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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1호 이슈와 현장] 한국 방송, 뉴미디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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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8. 10. 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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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11호 이슈와 현장 2018.10.05.]


한국 방송, 뉴미디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방향성


성상민 (ACT! 편집위원)



  한국 방송계는 지난 9년 간 두 개의 정권을 거치며 많은 고초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뉴스 기사나 방송 아이템은 윗선에서 족족 반려되기 일쑤였다. 방송 노동자들이 정권의 방송 개입에 파업과 시위로 대항하면, 방송사들은 보란 듯이 징계와 해고로 응수했다. 9년 간 이어져온 공영방송의 권력지향적인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큰 불신을 남겼다. 오랫동안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던 손석희가 JTBC의 사장으로 소속을 옮긴 사건은 종편에 대한 불신을 넘어 많은 시청자들이 JTBC를 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KBS와 MBC의 기자들이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에서 시민들에게 쫓겨나고, 대신 JTBC 기자들이 환호를 받았던 해프닝은 시민들이 언론을 바라보는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권이 교체되었다. 수많은 영역에서 정권 교체를 맞이해 다양한 요구 사항을 발표했고, 방송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직된 방송 노동자의 복직을 말하고, 그간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된 방송의 회복을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람은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모두 복직했고, 방송 파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인사들이 방송사들의 새로운 경영진이 되었다. KBS와 MBC는 공영방송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특히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언론 기능의 강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 선언은 얼마나 유효했을까. 분명 인력은 교체되었다. 문제적 발언을 내뱉었던 인사들은 방송사 밖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지상파 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곧바로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던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2016-2017년의 5-6% 구간에서 3% 내외 구간으로 추락했다. 각 방송사들이 야심차게 선보였던 시사 프로그램들인 KBS의 <오늘밤 김제동>, MBC의 <시사추적 스트레이트>는 아이템의 중요도와는 별개로 점차 화제에서 멀어지고 있다. SBS의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정봉주의 미투 사건에서 정봉주에게 편향된 자세를 드러낸 끝에 폐지되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어떤 이들은 지난 9년 간 잃었던 신뢰가 1-2년 만에 쉽게 회복되기 어려움을 지적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확실한 ‘적폐 청산’이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변화가 있다. 지난 9년 사이, 미디어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정봉주 미투 사건’ 중 드러낸 

태도와 입장 문제로 인해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와 OTT, TV의 자리를 매섭게 넘보다


 한국에서는 아직 활발하게 쓰이고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2010년대부터 심심치 않게 보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코드 커팅’(code cutting)이다. 2010년대부터 급성장한 넷플릭스(Netflix)나 훌루(Hulu),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와 같은 OTT(Over the Top, 인터넷망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칭하는 신조어) 서비스는 전통적인 지상파 방송은 물론 비싼 요금제로 악명 높던 미국의 케이블 방송사를 위협했다.  OTT 서비스는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에 비하면 실시간 방송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제와 풍부한 영상 콘텐츠를 내세우며 시청자들을 유혹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실시간 방송을 포기하는 대신, 더욱 간편하고 저렴한 서비스를 택했다. 기존의 케이블 ‘방송선’(code)을 시청자들이 스스로 ‘자른’(cutting) 것이다.


▲ 넷플릭스와 훌루, 그리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로 촉발된 

OTT 서비스 붐과 ‘코드 커팅’ 현상은 미국 방송 환경에 거대한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OTT가 시장을 마구 잠식하지는 않았다.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제와 온갖 수수료로 악명 높은 미국 케이블 방송사와 달리 한국의 케이블 방송사나 IPTV는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기존 방송사나 통신사들이 푹(pooq)이나 티빙(tving), 옥수수(oksusu) 등의 OTT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며 시장 변화에 대비했다.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등 통신사나 방송사와 연관되지 않은 OTT 서비스들이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 계속 시도하지만, 해외처럼 ‘코드 커팅’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대신 지금 현재 한국 방송계를 직접적으로 강타하는 플랫폼은 다름 아닌 구글의 영상 플랫폼 ‘유튜브’다. 2005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는 2010년대 이후부터 다른 경쟁 서비스를 모조리 압도하며 온라인 영상 플랫폼으로써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2013년부터 유튜브에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가 도입되며 기존 OTT 서비스와 다른 차별성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유튜브는 종래의 방송사나 영화사, 미디어 회사가 만든 영상들을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 아마추어, 1인 크리에이터의 영상도 서비스하는 동시에 손쉽게 실시간 방송도 만들어 내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플랫폼이 되었다.



한국 방송, 어떻게 뉴미디어 흐름에 대처했나


  한국 방송사는 유튜브를 한동안은 자사 방송 프로그램을 부분적으로 서비스하는 채널로 이용했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영상이나 예고편을 업로드하며 홍보하는 채널로 유튜브를 써먹는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유튜브의 서비스가 점차 업데이트되는 동시에 영향력이 급상승하자 방송사는 유튜브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SBS의 SNS 전용 채널 ‘스브스뉴스’, ‘비디오머그’, ‘모비딕’이 대표적이다. 2014년 페이스북 중심의 카드뉴스에서 시작한 ‘스브스뉴스’는 20-30대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뉴미디어 맞춤 뉴스 서비스로 빠르게 화제가 되었다.


  한동안 <씨네타운 나인틴> 같은 팟캐스트 방송을 만드는 이상으로 뉴미디어에 대한 접근을 하지 못했던 SBS는 ‘스브스뉴스’의 성공에 고무를 받고 더욱 유튜브를 비롯한 SNS 전용 채널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스브스뉴스’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톤으로 영상과 카드 뉴스를 병행하는 채널이었다면, 2015년 창설한 ‘비디오머그’는 이름대로 ‘영상’ 콘텐츠에 집중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스브스뉴스와 차별점을 만들었다. 한편 2016년에 문을 연 ‘모비딕’은 모바일 플랫폼에 맞는 전용 예능 채널을 선언했다. ‘모비딕’을 통해서 선보인 프로그램 중 <양세형의 숏터뷰>가 독특한 스타일의 명사 인터뷰로 화제가 되며 2016년 말 SBS 연예대상에서 진행자 양세형이 한 번도 TV에 방송된 적 없는 프로그램으로 상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SBS는 ‘스브스뉴스’와 ‘비디오머그’를 통해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는 가장 앞서서 뉴미디어에 최적화된 콘텐츠 채널을 선보였다.



  SBS가 선보인 뉴미디어 채널에 대한 호응은 다른 방송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JTBC는 2016년부터 자사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JTBC 뉴스룸>을 활용한 뉴미디어 전용 뉴스 <JTBC 소셜 라이브>를 만들어 큰 주목을 받았다. 시간 관계상 채 <JTBC 뉴스룸>에서 다루지 못한 소식들을 기자들이 직접 전한다는 컨셉은 <JTBC 뉴스룸>이 본래 지니던 화제성과 겹쳐지며 쉽게 프로그램이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동시에 같은 해에는 SBS의 ‘모비딕’과 비슷한 방향성을 지닌 모바일 전용 예능 채널인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만들었다. 한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정착을 노리던 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최근 화제가 된 아이돌 god의 멤버 박준형이 등장한 <와썹맨>을 통해 인지도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외에도 SBS와 JTBC의 뉴미디어 전략에 많은 방송사들이 영향을 받고 경쟁적으로 뉴미디어 채널을 만들었다. MBC는 ‘엠빅뉴스’와 ‘MBC 예능연구소’ 채널을, KBS는 ‘크랩’을, EBS는 ‘모모’를 각각 만들었다. 동아일보의 채널A 역시 최근 뉴미디어 채널 ‘에이요’를 개설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게다가 KBS는 비록 2017년 채널 폐국과 함께 실패로 끝났지만 ‘예띠 스튜디오’라는 MCN을 만들며 1인 크리에이터들을 규합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후발 주자들은 아직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MBC의 ‘엠빅뉴스’가 유튜브 구독자수 11만 여명, 채널A의 ‘에이요’가 4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았지만 구독자수 만큼의 큰 화제는 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KBS의 경우 ‘크랩’과 ‘예띠 스튜디오’ 모두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뉴미디어 전략에서 시원치 않은 모습을 드러냈다.


▲ KBS는 SBS와 MBC, JTBC의 뒤를 이어 뉴미디어 채널을 시도하고 있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이유에서일까. 근래 방송사들은 점차 유튜브와 OTT 서비스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의 감정을 점차 거세게 드러내고 있다. 한동안 <PD수첩>과 <탐사추적 스트레이트> 등의 시사 프로그램을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던 MBC는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전략을 선회했다. 이전처럼 유튜브에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전체 영상은 자체 어플리케이션과 방송사들이 만든 연합 OTT 서비스 푹(pooq), 그리고 공식 웹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SBS 역시 9월 5일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튜브에 의존하는 대신 자체적인 뉴스 어플리케이션의 경쟁력을 키울 것을 선언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연합 단체인 ‘한국방송협회’가 지난 5월 LG유플러스와 넷플릭스가 제휴 협약을 맺자 ‘미디어산업 생태계 파괴 시도’라 성명서로 거세게 항의한 사건은 방송사들이 뉴미디어 플랫폼에 지니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단적인 사건이었다.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이 ‘유튜브는 보수 세력과 가짜 뉴스의 천국’임을 주장하는 리포트를 연일 발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뉴미디어 시대, 더욱 절실히 필요한 방송의 다양성


  물론 방송사들이 뉴미디어 플랫폼에 갖는 두려움을 쉽게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을 한꺼번에 겨냥하고 있고, 이미 북미와 유럽에서는 OTT 서비스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지 오래다. 한국에서도 YG엔터테인먼트,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등의 다양한 외주 제작사와 협력하며 영향력 키우기에 시동을 걸었다. 유튜브 또한 최근 와이즈앱에서 발표한 2018년 5월 기준 ‘모바일 동영상 어플리케이션 사용시간 점유율’ 조사에서 네이버, 아프리카TV를 압도적으로 제친 85.6%의 사용 점유율을 기록하며 한국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점차,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TV를 보는 대신 유튜브와 각종 OTT 서비스를 즐기고 있는 마당이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거세게 위협하는 경쟁 세력이 결코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방송사들의 두려움을 그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다.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방송 생태계를 위협하니 쫓아내야 한다면, 거꾸로 기존의 방송사들에게는 과연 자신들이 얼마나 건전하고 다양한 방송 생태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지를 물어야만 한다. 어떤 이들은 정권이 교체되며 방송가의 ‘적폐’들도 사라지고, 조만간 방송계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방송사들이 보인 행보들은 그저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상화’로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분명 날카로운 시사 프로그램의 재건이 필요하고, 오랜 시간 무뎌진 뉴스 프로그램의 정비가 요구되었다. 허나 동시에 2018년의 미디어 환경이 결코 2008년과 같지 않음을 고려해야 했다. 방송사들은 SNS에 맞춘 새로운 채널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방송의 모습과 태도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은 유형의 예능 프로그램이 반복되고, 높인 시청률만을 노리는 드라마가 양산된다. 특히 MBC가 <진짜 사나이> 시리즈를 다시 부활한 것은 상징적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방송되었던 군대 체험 예능 <진짜 사나이>는 군대 문화를 미화한다는 측면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권기의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이 군대에 지닌 불신을 돌리려 한다는 지적까지 받았었다. <미디어오늘> 등의 언론 비평 매체에서도 방송 기간 내내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던 프로그램이 예능 섹션 강화를 명목으로 새 시즌의 제작이 결정되었다. 정권은 바뀌지만, 예능의 지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셈이다.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이전보다는 두텁게 사안을 다루지만, 자세와 태도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는 이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상을 넘지 못한다. 이색적인 시도를 하겠다며 김어준이나 김제동, 주진우 같은 유명 인사를 섭외하지만 프로그램은 게스트가 지니는 화제성만큼 혁신적이지는 못한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다. MBC가 러시아 월드컵 기간, 인터넷 상의 화제를 모으겠다면서 아프리카TV의 유명 BJ ‘감스트’를 해설위원으로 영입한 선택은 방송사들이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전략이 어떤 수준에 머물러있는지를 보인다. BJ 자체의 자질과 인성에 대한 논란 여부를 떠나, 그저 유명 인사를 자사 프로그램의 빈자리에 섭외하는 차원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 MBC는 2018년 9월부터 

군대 체험 예능 <진짜 사나이> 시리즈의 부활을 선언했다.



  단순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유명 인사를 내세우는 것도 답이 되긴 어렵다. <JTBC 소셜라이브>처럼 기존의 인지도를 이용하는 전략, SBS의 스브스뉴스-비디오머그-모비딕처럼 철저하게 SNS와 모바일 환경에 프로그램을 맞추는 선택은 현재로써는 유효하지만 본격적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또는 다른 OTT들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공략에 나서면 지금 이들 채널이 지니는 지위가 오래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성이 필요한 것일까.


  이에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최근 몇 달간 KBS에서 방송된 어떤 프로그램들은 방송사들이 선보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지난 7월 파일럿으로 방송된 <거리의 만찬>은 시사 프로그램이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장을 보였다. 긴 시간 동안 투쟁을 이어나간 KTX 승무원들을 세 명의 여성 예능인들이 찾아가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들이 남성 진행자들의 무거운 어투와 행동으로 사안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면, 거꾸로 <거리의 만찬>에는 부분적으로 ‘토크쇼’의 포맷을 도입하며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짚기 어려운 당사자의 감정과 심리적인 요소를 담아낼 수 있었다.


  또한 지난 9월 16일 방송된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특집 다큐’ <88/18>은 방송사가 지닌 여러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선택지를 드러냈다. KBS가 1980년대 촬영한 영상 아카이브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영상과 인터뷰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1980년대라는 하나의 시기가 어떻게 축조되었는지를 드러냈다. 1980년대 촬영된 영상 자료들은 그야말로 ‘국영방송’에 가까웠던 KBS의 당시 자세를 비추는 한편, ‘서울 올림픽’이 한국 사회에 상징하는 바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동시에 단순히 영상들을 이어 붙이는 것을 넘어 시대상을 짚어내면서 근래의 영상 트렌드를 적절하게 조합한 연출과 구성, 편집을 통하여 젊은 세대들에게도 다큐멘터리를 어필하는 것에 성공했다.


▲ KBS에서 최근 방송된 다큐멘터리 <88/18>은 

뉴미디어 시대 방송이 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압도적인 시청률을 모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 표출된 각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 그리고 방송의 짜임새는 뉴미디어 시대의 방송이, 특히 공적인 영역에 놓인 미디어들이 어떤 길을 모색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시청률과 당장의 인기에 얽매이지 않는 제작 환경을 보장하고, 동시에 방송사가 그간의 문화 권력을 통해 축적한 자산을 발전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더 확장시켜 퍼블릭 액세스와 같은 미디어 운동과 적극적으로 만나면 어떨까. 시청률 유지를 위해 계속 예능과 드라마를 부여잡는 대신, 시장의 논리에서 쉽게 소외되는 주변의 영역을 비추는 프로그램을 기획 개발하는 노력에 할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4나 독일의 공영방송 ZDF-Arte가 실험적인 프로그래밍을 시도하거나, 비주류 영역의 문화예술과 협업하며 독특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처럼 방송사 외부의 다양한 영역들과 적극적인 ‘만남’을 꾀할 수도 있다. 


  어떤 식의 전략이든 핵심은 결국 ‘방송이라는 소중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2008년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국의 방송은 민영과 공영을 가리지 않고 시청률을 비롯한 현재의 문화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이따금씩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언론의 역할’을 강조할 따름이다. 오랜 싸움 끝에 만든 KBS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열린채널>이 존재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방송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MBC나 SBS, EBS를 비롯한 다른 채널은 그보다도 퍼블릭 액세스가 열악한 상황에 처한지 오래다. 갈수록 폐쇄적으로 수렴되는 방송의 방향성을 바깥으로, 그리고 시민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한 방향성 전환이 빠르게 변화하는 뉴미디어 매체의 흐름 속에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새로운 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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