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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2호 길라잡이] 뿌리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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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 2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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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92호 길라잡이 2015.03.23


뿌리와 자리 


김보람 (ACT!편집위원회)



 작년 봄 어느 날, 부엌에서 싹이 난 고구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에 마당에 있는 화분에 심어보았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새 잎이 돋았고, 곧 줄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여유롭게 자랄 수 있도록 큰 박스나 텃밭으로 옮겨줄까? 생각해보았지만 어쩐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질퍽한 여름 장마와 차가운 가을 서리가 지나는 동안 고구마는 그렇게 마당 한 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반년이 지났을 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작은 화분 속에도 무언가 열려있을까? 큰 기대는 없이 화분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줄기와 함께 빠져나온 한 덩이의 흙, 그 안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뿌리였습니다. 있는 힘껏 흙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이리 저리 얽혀 몸부림치며 스스로를 키워낸 뿌리들. 비좁은 공간 속에서도 질기게 줄기를 이어내고 긴 계절을 ‘살아낸’ 그들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액트편집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렇게 문득 미안해지고, 고마워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현장의 활동가들을 만나게 될 때, 척박한 환경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 때, 미디어운동이 무엇인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액트에서 만나온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키워낸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을 통해 어딘가에서 뿌리내리고 있을 다른 움직임들을 상상하게 될 때면 액트 활동의 무게가 크게 느껴집니다.


 ACT! 92호에도 지난 2014년을 열심히 ‘살아낸’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슈와 현장 “세월호, 영상으로 기록하다”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4.16 기억저장소와 세월호 특별법제정촉구 영화인 모임의 활동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아픔을 위로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선 영화인들의 활동이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관심있게 지켜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연말 두 차례에 걸쳐 열린 미디어 컨퍼런스 소식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에서는 영상,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체인지온@공룡> 행사를 촘촘하게 정리했습니다. “미디어와 공동체, 업그레이드된 만남을 모색하다” 는 <공동체가 미디어를 만났을 때> 행사의 참관기입니다. 새로운 미디어 생산 방식에 대한 논의들, 배급 및 유통 전략에 대한 고민들을 통해 미디어 운동의 현재를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내셔널 코너에서는 “영국 지역공동체TV 장려 정책과 성공적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영국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방송통신위원회 Ofcom의 지원으로 30여 개의 지역TV 채널이 운영되거나 개국을 준비중이고, 1차로 개국한 6개 채널들은 잠재 시청자 600만을 보유하고, 6400여 시간을 방송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그 중 대표적 채널인 셰필드 TV와 NVTV의 운영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IT 트렌드를 소설처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액트의 자타공인(?) 인기코너, 학습소설에서는 스마트와치로 대표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관해 다룹니다. 손목에 시계를 차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가 기록되고 그 기록이 e헬스 산업과 연결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미래는 과연 황금빛일까요, 아닐까요? 내용의 재미에 비해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님아, 그 시계를 차지 마오” 기사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호 리뷰는 이창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 사진가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자기 이익을 좇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이 시대에 ‘고지식하게 사진 작업을 이어나가는 김영수 사진가’를 재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복잡한 한국 현대사의 운명 속에서, 그리고 물화된 세계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간 사진가 김영수의 삶과, 그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영화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5년을 새롭게 맞이한 액트 편집위원들의 모습을 보면 저마다 풀지 못한 고민이 많아 보입니다. 미,디어 “10년간의 글쓰기가 나에게 남긴 것들”을 통해 성상민 편집위원이 그 중 일부를 풀어놓았습니다. 지난한 활동의 어려움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하는 글입니다. 어쩌면 액트 역시 보잘 것 없는 작은 뿌리에 불과한 지도 모르겠지만, 기사 하나 하나가 쌓이면 서로를 지탱해주는 힘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올해도 이 활동을 즐겁게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기왕이면 푸짐한 열매를 맺길 바라는 욕심도 함께.


(덧) 92호의 발간이 늦어진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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