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84호 이슈와 현장 2013.6.30]
산 자와 죽은 자의 르포르타주
- 한진중공업 3년의 기록, 『종이배를 접는 시간』작업을 돌아보며
허소희(미디토리)
[편집자 주] 한진중공업은 선박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손실이 수백억 원에 이른다며 40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하지만 주주들에게 176억 원이 배당됐고 조남호 회장에게는 29억 원이 선사됐다. 노조와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철회를 위해 투쟁을 펼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손해배상가압류소송과 협상거부였다. 몇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후 상황을 해결하고자 어떤 이들은 크레인에 올라서, 나머지는 크레인 밑에서 기나긴 투쟁을 시작했고 적지 않은 시민들이 희망버스란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관심과 성원을 보여주며 함께 싸워나갔다. 결국 뒤늦게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들의 투쟁은 조남호 회장의 청문회 출석을 이끌어내고 정리해고철회 약속을 받아냈지만 아직도 그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본 원고는 영상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미디토리’의 활동가 허소희님이 2010년부터 2013년까지의 한진중공업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란 책의 공동저자로 활약하며 겪고 느꼈던 일을 출간을 맞이하며 정리한 글이다.
처음 조선소 노동자들을 본 것은 2010년 겨울이었다. 부산지역의 큰 기업이었던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정리해고 소식을 TV뉴스에서 보았다. 그날로 버스를 타고 영도를 찾아 갔다. 찬바람에 허연 입김과 담배연기가 노동자들의 등에서 동시에 피어나고 있었다. 한 달 뒤, 크레인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는 걸 봤는데 그 모습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 방법을 쉽게 찾을 순 없었다. 사람들은 크레인으로 매일매일 밥을 올려 보내고 그 밑에서 땔감을 피워 바다의 칼바람을 이겨냈다. 카메라 줌을 댕겨 35m 상공을 비추었다 내렸다. 한숨과 조바심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꺼지는 날이 반복됐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11년 6월. 희망버스가 부산에 왔다. 촛불을 들고 영도대교를 건너온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조선소 담벼락을 넘었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며 크레인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한진중공업 안으로 들어가 ‘아저씨들’의 얼굴을 가까이 보게 되었다. 참가자들에게 주려고 반나절 오뎅탕을 준비한 아저씨, 해고되지 않았음에도 동료들이 마음에 걸려 함께 조선소를 지키는 사내, 땡볕에 거리에서 모유수유를 하며 희망버스를 기다린 해고자의 아내. 공장 안의 아버지가 걱정돼 교복바람으로 달려온 고등학생 아들. 그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라는 책 제목에는 해고자들의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2011년 7월이었다. 공장에서 쫓겨나 회사와의 협상만을 기다릴 때였다. 그때 노동조합 집행부도 회사에 겁을 먹고 등을 돌려 해고자들은 정말 아무데도 기댈 데가 없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키기 위해 해고자 4명이 사수대를 만들어 크레인에 오르고, 또 다른 해고자들은 크레인이 보이는 거리에 앉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 2차 희망버스를 기다리며 거리에서 종이배를 접었다. 언론도 외면하고 있을 때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간절했다. 그래서 종이배라도 드리려고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배우셨다. 하루아침에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종이배를 접을 땐 표정이 조금 밝으셨다.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온다는 사실에 많이 기대를 하셨던 것 같다.
▲ 2012년 8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희망버스가 다녀간 후 회사는 담벼락을 높이고 정문출입시스템을 강화했다. (사진: 이승훈)
날 것의 감정에 고개 돌리던 미숙한 기록자
자본은 숨어 끝없이 조롱한다. 노동자들은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져 서로의 이름에 엑스 자를 긋는다. 2011년 8월 기자회견장에서 그들은 처음 회장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도 시청 직원들에게 떠밀려 머리 끄트머리만 겨우. 영도엔 적이 너무 많았다. 자본은 도처에 꼭두각시 같은 적들을 깔아놓고 매일매일 바다 끝으로 몰아붙였다. 회사는 행정대집행으로 노사합의를 종용해 해고자들을 몰아냈다. 회사는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자 노조 간부들을 꾀어내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회사는 생활지원금 카드를 꺼내 조합원들을 빼갔다. 회사는… 회사는….
미봉책과 같던 노사합의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유예의 시간을 겪으며 이제 하루를 넘기는 게 고비였다. 그들의 눈을 바라보는 건 참 고통스런 일이었다. 이가 빠득빠득 갈린다고 했다. 개같이 당했다고 했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지 반년이 지난 뒤였다. 사내는 하얀 쌀밥을 뜨다말고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회사 앞 천막을 지킬 때(*주1)는 경찰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순식간에 눈빛이 매서워졌다. 여과 없이 터지는 날 것의 감정 앞에 미숙한 기록자는 노트로 눈길을 돌렸다.
모든 것이 사실과 다르게
공장에서 쫓겨나고 거리에서 2년, 또 최강서 노동자 관구를 시키며 66일. 노동자들이 긴 유예의 시간을 감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땀방울이 저절로 떨어지는 날이나, 찬바람에 무릎이 꺾이는 날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크레인 앞과 천막을 지키는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무척 마음이 쓰렸다. 보기만 해도 아찔했는데, 회사는 의도적으로 크레인의 전기를 내려버린다던가, 식수 반입을 막기도 했다. 물과 전기는 인권인데 노동자들이 시위를 한다고 눈곱만큼의 인권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참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동자도 사람이고, 부당한 결과에 시위를 통해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정당한 일임을 꼭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생명줄 같은 직장으로 돌아가고픈 노동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왜곡되는 언론보도에 더욱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론들은 너나없이 ‘시신시위’라 이름붙이며 관구를 들고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조선소로 밀려들어간 것을 두고 ‘시신팔이 노조’라는 악의적인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모든 것이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고 그래서 상처받아야 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무척 가슴 아팠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 또한. 어떻게 이들이 크레인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두 아이의 가장은 왜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안의 이야기를 읽어 봐주셨으면 한다.
▲ 2012년 8월, 복직대기기간에 해고자들을 인터뷰했다.
주로 영도조선소 근처 중국집에서 그들을 만났다. (사진: 임소영)
함께 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이 르포르타주를
나는 미디토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디토리는 나에게 첫 직장이자, 앞으로도 머물 곳이다.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나는 영도로 달려갔을 것이다. 다만 끄트머리에서 마음만 보태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든든했고 무서움도 없이 앞으로 달려 갈 수 있었다. 그날의 시간들은 한 곳으로 뭉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미디어 활동가들을 단단하게 묶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1년 6월 27일 행정대집행 이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우리는 85크레인이 가장 잘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 계단에 카메라를 세우고 24시간을 지켰다. 회사에서 언제 강제로 크레인을 끌어내릴 지 모를 때였다. 당번으로 번갈아가며 영도를 오고갔다. 회사가 담벼락에 철조망을 두르고 경찰들이 교대하고, 비가 내렸다 날이 개이고. 그동안 우리는 카메라를 끄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을 지키고 싶다’는 진심과 ‘손끝도 건들지 마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최루액을 맞으며 피부로 느꼈던 것을 써내려갔다. 처음 하는 거대한 작업에 움츠려질 때도 많았지만, ‘우리는 희망버스 탑승객이다’는 주문을 외우며 한 줄 한 줄을 채웠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주 흐름에서 벗어났다. 복수노조로 넘어간 동료의 얼굴이 불쑥 떠오르고, 크레인에 올라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젊은 검사의 말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응어리들을 담느라 연필을 잡은 손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느새 우리도 한진중공업이라고 하면 할 말이 많은 사람이 돼버렸다.
이 작업은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서로의 손을 잡고 다섯 차례 희망버스를 만들어낸 기적 같은 힘, 3년간 묵묵히 뒤에서 영도조선소를 지킨 익명의 사람들, 카메라를 들고 노동자들의 곁을 지킨 미디어 활동가들. 그 마음들을 기억하며 아저씨들의 호흡을 담았다. 옥빛 작업복에 청춘을 바친 배 만드는 노동자 그리고 세상의 산 자와 죽은 자가 이 르포르타주를 썼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이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이 기록물을 바친다. □
▲ 한진중공업 3년의 기록 『종이배를 접는 시간』(허소희, 김은민, 박지선, 오도엽 공저, 삶창)
- 지난 5월 1일 출간됐다. (사진: 임소영)
* 주1
- 158억원 손배가압류 철회와 영도 조선소 정상화를 요구하며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2012년 6월 기습적으로 천막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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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소희(미디토리)
- 『종이배를 접는 시간』(삶창, 2013) 공저자. 사회적기업 미디토리에서 미디어교육, 영상기획을 하고 있다. 책과 수영을 좋아하고 고요하고 바지런한 시간들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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