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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9호 돌고돌고돌고] 아! MP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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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19호 / 2005년 3월 22일 

 

아! MP3~

 (2)

 

 

金土日 (22세기형 엔터테이너, www.449project.com)

   편집자주: <아! mp3~(1)>은 지난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MP3의 변태

 

MP3라는 새로운 저장 및 재생 장치가 등장하는 과정은 앞서 간략하게 이야기한 바와 같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MP3의 등장은 음반 산업 자본의 효과적인 투자와도 관련이 깊다는 점이다. 이미 각종 멀티미디어 저장 장치 등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경쟁에 의한 투자 위험을 경험했던 자본은 독점의 욕망을 ‘이겨내고’ 공동의 표준 포맷을 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까지만 하더라도 MP3는 그들이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실제 MP3가 대중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 ‘부작용’이 MP3의 핵심적인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다.  

 

 

알다시피 그 모든 부작용은 전 세계적으로는 ‘냅스터’, 국내에서는 ‘소리바다’로 표상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아주 독특하게 <벅스뮤직>이 겐세이 놓은 바 있다.) 이미 조PD의 등장과정을 통해서 MP3가 지니고 있는 새로운 캐릭터를 부분적으로 보여준 적도 있었지만 알다시피 조PD는 PC통신 시대의 기억이다. 진정 MP3가 무협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데에는 수많은 조연과의 합동 출연이 필요했는데 그 중 주연급 조연이라면 앞서 보았던 바와 같이 P2P, 고속통신망, MP3플레이어 등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P2P여서 사실 P2P와 단절된 MP3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 되었다. P2P로 말하자면 세기말에 창조된 아주 놀라운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터넷의 기본 원리 혹은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터넷의 출발이 애당초 P2P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PC가 통신망을 이용해서 다른 PC로 접근,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터넷의 기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P2P는 이처럼 자유롭고 빠른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까닭에 지금까지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이에 대해 ‘유해’ 혹은 ‘부작용’ 판정을 내린 경우가 없다.  

 

 

고속통신망의 역할도 장난은 아니었다. 사실 조PD 시대로 말하자면 MP3라고 해도 청취자들에게 요구하는 비용이 적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마치 휴대폰으로 500원짜리 음악 파일 하나 받으려면 접속료로 그 몇 배 이상을 물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데, PC 통신을 이용해서 몇 메가 덩치의 파일을 받으려면 최소한 몇 백 원쯤 통신요금을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액제-고속 통신망의 대중화는 아무리 많은 MP3를 업로드 다운로드 하더라도 전기세 이외에 특별한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상황으로 대중들을 인도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기쁜 표정(*^^*)으로 기꺼이 ‘인도당했다.’  

이처럼 음악 자본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도록 만든 일등 공신은 참 재미있게도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바빴던 이 나라 행정부였다는 사실. 또 일등 공신 가운데에서도 정말 일등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물론 김대중일테고. 지금도 상찬이 멈추지 않은 그놈의 고속 통신 인프라의 혁명.... 물론 이것도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려고 한 것이었을 게다.

 

 

 

 

 

MP3의 강호 진출

 

 

 

 

부작용이라는 것은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일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겠지만 달리 보면 의도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어떤 효과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작용이란 것은 그래서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데, MP3의 경우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음악 산업 자본이 자신들의 안전빵을 꿈꾸다가 오히려 가장 불안전한 상태로 자신들을 인도한 엉뚱한 경우일 것이다. 또한 자신들 내부에 생각지도 못했던 균열을 스스로 초래한 경우이기도 하다.

 

 

문화 산업은 상당한 경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산업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다. 예컨대 소니가 소니레코드, 필립스가 폴리그램,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망했지만)삼성뮤직, 엘지전자가 (너두 망했지만)엘지미디어를 자회사로 운영하는 등의 방식인데, 메이저 회사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결합스타일이다. 예전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쌍끌이’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레코드가 잘 팔리면 관련 하드웨어들도 잘 팔리게 마련이었고 레코드 포맷이 바뀌면 기기교체 바람을 타고 하드웨어 회사들은 커다란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MP3의 등장은 이 쌍끌이의 연결 사슬을 홱 끊어버렸다. 예를 들어 소니의 경우 하드웨어 제조 부문의 입장에서는 트렌드에 맞게 MP3플레이어를 오디오 기기 시장의 중심으로 내세워야 했지만 소니레코드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자본 내부의 균열이 발생했고 결국 뒤늦게 소니 브랜드의 MP3플레이어가 등장하였지만 소니의 명성을 감안하면 아주 초라한 모습이다. 자신들이 듣도 보도 못했던 한국의 중소기업들보다도 못한 플레이어로 대접받고 있으니 말이다.

 

 

앞의 경우가 일종의 해프닝이라면 유통의 문제, 저작권의 문제는 비교적 구조적인 문제일 듯 하다. 변화의 과정이 일정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해 왔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그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MP3라는 새로운 저장 미디어가 음악 사회에 전해준 ‘부작용’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은 아마도 유통 방식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기존의 저장 미디어들 예를 들어 LP, TAPE, CD 등은 모두 유통에서의 ‘일방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유통은 생산자가 특정한 포맷에 특정한 경로를 지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학자들이 제아무리 그 의미를 존나게 샅샅이 뒤진다고 해도 주어진 것에 대한 ‘선택’ 이외의 것은 선택될 수 없었다. 잘해봤자 ‘주체적인 소비’정도의 수사(修辭)가 가능했을 뿐.

 

 

 

그러나 MP3로 표상되는 음악 파일의 등장은 이처럼 대중들을 수동적 객체로 머물게 만들어왔던 일방적인 음악 유통구조를 붕괴시켰다. 업자들의 고유한 영역이었던 유통의 영역에 다수의 소비자들이 깃발을 꽂아버린 것이다. 음악은 온라인을 타고 사방천지에서 사방천지로 유통되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유통구조를 확산시키려는 이들과 철폐시키려는 이들 사이에서 총성 없는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누가 이기든 타격은 있을 터이지만 그러나 절충의 가능성은 쉽게 점쳐지지 않는다.

 

 

MP3가 지닌 수많은 성격은 디지털 공화국의 다른 비젼들과도 쉴 새 없이 연결되고 있다. 당장에는 휴대폰의 컬러링, 온라인의 사적 공간인 블로그나 싸이 등의 배경 음악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어찌 보면 플레이어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바뀌면 음악도 플레이어의 쓰임새에 가장 어울리게 변화했던 것처럼 ‘컬러링’, ‘홈피 BGM’등의 새로운 재생 환경은 마찬가지로 특정한 음악적 필터링을 수행할 듯 하다.

A신문 B기자에 따르면 펑크록을 하는 C밴드의 D가 말하길 ‘싸이에는 내 음악을 올리기가 뭣하다’는데, 이 말이 음악의 새로운 유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음반기획자 역시 벨소리와 컬러링이 주도하는 시장은 10대의 댄스와 발라드만 키우고 진지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런 경우는 MP3의 부정적 측면인 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건 쌍팔년도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부르며 세상을 한탄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TV의 음악이, 그리고 심야 라디오의 음악이, 그리고 클럽의 음악이 서로 분화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일 것이다. 어떤 이들의 한탄과 무관하게 대중들은 그 길을 신나게 (/^o^*)/ 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친네들의 한탄을 쌩까면서 말이다. 그러니 다만 현명한 자의 일은 MP3가 분화하는 여러 길을 바라보고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구하는 일일 게다.

 

 

 

저작권의 문제에 관련해서 MP3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어느 방향으로 귀결될 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지만 <저작권법>을 온 국민이 이렇게 열렬히 숙지하고 비판하여 이 시대 가장 일상적인 법으로 만들어준 데에 MP3가 기여한 바는 실로 적지 않다. MP3의 등장은 ‘저작권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때로는 얼마나 편파적이기까지 할 수 있는가’ 하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법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옭아매려 한다는 비애감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저작권이 단순히 어느 창작자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전 국민의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어찌 보면 MP3가 저작권과의 갈등을 빚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영어로 말하자면 저작권이란 것이 <author's right>의 의미가 되겠지만, 그래서 창작자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그 권리의 영단어가 <copyright>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도 있다. 주요한 관심사가 복제의 권리에 관한 것이란 이야기다. MP3는 특히나 ‘copyright’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MP3를 둘러싸고 진행되어 왔던 ‘저작권 갈등’이 창작자와 청중들 사이보다는 사실상 이 복제권을 독점하고 있는 음반 자본과 청중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되어 왔던 것,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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