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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8호 특집] 2008, 내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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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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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8호 / 2008년 12월 30일

2008, 내디디다




박배일 (평상필름)
 
전기장판과 끈질긴 싸움 끝에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집 앞 은행나무의 잎은 줄기를 부여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발악하고 있다.
현관문을 나설 때 무섭게 들이닥치는 바람 때문에 쫄쫄이 바지를 찾아 입을 즘에 나는 반 강요에 의해 2008년을 돌아본다.



평상필름에 들어가다!
2008년은 미디어 활동가라는 명찰을 달고 살았다. 미디어 활동가라는 명함은 나에게 아직 낯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년 동안 활동한 지금도 미디어의 역할이 무엇이고 활동가로서 활동은 어때야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작년 겨울 시청자미디어센터 교육 결과물로 제작 된 <내사랑 제제> 편집이 마무리 되어 갈 때 교육했던 선생님이 평상필름을 소개시켜줬다. "독립영화 찍구요. 미디어 운동 합니다.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어색한 제안에 생각할 필요도 없이 "예"라고 대답했다. 독립영화를 하는 것이 꿈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퍼블릭액세스 제작지원단, 뭥미?
평상필름에 들어와 처음 했던 활동은 부산 MBC 퍼블릭액세스 제작지원단에서 제작지원 활동이었다. 퍼블릭액세스 개념은 학교에서 배워 감이 잡혔지만 제작지원 개념은 생소했다. 부산은 부산MBC <라디오 시민세상>, <TV 시민세상>, 부산KBS <열린채널> 등 총 세 개의 공중파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있다. 부산KBS <열린채널>은 서울과 같이 공모제로 운영하고 있고, 부산MBC <라디오 시민세상>, <TV 시민세상>의 경우 공모와 함께 자체 제작지원단을 꾸려 시청자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다. 어리둥절 제작지원단에 들어갔을 땐 일 년의 제작지원 과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스템을 고민하는 워크샵 자리였다. 서먹 서먹 인사를 나누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생긴 지 일 년밖에 안 된 지원단은 그사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효과적으로 퍼블릭액세스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워크샵 과정에서 방송국에 있던 최종 편집을 제작지원단이 직접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최종 포맷에 대한 고민도 함께했다.
2개월 넘게 진행된 워크샵을 통해 공공의 접근권이라는 개념을 깊이 있게 알게 되었고, 제작지원단의 활동과 고민을 공유하면서 제작지원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워크샵이 끝난 이후 편집툴을 다뤄봤다는 이유로 라디오 오퍼의 역할이 주어졌다. <라디오 시민세상>은 수개월 전부터 방송국이 아닌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제작지원팀 직원이 최종 편집을 하고 있었다. 그 역할을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처음 그 역할을 맡았을 때 부담으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부당하게 해고 된 노동자의 사연, 단식투쟁 중인 KTX 승무원의 슬픈 사연,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농민의 사연,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반대하는 네티즌의 사연을 녹음하면서 활동가로서 더 없는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 미디어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퍼블릭액세스가 왜 필요한지, 지역에서 우리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줬다.
금요일 저녁 6시 30분에 방송되었던 <라디오 시민세상>은 3년 동안 한 주 한 주 다른 사연을 가지고 출연했던 많은 분들이 프로그램을 홍보하면서 지역사회에 상당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퍼블릭액세스 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8년 촛불...

작은 사연들에 감동을 받고, 열도 받는 동안 운명의 달이 찾아왔다.
4월 말 국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한 쇠고기 협상을 지켜본 국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아버지의 라이터에 불이 초로 옮겨가는 것을 기다리는 딸은 자신의 초를 아버지의 촛불에 갖다 댄다.
옆에 앉은 낯선 남학생과 수줍게 인사를 나누고 촛불을 건넨다. 그렇게 전해져 서면은 촛불의 바다를 이루었다.
5월 3일, 촛불이 켜진 이후 더위가 가기 전까지 서면과 시청, 부산역은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거리에 소녀들은 손뼉을 치게 만드는 문구로 촛불을 이끌었고, 숨죽이고 있던 아저씨들은 잘못된 선택을 사죄하며 거리로 나왔다.
6월 10일 21년 만에 서면로터리에선 차가 아닌 시민들이 흥겨운 놀이마당을 벌였다.
소녀들은 빅뱅의 ‘거짓말'을 개사해서 불렀고, 통기타 주위에 둘러앉은 아저씨 아줌마들은 안치환의 ‘광야에서'를 외쳤다.
귀가 먹은 한사람으로 인해 촛불의 함성은 묻혔지만 거대한 촛불의 감동은 카메라를 든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선사했다.



우리 교수님 이야기
촛불의 함성이 더없이 커져가던 6월 초 다니던 학교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신태섭 교수가 정부의 외압으로 학교에서 해임 될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로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
이야기 나누길 원했던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과 촛불의 함성을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 탓이라 믿고 언론 장악을 본격화 한다.
사실 이명박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일을 취임 초부터 차츰차츰 진행해왔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자격 논란이 있는 최시중을 수장에 앉히는 것부터 시작해 선대위 시절 방송특보를 지낸 자들을 주요 언론 기관의 장에 임명한 것이다.
촛불이 거세지자 정권은 잠시 미뤄두었던 KBS 장악을 본격화 했다. 먼저 눈에 가시였던 정연주 사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했다.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 할 수 있되 해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있다. 하지만 신태섭 교수의 말처럼 법위에 신선놀음하는 분들은 국민들에겐 법과 원칙을 말하면서 자신들의 머리에선 지워갔다. 이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내고 해임 권한도 없는 대통령이 해임시키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사회를 장악해야하는데 이사회 안에선 정연주 사장 해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강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계획안에 KBS이사를 맡고 있고 정연주 

사장 해임을 반대하는 신태섭 교수를 학교를 통해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갖은 회유와 압박에도 신태섭 교수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그 과정을 <우리 교수님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담았다. 신태섭 교수는 결국 학교에서도 KBS 이사회에서도 강제 해임당했다. 소통이란 단어를 모르는 대통령이 소통의 통로를 막는 것을 보면서 이 정권 안에서 미디어 활동가로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2MB, 퍼블릭액세스의 숨통을 조이다!
이명박 정권은 언로를 막기 위해 꼼꼼한 모니터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방통위로부터 부산MBC <라디오 시민세상>에 경고와 함께 압박이 들어왔다.
8월 8일 방송되었던 '오륙도 앞 아파트 분양피해'편의 방송 내용이 부적절 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한쪽의 입장만 대변해 공정하지 못했고 ‘횡포', ‘만행', ‘방해공작' 등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에게 중요한 언로인 퍼블릭액세스 진영까지 압박을 하려나보다 해서 화가 났다. 적절히 대응할 세도 없이 <라디오시민세상>은 24분이었던 시간을 10분30초로 줄이고, 금요일 저녁 6시 30분이었던 시간대가 토요일 아침 8시 40분대로 옮겨졌다. 곧이어 <TV시민세상> 역시 일요일 아침 10시 방송에서 월요일 오후 3시로 방송시간이 변경되었다.
이 정권은 화낼 틈도 주지 않고 불도저처럼 일을 처리했다. 11월 5일 부산 울산 경남 지역 퍼블릭액세스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시청자미디어센터를 한국전파진흥원으로 위탁 관리하겠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동안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운영위원회를 두고 지역의 시민단체와 소통하면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전문성을 전제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면서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위상에 상당한 위협을 가했다. 급기야 3월 사업 중지 사태가 빚어졌고, 강사와 관련 단체에 등본과 인감증명서등 무리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그것도 모자라 지역시민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사업능력이 의심되는 한국전파진흥원에 위탁관리 하겠는 것이다. ‘부산시청자주권협의회'는 기자회견을 해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취지인 방송의 주인인 시민들이 방송에 접근 할 수 있는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 역할을 강화하고 시청자미디어센터의 독립성과 전문성, 자율성을 보장해야한다는 의견을 방통위에 전달했다. 우리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시 타오를 촛불을 기다리며...
라디오에서 올해 가장 추운 날이 될 것 같다던 12월 6일, 시청 앞 3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몸을 부비며 앉아있다. 장갑에 목도리를 두르고 귀도리까지 완전무장한 사람들은 뜨거웠던 여름 서면에서 한번은 본 얼굴들이다. 서면 촛불의 거리에서 안면을 튼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추운바람이 매섭게 불 때 무대 위에서 촛불 법정이 열렸다. 2008년 서민들의 이를 갈게 만들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이 촛불 심판을 받기위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섰다. 촛불 검사는 법정 안 증인들에게 증언을 들었다. 5월 촛불을 이끌었던 학생의 등록금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사연, 직장을 잃을까 불안한 마음에 결혼할 엄두도 못 낸다던 비정규직 노동자, 우로 우로를 외치는 교육부의 정책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사연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하나씩 사연을 들을 때마다 법정안의 사람들은 뜨거웠던 촛불을 생각하는 듯 했다. 지난 2008년 촛불들은 소통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뜨거운 외침 속에서 미디어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점점 줄어가는 촛불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하지만 촛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2008년 뜨거웠던 촛불이 소통을 모르는 자들을 심판할 그날까지 미디어 활동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을 안고 2009년을 맞이해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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