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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8호 특집] 스물에도 그 꽃, 쉰에도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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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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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8호 / 2008년 12월 30일

 

 

 

스물에도 그 꽃, 쉰에도 그 꽃 




이순학 (광주전남미디어행동연대)
 
#새날이 아닌 새해
2008.01.14 04:11 일기


당신이 걸어 볼 수 없는 2008년 부끄럽게도 고개가 더욱 숙여집니다. 당신을 위한 추모 사업회에서 정기총회가 있던 날 오후였습니다. 가슴이 아파 당신을 보러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2008년 1월 12일 삼복서점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표현의 자유 확보를 위한 “신명”의 문화난장이 있었습니다.


2007년 부당하게 해고당한 시청 비정규직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창작했다는 이유로 놀이패 “신명”은 5ㆍ18기념회관 공연장소 대관을 공연 이틀 전 취소당하였고, 보조금 환불 요청을 받았습니다. 예술인답게 문화로 이 부당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기획된 문화난장은 2008년 1월 12일 무등산 증심사 앞 공연을 계획하였으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삼복서점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태어나서 25년 만에 처음 보는 정말 문예다운 문예였습니다.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선배다운 선배들인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참여하러 온 전풍연 소수의 후배들이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난장은 1시간 30분 동안 곁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의 밀가루 세례로 끝이 났습니다. 신명의 단원들과 함께 난장에 참여했던 공연자들의 눈에 놀람과 눈물이 고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나서서 사과를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청 비정규직 어머니들의 대표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사과를 하던 어르신에게도 노점상 상인은 밀가루를 뿌리며 더욱 화를 내더군요.


사람들 뼈 속까지도 먹고 사는 것만이, 돈 그리고 물질만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분들이 사과하고 빌어야하는 이 현실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멍하니 바닥에 남겨진 슬픈 흔적들을 바라보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참 슬펐습니다. 그리고 상처로 남았습니다.


너무도 해맑게 웃으며 공연하던 또랑광대, 신명단원들, 전풍연 후배들, 지켜보던 관객들이 마음껏 화를 내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쓸쓸히 돌아서는 뒷모습이 너무도 가슴 아팠습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당신, 이 현실이 그렇게 슬퍼 몇 날, 며칠. 그렇게 슬피 눈물 흘렸던 것인가요. 당신을 위한 작은 추모비를 바라보면서, 이 학교 안에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젊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학교를 떠난 이들 중에 당신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생활인들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젊은이들도 생활인들도 이기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쁘고, 그래도 가슴이 뜨겁다는 소수의 젊음과 활동가들은, 진보를 말하면서도 진보적인 자세를, 진보적인 조직 구조와 소통 구조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외면 받고, 조직을 유지하기에 힘겨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 또한 지난 대학생활 동안 그러하였습니다. 우리 조직의 생존을 위한다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조직은 생존시켰지만, 시대의 고민 없이 젊은 시절을 살아가는 내 조직의 모습. 곁에서 바라보면서 견디기가 너무도 힘이 듭니다.


비겁한 내 모습이 한없이 싫었습니다. 조직을 향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루지 못한 소통을, 사회에 나와서는 더 크게 겪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집니다. 지금 이순간도 희망 품고 꿈을 꾸며 사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너무도 가혹한 겨울입니다. 새해가 왔다 새날이 왔다 덩실덩실 춤출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2008년. 그리고 스물다섯.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이라는 익숙한 것들은 낯설어지고, 사회초년생이라는 낯선 것들이 일상이 되는 과정. “스무 살”의 혼란스러움처럼, 난 또 다시 어려운 문제를 놓고 풀지 못해 쩔쩔매는 어린아이 같았다.


# 2008. 04 .21 01:55 일기
몇 시간 후 아침이 되면, 방송통신융합과 관련된 '미디어 융합' 정책회의에 참여하기 위하여 서울에 간다. 각 지역에서 모이는 미디어 활동가들과, 서울에서 정책을 연구해나가는 미디어 활동가들의 만남. 그곳에서 1%의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발견하고, 가슴에 담아 오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내가 하고자 하고, 하고파 하는 영역에서 작은 부분이라도 잘못된 것들을 바꿔나가고자 한다. 대학 때처럼, 내가 책임져야 할 조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조직에 영향을 주는 방향을 이끌어 가는 상황이 아니라서,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움직일 수 있어서 참 좋다! 마음껏 고민해 온 것들을 표현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자유로움이 참 좋다.


책임에 억제된 내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고민을 갖고 삶을 살아갈 수 있어서! 언제가 스스로 무언가를 책임지려 하는 날이 오겠지만……. 몸은 피곤해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가 있는, 이 시기가 좋다! 가자 스물다섯의 나의 청춘아!


이 일기를 쓰고 나서 얼마 후. 기자와 PD를 지망하는 분들과의 언론스터디에서, “방송통신융합, 미디어융합”이라는 토론을 하게 되었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PD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도 궁금했다. 왠지 모를 설렘에 토론준비를 열심히 해서 스터디 장소로 갔다. 하지만, 스터디의 목적은 ‘기자, PD 그리고 언론고시'이기 때문일까. 함께 스터디를 하는 분들에게 미디어융합은 현안이 아니었다. 자본권력이 미디어시장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시험을 위해 알아야 할 하나의 이슈였을 뿐이었다.


토론시간. 난 일부러 자본권력 역할로 논쟁을 해 보았다.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상대편의 논리. 자본가에겐 그저 대책 없는,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었다. 이윤도 없는 ‘공공성'은 IPTV 시장 먼저 확보해놓고, 그저 나중에 인심 쓰듯 하나 챙겨주면 되는 부분이었다. 그것도, 자본가가 인심을 써야 가능한 내용이랄까. 자본가에게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상대편을 이기기는 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미디어활동가 이순학에게 만만치 않은 세상이 경고를 날리고 간 시간이었다. 하필 이 날 “IPTV 시행령”에 단 한 줄도 ‘미디어 융합특위'의 정책내용은 반영되지 않았고, 공청회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속상한 마음이 겹쳐지던 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2008.10.01 수 00:27 일기


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느새 "영상"에만 푹 빠져 있었던가. 오늘은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 너무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가 지고 어두워진 저녁, 달리는 지하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영상을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의 테두리를 낮추고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긴 시간 자신의 길을 걸어 온 사람. 보고만 있어도 뜨거운 의지가 느껴지는 사람. 여유로움, 자유로운 미소 하나에 내 무거운 어깨마저 가볍게 하는 사람들, 모두들 현실 속에 문제를 해결하고, 한계를 넘기 위해 마음속 머릿속 저 깊은 심해까지 고민을 하고 움직여온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난 "영상"의 시선만을 두어야 한다. 누군가 수십 년 해왔던 것을, 누군가 인생을 바쳐 해결하려고 한 문제들을 단 몇 십분 안에 한줄기 이야기로 남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간을 난 나만의 잣대로 함축시키고, 초점을 맞춘다.


과연 이리 하여도 되는 것일까. 난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하는 사람이라서? 발은 땅에 두고, 카메라를 하늘로 향해 이상을 말해야 하므로?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거리를 둔, 시선을 둔 비겁한 핑계는 아닐까? 영상이라는 매체 뒤로 숨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든 사람이 말하는 "객관성" 그 정체가 뭘까. 단지 카메라를 든 사람이 무채색의 발언을 하고, 카메라를 들어서 손해 보는 일 없이 살고 싶어서, 현실에 한 발 물러서도 되는 면죄부를 받고 싶어서, 그래서 만들어 낸 허상은 아닐까, 그것이 두렵다.




        타인의 마음을,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고뇌하며,
만들고 있느냐.
만들고 있느냐.
       "영상"이 아닌, 현실의 모습을,,,



2008년이란 시간에 내 안에는 이러한 고민들이 있었다. 스무 살의 서투름을 떠올릴 만큼 어린 발걸음의 약함, 시작하는 발걸음의 설렘으로 삶의 과정을 지나왔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빗속을 달려도 빗속에 젖어있는 아이처럼. 혼란의 시간을 달려온 것 같기도 하다. 빗속을 달려 난 무엇을 확인했을까.


“스무 살처럼 스물다섯”의 서투름도 한껏 느꼈지만, 2008년의 난 ‘나만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의 능력을 보는 눈, 나의 한계를 보는 눈, 세상을 향한 나의 희망을 보는 눈, 절망을 보는 눈, 변화를 보는 눈, 발전을 보는 눈, 다르게 보는 눈. 이제 막 처음 뜨인 눈이지만, 배워나갈 것이 많아 희망적인 눈이다.


“스물에도 그 꽃, 쉰에도 그 꽃”처럼. 이제 스물여섯이 되는 또 다른 나는, 또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스물여섯의 레이스에는 올해 그토록 간절히 찾고 싶었던, 세상을 향한 1%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


봄 이슬 머금은 꽃


                            - 이순학




더러운 물에 피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 가장 맑은 꽃을 피우는
연꽃 밭의 연꽃입니다.


모두가 침묵하는 새벽
달무리와 별빛을 벗 삼아
아침을 기다리는
희망품은 가슴입니다.


세상 모든 더러움과 어둠 속에서
맑은 희망 지켜가기가 힘겨울 때면,
이슬에 눈물 담는
여린 한 송이 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외로운 나에게도
고운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봄의 빛을 닮아있는
고운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외롭게 희망을 지켜가는 길
힘겨워도 함께 가자며,
하늘하늘 손짓하며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춥고 시린 봄이 오는 길목을
미련하게 지켜 온
매화꽃 한 송이.
이렇게 나를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지키고 있다면,
희망의 날은 찾아온다며
그 날까지 길동무가 되겠다고
이렇게 나를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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