 더 많은 움직임만이 날을 밝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들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주목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




[필자소개] 성상민(ACT!편집위원회)


 지금은 사라진 만화언론 [만]에 2005년 얼떨결에 객원필진으로 데뷔해 한 10년 이상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빨리 졸업하려고 다짐했던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는 2010년 입학한 이래 졸업 학점은 아직 한참 많이도 남았지만 이젠 뭐 언젠간 졸업하겠거니 하고 만다. 지금은 [ACT!]와 [미디어스]를 중심으로 만화, 영화, 미디어 등 각종 문화에 관련된 글을 줄창 쓰고 있다.

 



참고자료


<CJ CGV에 인디영화관 생긴다>, 스타뉴스, 2004년 9월 7일.

<CGV ‘무비꼴라쥬’ 조희영 “인디영화도 돈 버는 사람 생겼으면…”>, 세계일보, 송민섭 기자, 2008년 12월 16일.

<극장가 양극화에 ‘직거래 영화’ 등장, 어느 갤러리필름의 실험>, 뉴시스, 신진아 기자, 2016년 4월 27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