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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3호 이슈와 현장] 다큐멘터리 '감독'과 '여성', 어느 것도 포기 할 수 없다 - 마민지 감독, 주현숙 감독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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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7. 5. 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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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03호 이슈와 현장 2017.5.15] 


다큐멘터리 '감독'과 '여성', 어느 것도 포기 할 수 없다  

– 마민지 감독, 주현숙 감독 대담


진행 및 정리 : 권은혜 (ACT! 편집위원)


<편집자 주>

지난 3월 24일, 인디다큐페스티발 기간 중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몇몇 신진여성감독들이 마련한 이 자리는 신진여성감독이 겪는 차별, 생존, 지속가능한 작업환경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가현이들>을 만든 윤가현 감독은 경제적인 문제를 짚었다. 영화의 “가장 큰 투자자가 감독 자신”이거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안을 준비하고 피칭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감독’으로서 생존할 수 있을지에 관한 불안과 고민을 나누어주었다. <그 날>을 연출한 정수은 감독은 ‘사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형화되고 고립된 시선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신진 감독이나 여성 감독이 만든 사적 다큐가 “정치적이지 않거나 쉽게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며, 일반적이고 획일화되지 않은 비평적 시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를 연출한 남순아 감독은 다큐멘터리 씬 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문제를 짚었다. “선후배”, “멘토·멘티” 등의 비공식적, 공식적 관계 속에 있는 위계질서와 조직문화가 차별과 폭력적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고 언급하며 다큐멘터리 씬 전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24>를 만든 명소희 감독은 여성 감독들이 출산과 육아 이후 영화 만들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만 여겨지는 현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버블 패밀리>를 연출한 마민지 감독은 여성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현장에서 경험하는 젠더 위계와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촬영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기 위한 감독의 윤리가 기존의 다큐멘터리 제작 윤리의 주된 논의였다면, 마민지 감독의 이야기는 감독이 아닌 ‘여성’으로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딜레마를 지적하고 있었다. 


본 포럼에서 다섯 명의 신진 여성 감독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용기 있고 유의미한 지적들이었으며, 지속적인 논의와 대안 모색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이에 동참하기 위해 ACT! 103호에서는 “젠더 관점에서 본 현장 윤리에 관한 고민”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해준 마민지 감독의 문제제기를 보다 깊이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담을 마련했다. 이 자리를 위해서는 마민지 감독의 고민을 앞서 경험한 기성 여성 감독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이에 <빨간 벽돌>의 주현숙 감독이 흔쾌히 응해주었다. 4월 12일 수요일, 미디액트에서 마민지 감독과 주현숙 감독을 만났다. 



△ 왼쪽부터 마민지 감독, 권은혜 편집위원, 주현숙 감독



권은혜(이하, 권)

두 분 모두 영화 후반 작업으로 바쁘신 줄 아는데,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진행한 포럼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 발제 중에 마민지 감독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폭력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카메라를 든 권력자 감독이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기 위한 윤리는 보편적으로 논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여성이었을 때, 감독과 촬영하고 있는 대상 혹은 현장과의 관계가 달라지며 복잡한 역학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 책임감 때문에 동료나 선후배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보다 더 이야기되기 힘들었던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민지(이하, 마)

포럼 발제문에서 얘기한 것은 두 가지 사례였다. 하나는 동료활동가의 성희롱, 다른 하나는 촬영 대상에게 느꼈던 공포. 공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어떤 감정이었다. 몇 년 전 성북동 한 재개발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촬영 대상자가 집에 혼자 사시는 남자분이어서 촬영을 가기가 망설여지기도 했었고,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있었던 터라 그런 것을 극복하면서 촬영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당시에는 이에 대해 구체적 문제의식을 갖거나 문제제기를 하지는 못했고, 모호함, 찝찝함으로만 남아있었다. 내가 들었던 한 수업에 주현숙 감독님이 오셔서 이주노동자분들 관련 작업을 하셨을 때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그때 어떻게 작업 하셨는지, 혼자 작업을 하신 건지, 당시에 느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기성 여성감독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주현숙(이하, 주)

마민지 감독이 발제문에서 제기한 “여성 감독이 현장에서 여성으로 느끼는 두려움이 잘못된 것인가?” 라는 질문 자체가 흥미로웠다. “있는가?”가 아니라 “잘못된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자기 안에 강제하는 게 있는 것이다. ‘이렇게 느끼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민지 감독님이 언급하셨던 이주노동자분들이 주인공이었던 다큐멘터리로 2004년 <계속 된다>라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할 때 나는 30대 초반이었고, 농성장에 오랜 시간 있었다. 이주노동자 중에는 여자도 있었지만 남자가 대부분이었고 문화권이 달랐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있었다. 특히, 여자 대학생들이 이주노동자 투쟁에 결합을 할 때, 남자 이주노동자들이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 여자가 싫다고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데 왜 안 되냐는 거였다. 주변에서 폭력이라고 지적을 해도, ‘자유를 이야기하는 공간과 상황 속에서 왜 자신의 마음을 표현을 못 하게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 투쟁에 결합하러 왔던 여학생은 스스로 위축되고, 자기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충격 까지 먹지는 않지만 불편함을 느끼며 대응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조심하게 되는 거다. ‘저 사람이 나랑 같이 다니고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와 같은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혹은 힘이 들어 술이 마시고 싶다거나 할 때에도 어떤 일이 생길만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부산영화제를 갔다고 하면, 혼자 밤바다에서 파도라도 보며 앉아 있고 싶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거다. 그런데 이는 한편으로 삶의 경험과 영역이 축소되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에서야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불편한 일이 생기더라도 내 감정이나 상황에 더 충실하고, 일이 발생하면 싸우고, 그러면서 차라리 삶의 데이터를 더 쌓았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한다. 



△ 마민지 감독



마/ 현장의 얘기는 아니지만, 경험의 축소에 대한 일화가 있다. 태국에 여행을 갔었는데, 아는 교수님께서 슬럼가 관련 책을 추천해주셨다. 언젠가 아시아 지역에 관한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 슬럼가 지역 활동가에게 연락을 하고 가보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러고 나서 호스텔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는데, 무서운 얘기를 들려줬다. “그곳에 가면 강간을 당할지도 모른다.”, “다 털려서 올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에게 스테레오타입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인식일 거란 생각을 했고, 그런 인식이 슬럼가 지역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추천을 해주셨던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무서워서 못가겠다고 했다. 교수님께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하면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주셨다. 그럼에도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죽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엄청 떨려왔다. 결과적으로는 활동가분들이랑 잘 얘기하고 슬럼가를 다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왔다. 이후에 글을 써서 정리를 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것이 내가 가진 선입견이 무너진 건지, 내가 두려워하며 떨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하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글이 완결되지도, 리서치가 이어지지도 못했다. 사오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교수님은 남자분이셨기 때문에 슬럼가에 가 보시고는 선입견이 무너지셨겠지만, 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달랐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 맞다. 이게 바로는 해석이 잘 안 되는 거다. 감독으로 현장에 가서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은 이를 어떻게 균등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여성의 경우, 일반적인 권력 관계 안에서는 낮은 상황에 있다 보니 카메라를 들었을 때 더 민감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메라를 들고 감독이 됨으로써 평소에는 갖고 있지 않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이걸 공평하게 써야 한다, 평등하게 써야 한다는 압박과 강제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민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움츠러들게 되는 때가 있다. 


권/ 다큐멘터리에서 감독과 대상 간의 관계, 감독이 대상에게 가져야 할 윤리와 태도의 문제는 늘 중요하게 논의되어왔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감독의 경우에는, 이러한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윤리가 강박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로 인해, 성차별적이고 폭력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도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주/ 나는 촬영을 할 때 혼자 다닌 기억이 많고, 심지어 혼자 카메라를 3대까지 가져간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 목숨보다는 ‘카메라가 어떻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살았던 것 같다. 감독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다. 생존의 위협과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야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발휘되는 영역인 것 같다.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낯선 외국이었다. 가야 할 곳의 주소만 알고 있었고, 알아서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차를 태워준 사람과 말도 안 통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끊임없이 든 생각은 ‘이 사람과 인간적으로 친숙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게 해외에서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건장한 남자들이 다섯 여섯 명이 있는 현장에 가서 며칠씩 있어야 할 때, 살아남으려고 온갖 노력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창작자로서의 갈등도 끊임없이 하게 되는 거다.


권/ 아, 그럼 일단 현장에 가면, 이성적으로는 여성보다는 감독의 입장에서 현장과 자신을 컨트롤하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주/ 나의 경우는 그랬다. 3, 4년 혹은 10년 후에서야 ‘그때 왜 그렇게 살았지.’, ‘위험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컷 하나라도 더 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계속된다>의 경우도 외국에서 작업을 했었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미리 사전작업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는 사람을 만들고 호의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거다. 한국에 있는 이주민의 식구들을 만나러 가서 그들이 가족에게 줄 선물을 받아서 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짐꾼이 되는 것이다. 내가 호의를 베풀었으니 그쪽에서도 나를 좋게 생각해주었다. 서로 잘 해주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 주현숙 감독



마/ 성북동 재개발 지역에서 촬영을 할 때가 20대 초중반이었다. 처음에는 무시를 당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가니 그때부터 권력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의 눈빛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촬영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라서 촬영을 더 잘하고 그랬다기보다는 어린 여성이기 때문에 오는 제약이 더 크게 느껴졌다. 혼자 다닐 때,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조심하시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것이 어떤 때는 인사차 해주시는 이야기였겠지만 어떤 때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해주시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집 안도 찍고 싶고, 다른 것들도 촬영하고 싶었는데 이런 점들에 부딪히면서 결국 제대로 하지 못했다.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는 곳이 많은 곳에서만 촬영을 했고, 누군가의 집 안에서 편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경우는 아이를 찍거나 가족을 찍을 때뿐이었다. 주인공으로 삼고자 했던 중년 남성분 혼자 계시는 것은 거의 제대로 촬영하지 못했다.


권/ 공감이 된다. 그런 두려움은 마민지 감독이 태국에서 느꼈다고 했던 것처럼, 몸으로 오고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은 그런 두려움을 느꼈을 때, 대상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마/ 그렇다. 내가 그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신뢰를 하고 있고 이 마을에 대한 좋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데, 공포감이 드니까 가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었다. 두 마음이 충돌을 하는 거다. 아저씨가 사시는 집에 가서 버텨내고 촬영을 해야 한다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마음과 내가 혼자 그 집에 가서 느끼는 두려움이 충돌했고, 그게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처럼 남아있는 거다. 내가 잘못된 감정을 느낀 것 같고. 


주/ 그 감정이 중요하고 좋은 것 같다. 그 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가. 나는, 결국은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만 찍게 되더라. <이주> 작업을 하며 육 개월 정도 마석을 오가며 촬영을 했을 때 내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집은 한두 집이었다. 거기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다. ‘이 사람이 영화에 필요한가, 아닌가?’에 앞서서 ‘이 사람과 있을 때 안전한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전한 것을 욕망하는 거다. 그것과 다르게 창작자로서 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럴 때 느끼는 긴장감을 어느 정도 즐기기는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카메라를 내려놓은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들이다. 


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촬영 현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성차별적이고 폭력적 상황을 영화에 녹여낼 수 있지는 않을까?


주/ 언젠가는 그런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아녜스 바르다처럼 잘 늙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감독이 창작자로서의 정체성과 자기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어떤 남성 감독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의 가족에 대한 작업 중인데, 촬영한 것을 본인이 볼 수가 없어서 편집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할 땐 편집자가 되어야지.’ 하는 조언을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잘 알겠다. 


마/ 결국 그 아저씨 집 촬영을 가긴 갔었다. 촬영본을 보고 편집을 하면서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아저씨가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시고 있는 장면을 두고, 내레이션이나 다른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내가 겪고 있던 윤리적인 고민들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두고 내가 택한 것은 아저씨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공포를 느끼지 않았거나 혹은 그런 마음을 잘 극복하고 찍었다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은 분리를 해내고, 그것을 포장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장면을 쓰는 것에 대한 갈등이 많이 생겼다. 


주/ 고민이 될 만하다. 문제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것이 관객에게도 보인다는 거다. 마민지 감독이 들려준 경험의 경우는, 그 장면에 대한 성찰을 했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을 시킨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컷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 때문에 보는 관객도 불편해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감독이 그 부분에 대한 성찰 없이 그 장면을 썼다고 하면, 예민한 관객의 경우 충분히 폭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마/ 포럼 발제문을 쓰면서 젠더 관점에서 다큐멘터리의 윤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외국에도 이런 자료가 거의 없더라. 왜 없을까, 생각을 해보니 프로덕션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otDocs에 가서 <소니타>(2015) 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 영화에 감독이 직접 나오기도 하는데 감독, 촬영, 사운드 이렇게 세 명이 같이 움직였다. 운전해주는 코디네이터들이 있고. 그래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이라든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타고 안전하게 잘 다니는 거였다. 프로덕션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여성으로 느끼는 한계보다는 대상과의 윤리적 관계나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에 관해 다른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 영화에서 감독의 고민은, 주인공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데 그것에 ‘개입을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공포는 시스템적으로 극복이 되어 있었다. 


주/ 최근에 한 <빨간 벽돌>은 50대 여성들과 함께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그분들에 비하면 어리지만, 감독이고 오히려 나를 더 배려해주는 공간에 들어가니까 ‘창작자로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 더 풀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훨씬 더 편안하게 몰두할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이러한 작업의 경우에도, 만약 3인 시스템으로 작업을 했다고 하면 더 집중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힘을 받았을 것이다. 마민지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니, 여성의 윤리적 작업환경을 만드는 데에 그러한 제작 환경,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권/ 마민지 감독님께서 포럼 발제 마지막에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을 위한 현장 매뉴얼”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각자의 노하우와 대처법을 가지고 있을 것인데 이것의 매뉴얼화가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하다. 또한, 이 매뉴얼의 대상이 제작자인 것인지, 대상까지 확대될 수도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마/ 매뉴얼에 항목이 나뉘어져있는 것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이나 연출론 수업을 들을 때, 쟁점을 가지고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마이클무어의 영화를 보고, <마이클무어 뒤집어 보기>를 같이 보고 이야기를 한달지. 제작자가 윤리적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담은 커리큘럼인 것이다. 이런 것처럼 ‘여성 감독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찍었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들을 보고, ‘내가 이런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주제의 수업이랄지, 가능하다면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이 개인의 죄책감으로 남는 것이 아니고, 그 노하우를 나누어서, 공포를 느끼는 것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공유하는 것. 이는 시작하는 제작자들에게는 중요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말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주/ 마민지 감독 말처럼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좋고, 다른 하나는 아까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시스템을 그렇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감독들의 네트워크를 같은 것. 트라이포드만 들어줘도 힘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물리적인 힘이기도 하지만 감독이라는 포지션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문제들을 뛰어넘는 조건을 만들면 창작자로서 더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네트워크를 만들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이야기도 하고. 재개발 지역이라거나 낯선 공간에 갈 때 품앗이로 같이 갈 수도 있고. 이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연대한다는 차원만이 아니라 감독으로서 자기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 대담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마/ “두 번째 영화 어떻게 찍었어요?”라는 제목의 포럼을 또 준비하고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선배들과 네트워킹을 만들고,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이후에 실무적으로 같이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연대해서 바꿔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5월 12일에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육아 관련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제작자로서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주/ 현장의 문제도 있지만, 스텝들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밤늦게까지 촬영을 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남성 감독 혹은 스텝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공동체적인 것이 있었고,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운동사회와 다큐멘터리 씬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보수화되고, 운동도 낙후되어 있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 감독들이 스텝으로 노출될 때, ‘과연 안전할까?’ 하는 고민이 든다. 어떻게 하면 감독만이 아니라, 스텝들도 안전한 상황에서 작업을 하고 자기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지, 그런 얘기도 같이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참조: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docufemi


마민지 감독 필모그래피

<버블 패밀리>(2017)

<성북동 일기>(2014)

<아폴로 17호>(2011)

<언어생활>(2009)


주현숙 감독 필모그래피

<빨간 벽돌>(2017)

<족장, 발 디딜 곳>(2014)

<가난뱅이의 역습>(2013)

<멋진 그녀들>(2007)

<신자유주의의 도발들>(2005)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2004)

<계속된다-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2004)

<이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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