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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6호 읽을거리]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 :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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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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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6호 / 2008년 11월 6일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
: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소개 



하주영 (민중언론 참세상)





“하나의 기술이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대략 10년의 시간의 걸린다. 새로운 도구가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모두의 손에 들려,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대단한 변화가 시작된다. 지금이야말로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다. 혁명은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가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법이다. 변화의 신호탄은 터졌으며,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본문 中에서)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Here Comes Everybody』는 그저 그렇게 온라인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책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 변화의 지점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과연 미디어 운동, 아니 사회 운동 진영은 소통의 변화가 일으킨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소통 구조의 변화는 사회를 변화시킨다.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얘기가 요즘처럼 딱 맞아떨어질 수도 있을까 싶다. 단지 청와대를 향해 소통하라고 외치는 것의 정당성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개발 속에서 우리는 소통이 중요한 세상에 살고 그것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따라 대중의 삶은 천차만별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일단 ‘감'에 맞기고 있다.


촛불 정국을 지나오면서 뭔가 질적으로 달라진 대중들의 조직 방식에 일단은 충격 받고, 다음으로는 반성하다가, 대충 이런 것이라는 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마다 촛불정국에 대한 평가도 천차만별이고 이 ‘감'이라는 이미지 자체도 개인차가 꽤 있다.


우리가 ‘감'으로 촛불 정국에서 목격한 개인들의 조직은 그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소통 구조의 변화라는 것이 가져온 하나의 결과물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구조가 변하는 과정에는 개인의 소통 구조가 변하기 마련이고 개인들이 모인 소규모 조직 구조의 변화는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사회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하나의 구조로 정식화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이러한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과 지금의 새로운 소통과 조직의 과정을 열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있었던 다양한 사례에 대한 분석으로, ‘감'이 아니라 분명히 변하고 있는 현실의 조건을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 『 Here comes everybody 』라는 제목 그대로 현재 대중들은 어떻게 몰려다니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책이다. 주요하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점은 인터넷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실생활에 적용되면서 기존의 조직 체계라는 것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또 어떤 네트워크의 형식이 창조되는 것인가에 관련되어 있다. 네트워크 공간을 맹신하라는 뜻이 아니라 필수적인 관계망의 현장으로 그리고 세상의 변화가능성의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졌다.


모두가 아는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은 다수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게 한다. 이 지점은 그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조직들이 생겨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에서 통제하는 커뮤니케이션 독점성이 무너지면서 도무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조직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런 조직들이 감행하는 “행동”은 각종 불매운동이나 기업과 정부에 맞선 온라인 행동을 넘어 실제 사회조직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전 세계 가톨릭은 그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 조직 밖에 평신도회가 조직되었고 중앙은 이 외부 조직과 부딪치고 있으며, 벨로루시 광장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가 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가져오는 등 소규모 조직의 행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책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사례를 언급하면서 전통적 조직 관리의 붕괴와 집단 행동의 성과를 현존하는 미디어 영역과 온라인,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뉴미디어 좀 안다는 사람은 “그래서 뭐?”라는 반응이 나올 듯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이어지면서 대중 행동을 이끌어내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보면서도 시큰둥해질지도 모른다. 뭐, 촛불정국도 겪어봤는데, 그렇게 새로울 게 있나 싶어도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기에 대중의 행동을 이끌어냈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규모 그룹에서부터 대규모 네트워크의 구성 방식 즉, 조직의 형태가 바뀌고 있음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이곳저곳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조직 없이 조직된 대중이 탄생한 것이다. 이미 현대 사회는 그럴듯한 약속과 적절한 도구, 수용 가능한 합의만 있다면, 위력적인 집단행동과 조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직의 전통적인 정의와 운영 방식, 즉 사람이 참여하고, 협동하고, 생산하고, 행동하는 패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본문 中에서)


풀어내는 방식은 기존 조직론, 네트워크론에 기대고 있어 보편적 이해를 돕고 있다. 이렇게 사례들과 함께 제시되는 설명방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커넥터(connectors)다. 소규모 네트워크가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탄생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그룹과 그룹을 이어주는 커넥터들이다. 한마디로 사람이라는 자산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커넥터의 역할은 사회운동 조직에서 보면 조직국장 또는 대외협력국장 등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과 사업을 엮어내는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과의 인맥이고 또 보통 조직 활동을 좀 한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런 인적 네트워크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커넥터의 역할이 특정 목적을 가진 사회단체뿐 아니라 이제는 일상생활 영역에서도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는 다양한 사람들은 이 커넥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있고, 이는 각각의 소그룹이 연결되는데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소규모 그룹의 네트워크가 계속 커넥터로 인해 연결되면 거대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가 특정 정세와 ‘마주침'으로 폭발된 지점이 바로 촛불정국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오버해서 앞서나가지 않는다. 철저하게 현실세계와 구별되는 네트워크 세상을 비판하고 있다. 모호한 미래를 점치는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무한정 평등한 온라인 세상, 모두가 똑같이 참여하는 환상적인 온라인 네트워크를 꾸며내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도 스타는 탄생하고 글을 쓰는 사람, 적극적인 참여자는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제한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다만 온라인 공간을 통해 대중을 만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이 지켜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 약속-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처음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믿을 만한 약속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며 그 약속이 바로 기본적인 참여 욕구를 일으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 도구- 그룹의 역동성을 부여하는 에너지
적합한 약속이 생기고 나면, 그 다음 장애물은 사람들이 함께 그 약속에 다가가도록 가장 잘 도와줄 도구가 어떤 것인지 찾아내는 일이며, 예를 들어 메일과 위키(Wiki)는 정반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니 그룹의 효율적인 상호작용에 적합한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합의- 합의가 바뀌면 그룹이 바뀐다.
구성원들 사이의 합의가 성공하려면, 약속과 사용된 도구의 제대로 된 결합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한대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약속과 도구가 그 그룹에 적합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구성원의 합의를 최대한 끌어낼 것인지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문제는 해당 사회의 구체적 정세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요즘은 뭐가 대세라는 얘기는 유행처럼 오고가고 있지만, 문제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폭발력을 끌어낼 수 있는 대중 네트워크 형태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가, 아니 주의를 기울이고 실험하고 분석하고 있는가로 좁혀질 것이다.


저자는 온라인 네트워크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도 기존의 네트워크론자나 매체 연구자들이 빠졌던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다. 소통의 도구, 커뮤니케이션 도구 자체를 신성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구 사용을 확산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 과연 이러한 도구들이 확산될 것인가 또는 사회의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를 분석하고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다음의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 Sicko]를 관람한 미국 달라스의 한 극장 앞 풍경으로 책은 다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중이 어떻게 모이는지 알고 싶은가? 대중의 분노를 사회의 변화로 이끌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사회 소통의 구조 변화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반문해 보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감이 아니라 분석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화장실 문 밖에서, 온 극장이 난리법석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식코]를 본 관객 전체가 여자 화장실 앞에 모여 즉석 회의를 연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일이었다. 여기가 프랑스도 아니고, 무슨 진보주의 대학 캠퍼스도 아니고, 빌어먹을 텍사스인데, 대화는 점차 한데 몰려 있는 10~12명의 낯선 사람들을 주축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 주위에 서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내 백인 노동자 친구와 언쟁을 벌였던 흑인 신사가 모두에게 주목해 달라고 소리쳤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30~40명의 눈이 그에게 쏠리면서 대화는 즉시 중단됐다. “우리가 이걸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뭔가 바꿔야 합니다.” 침묵이 흘렀고, 내 친구의 아내가 메일 주소를 불러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도 나도 서로 메일 주소를 받아 적더니,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해 보자고 약속했다. 물론 그 안에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pp.320)


뉴미디어, 유비쿼터스 등 화려한 수식과 현란한 기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기술 발전 속에서 미디어 운동이, 그리고 사회 운동이 다시 중심을 잡는 시작은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긴장을 갖는 것에서부터 해야 할 듯하다. 최근 IPTV, 모바일 기술의 발전은 거대 자본과 그 꽁무니를 쫓아가는 정책들이 주도하면서 그들만의 밥그릇 잔치를 하고 있다. 이들이 얘기하는 미디어 융합 기술 발전에 그리고 온라인의 화려한 네트워킹 기술의 경이로움이나 소통 도구 사용에 대한 확산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도대체 대중들이 어디로 어떻게 몰려가고 쏠려가(지)는지, 그 동력은 어디서 어떻게 생성되고 있는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본을 다시 세워야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접근 전략과 방식이 생성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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