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6호 / 2011년 9월 30일
‘단디’ 한 번 놀아봅시다!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치고 박고 싸우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둘 다 얼굴에 멍 하나씩을 달고 있고, 말라버린 핏자국도 언뜻 보입니다. 상황이 어쨌거나 둘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후의 도심 속 거리를 더해보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둘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가고 혹 어떤 이는 욕을 할지도 모르지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러면 배경을 바꿔 권투선수들이 오르는 링을 넣어보겠습니다. 링 바깥으로는 둘을 응원하는 코치진과 관중들이 있을 겁니다. 둘의 싸움은 경찰서에 끌려가야 하는 난동이 아니라 하나의 스포츠가 됩니다. 거리에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 되는 겁니다
길게 쓰긴 했지만 한 마디로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판'이라는 겁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판', 목적과 의미를 확실하게 해줄 ‘판'. 하지만 안타깝게도 퍼블릭 액세스에서의 ‘판'은 그다지 확실하지 못합니다. 지원액은 줄어들고, 지역 방송사들의 반응도 떨떠름하고, 그나마 있는 채널을 이용한 액세스도 이슈 파이팅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특히 진주지역에서는 지역 케이블이 운영하는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반소매를 입은 사람이 나오는 시민제작영상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봐야 하는 건(그것도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분명 슬픈 일이죠.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습니다, 지역민이 소통하고 향유할 수 있는 그 ‘판'을 만들기로.
그래서, ‘단디TV'
‘단디TV'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국 이름입니다. 2012년 정식 개국을 목표로 지난 봄부터 베타 서비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단디'는 경상도 사투리로, ‘신경 써서 잘', ‘천천히 꼼꼼하게'라는 어감으로 쓰입니다. 경상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사용해 봤을 단어니, 지역 중심 인터넷 방송국의 특성을 보여주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베타서비스라고 하지만 몇몇 콘텐츠들이 업로드 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주여성들이 직접 만드는 라디오 [다문화 주파수를 쏴라!]입니다. 진주 지역에도 먼 곳에서 시집을 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결혼이주여성분들이 많습니다. [다문화 주파수를 쏴라!]는 이주여성분들이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한국 생활의 정보도 나눌 수 있도록 기획된 코너로, 매달 한 번씩 라디오를 녹음해 업로드 합니다. 각국의 동요를 부르거나 동화를 낭독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습니다. 방송이 업로드 된 후에는 이주여성분들이 단디TV에 접속해 응원의 댓글도 남기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를 쌓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단디TV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단디TV는 주류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지역 소식, 지역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소외계층의 이야기들을 발굴해 이슈화하기 위해서요.
[다문화 주파수를 쏴라!] 외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웹툰이 정기적으로 업로드 되고 있고, 간간이 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이 만든 영상도 업로드 되고 있습니다. 웹툰은 지역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아트 프로젝트 팀 ‘토닥'에서 제작합니다. 지금 올라와 있는 시민제작영상들도 지역민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영상들입니다. 센터에서는 강백호의 왼손처럼 그저 장비로 ‘거들었을' 뿐이구요.
이처럼 단디TV운영국에서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가 만든 영상들 외에도 지역민이 단디TV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꼭지들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단체의 특성과 연계된 꼭지를 만들어 특화할 계획입니다. 시민제작단도 연계해 지역민이 직접 기자로, 편집자로, 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꼭지는 기본이구요.
그리고, 단디TV
[왕의 남자]의 공길과 장생은 멍석 하나만 깔면 신나게 놀 판을 만들 수 있었다지만, 지역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건 신경 쓸 부분이 많았습니다. 베타서비스를 하면서 영상 업로드가 어려운 부분도 발견했고, 사용자가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꼭지 기획에 대한 고민도 더 많이 해야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면 제가 [다문화 주파수를 쏴라!] 라디오 방송에서 이주여성분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으면서 함께 공감했던 경험을 떠올려봅니다. 나중에 단디TV에 올라온 영상을 모아 만들 지역영상아카이브와 지역의 소식들로 꽉꽉 채워질 페이지 등도 떠올려 봅니다. 그러다보면 곧 스트레칭 몇 번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됩니다. 빌딩을 짓기 위해서 빌딩 높이 몇 배의 땅을 파고 내려가듯이, 지금 지역 언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그 기반을 닦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
* 관련 사이트
단디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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