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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4호 현장] 훼미니스트 전파 프로젝트 넘실 라디오 교육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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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4호 / 2008년 9월 1일

 

 

훼미니스트 전파 프로젝트 넘실 라디오 교육 참가기 



물통 (교육 참여자)
 
1. “넘실”의 학습목표
지난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여성주의 라디오 방송 [야성의 꽃다방 시즌2]를 준비하기 위한 [훼미니스트 전파 프로젝트 “넘실”] 교육이 있었다. [야성의 꽃다방]은 소출력공동체라디오 마포FM에서 방송중인 비혼 페미니스트를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같은 방송국에서 레즈비언 라디오 [L양장점]을 제작하는 레주파의 활동가로서 교육 강사 참여를 제안 받고 “넘실”교육기획 회의에 갔었다. 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오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통 받았던 이런 교육은 강사 한 명이 거의 전 교육과정 내용을 짜고 꾸준히 강의를 책임지는데 “넘실”은 특이하게 매 교육과정마다 다른 강사가 섭외됐다. “넘실”기획팀(수수/야성의 꽃다방, 수경&지현/미디액트)이 기획한 교육의 각 주제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맡은 부분의 강의 내용을 각자 짜는 형태였다. 이 자리는 많은 강사들이 모여 “넘실”의 목적을 이해하고 교육의 방향을 잡으며, 강의에서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나누고 서로 겹치는 부분을 조절하는 자리였다.
“넘실”은 단순히 방송제작을 잘 아는 강사 분이 진행하는 라디오 제작 교육이 아니라 실제로 [야성의 꽃다방]에서 여성주의 라디오 활동가로서, 또는 다른 영역에서 여성주의 미디오 활동가로서 활동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강의-공동체 라디오방송의 현재 환경에 대한 이해, 여성주의 미디어운동의 지형 등-를 포함한 교육이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영역에서 실제로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강사들은 책이나 자료에서는 얻기 힘든 다양한 영역의 실제를 생생히 전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넘실”은 여성주의 미디어 활동가 교육의 목표 외에도, 여성주의 네트워크 만들기라는 목표가 있었다. 앞으로의 활동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분야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한 여성주의 미디어 활동 인맥 형성이 그것인데, 교육 과정 동안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인 강사님들과 교류를 맺고 연락처를 딸 수 있었다. 필요할 땐 찾아달라는 말과 함께, 훗~
레주파의 활동가로 교육 강사 참여 모임에 갔던 나는 프로그램 안과 진행 방식의 매력에 꽂혀“넘실”교육을 신청했다.



2.“넘실”교육일지
마초 선생님한테 복종 관계를 유지하며 여성주의를 배운다면 그 수업은 글자로 써진 이론을 읽고 외우는 것일 뿐이다. “넘실”은 여성주의를 교육의 소재로 다루거나 여성주의 미디어 활동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습득시키는 교육이 아니었다. 교육의 모든 과정 자체에서 여성주의를 체험하고 여성주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장이었다. 여성주의 미디어 교육이라면 진행이나 소통의 방식 등 교육 전체가 여성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넘실”의 생각이다. “넘실”은 교육 기획자와 강사, 교육생의 경계가 모호했다. 한 쪽이 이끌고 한 쪽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내고, 토론을 거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열린 형태의 교육이었다. 강사와 교육생이 겹쳤으며, 강사는 권위 있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었다.


~1회차 : 오리엔테이션, 공동체라디오란? 
오리엔테이션에서 다 같이 내규를 만들었다. 조별로 짠 내규를 다시 합쳐서 “넘실”참여자 모두가 만든 내규가 완성됐다. ‘지각하면 두 손에 뭔가(먹을 것)를 들고 오기', ‘5초 넘게 호응 없으면 다 같이 환호성 내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또 오리엔테이션에서 “넘실”교육에 참여하는 자신의 목표를 만드는 그림을 그렸다. 기획된 교육의 목적에 따라갈 뿐만 아니라 이 교육에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 목표에 필요한 자원을 적고,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파란 색으로, 필요하지만 아직 갖지 못한 자원은 빨간 색으로 표시했다. 앞으로 교육을 통해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은 나누고 없는 자원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특히, 자원 중에는 설정한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만한 단체나 활동가들이 많았다. 

각자 그린 그림을 발표하는 시간에 어떤 사람이 무슨 사람을 연결시켜줄만한 인맥을 갖고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넘실” 교육의 목표였던 여성주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2회차 : 공동체 라디오방송 제작환경 이해, 레주파 L양장점 녹음 견학 
1회차 수업의 과제였던 ‘라디오 읽기'를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존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골라서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서론 본론 결론을 나누어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방식으로 마음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MBC라디오에게 사적으로 편지를 썼고, 어떤 님은 박명수가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무나에게 전화를 걸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하고 대표성도 전혀 없는 리서치를 하는 식이었는데, 발표자의 발표내용은 ‘그런 것이 그냥 재밌는 것 같다'가 전부였다. 이런 과제 나눔이 “어 저게 뭐야”라는 시선이 아니라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존에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던 정형화된 학구적 분석틀에 갇히지 않고 그것 외에 다양한 시선과 방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여성주의적 시각이 공유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발표 자리가 “넘실”이 아니었다면,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 깍듯하고 명료한 서론본론결론을 써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제한 것에 대해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간단한 내용 발표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지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본 라디오의 이런 점이 왜 문제가 되는지, 왜 바람직한지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그 경험의 의미를 해석해보려고 노력한 넘실 사람들은 이해를 넘실넘실 주고받을 수 있었다. 여성주의 공간에서의 편안함이 바로 이것이다.



~3회차 : 여성주의 미디어 운동의 목적과 내용, 지형
여성주의 영상집단 움의 강사님이 여성주의 미디어 운동에 대한 강의를 했다. 미디어 운동계에서 현재 여성 활동가의 위치와 현황 등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더 비중 있고 좋았던 것은 동그랗게 앉아서 각자가 만들고 싶은 라디오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이다.


~4회차 : 라디오 대본 작성
DJ구성 라디오 대본쓰기 수업에 강사로 참여했다. 따로 라디오 대본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공동체 라디오에서 L양장점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레주파의 일원으로서 참여했던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 라디오 제작 경험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면 됐었다. 오히려 걱정이 되었던 것은 강의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었다. 나는 보통 강의나 회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말하기 방식-논리적이고 야무지며 남을 설득할만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나는 ‘부끄러워요 화법'을 주로 쓰면서 ‘으히히'하는 웃음을 문장에 자주 섞고, 분명한 단어보다는 많은 뜻을 포괄하고 있는 애매한 말들을 많이 쓰는데, 분명히 뜻은 통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말하기는 왠지 공적인 말하기에 적합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유아적이거나 정확한 의사전달을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교육 전에 이런 나의 말하기 방식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했는데 넘실 사람들은 이미, 꼭 그런 남성적 말하기만이 소통의 기본은 아니며 다양한 말하기 방식들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음...그러니까 그런 거죠”나 “그런 건 메롱이에요”의 뜻을 의도한 대로 느꼈고,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성숙한 소통 방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모든 교육 과정에 여성주의를 녹인 넘실이 아니었다면 쉽게 만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5회차 : 라디오 드라마 대본 작성
영상 언어 문법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소리언어로 전해지는 다양한 시점 변화와 원근감 등이 흥미로웠다.


~6회차 : 녹음기술과 편집기술


~7회차 : 여성주의+라디오 간담회
[야성의 꽃다방], [레주파], [관악FM활동가], [마포FM활동가]를 초대해 여성주의 라디오에 대한 간담회를 가졌다.


~8회차 : 워크샵 (1박2일MT)
교육 일정에 MT가 들어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MT에서, 강의실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고 넘실 사람들과 친밀감을 더 높일 수 있는 자리였다. 교육은 사교 모임이 아닌데 웬 친밀감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연대는 지식을 제공받는 교육 못지않은 효과와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밤 새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놀면서 여성주의 활동가 네트워크는 더 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9회차 : 취재방송이란?


~10회차 : 다큐멘터리, 사운드아트
접해보기 쉽지 않은 사운드 아트에 대한 수업. 얼핏 들으면 음악 같기도 하고 효과 음향 같기도 한 사운드 아트는 소통 수단의 폭을 좀 더 넓혀주었다. 언어가 아니더라도 귀로 들리는 음향은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키고 느낌에 대한 이해의 공유를 가능하게 했다.


~11회차 : 라디오, 커뮤니티, 웹 - 공유와 배포, 소통
제작만큼 중요한 배포.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막상 배우기는 쉽지 않은 팟캐스팅과 스트리밍에 대해 배워봤다.


~12회차 : 수료작 발표회
넘실 수료작 발표회는 교육 참여자들끼리 모여서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에서 공유될 수 있도록 이루어졌다. 갤러리 ‘요기가'에 전시를 하고, 웹으로도 들을 수 있게 했다. 두 가지 전시는 넘실 참여자들이 함께 진행했다.




3. “넘실”교육평가
“넘실”교육평가는 작성된 평가 문항에 답을 다는 것이 아니라,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스스로 만든 자신의 목표 그림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졌다. 기획팀은 교육을 기획하고, 교육을 받는 사람은 그 기획 의도가 얼마나 달성됐는지 수동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교육에서 얻고 싶고 의도 했던 바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평가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교육에 같은 목표를 갖고 참여하지는 않는다. 넘실의 교육평가는 그런 점에서 다양한 교육 목표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평가는 MT때와 교육 두 번 이루어졌는데, 처음에 설정했던 자신의 목표를 수정하고 빨간 색으로 표시했던 필요하지만 갖지 못한 자원 중 어떤 것을 얻었는지 표시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빨간 색으로 표시했던 자원을 파란색(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바꿨다. 넘실에서 얻고 싶던 것들을 거의 얻은 셈이다. 서로 평등하고 대안적인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친밀함이 쌓이고 정보를 공유하고 인력자원을 나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4. 라디오, 여성주의, 넘실넘실
라디오는 다른 미디어에 비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경계가 모호하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찍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비교적 정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과 다르게, 듣는 사람은 사연을 통해 말하는 사람의 입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연에 대한 소감을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 실시간 문자나 전화 통화, 인터넷 게시물 소개가 가능한 라디오는 많은 목소리들을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는 열린 구조를 갖고 있다. 듣는 사람은 텔레비전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미디어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폰을 꽂고 혼자 라디오를 접하면서 말하는 사람과 마치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 듯한 친밀함을 갖는다. 주객의 모호함, 유연한 개방성, 유대감을 가진 라디오는 여성주의적 소통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넘실”은 이런 라디오 제작 교육을 통해 여성주의 미디어 활동의 기반을 함께 만들었고, 그 진행 방식은 여성주의적 소통을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장이었다. 라디오 전파를 따라 여성주의가 넘실넘실한다. □


[편집자주]
넘실 교육 이후 교육 참여자 및 새로운 멤버들이 모여 야성의 꽃다방 2기가 출발하였습니다. 꽃다방 시즌2는 femidio.net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자정 마포fm 100.7mhz 혹은 홈페이지 mapofm.net을 통해서도 청취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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