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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3호 독립영화] 독립영화의 배급, 연대, 공공적 시장의 밑그림 그리기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배급을 맡았던 김화범씨를 찾아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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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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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33호 / 2006년 7월 6일

 

독립영화의 배급, 연대, 공공적 시장의 밑그림 그리기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배급을 맡았던 김화범씨를 찾아가다 -

 

문유심 (액트 편집위원)

 

1. 배급과 상영의 원칙 : 대중적 확산을 위하여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연재 3회차를 맞아 이번에는 영화의 배급을 담당했던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팀의 김화범씨를 찾아갔다. 기존에 이루어진 세편의 독립영화인 공동 프로젝트(국가보안법프로젝트, 이주노동자프로젝트, 신자유주의 반대 독립영화프로젝트)에 이어 이번에 제작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배급 전략을 직접 들어보고 그 시사점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슬슬 입소문으로 회자되고 있는 전국 동시다발 상영회, 무료 온라인 상영회와 다운로드라는 시도가 이루어진 배경과 그 결과물도 궁금했고 한편, 그간 지속적으로 독립영화 배급에 대한 연구와 활동을 계속해온 김화범씨의 배급운동에 대한 자세하고 허심탄회한 소견을 들어볼 기회도 갖고자 했다.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프로젝트에 한독협과 김화범씨가 참여하게 된 과정와 담당한 역할은?

김 : 참여하게 된 배경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독립영화인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제작한 프로젝트 중에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라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작업을 할 때, 그러니까 재작년이었는데 그때 이마리오 감독이 프로듀서를 했고 총연출은 주현숙 감독이, 본인은 홍보와 배급 쪽으로 참여를 했었다. 
그런 인연도 인연이었지만 독립영화인들이 공적인 참여적 발언을 할 때, 제작자가 배급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협회 배급팀이 어떠한 역할들을 해야 된다는 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고 그런 생각 속에 자연스럽게 얘기가 되면서 참여를 하게 되었다.

본인은 배급 역할이니까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이 많이 될 수 있을지 상영회 전략과 같은 것들을 총연출을 담당했던 이마리오 감독과 사전에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세워나갔다. 
그때는 영화가 다 만들어지기 전 상황, 그러니까 본인이 영화를 못 본 상황에서 배급 계획을 세운 것인데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다. 물론 상업영화 같은 경우 언론에 노출하기 위해서 사전에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지만 독립영화 쪽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배급 계획을 세우고 작품을 홍보하고 상영회 제안을 하고 이랬던 것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 애초에 제작과 함께 세웠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과 배급의 원칙은 어떤 것이었는가?

김 : 중요한 것으로 세가지 정도 있다. 첫 번째로 5월 18일부터 6월 10일까지 기간을 한정을 하고 상영회를 진행하자는 것,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을 한다는 것이다. 원주에 A단체가 한다고 해서 B단체가 못하는 게 아니라 A단체가 하더라도 B단체도 할 수 있고 C단체도 할 수 있고, 누구를 먼저 주고 그런 게 아니라 동시에 다 진행을 하고자 했다. 
상영료에 관해서도 기획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상영료 책정을 제작자가 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여건에 맞추어서 상영회를 주최하는 사람들이 모금을 하던, 관람료를 받던, 아니면 단체에서 얼마를 주던 지역 여건에 맞추어서 상영료를 책정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상영료는 대추리 투쟁 기금하고 KTX 승무지부 투쟁 기금으로 전달했다. 
전체 배급과 관련한 것으로는 집중 순회상영회가 끝나면 온라인 상영으로 가면서 DVD까지 단기간에 만들기로 하였다. 상업 영화는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홀드백 기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극장에서 케이블이나 유료채널이나 비디오로 넘어가기 전에 3개월 정도의 기간이 있다. 요즘에는 워낙 부가 판권시장이 커져서 이런 것들이 거의 허물어졌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런 순서대로 가는 배치가 아니라 되도록 짧은 시간에 대중적 확산을 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가기로 했다. 이후에 무료 다운로드를 결정하게 된 것도 이 프로젝트는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하지 않고 대중적 확산을 목적으로 한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배급전략이었던 것이다.

■ 처음부터 대중적 확산을 위한 원칙을 세우고 단계별 계획을 잡았던 것 같은데 모두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는가?

김 : 거의 처음에 세운 원칙대로 진행이 되었는데 다운로드가 약간 돌발적인 결정이었다. 온라인상영하고 DVD 제작까지는 계획에 있던 것이었다. DVD를 만들면 이 사업 전체는 일정정도 일단락 짓고 필요하신 분들은 DVD를 구입해서 지역에서 상영을 한다 하는 정도가 원래 계획이었다.

■ 참세상 온라인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무료 상영에다가 다운로드하여 시디에 복사하는 것까지 권장하고 있던데 이것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김 : 다운로드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는 총연출을 했던 이마리오 감독이 제안을 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것에 대한 판단을 얼른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영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다운로드를 했을 때 상영활동에 혼선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화를 통해서 정리를 했다. 
상업적 이윤확대를 위한 것이라면 이윤확대를 위한 배급전략이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려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무료로 다운로드를 받으라라고 하면 말이 안되는 거잖은가.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취지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 영화에 맞는 배급 전략이란 것이 무엇이냐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다발 상영회를 합니다, 상영료는 알아서 결정하세요, 포스터도 지원해 드립니다, 상영본 다 드립니다, 온라인 보고 싶으십니까, 온라인도 보여 드립니다, 이걸 가지고 다운로드 받으셔서 마음껏 활용하세요, 그래서 작은 규모 상영회도 하시구요' 이렇게까지 가는 것이 사실은 맞는 배급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독립영화가 다 그렇게 가야하는 건 아니고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만든 취지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온라인 무료 다운로드를 다음 사례에도 계획하고 있는가?

김 : 모든 작품을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계획하고 있는 게 있다. 국가보안법프로젝트, 이주노동자프로젝트, 신자유주의 반대 독립영화프로젝트 같은 예전에 했던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다운로드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 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번 경우가 하나의 모델이 될 것 같다. 
모든 독립영화가 다 그렇게 할 순 없지만 공적인 배급 지원이나 공적인 형태의 지원프로그램이 있다면 독립영화는 공유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김 : 예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의 한 에피소드가 열린채널에서 방영이 됐었다. 그때 받았던 돈이 있는데 그 돈의 일부는 DVD를 제작하는데 들었고 나머지 일부는 이후의 공동 프로젝트 제작활동에 쓰자고 모아두었다. 이 돈이 이번에 시드머니 역할을 했다. 그 돈이 있었기 때문에 녹음이라든지 포스터라든지 이런 것들이 빨리 빨리 진행이 됐었던 것이다. 개별 제작자들이 참여하면서 돈을 받지는 않았다. 연대활동이니까. 그 대신에 들어간 부수적 비용들, 녹음비, 포스터 제작비, DVD 제작 번역료 그런 것들이 종자돈 덕분에 빨리 처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R-TV에 방영이 되면서 일정정도의 제작비를 건질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까 상영료로 받았던 돈은 다 투쟁기금으로 갈 수 있었다. R-TV에 방영되면서 받은 방영료는 향후의 프로젝트를 위해서 제작기금으로 모아두고, 나머지 발생한 이익들은 투쟁 기금으로, 지역의 투쟁현장으로 환원을 시킨 것이다.

사실 몇가지 염두에 두고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있는데, 공공적인 영역으로 가면서도 독립영화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일까에 관한 것이다. 영화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들어가는 돈이 있다. 그리고 제작자는 다양한 형태로 그 돈을 만든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지원을 받는다던지, 내 쌈짓돈을 꺼낸다던지, 친지에게서 돈을 받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재원을 만들어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인데, 어찌됐던 이 영화 말고 다음 영화로 재생산되려면 이 들어간 돈 만큼은 회수가 되어야하는 것이잖은가. 그런데 상업적 방식으로 독립영화 재원이 회수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감독이 얘기하기로는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빚을 계속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얘기를 한다. 독립영화를 만든다 하더라도 수익률 제로 던 약간의 알파 던 이것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조건들이 무엇일까, 많이 보여질 수 있으면서도...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2. 공동체 상영운동, 네트워크

* 진보적 사회운동이 그러하듯, 상업적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질서 속에서 독립영화가 스스로의 목적을 지키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 단위들의 연대가 필수 조건이다. 이번에 전국적 동시다발 상영회가 가능했던 것도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던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가 상영주체로서 조직적 기반으로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배급과 상영에서 이루어진 몇가지 실험들 역시 그간에 있어왔던 독립영화 상영, 배급운동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례는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제안하는 ‘공동체상영운동'의 한 형태로도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들에 관한 김화범씨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 전국의 지역, 단체를 찾아가는 공동체 상영으로 이번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처음 기획할 때부터 "전국동시다발상영"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던 배경은?

김 : 실은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트가 미디어센터설립추진위로 있다가 네트워크로 전화하면서 몇 년에 걸쳐 워크샵과 같은 교류들의 축적이 있어왔다. 그리고 이번 경우 이전에도 각 지역마다 지역 상영회에 대한 활동들이 드문드문 있어왔다. 예를 들어 ‘안녕 사요나라' 같은 경우 순회를 돈다는 그런 개념은 아니었으나 몇몇 지역에서 상영회를 조직하기도 했었다. 그렇듯 독립영화나 진보적 영상물들을 지역에 소개하려는 욕구들이 예전부터 존재했었다. 그게 없었으면 말만하고 못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역의 그런 활동들, 욕구들, 그리고 네트워크들이 있었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 조건이 없었으면 전화를 일일이 다 해서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메일링으로 한번 돌리니까 이 지역 저 지역에서 하겠다, 하겠다, 하겠다고 이어지는 것을 보고 사실 본인도 조금 놀랐다. 
정리하자면 그간 지역의 활동들, 영화를 틀려고 하는 욕구들, 네트워크, 시기적으로 영화가 적절한 타임에 나온 것 이 네 가지가 전국동시다발상영을 가능하게 했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 ‘공동체 상영운동'에 대해 설명한다면?

김 : 이념적 정리를 하고 있는 용어라기보다도 독립영화 상영회가 지향하려고 하려는 어떤 상이다. 예를 들어 송환이 어떤 작은 지역에서 상영회를 했다 치자. 그 영화가 많이 알려지니까 그 지역에서 여러 사람들이 오게 된다. 그러면서 일년에 한 두번 볼까말까하는 사람들이 그 상영회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영화를 통해서 개별적이 아닌 집단적인 관람 체험을 하게 되고 영화가 끝난 다음에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하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할 수 있는, 바로 영화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공동체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 내내 영화 안보는 사람들이 그 영화를 통해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고, 이런 과정들이 작지만 그 공동체의 이슈가 되는 것이고 삶의 이벤트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그냥 극장에 가서 개별적으로 영화를 보고 소비하는 게 아닌 것이다. 독립영화가 지향해야 할 바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해를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은 그럼, 극장에서 가서 보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 이런 건 아니다. 하지만 현실 상업영화 속에서 독립영화가 극장에 그만큼 소개가 안 되는 게 사실이고 극장에 대한 재사고가 필요하다.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되어 있는 극장질서라는 게 사실 거의 전 스크린의 70퍼센트 이상을 CGV, 메가박스 등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멀티플렉스라는 영화관 자체가 극장을 통해 상업적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인 것인데, 예전에는 2000명 들어가는 1개관을 이제는 다 나눠가지고 소위 ‘되는' 영화는 큰 관수에 몰고, 그 다음 영화는 더 작은 관수에 넣고 하는 방식이다. 멀티플렉스라는 공간은 쉬고 얘기하고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보고 바로 나가버리는 그런 공간이다.

공동체 상영운동에 관해 정리를 하자면 세 가지인 것 같다. 영화가 단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그 지역의 사람들이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상영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영화를 통해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 또 하나가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곳으로 극장을 만드는 것. 이것들이 가능하지 않으면 독립영화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그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테니까..

■ 이번에 상영주체가 되었던 지역 단체들과는 어떻게 접촉하게 되었는지?

김 :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속에서 기존에 계속 접촉하던 단체가 중심이 되었다. 작년 인디다큐페스티발 때 자리를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한번 만나기도 하였고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워크샵을 가게 되면 다 모인다. 이렇게 기존에 네트워크 된 단위도 있었지만, 그런 것 말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청을 해준 사례도 있다. 이렇듯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 기존 네트워크가 포지션이 되니까 점점이 붙을 수 있는 것이다.

거창상영회 같은 경우에는 단체도 아니고 부부가 개인 자격으로 지역에서 한번 상영회를 하겠다고 말씀하신 경우이다. 거창 샛별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민주노동자연대, 여기도 영화를 보고 말씀해주셨던 곳이고, 다큐펙토리라는 청주교대 다큐멘터리 보는 모임, 덕성여대 총학생회, 수원에 있는 다산인권센터, 청주대, 여기도 청주교대에서 상영하는 것을 보고 온 것이다.

■ 이렇게 연결된 곳과 이후 계속 지역 공동체상영을 위한 네트워크로 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텐데, 이번 사례를 통해 한독협의 '비극장상영운동 - 공동체상영운동' 차원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김 : 드문드문 아무 맥락없이 진행된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각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상영을 죽 진행해왔다는 게 이번 상영회의 특징이다. 개별 지역에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준비했던 사람들이 이번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7월 중순 경에 공동체 상영운동 활동가 대회 중에 사례발표 시간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때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지역에서 상영했던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자기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서 ‘나만 한게 아니라 여러군데에서 동시에 진행이 되었구나' 하면서 그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얘기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집중적,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던 상영주체들의 경험들 - 지역의 상영활동을 준비하고 홍보하고 상영했던 사람들의 경험들, 이들의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큰 체험이었던 것 같다.

부산 상영회를 했었는데 창원에서 상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부산에 먼저 가서 그 영화를 보고 창원에서 상영회를 만들었고, 또 그 지역 노동조합에서 와서 그 영화를 보고는 ‘아, 그 영화 너무 괜찮더라' 하고 다시 자기 노조에 상영을 하면 안되냐고 전화가 오고...이렇게 매개가 되는 과정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 과정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것들이 집중적으로 벌어지면서 그냥 끝날 수 있었던 것이 계속 꼬리를 물면서 이어나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 상영회를 통해서 얻었던 것들이고, 향후에 그런 영화들이 급히 대중과 만나야 하는 경우가 있을 때 지역에서 다시 한번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경험의 축적을 이뤄낸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송환'의 경우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돌았다. 극장관객 만큼이나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송환은 네트워크하는 성과들을 못 가져왔다. 푸른영상과 각 지역의 개별 주체와의 네트워크는 됐을지 몰라도 송환을 틀었던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로 이어지지 않았다. 푸른영상이 그 리스트들을 갖고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렇게 안 끝났던 것이다. 장기적으로 가는 구조를 못 가져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 아쉽다. 
이번에는 소수지만 장기적으로 가는 단위들이 죽 나오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이 숫자들을 넓혀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또 하나 얻은 것으로 ‘아, 이게 네트워크의 힘이구나'라고 느낀 것이다. 우리가 지역상영회를 추진하려고 하는 단위들과 어떤 관점에서 만나야 하는 것인지, 어떤 관점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는 것인지, 이전까지는 당위적인 질문이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서 공공적인 상영 네트워크, 우리 표현으로는 공동체상영운동 네트워크가 왜 필요한지를 역으로 알게 되었던 계기였다.

이런 부분들을 살려서 한미FTA저지 지역 상영회도 일년 정도 기간을 가지고 상영회를 추진하려고 생각 중이다. 이 경우에는 지역의 역량있는 단위 - 인천, 전주, 대구, 부산, 요즘에는 강릉을 중심으로 한미FTA에 관한 영화들을 정기적으로 매월 틀고, 지역에서의 한미FTA저지를 위한 활동 단위들과 결합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을 준비하고 있다.

3. 독립영화의 배급전략 : 라이브러리, 배급조합, 그리고...

* 인터뷰가 무르익으면서 현재 독립영화의 배급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 보았다. 김화범씨는 ‘암담할 뿐이다. 더 떨어질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80,90년대 초반 사회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독립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던 때와 비교해서 현재의 독립영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는 쉽게 단정지어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찌됐건 지금의 과제는 공공적인 독립영화가 소통되는 시장, 물건이 교환되는 자본주의 시장이 아닌 만나고 소통하는 ‘장터'같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김화범씨가 그리고 있는 ‘꿈같은' 계획을 펼쳐놓았다.

■ 전체 독립영화 활성화를 위해 현재 한독협이 추진하고 있는 배급 전략들이 있을 텐데  특히 한독협이 초점을 맞추는 배급 전략의 방향은?

김 :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공배급망 구축사업을 위탁받았다. 이 사업의 내용은 이렇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상영관 지원사업으로 아트플러스라는 예술영화관 체인을 운영하는데 이렇게 극장에서 지원하는 것 말고 정말 상영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을 해야 되겠다 하는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공동배급망 구축사업인데 바로 라이브러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공공영화 확대를 위한 라이브러리이다. 비영리적 활용을 위한 권리를 제작자에게서 사는 것인데 운영방식은 대여를 위해 작품 당 대여비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 라이브러리를 운영할 수 있는 회비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브러리-영화의 비영리적 활용 권리를 사는 비용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나오는 돈으로 한다. 
그 사업의 핵심은 라이브러리를 구성하고 지역의 상영주체들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이게 점차적으로 축적이 되면 하나의 실질화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 라이브러리라는 것이 나중에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회비만으로도 운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자생력을 가지는 구조 말이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되도록 노력 중이고 그래야만이 독립영화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공공적 시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상업적 시장에 나가서 치고 나가주는 영화도 있어야 되겠지만 모든 영화가 다 그럴 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고 나가주는 영화들도 공공적인 영역에서 더 자유롭게, 상업적 영화처럼 일주일하고 떨어져서 이후에는 아무도 못보는 게 아니라 공공적 배급망을 통해서 일년 내내 상영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독립영화는 수명도 짧을뿐더러 사람들도 무관심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과적으로 ‘독립영화라는 게 뭐야. 재미없는 영화야' 그러면서 끝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상영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독립영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본인들이 독립영화를 찾게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것들이 독립영화 관객 확대로 이어지고 확대된 관객들이 극장으로 찾아갈 때 극장 흥행도 되고 그럼 극장 주인들도 ‘아, 독립영화 틀어도 되는구나' 하면서  독립영화 극장 상영의 여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꿈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솔직히 정말 꿈인 것 같기도 하다.

■ '꿈같은' 독립영화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 세워둔 계획은?

김 : 배급조합을 만들 생각이다. 배급사가 아닌 배급조합. 조합을 중심으로 라이브러리를 구성해서 지속적으로 지역 네트워크와 연결할 계획이다. 그리고 공공상영관, 미디어센터와 같은 공공기관과의 다층적인 네트워크를 연결할 생각이고, 지역상영활동을 지원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제작과 상영, 배급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상영주체들이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계획하고 있다. 3년 내로 얼추 얼개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역 네트워크, 지역 상영관, 이런 것들을 계속 만들어 가다보면 얼추 공동체 상영의 상이 잡힐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극장도 들어올 수 있고 단체, 기관도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네트워크의 완성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얼개를 3년 뒤에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때는 기존의 배급 조건 자체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적 토대 자체가 말이다. 그게 어쩌면 독립영화 배급의 다른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조합과 공공배급망 사업을 위한 라이브러리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 그것이 1차적으로 되어야 한다. 내년에는 전용관이라던지 배급지원센터에 관한 활동들을 통해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고 3년 뒤에는...아이고, 다 뻥이면 어떡하나, 못해서 다 뻥 될 것 같다.

■ 3년이면 아직 많이 남았지 않았나

김 : 그렇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으면 좋겠다.

 

* 제대로 풀어나가자면 길고도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하였다. 오프라인 상영회는 현재 6월 30일까지 상영 일자가 잡혀 있지만 그 이후라도 상영을 원하는 단체가 있으면 계속 진행이 될 예정이고 DVD가 7월 첫주 정도에 출시되면 이번 프로젝트도 마무리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상영회를 통해 조직된 네트워크의 각 지역 단위들을 통해서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제대로 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를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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