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96호 리뷰 2015.12.26]
고마워요, ACT!
-진보적 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셀프 리뷰
김수지 (미디액트 창작지원실)
7년간 ACT!를 읽어왔다. 아니, 더 오래된 독자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ACT! 와 맺어온 관계 양상이 최근에 변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지. 시간 나면…’하는 요량으로, 범람하는 광고 메일들 가운데서 버리면 아니 될 이메일로 오롯이 살려두곤 했으나 적기를 놓치고 말아 결국 일년 치 ACT!를 모아 버리곤 했던 관성이 올해, 드디어 깨졌다.
일등 공신은 <학습 소설> 섹션이다. 정체 불명의 섹션명부터 만만찮은 내공의 정보의 체화 정도와 전달력이 픽션으로 승화된 신선한 포맷까지, ACT!가 새로운 풍모를 지니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건 뭐지' 하고 슬몃 고개를 들이밀어 학습 소설을 훑고 나서는 마침내 다른 섹션의 글들까지도 진득하게 앉아 보게 만들고야 만 것이다. 다음으로 눈길을 끈 코너는 다름 아닌 <우리 곁의 영화>다. ACT!에서 영화 매체의 근본적 속성을 논한다? ACT!의 지면에서는 어떤 식으로 펼쳐질 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
기존의 ACT!는 밀도 높고 잘 정련되어 있는 장문의 기사들로 미디액트가 하는 활동의 증폭기 역할을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악화일로에 놓여 있는 독립 영화 지원 정책, 배급의 불균형 현황, 체계화가 요원해보이는 미디어교사 양성 현황...필시 암중모색이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마무리로 귀결되는 글의 방향성을 미루어 짐작하게 되었던 건, 내 반응이 은연중에 경직되어 가고 있었음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던 중 2015년 ACT!에서 돌출 지점들로 인식하게 만든 신설 코너들은 분명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미디어 인터내셔널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코너다. ACT!가 표방하는 ‘연구’ 저널로서의 정체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코너이기도 했다. 미디어 인터내셔널이 일관되게 추적해온 해외의 미디어 운동 현황과 정책 케이스들은 ACT!가 바라보는 지점도 충분히 가늠케 해준다. 더욱이 올해 93호에 실린 서면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92호에서 ‘영국 지역공동체TV 장려 정책과 성공적 사례들’을 게재한 데 이어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지역공동체 TV NVTV 활동가 마릴린 하이드만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정리해 제시해 줌으로써 독자 입장에서도 지역 공동체 매채에 대한 고민을 연속성 있게 가져갈 수 있었다. 인터뷰를 읽으며 NVTV가 일구어온 성과에도 놀랐지만 BBC의 파격적인 지원책-한화로 4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지역 TV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비용으로, 200억 원이 넘는 돈을 향후 3년간의 뉴스 콘텐츠 구입 비용으로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에 충격을 받았다. ACT!에서 기획한 숱한 대담에서 결론은 독립, 혹은 독립 이존의 ‘자립'으로 귀결되곤 했는데 지역 공동체 미디어로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가 거액의 지원을 바탕으로 마련되었다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이전에 최은정 편집위원이 ACT! 포럼이 열리길 희망해 본다고 서술한 부분이 떠오른다. 내게 ACT!의 ‘이슈와 현장’은 여러 종류의 간담회와 정책 토론회를 요약 정리해 주는 섹션이기도 했다. 이렇게 오프라인 간담회를 온라인 매체로 정리하는 수순을 뒤집어보는 것은 어떨까. 매년 장기적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의제를 설정한 뒤 연초 간담회를 통해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 해보고, 이를 ACT!의 연재 기획물로 심층 취재, 정리해 보는 시도도 기대하게 된다.
예컨대 2014년 12월 열린 “미디어가 공동체를 만났을 때”와 같은 간담회가 지면을 통한 사전 준비를 거쳐 액트 포럼의 형식으로 치러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장으로 펼쳐볼 주제로 떠오르는 것은 ‘배급의 새로운 활로’다. 독립영화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 매체를 통해 나온 콘텐츠들까지 어떻게 배급할 것인지, 혹은 배급에 염두에 둔 생산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총괄적 논의를 기존 ACT!가 집적해 온 고민들을 바탕으로 진행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배급과 관련한 새로운 관념을 ‘발명’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던 터, ‘대안배급’을 논한 93호의 모두를 위한 극장(줄여서 모극장)과 다큐유랑과의 대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대담을 접하기 전 다큐유랑의 포스터를 보고 무릎을 친 바 있었다. 극장 중심의, 배급사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유통방법 분명히 쇄신되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다큐유랑의 적극적 움직임이 큰 자극이 되었고 ‘나’라는 단위는 이와 연동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하고 오래도록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ACT!에서 선보인 독립영화 배급 현황과 관련된 심층 기사들 및 배급 관련 인터뷰 자료 해외 사례들을 모아 재정리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일구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한 기획 연재 후 최종 정리의 장으로서의 간담회 개최의 순으로 이어지는 기획을 구상해본다.
영화제를 통해서든 관객 단위를 찾아 나서는 배급시스템을 꾀하여서든, 적극적 관객에게 소구되는 콘텐츠들과 관련한 ‘비평’의 장도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면에서 모극장이 기획한 시민 프로그래머 양성 워크숍의 구체적 내용과 구상중인 공동체 상영 중계 플랫폼의 형태가 무척 긍금했다. -후속 기획 기사가 필히 나오길 희망한다...^^! 89호 ACT!의 ‘독립영화비평 10년’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변성찬 영화평론가가 독립영화의 궁극적 지향점은 ‘정서적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구술하는 부분을 강하게 동조하는 마음으로 읽은 바 있다. 모극장이 꾀하는 바와 같이 다양한 주체들이 평가할 수 있는 입지가 마련될 때, 새로운 정서나 화법을 향해 나아가는 콘텐츠들의 발굴과 공유까지 온전히 가능해지지 않을까.
다큐 유랑의 김청승 감독이 대담에서 논했듯, ‘내가 선 곳은 변두리지만 언젠가는 중심에 진입하겠다’는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내가 선 곳을 여러 개의 중심 가운데 하나로 삼는 적극적 사고와 움직임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현재 지형의 지도를 그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형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는 데 ACT!가 큰 몫 하기를. 이러한 의미에서 리뷰코너의 확대를 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깜보의 ‘다큐멘터리 현장을 말한다' 와 같은 양질의 리뷰가 기획 대담과 연동되어 게재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 저리 걷잡을 수 없이 많은 바람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사실, ACT!에 전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보다도, 매번 균질하게 좋은 글들을 선보이려는 진지한 노력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필자소개] 김수지 (미디액트 창작지원실)
존 카사베테스 감독을 사랑하는 미디액트 창작지원실 신참. 셀프 배급 시스템 구축이 지금의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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