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83호 이슈와 현장 2013.4.15]
미디어로 만드는 동네, 동네를 바꾸는 미디어 - 성남미디어센터
김보람, 이보은(ACT! 편집위원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성남미디어센터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기분 좋은 3월의 어느날, 분당선 이매역에서 나와 5분 남짓 걸으니 성남아트센터로 향하는 길목에 건물이 한 채 나타났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출입문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전체 건물의 벽면처럼 스튜디오 또한 유리창을 통해 안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마력을 지닌 듯 했다. 우리도 취재하러 왔다는 목적을 잠시 잊고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미디어 소통을 위하여
초행길 나그네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곳은 지난해 12월 개관한 성남미디어센터다. 센터로 들어서니 1층 가운데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어린이들의 뉴스제작수업이 한창이었다. 아나운서, 카메라 감독, 오디오 감독 등으로 각각 파트를 맡아 가상 방송 중인 10여 명 아이들은 한결 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수업 중인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이상훈 성남미디어센터 문화사업부 부장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찾아오기 어렵지 않았느냐”는 말로 인사를 건넨 그는 “미디어센터를 처음 세울 때 시민들의 접근성과 운영의 지속성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말로 후일담을 들려줬다.
“미디어센터를 성남아트센터 안에 세울 것인가 주거 공간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했어요. 다른 지역미디어센터를 살펴보니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성’과 ‘지속성’이더군요. 시민들의 주거 공간으로 미디어센터가 들어간다면 상대적으로 접근성은 높아지지만 위탁 형식으로 운영을 맡기게 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은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위탁 운영을 할 경우 시의회의 결정에 따라 중도에 업체가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운영을 보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직원들 역시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반대로 성남아트센터 내에 위치하면 주거 공간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중간에 업체가 바뀔 위험이 없고, 문화재단 예산에 운영비가 포함되어 직원들의 근무 환경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고민 끝에 접근성 보다는 토대를 안정화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그렇게 성남아트센터 내에 문을 연 성남미디어센터의 현재 스코어는 일단 합격점. 아트센터로 가는 입구에 미디어센터가 위치하면서 ‘성(城)’처럼 멀게 느껴지던 아트센터로 주민들을 이끄는 역할도 하게 됐다고 했다.
공간의 주요 콘셉트 = 개방성 + 가변성
▲ 움직이는 벽
천천히 센터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창의적이고 재밌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는 그의 설명처럼 공간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서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섬세한 정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소리 스튜디오는 성남시민들의 미디어소통을 활성화하겠다는 센터의 취지를 그대로 반영한 공간.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부 역시 강의실처럼 막아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확장시켜 넓게 쓸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입구에 있는 벽은 고정 장치를 풀면 45도, 90도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강의나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이 벽을 닫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평소에는 활짝 열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통로로 만든다고 한다. 이상훈 부장은 “미디어센터라는 특성 상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될 수밖에 없는데 모든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공간 자체가 가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이는 벽’을 입구 뿐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1층의 스튜디오 또한 공간을 여러 가지 분위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목적 스튜디오로 설계했다. 스튜디오 양 쪽 벽면으로 미닫이문이 크게 있는데, 이 문을 닫으면 촬영 및 사진 스튜디오로, 옆으로 밀면 앞뒤가 뻥 뚫린 강의실로 쓸 수 있다.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활짝 열린 공간, 누구든 들어와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 성남미디어센터 소리스튜디오
다목적 스튜디오 앞 쪽으로는 ‘미디어 도서관’이 있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독특한 계단식 형태로 센터 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공간이었다. 의자 높이의 계단은 앉아서 책을 보는 용도로도 쓸 수 있고, 칸칸마다 책을 채우면 책장으로도 활용된다. 아직 장서량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 계속 채워나갈 계획이라고. 계단을 오르면 위에는 큰 창이 있는데 창 앞에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져 있었다. 그 곳에 누워 봄 햇살을 받으며 독서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언제든 찾아와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성남시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밖에도 2층에는 DVD를 볼 수 있는 공간과, 강의실, 무료 대여가 가능한 동아리방과 컴퓨터 교육실이 모여 있었다. 강의실 한 편에 만들어진 휴게 공간 또한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찾아오는 시민들이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성남미디어센터 미디어도서관
모두에게 열린 미디어를 꿈꾼다
이곳에선 다양한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과 강연회가 열린다. 사진 촬영, 동영상 촬영, 영상 편집 등의 수업은 시민 스스로가 미디어 제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또는 스스로의 힘으로 미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커리큘럼들로 채워져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 대학생 뿐 아니라, 주부나 노인이 참여할 수 있는(강좌명- 1.줌마렐라! 꿈에 영상의 날개를 달다. 2. 실버 제작단)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선 세대가 다르다고 해서, 또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배제되는 법이 없다. 누구나 미디어를 이해하고 미디어로 소통하도록 만들어진 공간인 것이다.
미디어센터가 단순히 ‘공간’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지자체의 미디어 정책과 네트워크 구축에 기여하는 커뮤니티 ‘센터’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사업 중에서도 마을 미디어 사업, 공동체 미디어, 시민제작단과 같은 공동체 사업을 주요하게 보는 이유다. 시민이 주체가 돼 미디어를 만드는 ‘시민제작단’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미 개관 전부터 ‘시민영상제작단’과 ‘대학생 기자단(대단)’을 운영해 왔다. 성남지역에 대한 영상 제작, 미디어센터 동향 취재 등을 주로 해온 이들은 지난 12월 열린 개관식에서 직접 만든 영상을 상영하고, 일일도우미로 나서 행사장 안내를 돕기도 했다.
“미디어센터의 역할에 대해 말할 때 ‘퍼블릭액세스’나 ‘미디어 리터러시’ 등등 미디어정책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종합적으로 보면 결국은 다양한 시민들이 동네 속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그 안에서 좋은 콘텐츠를 모아 방송하면 그것이 ‘퍼블릭 액세스’이고, 또 그 과정에서 읽기 쓰기를 배워야 하니 미디어 리터러시도 키워지는 것 아니겠어요?”
이상훈 부장은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교육을 마친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선 매년 몇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지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몇 개의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몇 사람이 활동을 하는지가 중요한 성과지표가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많은 시민들이 ‘창조적인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런 활동에 드는 시간적, 경제적 부담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요. 동네 미디어를 만드는 일 역시 자신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마을미디어 사업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기보다 NGO나 지역 단체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성남미디어센터 역시 지금 그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주민들이 동네에서의 주체로, 또 자기 삶의 주체로 움직여 갈 수 있도록 ‘생각’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 같다”며 “주민들 스스로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방법을 찾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점을 만들 때까지 5년이든 10년이든 장기적인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포부를 내비쳤다.
▲ 센터 벽면에 붙은 교육 수료생 사진
그밖에도 성남미디어센터에선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화면해설과 한글자막을 곁들이는 ‘담장 없는 영화관(Barrier-Free Cinema)’을 만날 수 있다. 문화 소외 지역, 계층을 대상으로 직접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는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도 진행 중이다.
영상 촬영, 녹음, 편집에 사용할 수 있는 영상 장비와 동아리방 대여 사업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참여해야한다는 성남미디어센터의 기본 콘셉트에 따라 쉽게 다룰 수 있는 중저가 장비들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동아리방도 회원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예약할 수 있다.
흥미로운 프로그램과 모두에게 열린 편안한 공간. 이 두 가지가 성남미디어센터에서 받은 초행길 나그네 방문자의 첫 인상이었다. “시민과 소통하는 센터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문을 연 성남미디어센터가 시민들의 활발한 미디어 소통을 이끌어내는 센터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