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에 대한 확장된 담론 속에서 영화 미디어 영역의 환경 및 생태 문제에 대한 실천은 크게 ‘영화 제작 방식의 차원’과 ‘콘텐츠 제작과 수용의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제작 방식의 차원에서 영화 제작의 과정이 충분히 ‘친환경적’이라 할지라도 영화의 존재 자체가 필연적으로 인간에 의한 산물이므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혐의는 영화 매체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시 파리카는 미디어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하드웨어의 전자 폐기물 문제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이라고 여겨져 온 소프트웨어의 물질성을 논의하며 미디어가 환경과 맺는 긴밀한 관계와 착취적 성격을 강조한다. 특히 디지털 시네마로의 전환 이후 열 방출로 인해 서버 냉각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네트워크와 데이터 스토리지 등 미디어 인프라가 자연을 동원하는 생태학적 영향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공기, 물, 불 등 미디어 기술에 동원되는 지질학적이고 생태적인 차원을 고려할 때,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 마이닝, 콜드 데이터와 같은 용어들은 더 이상 추상적인 언어적 차원, 또는 시각적 은유에 머물 수만은 없게 된다.(각주1)
인류세와 에코시네마
그렇다면 미디어와 자연의 물질적 기반이 얽혀 있는 동시대의 상황에서, 콘텐츠 제작과 수용의 차원의 실천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류세(anthropocene)’에 대한 문제 의식과 이를 반영하는 ‘에코시네마(ecocinema; 생태 영화)’는 수용의 차원에서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가능성을 담지한다. 지난 수십 년간 기후 변화 논의에 지질학적 인식을 가져온 대표적인 개념 중 하나인 인류세는, 홀로세(Holocene)에 이어 지난 1만년에서 1만 2천년 사이의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는 인간 문명의 역사가 기후와 생태계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쉽게 말해 인간의 존재가 환경에 전례 없는 영향을 끼쳐 지질학적 변화를 야기한 시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기후 위기는 인류세가 마주한 여러 결과 중 하나이며, 그밖에 종의 멸종을 비롯한 생물종의 변화, 닭뼈로 특징지어지는 지표 화석, 플라스틱 쓰레기의 증가, 방사성 낙진 등이 인류세에 반영된다. 에코시네마는 인류세에 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부상했다. 에코시네마는 환경을 다루는 기존 미디어의 인간중심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며, 인간과 환경을 이분법적 관계가 아닌 상호 얽혀 있는 유기적 관계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폴라 윌로케–마리콘디는 에코시네마를 ‘환경주의 영화(enviornmentalist film)’와 구분한다. 환경주의 영화는 환경 문제를 서사의 중심에 두지만 환경이 소재로서 사용되는 데에 그쳐 인간중심주의적 에토스를 강화한다. 반면 에코시네마는 환경 재현에 관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해 관객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재고하도록 이끌어 실천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유도한다.(각주2) 유사한 맥락에서 스콧 맥도널드는 영화를 보고 몰입하는 경험이 관객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논의한다. 그는 특히 롱테이크, 정적과 자연 음향을 활용하고, 일상적 풍경을 전경화하는 등 관습적인 재현 방식을 벗어나는 영화에 주목한다. 이러한 에코시네마는 기존의 관람 방식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자연에 대한 심도 있는 인식을 촉발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 베닝의 <13개의 호수(13 Lakes)>(2004)는 13개의 호수를 각 13분간 보여주는 13개의 쇼트로 구성된 영화이다. 관객은 호수를 오랜 시간 응시하며 앞선 쇼트와 이어지는 쇼트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발견해 나가는 지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각주3)
인류세의 도시와 생태의 순환: <재(Ash:Re)>(오민욱, 2013)
오민욱의 <재>는 벤야민의 문장,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사회적 제의는 공허하고, 사물은 병적일 정도로 차갑다."를 인용하며 시작한다.(각주4) 영화는 돌과 물의 이미지를 철거와 재개발로 폐허가 된 풍경과 부산 시민공원 쇼트에 교차시키고, 클로즈업과 롱 쇼트, 디졸브와 리와인드, 컬러와 흑백을 넘나들며 도시와 생태의 순환을 가시화한다. <재>에서 등장하는 바위 쇼트는 이어지는 바위 쇼트와 매우 느린 디졸브를 통해 중첩된다. 감독은 이러한 편집을 통해 백악기에 형성된 구상반려암의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각주5) 관객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바위의 표면을 응시하는 동안, 디졸브로 중첩된 서로 다른 바위의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인지하게 된다. 반면, 영화 중반부에 이르면 빠른 속도로 돌과 물-시멘트-콘크리트-공사장-재-인간 쇼트가 연결된다. 이는 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 폐기물, 재, 대기 오염과 같은 물질들이 다시 인간의 호흡기에 영향을 행사하는 초신체적 순환 과정을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기존의 서사적 관습에서 벗어나 객체로서의 환경과 주체로서 일방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행사하는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와해시킨다. 나아가 인류세의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순환을 드러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과 상호연결을 경험하도록 한다.(각주6)
카메라로 비인간의 목소리를 대리하기: <박멸의 공존>(김아람, 2023)
김아람의 <박멸의 공존>은 한국에서의 ‘생태계 교란종’으로 규정된 뉴트리아 박멸을 둘러싼 문제들을 전경화하며 종의 이동이 수반하는 비인간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탐구한다. 영화는 뉴트리아를 포획해 포상금으로 1억원을 번 ‘뉴트리아 헌터’ 전홍용을 중심으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와 환경부 관계자의 인터뷰를 교차시켜 뉴트리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감독은 뉴트리아 헌터의 포획 과정과 개별 생물종에 대한 상이한 태도를 보여주는 한편,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에게 뉴트리아와의 공존 가능성을 묻고, 환경부 관계자에 국가 차원의 뉴트리아 박멸 계획에 대한 타당성에 묻는다. 감독은 뉴트리아 헌터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박멸과 공존에 대한 윤리적 차원에서의 질문을 던지는 등 카메라 앞에 지속적으로 개입한다. 뉴트리아를 둘러싼 행위자들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인간이 국내에 들여와 인위적으로 증식시킨 뉴트리아가 제방 붕괴로 인한 홍수 피해, 토종 생태계 파괴를 유발한다는 뉴트리아 포획반과 국가 기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밝혀낸다.(각주7)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뉴트리아 헌터의 도움으로 뉴트리아의 몸에 바디캠을 부착한 후 강을 이리 저리 유영하는 뉴트리아 시점 쇼트와 함께 뉴트리아의 관점을 대변하는 자막을 배치하며 끝맺는다. 이로써 <박멸의 공존>은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인간중심적 규정의 인위성을 폭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카메라를 통해 비인간의 목소리를 대리하는 시도에 이른다. 기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환경 또는 자연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인식 하에 동시대의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 또는 ‘무대’로 등장하는 등, 환경 그 자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인간의 사건과 갈등에 종속된 ‘풍경’으로 재현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각주8) 반면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통적인 참여적 경향을 계승하면서도,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와 환경 및 생태 문제를 새롭게 탐구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
각주
글쓴이. 송은지 (한국영화사연구자)
한국영화사(시기불문)를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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