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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8호 특집] YTN 등대, 6일간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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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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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8호 / 2008년 12월 30일

 

 

 

YTN 등대, 6일간의 외출 




왕선택 (YTN 정치부 통일외교 전문기자)
 
YTN노조의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11월 17일, YTN 노조 게시판에 노조 조합원들에게 충격적인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정치부 국회반장직을 수행하다가 해직됐던 조 아무개 차장이 갑자기 투쟁을 중단하고 회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본홍씨의 사장 안착에 봉사하기 위해 보도국장 직무대행으로 임명받은 강 아무개 부국장의 보도국 진입을 몸으로 막는 행동대를 자임했는데 이 날 아침 몇 명의 부장들의 도움을 받은 강 부국장이 조 차장을 힘으로 밀쳐버리고 보도국 공간에 진입한 것을 자책한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런 절박함도, 앞으로 YTN의 공정방송이 좌절됐을 때의 부끄러운 기자생활을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 구본홍을 막지 못하는, 강**. 문** 선배가 구본홍을 위해 공정방송을 노골적으로 훼손해도 막지 못하는, 그래서 공정방송이 차단당한 YTN에서는 더 이상 기자생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17년간의 기자생활을, 특히 YTN 기자로서의 15년을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안고 떠나겠습니다.


조 차장은 품성이 너그럽고 진실하지만 보도에 관한한 공정성과 정확성에 대한 의지와 열망,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지녀야할 정의감에 대해 말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자입니다. 사장 반대 투쟁에서는 후배들에게 고향 뒷산의 소나무처럼 든든한 기둥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노조원들의 충격과 실망, 그리고 혼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장 반대 투쟁 123일 만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조 차장은 특히 창사 15년 만에 YTN이 주요 언론사로 성장하는데 기여했고 또 앞으로 YTN을 명품 언론사로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는 젊은 직원들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했습니다. 창사 초기 YTN 기자들은 취재원들에게 회사를 설명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고 참기 어려운 수모도 자주 경험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청춘을 바치고 온 몸을 던져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모두들 미친 사람처럼 일을 했던 것입니다. 조 차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YTN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는 기자였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기자였으며 과거 수해로 전국 철도망이 마비됐을 때 하루에 한 시간 단위로 전화연결을 20번씩 하면서 나흘을 연속으로 보도했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의 선언이 알려지자 게시판 댓글이 30개 이상 붙고 조회 수는 천 회를 넘어 노조게시판 글 중에서 최다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그의 문자 메시지에는 200개의 한계용량이 금방 차버렸습니다. 모두가 “돌아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선배 같은 바른 분이 떠나고 콩고물만 받아먹는데 혈안이 된 강** 문** 등등이 계속 판친다면 이 회사에 저의 젊음과 열정을 바치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와 주세요.
=몇 마리 개들이 판친다고 선배가 떠나시면 안 됩니다. 같이 구씨 쫓아내고 구씨 수하 개들도 몰아내야죠. 개장수에게 넘기면 더 좋고 다시 돌아오세요. 절대 이대로 떠나시면 안 됩니다.
=너무 슬프군요. 정작 회사를 떠나야할 사람은 떠나지 않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려 하니...조 차장이 이 회사를 떠나면 아마 다른 후배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마음 바꾸기 바랍니다.
=선배를 바라보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해 주세요. YTN의 등대와 같은 분이 떠나시면, 회사는 구본홍이 심어놓은 종양덩어리들에 의해 잠식당할 겁니다.



그러나 조 차장은 단호했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멀리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버렸습니다. 매일 아침 사장 반대 투쟁 집회에서는 무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집 뒷산의 소나무가 사라지고 기둥이 뽑히고 등대가 사라진 것과 같은 공허함과 무력감, 그리고 좌절감에 시달리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사측은 다시한번 조 차장 복귀를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조 차장의 이탈을 노조 무력화의 소재로 활용하는 철면피 행태를 보였습니다. 조 차장이 내면적으로는 투쟁에 지치고 사측의 주장에 공감하기 때문에 이탈한 것이라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눈물을 쏟으며 회사와의 인연을 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조 차장이 자존심 다 구기고 6일 만에 전격적으로 복귀를 결심한 것은 이처럼 사측이 비열한 작태를 벌이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해직된 몸이라 따로 사직서를 낼 필요조차 없었지만 노조게시판을 통해 동지들 곁을 떠나겠다고 밝혔던 조**입니다. 기자의 자존심을 걸고 YTN과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제 그 자존심 모두 버리고 동지들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동안 술을 먹고 제게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너가 회사 나가는 일 절대 없도록 하겠다" "너가 나가면 나도 회사 나간다"고 외쳤던 일부 선배들에게 마지막으로 일말의 기대를 걸었지만 부질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저의 마지막 저항조차 “조**도 전향했다”라며 왜곡 선전한 사측이 저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조 차장이 돌아오자 회사에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등대의 꺼진 불이 다시 들어온 듯 했고 가출한 아들이 사흘 만에 돌아온 것처럼 그리고 한일전 축구 중계 중에 정전이 됐다가 다시 전기가 들어왔을 때처럼 기뻤습니다. 조 차장의 ‘복귀의 변'에도 ‘결별 선언'때처럼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아마도 이날 조 차장의 복귀 소식으로 기뻐서 흘린 조합원들의 눈물을 모두 합치면 양동이로 10번을 퍼 나를 수 있는 분량이 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웰컴 조선배, 빈자리가 너무 컸었소.
=선배 없는 YTN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자리 잘 돌아오셨습니다.
=주말은 우울했지만 조~~~선배 돌아 온다니 다시 노력하는 하루하루로 살겠습니다.
=언제 우리곁을 떠난 적 있었나요? 선배! 선배는 잠시 머리 식히고 돌아온 것 뿐입니다. 오늘은 기쁨의 눈물이 나는군요!!!
=아 정말 즐거운 소식이군요. 선배 다시금 방가방가 ㅋㅋㅋ 다시는 어디 갈 생각 마세요
=구본홍 그만둔다는 말 만큼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런 글도 필요 없어요. 어서 오세요. 우린 가족이잖아요.^^
=행님~오시는 날만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시는군요! 형님 없는 요근래 며칠이 넘 길더라구요~~어서어서~~



우리는 여전히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상황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노조는 구본홍씨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특보를 지낸 만큼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고 공정방송을 훼손할 것이 확실시되므로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 5개월 동안 구본홍씨는 YTN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확신을 더해주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만 거듭했습니다. 도덕적 해이, 공정방송 파괴, 방만 경영, 분열 경영, 보복 경영, 무능 경영 등 단 한 가지만으로도 그가 사장으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사례들입니다. 이에 대해 구본홍씨는 사장이 되기 위한 법적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면서 회사 내 일부 추종세력을 활용해 노조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사장실에 출근하지 못한 채 자신의 추종세력을 닦달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해야 하는 신세입니다.


이런 구본홍씨와 노조의 대결은 사내 추종세력과 반대세력의 양분을 불러와 양측 모두에게 아비규환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되면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말처럼 YTN식구들은 인생의 쓰라린 경험을 한꺼번에 몰아서 겪는 듯합니다. 언론인으로써 구본홍씨를 반대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구본홍씨로부터 신임을 받기 위해 경쟁을 하고 그 와중에 지난 15년간 동고동락한 후배들을 해고하는 등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야만적 행태를 거침없이 자행하는 참극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참담한 조건 속에서도 또한 우리 YTN 노조의 투쟁은 멈출 수 없으며 승리에 대한 확신도 위축될 수 없습니다.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에 관한한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조 차장이 여전히 꿋꿋하게 소나무처럼, 등대처럼, 바위처럼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따르고 지지하며 공정방송 사수를 다짐한 수백 명의 동료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YTN은 신속하고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를 하는 언론사로 기능해야 하는 만큼 이번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시청자 여러분과 국민들의 주문과 성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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