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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5호 특집] 안 들리는데? (경북, 영주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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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0. 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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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5호 특집 2015.11.15]


동체라디오 10주년 기념 기획 <내 삶의 라디오>

안 들리는데?


윤익로 (경북, 영주FM)


<공동체라디오 10주년 기념 기획 - 내 삶의 라디오>는 공동체라디오 운영 10주년을 맞아 각 공동체라디오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공동체라디오의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전국 7개 공동체라디오에서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하며 라디오를 이끌어온 7개 방송국 8명의 인물이 쓴 에세이를 소개한다.



  "안 들리는데?", "안 들리는데요!"


 10년 전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바로 이 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공동체라디오의 방송 출력이 고작 1W(와트)밖에 되질 않으니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출력증강'이란 개국 시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나 됐나? 참으로 더딘 걸음으로 오다 보니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변화의 흔적조차 제대로 찾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지나온 10년을 생각해보면 괜히 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 <윤익로의 가요산책>



2005년 10월


 처음으로 나는 [영주 에프엠] 방송국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봉사할 거리를 찾고 있던 내게 희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영주 에프엠]방송국에서 방송에 참여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었고 나는 귀가 솔깃했다. 내 적성에도 맞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해볼 만 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영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송국에 가서 원고도 작성하고 다른 사람 방송하는 것도 구경하면서 방송 일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졌다. 방송국은 영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풍기 동양대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필수품이었고 그나마 얼마 전에 구입한 중고차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방송국 봉사 활동과는 영 인연이 없을 뻔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드디어 음악프로그램을 1시간 진행하게 되었다. 데일리 프로그램인 <세월 따라 마음 따라>를 진행자를 바꿔가면서 방송을 했는데 그중에 하루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첫 방송이 공중파를 타고 나간 그 순간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더니만 그것도 10년이 지나다 보니 기억이 많이 흐려져서 그 당시가 그저 오롯한 설렘과 아련한 행복감으로만 남아 있다. 경력이 조금씩 쌓이면서 내 이름을 걸고 <윤익로의 가요산책>이란 주말 2시간짜리 방송도 하고, 데일리 생방송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매주 월요일 1시간짜리 <윤익로의 세상만사>만 진행하게 되었다.



아나듀오! 


 우리 같은 작은 방송국에서 자주 쓰는 얘기다. 아나듀오란 아나운서도 하고, 프로듀서도 하고, DJ도 하면서 장비도 다루고, 그러니까 원고도 쓰고, 녹음도 하고, 편집도 하고, 등록도 하는, 좋게 이야기하자면 일인다역을 의미하지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하는 그 옛날 장터 약장수를 떠올리면 더 재미있는 비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어렵사리 방송을 제작해 놓아도 출력이 약해서 집에서조차 방송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 차 안에서는 어느 정도 청취가 가능했기 때문에 내 방송이 나오는 시간이 되면 나는 슬그머니 차 안으로 들어가 방송을 모니터링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을 가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쳐다보니 시내 성누가병원 오거리 상설의류매장에서 우리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크게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내 목소리가! 정말 반가웠고 감개무량하기까지 했다. 나도 모르게 방송을 한참이나 듣고 있었는데 그사이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치킨 배달 중에 방송을 듣느라 정신 줄을 놓았으니 그사이에 배달이 밀려도 한참 밀려 정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부터 나는 틈만 나면 방송을 듣기 위해 상설의류매장 앞을 서성이곤 했다.




 <윤익로의 세상만사> 



 그 날도 내 방송시간에 맞추어 슬금슬금 가게를 빠져나와 오토바이를 타고 쌩- 하니 그 집 앞에 도착해서 방송을 듣는데, '아니 럴수럴수 이럴 수가?' 오프닝멘트가 시그널 뮤직인 <못 찾겠다 꾀꼬리>와 함께 나와야 하는데 그냥 맹숭맹숭하게 멘트만 나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얼마나 민망했던지 얼굴이 화끈거려서 바로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그 당시에는 진행자가 멘트만 해놓으면 나머지 일은 기술진에서 알아서 해 주었는데 그만 실수가 생겼던 것이다.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내 방송은 내가 책임지고 제작하게 되어서 '해프닝'은 오히려 나를 좀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보면  우리 젊은 시절에는 엽서를 예쁘게 꾸며 사연이나 신청곡을 방송국에 보내기도 했는데 작은 방송국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엽서를 건네주고 다시 그 엽서를 받아 사연과 신청곡을 소개했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 흥미롭고도 마음 짠~한 대목이다. 치킨 배달 길에 엽서를 같이 주고 현장에서 바로 받아오거나 아니면 다음 배달 길에 작성된 엽서를 받아오기도 했다. 

 특히, 투병하고 있는 아내가 오히려 나를 격려해 주기 위해 보냈던 내용이나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의 응원이 담긴 사랑의 엽서들은 내 방송의 오랜 유물로 평생 함께할 것이다. 이 특별한 방송국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나는 지역민에게 봉사도 하고, 즐거움도 느끼고, 덕분에 MBC와 SBS TV 전국방송 프로그램에도 두 번이나 출연하는 기분 좋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영주FM 미디어교육 – 향토외교관 > 2012년 시니어 리포터 교육.

상단 왼쪽 이향기PD, 오른쪽 윤익로 방송국장



인생 제2막의 꿈


 2009년 8월 15일, 이날은 [영주 에프엠]이 드디어 정식 방송국으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허가를 받은 아주 뜻깊은 날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이때부터 방통위로부터의 지원은 아예 끊겨 버렸고 공동체라디오는 홀로서기를 준비해야만 했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산골 소도시이다 보니까 방송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도 부족했고, 참여도 부족했고, 자원봉사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한마디로 모든 게 열악했다. 게다가 출력은 낮아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자칫하면 방송국이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그때부터 나는 방송 외적인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고 내친김에 인생 제2막의 꿈을 '지역방송국 기반 구축'에 두기로 했다. 정말 제대로만 된다면, 진정성만 통한다면, 한 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빌 언덕이 필요했고 부지런히 시청을 드나들었지만, 거기에서도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잘 들리지도 않는데 뭘! 어떻게?" 모든 게 항상 거기까지였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늘 '판결'같은 그 대목에서 고개를 숙이고 매번 얼굴이 붉어져서 청사를 도망치듯 빠져 나오곤 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동안의 현장 경험과 사명감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워낙 더딘 걸음이라 변화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처음 그대로인 것 같았다. 출력도 그대로, 사무실도 그대로,  장비도 그대로... 그러나 내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니까 꿈쩍 않던 상황들도 뭔가 조금씩은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을지훈련 연습장에 생방송 장비를 들고 나가 훈련 연습 상황을 1시간 동안 생중계를 하면서 지자체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잠시 얘기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지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우리 지역방송국이 무책임하다면 그야말로 방송국은 존재할 가치가 없지 않겠는가? 




▲ <영주FM 미디어교육- 향토외교관 > 2013년 대구MBC문화방송 견학


 이제, 개국 10주년!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엔 내 주위에 모두가 반대했고, 나 역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회의도 느끼고 가끔 힘들고 외롭기도 했다. 그러나 오로지 나만의 의지로 시작한 이 길을 지금은 아내와 가족들의 응원 속에 걷고 있다. 그래서 방송국을 향한 무모한(?) 사랑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지면을 통해 그동안 인내심 없이는 듣기 어려운 잡음 많은 우리 [영주 에프엠] 방송을 한번이라도 애써 들어준 모든 청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고,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마음 보태주는 지지자분들에게도 감사인사를 드린다.



-에필로그-


 "안 들리는데요, 잘 안 들려요!"

 "그래요? 저, 잠깐만요. 스마트폰 <팟빵>으로 한 번 들어보세요. 어때요, 이제 잘 들리시나요?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이소~"


 여기는 89.1MHz 영주에프엠 방송입니다! □


* 영주FM : http://www.yfm.co.kr/




[필자소개] 윤익로 (영주FM )


2005년에 처음 영주에프엠방송에 발을 들여놓았다. 현재 방송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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