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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0호 인터뷰] 릴레이 안부인사 (5) 좋아하는 일을 함께, 길게, 재미있게 : 여성주의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 피소현, 김신현경, 강유가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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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7. 3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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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0호 인터뷰 2014.9.22]

 

릴레이 안부인사 (5)

좋아하는 일을 함께, 길게, 재미있게

: <여성주의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 피소현, 김신현경, 강유가람

 

진행 및 정리: 보람, 스이, 형준 (ACT! 편집위원회)

 

 

 세월이 점점 하수상해지면서 들뜬 인사를 건네기도 조심스러워졌지만, 이럴 때일수록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죠. 다섯 번째 릴레이 안부인사는 <영희야 놀자>와 함께 했습니다. 사무실을 찾아가 안부인사를 묻고 돌아온다는 컨셉과 달리, 릴레이 안부인사 최초로 홍대 근처 모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단체 결성 연도와 안정된 작업실의 상관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시간을 내어준 <영희야 놀자>에게 커피 한 잔과 함께 물어봅니다. "영희야, 밥은 먹고 다니니?"

 

0.0. 영희야, 안녕?

 

ACT!: 각자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영희야 놀자' 안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이야기해주세요.

 

피소현 (이하 ''): 저는 <왕자가 된 소녀들><모래>의 프로듀서를 담당했어요. 지금은 영희야 놀자의 총무 격이긴 한데, 전체 운영에 대한 역할을 맡는 정도에요. 책임만 지지 제가 벌진 않아요.(웃음)

 

김신현경 (이하 ''): 저야말로 하는 일로 얘기하면 제일 애매할 텐데.. 지금까지 영희야 놀자의 작품을 같이 기획하는 역할을 했고요. <왕자가 된 소녀들>에서는 제가 인터뷰어였고, 지금도 작업과 관련해서 기획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저는 여성학 전공자구요, 박사학위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박사 공부를 하는 도중에 여성주의 문화집단을 함께 꾸려서 공부도 같이 하고 다큐도 같이 만들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희야 놀자'를 함께 만들었어요.

 

강유가람 (이하 ''): 저는 <왕자가 된 소녀들> 조연출이었고요. <모래>를 연출했고, 지금은 다음 작업 준비하고 있어요. 저도 여성학과를 졸업했는데, ‘영희야 놀자멤버 언니들이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라 뭉치기 이전부터 안면들이 다 있고, 친했던 거예요.

 그러다 <왕자가 된 소녀들>을 계기로 단체로 뭉치면서 단체 이름도 만들어지고, 영상 작업도 처음 시작하게 됐고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같이 모여서 다큐 작업을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직장 다니면서 설렁설렁 합류하다가 2010년부터 직장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임했죠.

 

ACT!: 말이 나온 김에 "영희야 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야기해주실래요?

 

: ‘영희야 놀자는 강유가람 감독이 얘기한대로 이전부터 여성주의 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예요. 김신현경 기획자는 저와 학부 때 총여학생회를 같이 했었고, 강유가람 감독과 김신현경 기획자는 대학원에서 만났어요. 저랑 저희 팀의 다른 친구, 김혜정 감독(<왕자가 된 소녀들> 연출) 같은 경우는 언니네초기 창간 멤버거든요. 그렇게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같이 해보자 하면서 시작된 거예요. <왕자가 된 소녀들> 아이템을 제안 받으면서 말이죠.

 그 때는 꼭 다큐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기보다는 김신현경 언니가 공부를 하던 중에 알게 된 아이템을 공유하면서 우리가 이걸로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던 거에요. 초기에는 출판 계획도 세우고 다큐멘터리 제작도 하기로 하면서 그 준비를 하다가 아예 팀을 만들자 해서 단체가 만들어졌던 거죠.

 

: 사실 저희는 영화를 전혀 찍어본 적도 없었어요. 다만 그 때 생각으로 여성국극이 워낙 흥미로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을 갖게 된 거죠. 이 친구들도 역시 그런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인 걸 아니까 제안을 했고요. 기존에 다큐멘터리 만들어 오신 감독님들이 이런 작업을 해 주시면 좋았겠지만 왠지 안 만드실 것 같았어요.(웃음) 그래서 우리는 영상을 전혀 모르지만 그냥 관심있는 사람들이 해야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 출처 https://tumblbug.com/girlprinces


ACT!: 그때부터 영상을 배우기 시작하신 거예요?

 

: 당시 김혜정 감독이 젠더 앤 미디어라는 전공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에 영상 작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디액트에서 초보비디오프로젝트 과정과 독립영화제작과정 강좌를 들었어요. 아마 강좌를 들은 직후였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독립영화 쪽에서 단편 작업의 프로듀서 일을 막 시작하고 있었고, 강유가람 감독은 직장을 다니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싶어서 고군분투 하고 있던 때였어요. 뜻과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 작업 도중에 저도 미디액트 다니면서 기본적인 내용들을 다시 듣고 왔어요.

 

: 저희 팀 감독들이 미디액트가 배출한 감독들이에요. 정말이지 미디액트 덕분에 저희가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강유가람 감독이나 김혜정 감독 같은 경우 미디액트 외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 정말 중요한 교육기관이예요. 입학 시험을 쳐서 꼭 대학을 가야되거나 하는 문턱 높은 방식 말고. 각자가 자기의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를 재현한다고 하는.

 

ACT! : 퍼블릭 액세스가 저희를 살렸죠. (웃음)

 

0.5. 영희는 누구인가?

 

ACT!: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과 관련해서 영희가 있다는 전설이 있던데(웃음), 단체 이름 풀이해 주시면서 같이 얘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강유가람 감독인데, 사실 영희는 저희와 친한 친구의 이름이기도 해요. 심지어 이 씨예요. 이영희.

 

ACT!: (화들짝 놀라며) 이영희요?

 

: 교과서적이고 고전적인 이름이잖아요, 저희 세대에. 그 친구 역시 피소현 피디랑 김혜정 감독이랑 함께 언니네를 창간했던 멤버인데,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같이 술 마시고 이런 것을 좋아하죠. <왕자가 된 소녀들> 때는 후원회를 열심히 조직해 보라는 뜻에서 후원회장이라는 자리를 주기도 했었어요.

: 그 친구는 워낙 본인 직업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집단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사실은 거의 준회원처럼 되어 있는 거죠. (웃음)

 

: 이름을 지을 때 고민하다가 제가 '그냥 영희야 놀자라고 하면 안돼요?' 하는 식으로 가볍게 제안했는데 이렇게 오래 이 이름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웃음) '영희'라는 상징적인 여자 친구들, 같은 세대의 여성들을 그냥 친근하게 호명해서 같이 무언가 해보자, 는 컨셉이었어요. 그 때는 재미삼아 지었는데, 그대로 굳어진 거죠.

 

: 처음 생각했던 것은 문화기획집단이었지 꼭 영상만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문화 작업을 해보려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성 일반을 상징하는 '영희'라는 호칭을 통해 여성들에게 우리 같이 즐겁게 재밌게 놀아보자는 의미를 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그래서 말을 건네는 식으로,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이 나온 거에요.

 

ACT!: 그 실존인물 영희님은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에 대해 뭐라고 하시나요?

 

: 만족하기도 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민망해하기도 하죠. (웃음)

 

ACT!: '영희야 놀자' 블로그에 이름에 대한 소개가 짧게 적혀있는 걸 보았는데,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안 하면서 살 수도 없고. 그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서 모였다*"는 말이 와닿더라구요.

(*정확한 문구: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는 지난 10년간 따로/또 함께 여성주의 문화판을 만들고 놀면서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절도 보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가지고 함께 더 잘 놀면서 그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 맞아요. 그게 저희 고민이었죠. 그렇게 가고 있는 거지 지금도.. 그래서 사실은 모두가 다 영상 작업에 올인하는 입장은 아니예요. 저희 팀이 다른 집단들과 약간 다른 점은 대부분 올인해서 같이 작업을 하는 다른 영상 집단들과 달리 각자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강유가람 감독이나 김혜정 감독 같은 경우는 전업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김신현경 기획자의 경우 박사 과정 졸업 후 강의 활동을 하고 있고, 저는 프로덕션에서 프로듀서로 따로 일을 하고 있어요. 홍보와 마케팅을 같이 하려고 새로 합류한 친구들 역시 학교 교직원이거나 배우이구요. 이런 식으로 각자 직업을 따로 갖고, 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 프로젝트가 있을 때 모여서 함께 작업하다가 또 약간 느슨해지면 각자 일에 전념하는 식으로 유연하다고 하면 유연한 조직이예요. 다른 제작 집단이랑 좀 차이가 있죠.

 

: 초기 멤버는 저희 셋에 김혜정 감독까지 해서 네 명이었는데, <왕자가 된 소녀들> 촬영 감독이 함께 하면서 다섯 명이 되었다가 그 친구는 개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구요. 그 후 배급에 들어가면서 홍보, 마케팅 같이 했던 두 친구-가락, 홍혜미-가 붙게 되면서 지금은 여섯 명이 된 거죠.

 

: 지금은 강유가람 감독의 작품이 영희야 놀자차기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홍혜미 씨가 그 작업의 조연출을 맡고, 김혜정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일단 이번 프로젝트는 이 세 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 구성원이 그렇게 유연하게 움직이다 보니 먹고사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편이예요.

 

: 조직이 모든 걸 책임져 줘야 하는 구조가 아닌 거죠. 상근을 한다거나 작업으로 수익을 반드시 내야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생계는 개별적으로 해소하고 있어서 조직 자체의 짐은 좀 덜 한 편이에요.

 

ACT!: 영희야 놀자'의 정식 이름은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인데요, 미디어운동 진영의 시각에서 보면 '영희야 놀자'는 세 번째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영상집단으로 보이기도 해요. 내부 구성원들은 이 집단을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영상 외에 다른 쪽의 문화기획을 계획하시는 게 있나요? '여성주의'가 작품 선정이나 제작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궁금하구요.

 

: 할 계획까진 없고, 생각은 있어요.(웃음) 구성원들이 다들 문화 작업과 관련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사진을 잘 찍는 친구도 있고, 계속 북돋우고는 있는데 그 친구들이 준비가 되면 같이 기획해볼 수 있겠다는 정도의 생각은 갖고 있어요.

 

: 제가 봤을 때는 '열린 판'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이 있으면 함께 서포팅하는 그런 판. 만약 누군가 사진전을 하고 싶어했을 때 그 의미에 다 동의하면 같이 붙어서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각자 직업이 있으니, 영상을 하고 싶은 제가 작업을 하는 거구요.

 

: 지금으로서는 영상 중심으로 가는 면이 있죠. 사실은 그런 식의 유연함과 느슨함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작업하고 싶은 사람의 의지가 중요해요. 그게 구성원 사이에서 설득과 합의가 이루어지면 할 수 있는 거죠.

 

: 물론 설득 작업이 쉽지는 않아요. (모두 웃음)

 

: 다들 호락호락 오케이하지 않아요. 저희 논의할 때 정말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니가 그걸 하고 싶은 이유가 뭔데? (웃음)

 

: '여성주의'라는 지점은, 몸으로 머리로 알아왔던 감수성의 측면에 가까운 거라서 작품에 대해 논의를 할 때 자연스럽게 방향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것을 지향해야 해, 하는 식으로 간다기 보다는 논의 속에서 정리가 되는 편이죠. <모래>의 경우도 그런 식으로 제작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의 가족을 다룰 때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이냐,하는 문제를 많이 논의하면서 편집 방향도 정해졌고 그러면서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던 것 같아요.

 

: 기본적으로 '여성의 문제를 구성하는 축이 사실은 굉장히 다양하고, 그 다양한 축들이 결합해서 여성주의적 문제가 된다'는 전제를 팀 내부에서는 공유하고 있는 거죠. 예컨대 <왕자가 된 소녀들> 역시 누가 봐도 명백히 여성주의 이슈인 것이고,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그 분들이 놓여졌던 삶의 맥락 속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한계적 측면들을 다단하게 그려내려고 했었어요.

 <모래>의 경우에도 여성 감독이 한국 사회의 가족, 그러니까 특정한 환경에 놓인 가족 안에서의 자기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재현하려는 내용이기도 한 동시에,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그런 복잡 다단한 축을 그려내려고 했었구요.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 아버지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에요, 아버지를 이해하는 다큐라고. (웃음)

 

: 아버지들이 좋아하시면 좋죠.(웃음) 넓게 봤을 때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지금 오해되고 있는 바도 적지 않으니까요. 사실 여성주의는 세상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해주는 굉장히 매력적인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관점으로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면 대부분의 어떤 사람이라도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고, 설득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생각들이 저희에게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요.

 

: 어떻게 보면 약간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영희야 놀자' 팀원들에게 '우리가 여성주의자'라는 정체성은 '우리가 사람이다'는 말과 동급인 거에요. 어떤 게 여성주의 이슈지? 하는 식의 고민을 한다기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당연히 여성주의적 시각이 녹아들어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일견 여성주의 영화로 보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보기에는 저게 왜 여성주의 영화인가 싶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영화 안에 우리가 여성주의자로서 어떻게 그 문제를 바라보느냐가 녹아있을 거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당연히 여성주의 영화인 거에요.

 

: 그래서 그 부분을 그렇게 의식하고 소재를 선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여러 아이템을 갖고 와서 까일 때도 꼭 그렇기 때문은 아니었어요. (모두 웃음)

 

: 이게 재미가 있냐 없냐지.. (웃음)

 

1.0. 영희의 일

 

ACT!: 첫 작업인 <왕자가 된 소녀들>은 구술사 프로젝트로 시작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 국사편찬위원회라는 곳에 연구 프로젝트를 냈던 거에요. 특정 연구 주제에 대한 구술을 받고 그것과 함께 보고서를 내면 구술 채록한 것에 대한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인데, 김신현경 기획자가 지원서를 썼지요.

 

: 처음에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작업비도 전혀 없고, 완전 신생 집단이기 때문에 지원프로그램 같은 것도 잘 몰랐고, 설사 지원을 하더라도 좀처럼 선정되지 않던 때였는데, 구술사 프로젝트 지원을 받으면서 말하자면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씨드 머니가 생겼던 셈이죠. 물론 영상 작업 전부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술 작업을 통해서 국극 배우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거에요.

 

ACT!: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원도 받고 나중에는 서울영상위 지원도 받으셨는데, 첫 작업 치고는 탄탄하게 진행된 것 같아요.

 

: 그런 부분이 저희가 다양한 구성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인 것 같아요. 다양한 리소스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원 기관에서도 '여성 국극' 같은 흥미로운 소재는 공공의 자원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저희의 첫 작업이었는데도 지원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아까 미디액트 이야기도 했지만 영진위 같은 공공 지원 기관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던 시간이었죠.

 

: 사실 처음 작업을 하는 거라서 시행착오가 많긴 했던 것 같아요. 김혜정 감독은 영상 작업을 해 봤지만 다큐 장편 작업은 처음이었고 조연출인 저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구술 인터뷰처럼 찍었던 것도 많아요.

 

: 단적인 예로, 인터뷰이가 말을 하고 있으면 이쪽에서 대답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근데 저희는 대답을 계속 한 거예요. “, . .” 그러면서. 그래서 믹싱할 때 미디액트의 표용수, 고은하 기사님이 지우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어요. 지웠는데도 많이 살아 있죠. (웃음) 그런 시행착오들이 초반에 굉장히 많았어요.

 그렇게 5년 동안 작업하고 2011년 제천영화제가 1차 프리미어였는데 나중에 편집본을 다시 뒤집어서 다음 해 여성영화제에서 다른 버전으로 상영했죠. 현재 공개되어 있는 버전은 2012년 여성영화제 상영본을 약간 재편집한 버전이에요.

 

ACT!: 5년 동안 작업을 하고 2012년이 프리미어 버전이라면, 꽤 오래 작업을 하셨던 셈이네요.

 

: 사실 <왕자가 된 소녀들>5년 동안 만들게 될 지 몰랐어요. 1~2년이면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어요.(다들 공감) 저희가 초반에 뿌렸던 엽서 보면 “2010년 가을에 찾아옵니다라는 문구도 있어요. 그때까지는 완성할 줄 알았거든요 (웃음) 심지어 개봉은 2013년이었죠, 2007년부터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만약 저희가 2007년에 모두 생업을 포기하고 <왕자가 된 소녀들> 작업에 뛰어들었으면 진작에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나 김혜정 감독이나 이영희 씨도 그렇고 언니네초기 창간 멤버였는데 그때는 대학 졸업하고 7명이 다 전업으로 뛰어들어서 언니네활동을 했었거든요. 사무실까지 얻어서 그렇게 2년을 했었어요. 그런데 생계를 유지할 만큼 돈을 못 벌고 2년 정도 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해서 흩어졌어요. ‘언니네는 다른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그때 경험도 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올인해서 했다가 안 됐을 때에 상실감과 절망감이 너무 크더라구요. '영희야 놀자' 같은 경우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구성원들이 각자 직업을 가지고 유연하게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해 온 것이 오히려 지속가능성을 더 길게 만들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2.0. 영희는 그동안 어떻게 놀았을까

 

ACT!: 지속 가능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본격적으로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작업하시는 동안 작업실은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 저희가 첫 작업실은 대림동에 얻었어요. 살림집을 얻어서 피소현 피디도 그렇고 저도 거기서 편집하고 먹고 자면서 거의 살다시피 했죠. 그 때 노량진이 가까워서 밥을 굉장히 잘 해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ACT!: 잘 해 먹었다면 어떤...?

 

: 가장 특징적으로는 게찜이 생각나는 군요.

 

ACT!: (진심 부러워하며) 오올

 

: 또 대림동 같은 경우 중국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이 근처에 있어서 중국 냉면이나 중국식 만두 같은 독특한 중국 음식들도 많이 먹었고요. (웃음) 그러다가 그 거리가 점점 번화하면서 버틸 수 없게 돼서 대흥동으로 이사를 했죠. 되게 오래된 목조집이었는데 방이 세 개 정도 되는 살림집이었어요.

 

: 그렇게 말하면 너무 럭셔리하게 보일 지도 모르지만, 정말 80년대 배경의 시대물에나 나올 법한 집이에요.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겨울에 변기 안 터지게 하려고 라디에이터를 틀었다가 전기세 폭탄을 맞기도 했어요. (웃음) 집세 아끼려고 얻은 집이었는데 돈이 더 나간 셈이죠.

 

ACT!: 작업실 비용은 누가 대신 건가요?

 

: 팀 비용에서 댔죠. 멤버들이 갹출해서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은 충당하고 나중에 수익 나면 돌려준다,는 식으로 함께 냈어요. 보증금도 얼마씩 모아서 냈구요. <왕자가 된 소녀들> 개봉하고 난 후에는 그 동안 냈던 비용을 다 돌려받았어요. <왕자가 된 소녀들>로 돈을 막 벌진 않았는데 (웃음), 그동안의 비용에 대한 회수는 할 수 있었죠.

 

: 대흥동 작업실에서 창업지원센터로 옮겨온 후에는 작업실 비용이 들지 않았어요. 그 곳에서 사무실 지원을 받아서 1년 동안 사용했고, 그 다음 해에는 용산 청년창업플러스센터에서 지원해주는 사무실을 1년 동안 사용했거든요. 2년 동안 작업실 비용 같은 실비가 안 드니까 <왕자가 된 소녀들> 개봉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 아까도 말했지만 미디액트나 영진위나 창업지원센터 같은 인프라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작업자들이 생존하는 데는 그런 식의 지원이 있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지 혼자서 하기에는...

 

ACT!: 창업센터에서는 어떤 사업을 하신 거에요?

 

: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으로 영상제작 및 영화배급 관련 사업자 등록을 했었어요. 그 때 했던 게 대법원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영상 제작 사업이었는데, 성폭력 피해자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갔을 때 증언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 비디오를 함께 만들었죠. 그와 같은 비디오 영상물을 제작할 때는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한데 '영희야 놀자'랑 맞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성폭력상담소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ACT!: 돈 이야기 조금만 더 할게요. 아까 두 분의 감독이 전업이라고 하셨는데 '영희야 놀자' 차원에서 활동비를 받기도 하시나요?

 

: 프로젝트 별로 개별예산을 따로 설정해서 집행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팀에서 활동비를 주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예산 안에서.

 

: <왕자가 된 소녀들>하고 <모래>까지는 인건비라고 보기는 굉장히 민망한 수준이고요. 차비 정도의 명목으로 각 작업 단계별로 가장 올인하고 있는 핵심 인력들에게는 정말 작은 금액을 지원했어요. 촬영 단계에서는 연출과 촬영, 편집 들어가면 연출과 조연출 이런 식으로요. 개봉할 때는 프로젝트 단위로 개봉 인력을 배치하면 그 안에서 인건비를 조금씩 책정해서 그 기간동안 주고. 그리고 기획이나 프로듀서 같은 경우엔 프로젝트 전체 중 어느 정도의 기여도로 보아서 개봉 후 개봉수익에서 조금씩 받았죠.

 그래서 <왕자가 된 소녀들><모래>는 인건비를 제대로 받았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처음부터 돈을 받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두 작업 모두 인건비가 빠져 있기 때문에 총 제작비를 얘기하기가 애매해요. 이번 작업 같은 경우에는 물론 당장 지급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인건비를 기본적인 수준으로 책정해서 가능하면 집행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죠. 무조건 개인의 희생으로만 작품을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서.

 

: 그러느라고 밥도 잘먹고 그랬던 것 같아요. 기본적인 재생산을 같이 잘하는 방식으로. 요새 많이 나오는 얘기지만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번아웃된 상태라고 하는 것들, 그게 오히려 일을 못하게 하는 지점들이 있죠. 이제 평균수명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에너지를 잘 배분해서 잘 아껴가면서 길게 가야 해요. 어차피 돈을 많이 모아 놓아서 그걸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가능성이나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까지 생산자로 잘 살려면 그게 중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잘해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군요.

 

: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주 어려서 열정만 가지고 뛰어들 나이들도 아니고, 나름 각자 어떤 부분들은 감수를 하고 있긴 하지만 다 필요없이 이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살아가는 게 중요한 사람들인 거죠. 그러다보니 작업 자체를 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일상을 영위하는 것에도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구요. 먹을 거 잘 먹어야 되고, 쉴 때 쉬어야 되고.

 

: 되게 재밌게 잘 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철마다 놀러가려고 하고.

 

: 해수욕장 같이 가서 놀고.

 

: 워크샵을 한다는 미명 하에 가서 회의를 한 다음에 놀고. (웃음) 근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강유 감독은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어서 우리가 놀리기도 하고, 뭔가 노는 거 약속 잡아놨을 때 놀기로 해놓고 일해야 한다고 빠지고 해서 그럴 때 무엇보다 큰 갈등이 있기도 했어요.

 

: 넌 왜 안 노니? (웃음)

 

: 그랬던 것 같네요.

 

: 왜 쟨 잘 놀지 않는가. 요샌 잘 놀더라고요. 막상 가면 잘 노는데 가기 전까지...

 

: 너무 얘기가 삼천포로... (웃음)

 

: 우리 집단의 특징인 거지. (웃음)


: 어쨌든 저희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최대한 얘기를 계속 해가면서 조정을 해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걸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열정으로 뭉쳐서 서로 갹출을 하면서 시작했던 건데, 거기에서 조금씩 무언가가 불어날 때 이 수익을 어떻게 분배를 할 것인가를 가지고는 매번 치열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어떤 몫을 정당하게, 자기가 뭘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잘 말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매번 기준도 다르지만, 조금씩 원칙을 세워나가는 중이에요. 프로젝트 안에서의 인건비는 최소한 보장을 하고 시작을 하자, 저희부터 그런 원칙들을 세워나가야 공공의 차원에서 요구하거나 발언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것들이 저희로서는 내부적으로 쌓여가는 노하우이기도 하고 경험이기도 한 것 같아요.

 

: 내부적으로 인건비를 책정해두는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기도 해요. 어쨌든 책정을 해놨으니까 수익이 생겼을 때 지급을 하게 되는 거죠. 이번 같은 경우에도 당장 지급은 못하지만 책정을 해놓으면 그게 수익의 목표가 되는 거구요.

 

: ‘푸른영상같은 단체에서도 사실 활동비가 매달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드문드문 나온다고 들어서 각자 교육하시는 걸로 아는데 저도 그런 일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ACT!: ‘푸른영상에서는 활동비 통장을 확인해 봤을 때 이게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신다고 들었어요. 먹기라도 잘 하자며.

 

: 우리는 밥!

 

: 맛있는 거 먹자 우리는. (웃음)

  

2.5. 영희가 잘 놀기 위한 약간의 도움

 

ACT!: '영희야 놀자'CMS를 받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일종의 회원제도를 운영하시는 것인지?

 

: CMS<왕자가 된 소녀들> 후반 작업할 때부터였으니까 2011년부터 받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제작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후반작업 비용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적인 후원도 받고 CMS 도 받기 시작하면서 되게 도움이 많이 됐죠.

 이름은 서포터즈라고 되어있어요. 처음에는 '<왕자가 된 소녀들> 작품의 후반제작을 도와주세요' 라는 명목으로 받았는데 <왕자가 된 소녀들> 막바지에 <모래> 제작도 시작했거든요. 그러다보니 <모래>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CMS도 가입하면서 나중에는 섞인 거예요. 그래서 <왕자가 된 소녀들> 개봉한 후에 우리가 이걸 어떤 명목으로 할 것인지 서포터즈 분들에게 안내를 드렸어요. '일단 두 작품이 완성이 되었고 우리는 작품을 계속 할 계획이다. 그래서 두 작품에 후원하는 걸로 생각하셨던 분들은 신청하면 해지해 드리겠다. 근데 계속 하시면 영희야놀자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저희가 앞으로 제작하는 작품들에 크레딧을 올리거나 소식지를 보내드리겠다' 는 식의 제안을 드렸죠. 그때 해지하신 분들도 있어요.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영희야 놀자 서포터즈로 남아계신 거죠.

 

: 원래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등록증 있는 단체들을 대신해서 CMS를 받아주잖아요. 처음에 그걸 알아봤는데, 나름 힘들더라구요. 어느 정도의 요건이 있어야 되는데, 저희 같은 신생단체는 후원을 받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 때 영희 언니가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이하 여노센터’)에 알아봐주면서 많이 도와줬어요.

 

: 그 친구가 여노센터이름으로 CMS를 받을 수 있게 해 준 거죠. 지금도 여노센터이름으로 받고 있어요.

 

: 먹고 사는 것의 하나의 팁으로서 그런 종류의 친구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어야 해요, 이런 집단은. 농담이 아니고 그런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술값도 내주고. (웃음)

 

: CMS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사실 호의로 해주세요. 그런데 그 분들도 밥먹고 다니기 힘든 분들이라서 잘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다 결국은 해지를 해달라 금액을 줄여달라 요청하는 분들이 있죠. 그럼 우리 다같이 먹고 살기 힘들구나하는 생각에 되게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저희는 고정으로 남아계신 분들이 꽤 있어서 저희 살림살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사실 <왕자가 된 소녀들><모래> 완성한 뒤로 시간이 좀 흐른 터라 알려드릴 소식도 별로 없고 죄송한데 꾸준히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죠. 후반 작업하고 개봉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 다음 작품 잘 하고 나서는 다시 한 번!


  ▲ <왕자가 된 소녀들> 회의 모습


3.0. 영희의 독특한 개성 혹은 고민 혹은 대안

 

ACT!: 영희야 놀자의 작업 방식은 어떤가요? 그 동안 인터뷰해온 제작집단들과는 달리 제작자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꽤 특이한데, 내부의 제작 방식도 약간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 <왕자가 된 소녀들>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감독의 영화,라고 정해두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네 명이 같이 만든 작업인데 다만 역할이 조금 다른 거라고 생각했죠. 물론 작품의 완성 측면에서 감독의 기여도가 가장 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품의 방향이나 나레이션, 주요 내용들에 대해서는 늘 공유하고 같이 회의해서 결정하는 구조로 만들어졌어요. 2011년 버전이나 나레이션 작성, 이후 수정된 편집본 모두 넷이서 같이 고민하면서 만들었다고 보시는 게 맞을 것 같아요.

 

: 그래서 영화를 보면 구성크레딧에 네 명의 이름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잘 모르고 시작해서 이렇게 해왔던 상황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생각보다 되게 연출만 찾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지점이 약간 놀라웠어요. 사실 공동 창작이라는 게 쉽지 않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공동 창작이라고 봐야 할 지는 논란이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희의 경우 구성까지 다 같이 했기 때문에 완성이 되고 나서 너무나 연출의 작품이 되는 것이 연출 자신도 부담스럽고 같이 했던 사람들도 약간 당황스러웠어요. 이게 뭔가 싶었죠.

 지금도 그런 고민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 제가 기획을 하고 다른 누군가 연출을 할 때 그게 단순히 역할 차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제작 과정에서 코멘트를 하고 아이디어가 섞이는 과정에서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뭔가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산되는 과정을 재현하는 언어가 이 판에 정말 없더라구요. 그래서 감독들도 굉장히 힘든 것 같은데 말이죠.

 

: 극영화의 경우 역할의 분업화가 굉장히 잘 되어 있기 때문에 - 물론 극영화에서도 감독의 작품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 다른 역할들도 그 자체로 인정을 받는 게 있는데 다큐는 워낙 감독의 아이디어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밀고나가느냐가 중요하다 보니까 그 작품 자체가 연출의 것으로 인식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사실 다큐멘터리는 감독님 혼자 찍는 작품도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팀 작업을 하면서 다른 개인 작업자들을 만나 보면 이렇게 서포트 할 수 있는 팀이 있다는 걸 굉장히 부러워하거든요. 연출들이 너무 외롭고 힘든 거죠. 이런 식의 팀 작업이 사실은 감독님들한테도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서포트하는 입장에서는 작업을 하고 나면 나의 존재감은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거죠, 이 판에서. 그런 것들이 참<왕자가 된 소녀들>에서도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단순한 조연출이나 기획, 프로듀서가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구성'에 네 명의 이름을 넣는 식으로 했던 것인데, 그런 식의 대안들을 이제 조금씩 찾아야하지 않나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파이 자체가 너무 적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 감독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조차도 후학 양성이 되고 배출되는 게 버거운 상황이다 보니 나머지 촬영감독, 기획 등의 인력이 전문적으로 배양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되기 힘든 거죠. 독립다큐 판에서는 더더욱 그럴 테구요.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고민을 해봐야 되지 않나하는 생각은 들어요.

 

: 저는 사실 기획이라는 역할로 영상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재미있고 좋거든요. 영상 기획은 제가 지금까지 연구해왔던 것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직업, 미래에 대한 그림이 있는 상태에서 영상 작업을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디 가서 '제가 기획했습니다' 하면 사람들이 다들 못 알아듣는 듯한 표정을 하더라구요. 그러면 또 '제가 감독은 아니구요',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데, 기획 제작을 했다고 하면 '네가 돈을 댔다는 이야기냐?' (모두 웃음) 이런 것들로 할 말 없게 만드는 그 지점을 -물론 저 역시 언어를 만들어서 자기를 재현해야 되는 부분도 있지만- 설명하기 위한 고민이 이 판에서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전체적으로 이 판의 파이를 크게 키우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ACT!: 제작자가 아닌 사람들의 역할 기여도에 대한 고민은 정말 쉽지 않죠. 다만 연출자 입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같이 밀어주는 조직이 있는 게 꽤 든든할 것 같아요.

 

: 좋게 말해서 그런 거구요(웃음), 실제 작업자들의 갈증이나 갑갑함은 생각보다 클 거라고 생각해요. 작업자들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 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느슨한 조직 안에서 손놓고 있으니까, 이 팀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죠. 그걸 어떻게 조화를 해나가냐가 관건인 건데, 그래서 '영희야 놀자'는 아직 완성된 팀이 아니고 여러 시도들을 하면서 맞춰가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몇 년 뒤에는 영상 작업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약간 외곽으로 가고 영상 작업 하는 사람들 위주의 집단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그것마저도 열려 있는 거죠.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를 계속 모색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사실.

 

: 저는 개인적으로 '영희야 놀자'를 통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고, 내부에서 얻는 공동의 학습효과를 통해서 지적인 갈증을 상당히 해소시키는 편이라서 만족스러워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작업자로서 기술적인 측면들이 잘 공유되지 않는다는 지점은 약간 어려웠죠. 그런 부분을 다른 동년배 작업자와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게 <,이제 댄스 타임> 작업이었어요.

 다른 집단과의 교류에 있어서 자유로웠던 것은, 이 팀 자체가 우리 것만 하는 조직이 아니어서 가능했던 거죠. 그때 조세영 감독은 작업실을 저희와 같이 쓰기도 했었구요. 이숙경 감독이 활동하는 '줌마네'와도 함께 교류하면서 리소스를 얻기도 하고, 워크숍 기획을 같이 하기도 했어요. 저는 또 신다모 활동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 충족되는 것 같아요.

 

: 제가 느끼기에는, 그 긴장이 지금까지 팀을 이끌어온 동력인 것 같기도 해요. 영상 작업하는 감독들로서는 속도나 전문성의 문제에서 좀 갈증을 느끼거나 그런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회의할 때 그런 걸 표출할 때도 있고. 그런데 그 위주로 간다고 하면 저나 피소현 피디는 같이 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어떤 면으로는 일정 정도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게 있는 거죠.

  

4.0. 다음에 또 만나자, 영희야!

 

ACT!: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차기 작품 소개를 간단히 해 주시겠어요?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업은 이태원에 대한 공간 다큐에요. 그 공간이 미군기지로 인해서 번성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 공간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여성집단도 있고, 현재 이태원이 핫하니까 몰려들는 새로운 젊은 창업자 등등도 있구요. 지금 촬영지역 중 일부는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는 상태인데,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과 역사들을 다뤄 보려고 하고 있어요.

 

ACT!: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영희야 놀자'? (웃음)

 

: 저에게는 '생산적인 친구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이때 쯤 돼서 각자 직업을 갖고 있으면 예전의 친구들을 만나서 예전의 추억들을 이야기하게 되잖아요. 그게 좋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무언가를 같이 하고 있지는 않으니 술먹고 집에 그냥 가야 되는 게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옛날 이야기들을 할 수도 있지만 계속 변화하고 같이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러면서 친구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있고 나빠지는 것도 있고 좋아지는 것도 있고 그런 건데. 그런 면에서 '영희야 놀자'는 그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생산적인 친구들 사이인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런 친구를 갖는 게 중요하죠. 특히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더욱 더 그렇구요. (웃음)

 

: 저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에 시작할 때도 '영희야 놀자'로 시작했고 여기서 하고 싶은 작업들도 계속 있고, 그리고 내가 뭔가 이상한 길로 갈 때 잘 가이드 해 줄 것 같은(웃음)

 

: 어느 길로 가려고?

 

: 너무 일만 하는 이상한 길로 가는 거지. (웃음)

 

: 일에 빠졌을 때 놀게 만드는 집단. (웃음) 저는 '영희야 놀자'에서만 가능한 활동이나 작품이 조금 쌓여서, 이건 정말 영희야 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구나 하는 인식이 생기는 팀이었으면 해요. 저는 사실 <왕자가 된 소녀들>영희야 놀자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작품들이 조금 더 쌓여서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욕심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인식이 생기는 팀이 됐으면 합니다.

 

그런데 우리 너무 미화한 것 같아. 약간 부끄러우려고 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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