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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0호 이슈와현장] 진보적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물결, 마을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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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10. 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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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0호 이슈와현장 2016.10.14]


진보적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물결, 마을미디어



이수미(ACT!편집위원회)


나의 마을 이야기


  마을 어귀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신작로를 벗어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전봇대 식당’이었다. 혹시 할아버지가 안에 계시나 기웃거리면 누군가 “숨미(수미) 방학이라 내려 왔구나”하고 아는 척을 했다. 술집과 슈퍼를 겸하던 그곳은 동네 사랑방이자 마을의 사건들이 모이고 논의 되는 곳이었다. 가끔 빈주전자를 들고 심부름을 가면 맛보기라며 뚜껑에 막걸리를 따라주는 주인장이 있던 곳. 팔 한 쪽이 없는 아저씨가 무서워 골목길을 빙빙 둘러 다니다 딱 마주치던 날, 공부 열심히 하라며 손에 쥐어준 동전을 보고 한참이나 머쓱했던 곳, 전봇대 식당이었다. 


 식당을 빠져나와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퀴퀴하고 눅눅한, 한편으로는 달짝지근한 마을의 냄새가 풍겨온다.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어디선가 때그르르 웃음소리가 굴러오면, 나는 안다. 그것이 방앗간 문간에 모여 앉은 동네 여인들의 환영 인사라는 것을. 판자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만든 널찍한 평상 위에는 바느질거리나 찬거리를 끼고 앉은 여인네들이 손을 바삐 놀리며 왁자하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인생극장’으로 시작해 탄성과 한숨과 웃음으로 버무려지다 마침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으로 끝나던 그 이야기들... 윗집 뒷집 할머니가 돌아가며 들려주던 새색시 시집오던 날의 이야기를 나는 또 얼마나 좋아했던가.


  골목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앞이 확 트이며 공터가 나타난다. 동네 아이란 아이들은 모두 다 나와 있는 그곳에선 구슬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가 한창이다. “어, 서울내기다!” “야, 깍두기 왔다!” “숨미(수미) 왔구나!” 반가운 외침과 함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그 사이를 헤집고 어디선가 나타난 어버버 이모가 내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고, 바쁘게 손짓으로 말하며 벙실벙실 웃는다. 반가움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웃음이다. 그래, 온 것이다! 나의 동네, 자동차와 공장과 빌딩과 잦은 이사로 전전하는 서울을 빠져나와, 나의 마을에!     


  외가가 있던 수원의 그 동네는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마을의 모습이다. 서울토박이에다 성수동 공장지대에 살던 나는 방학만 되면 탈출하듯 외가를 찾아갔다. 해마다 유년의 여름과 겨울을 서호방죽과 딸기밭과 진흥청 밭둑과 개천가를 쏘다니며 보냈다. 까맣고 건강한 동네 아이들은 나를 깍두기라 부르며 패거리에 끼어주었다. 무리 꼬랑지에서 뛰어다니다 지쳐 뒤처지면 언제나 한 명쯤은 뒤를 돌아보고 손을 잡아주었다. 땅콩 서리를 배운 것도, “멀리~ 기적이 우네!”하며 하늘을 마구 찌르는 이은하의 ‘밤차’를 배운 것도 그 곳에서였다.





마을, 잃어버린 것들


  그러나 그 마을은 어느 날 내 삶 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진학과 입시로 바빠진 나는 방학이 되어도 더 이상 외가에 가지 않았고, 아이들과 뛰놀던 그 골목도, 들판도, 이야기들도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그 결과인 것처럼 마을에 낡은 집들은 하나 둘 부셔졌고 산과 들에는 새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정든 사람들은 떠나가고 마침내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도, 마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내가 아는 마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는, 사라진 마을의 이야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각자 하나쯤 마음속에 마을을 품고 살아간다. 그 마을은 자신이 낳고 자란 그리운 고향일 수도 있고, 한때 머물렀던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일과 관심사로 묶인 공동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나 내 아이가 자라나길 꿈꾸는 가상의 공간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리는 마을의 모습이 제각기 달라도 마을에 담고 싶은 공통된 가치는 결국 더불어 돕고 사는 평화로운 삶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모든 구성원이 소외되지 않고,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는 삶 말이다. 


 내가 꿈꾸는 마을에는 어버버 이모가 산다. 청각장애가 있던 그녀는 말을 잘 못했고 그래서 ‘어버버’라 불렸다. 마을 공터 아이들 틈바구니나 여인네들의 입담이 펼쳐지는 장소 어디서든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어느 집 잔칫날이면 부엌 언저리에서 잡일을 거드는 그녀를 볼 수 있었고 외가 마당에서도 수시로 마주쳤다. 그녀는 나의 머리를 땋아주거나 고구마나 옥수수를 삶아 간식을 만들어주거나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 들로 나가기도 했다. 나는 철이 들 때까지도 그녀가 나의 일가친척인줄 알았다. 그녀가 남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어쩐지 배신당한 것 같은 섭섭함이라니...   


  나는 그녀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녀를 어버버 이모라 불렀다. 그 ‘어버버’라는 호칭이 장애에 대한 비하라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그 때 그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녀만의 어떤 독특함과 따듯함을 함께 부르는 기분이었다. 때로 그녀가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에 눈물짓고 동네사람들의 은근한 따돌림에 남몰래 울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때 그녀는 마을의 일원이었고 모두의 일가붙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일방적인 보호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아이들의 보호자이자 마을의 일꾼이었으며 나의 친구였다. 어쩌면 나는 어버버 이모를 잃고, 마을마저 잃었을지 모른다. 



미디어, 공동체의 부활을 꿈꾸다


  최근 미디어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마을의 부활을 예견하기는 힘들다. 쪽방촌 한 평 방에서 쓸쓸이 맞이하는 독거노인의 죽음과, 노래방 화장실에서 처참히 살해당한 젊은 여인의 삶과, 과로에 시달리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끼어 생을 마감한 비정규직 청년의 젊음과, 수학여행 길에서 맞은 어린 학생들의 마지막 순간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압축적 근대화와 성장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본의 이익은 인간의 존엄보다 앞섰고 공동체는 붕괴되었고 공익은 희생되었으며 사회안전망은 무너졌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여전히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 사라진 마을의 이야기를 기억해내듯 당신 또한 마을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분절화 되고 고립된 개인은 점점 더 고독한 나날을 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물신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다시금 이웃과의 소통을 꿈꾸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무한 경쟁의 시장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자본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경제의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채 사적영역으로 숨어버린 개인들을 다시 공론장으로 불러내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리고 마을공동체의 부활을 꿈꾸는 그 운동의 복판에는 미디어를 통해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마을미디어가 있다. “마을미디어는 마을이라는 삶의 공간을 주요 배경으로 삼으면서, 생활공동체와 주제공동체를 모두 포괄하며 공동체의 소통과 이슈를 담아내는 공동체 미디어로서 개인과 공동체, 마을과 미디어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수단이라 할 수 있다.”(*주1) “마을미디어는 주민이 소유하고 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미디어로, 소통, 문화, 여가, 만남의 장이자 작은 언론의 역할을 한다. 신문, 라디오, TV, 잡지 등 다양한 미디어가 매개가 되어 주민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소통 공동체이다.”(*주2)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의 ‘마을미디어’는 사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 있다. 전국에 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미디어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시민 제작 미디어콘텐츠가 생산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서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미디어를 만들고 있다. 2012년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정책적 지원을 받으며 출발한 서울마을미디어의 경우, 2015년 한 해 동안 31개 마을미디어에서 2,400여개의 마을미디어콘텐츠가 만들어질 정도로 마을미디어는 실험 단계를 거쳐 이제 도약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주3) 주류미디어에 대한 대안적 수단이자 운동으로서의 마을미디어는 우리 가까운 곳에서 성장을 위한 발돋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 미디어운동으로서의 마을미디어 

  

  마을미디어 활동은 단순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넘어 진보적 미디어 운동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디지털 혁명으로 개인의 미디어 제작이 쉬워지고 SNS를 통한 공적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있는 지금, 시민미디어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복원의 필요성과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변화를 가능케 할 의식과 실천능력이 되었다. 80-90년대 시청자 주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던 수용자운동에서, 2000년대 들어 활성화된 퍼블릭엑세스 운동과 공동체미디어 운동, 그리고 현재의 마을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진보적 미디어운동은 미디어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진화의 과정이자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실천이었다.  


  이제 마을미디어는 민주적 사회 변혁을 위한 기치로서 공동체운동과 미디어운동의 전면에 서 있다. 미디어를 통한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연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그로 인한 공동체의 신뢰와 정의, 그리고 미디어민주주의의 실현... 어쩌면 이런 것들을 나열하는 것이 성급할지도 모른다. 마을미디어가 개인의 표현의 즐거움을 넘어 주류 미디어에 의해 배제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동체의 변혁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하기까지 아직은 발돋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의 키재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여름에 열린 서울마을미디어네트워크 워크숍은 그러한 변화와 발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주4) 서울 전역에서 모인 120여명의 마을미디어활동가들은 마을미디어의 발전을 위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마을미디어를 통한 개인적 경험과 변화를 고백하는 단계에서 기반구축을 위한 콘텐츠와 플랫폼, 법적·제도적 근거를 구체화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각 마을미디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고민의 결은 달랐지만 그들의 연대는 이미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그 마을은 왁자하고 유쾌한 너른 마당을 품고 있었다.   


  마을의 이야기를 전승하고 이웃의 고민을 주고받았던 내 외가 마을의 너른 평상과 마을의 문제가 논의되고 실천이 모색되었던 저 전설의 전봇대 식당과 아이들의 친구 맺기와 관계형성이 이루어지던 마을의 그 공터처럼, 우리 안에는 이미 ‘마을’이 들어차 있다. 어린 시절 외가 마을에서처럼, 나는 여전히 마을의 깍두기일지 모르지만, 알고 있다. 손을 내밀면 누군가 하나쯤 잡아주는 마을 안에서 나는  이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을을 회상한다. 어버버 이모의 귀환을 기다린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마을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     



[필자 소개] 이수미 (ACT! 편집위원)


미디어와 글쓰기를 오가며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산골 라디오에서 DJ 할머니로 늙는 것이 꿈이다.



*주1: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 결과자료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P9.(2014)

*주2: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홈페이지. 마을미디어란?  http://www.maeulmedia.org/center/center01.jsp 

*주3: 2016 서울마을미디어 네트워크 워크숍 자료집.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P69.(2016)

*주4: “공동체 복원과 소통 활성화 위해 마을미디어 법제화 필요-제4회 서울마을미디어 네트워크 워크숍 Cheer Up!” [마중] 2016.09.13  http://maeulmedia.tistory.com/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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