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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58호 특집] 새로운 경험과 고민, 소통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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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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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58호 / 2008년 12월 30일

 

 

 

 

새로운 경험과 고민, 소통의 가능성 




위지혜(주안영상미디어센터 대안미디어팀)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후, 처음 드는 생각은 "그냥 쓰면 되겠지". 그리고 하루 뒤에 드는 생각은 "뭘 쓰지?". 한참을 미뤄뒀다 마감일이 되어서야 컴퓨터 모니터 앞에 흰 종이를 띄우고 생각한다. 막막하다. 미디어 활동가로서 내 이야기를 쓰라는데, 난 이제 6개월밖에 안된 미디어 병아리라규! 하지만 누구보다 원고 마감의 중요함을 알기에(나름 기자출신), 서울을 떠나 인천으로 오던 6개월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서울이 수도이기는 하나 중심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문화시설이라고는 마을잔치를 하는 마을회관(?) 정도 밖에 없는 시골출신 인 탓에 서울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있어서도 그랬겠지만, 서울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엄청난 인구밀도로 인한 스트레스와 공해, 환경문제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사고 안에서 서울은 나에게 '수도'이기 이전에 삶의 공간으로서의 '지역'이었다.


서울에서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학보사에서 놀았던 가락(?)을 살려 지역신문에서 1년 반 정도를 기자로 활동하다 문화판에 들어갔다. 나름 '문화활동가'와 '문학기자'라는 명찰을 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사람들을 만났다. 문화의 다양한 그림들을 배우고, 예술이 가진 뛰어난 가창력에 감동하면서 문화판을 조금씩 이해해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풀어간 시간이 4년에 접어들면서 '지역'과 '현장'에 대한 어떤 갈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을 '지역'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내가 고민하는‘지역'과 서울은 조금 다른 범위에 있었다. 더군다나 문화운동으로서 서울은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이 문화와 예술이었고(물론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역공동체를 고민하기에 서울은 너무 거대했다.


그런데 왜 인천? 서울, 부산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광역도시인데다, 환경적 측면이나 구조적 측면으로 보더라도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말이다. 물론 인천을 선택한 데는 자의반, 타의반이었지만, 당시 서울에서 멀리 벗어나기 힘든 나의 상황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정말 궁색한 변명 같지만 말이다. 어쨌든 올 봄, 문화운동의 지역적 접근을 고민하던 차에 '주안영상미디어센터'(이하 'CAMF')에 대해 알게 됐고, 문화운동의 큰 그림 안에서 공동체 미디어를 고민하며 인천으로 왔다.


마이너스의 손, 영화를 찍다


CAMF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단편영화를 찍는 것이었다. 미디어에 대해서는 워낙 글을 쓰고, 웹진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로 고민했던 지점들이 있지만, '영상'에 대해서는 무지( 無知)함에서 오는 막연함 거리감이 있었다. 거기다 기계들은 잘 작동하다가도 내가 만지기만 하면 고장이 나고 문제를 일으켰다. 기계에서만큼은 마이너스의 손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메라를 둘러메고 영화라니!


7월 둘째 주, 첫 출근을 하자마자 CAMF에서 제작강좌로 진행되고 있던 독립영화감독과 함께하는 영화제작 워크숍에 수강생으로 참여하게 됐다. 워크숍은 영화이론에서부터 제작 및 촬영기법을 실습하고 공동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하루 8시간 씩 매주 2회 과정으로 두 달 동안 워크숍이 빡세게 진행됐다. 워크숍 후반에 가서는 수강생들이 쓴 시나리오 중에서 한 편을 선정하고 서로 역할을 분담해 제작 스케줄을 짜고, 콘티 작업에 들어갔다. 이틀간의 현장리허설이 진행됐고 수업보다 더 빡센(?) 촬영이 시작됐다.


첫 날은 슈퍼마켓 씬이었다. 슈퍼마켓은 미리 섭외가 됐지만 마켓에 오가는 손님과 그 앞을 지나는 버스와 차들에게는 미처 다 얘기하지 못 했던 터라 9시부터 촬영준비에 들어갔지만 1시가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 촬영 전부터 슈퍼마켓 인근 사람들은 "뭐 해요?" "영화 찍어요?"하며 지대한 관심들을 보이기 시작했고, 동네 꼬마 아이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구경했다.


부족한 인력으로 모든 상황이 통제되기는 어려웠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최대한 단축해서 찍어보자는 일념으로 늦은 시간 시작했지만, 택시들은 늦은 밤 골목을 누볐고, 야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들도 잠들지 않았다. "택시 지나가고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오토바이 지나가고 할께요." "NG 다시 갑니다." 강의를 해주었던 독립영화 감독님들이 응원 차 촬영현장을 친히 방문해주셨지만 그날 찍기로 했던 분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 4시가 좀 지났을까. 설마설마 했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슈퍼 안으로 장비들을 철수시키고 비가 지나가길 기다렸지만, 비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결국 그날 촬영은 그렇게 접어야만 했다. 100컷이 넘는 촬영분을 사일에 찍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리였을까.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무보수로 봉사하는 배우들과 스텝들의 일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장비를 오랫동안 대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촬영 스케줄과 촬영분을 수정해가며 4일 간의 촬영을 마쳤다.


후반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수강생의 대부분이 대학생들이어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학기가 시작됐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후반작업의 특성상 모두가 같이 하기는 어려웠고, 캡처, 초기 편집과 믹싱, 최종 편집, 메이킹 등 각자 역할 나눠 후반작업은 진행됐다. 시사회 시간을 코앞에 두고 드디어 7분 짜리 단편영화, 우리들의 <파인애플 쥬스>가 완성됐다.


여러모로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었지만,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상영까지 하고 나니 뭔가 해낸 듯한 뿌듯한 마음도 들고, 끝냈다는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아마 함께 작업했던 친구들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영화작업을 하면서 왜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촬영, 후반작업까지 요소요소에 정말 많은 작업들이 필요했고 그 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영상, 소리, 미술, 분장, 조명, 연기 뭣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모두가 한 마음을 이루지 않으면 좋은 영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찍으면서 또 하나 얻은 소득은 영상장비들과 친숙해진 것이다. 마이너스의 손으로 붐대도 잡고, 카메라도 잡고, 조명도 잡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체도 좀 할 정도가 된 셈이다. 프리미어로 메이킹 작업을 했다고 하니 "우와~프리미어도 할 줄 알아?"하는 사람도 있어서 내심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아직은 다 초보수준이지만 말이다.(웃음)


공동체 미디어, 지역 사람을 만나다


정확히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은 CAMF 안에서도 기자재실이다. 대안미디어 창작지원 파트에서 기자재 관리 및 운영을 담당하고,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꼭 그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센터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웹진 'CAMF 페이퍼'에서 지역 미디어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Media Activist' 꼭지를 전담하고 있고, 상영행사가 있을 때는 상영지원도 나간다. 어쨌든 나에게는 새로운 영역이니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발휘하고, 내가 몰랐던 것들을 차근차근 배우며 해가는 중이다.


그 중에서 CAMF가 지역에서 중요한 사업부분으로 설정해놓은 '공동체 미디어'와 관련해 최근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개관 이후 공동체 미디어 사업과 관련해 지역 공동체 조사가 진행됐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년도에 공동체 미디어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일명 '우리동네 말걸기'. 이 작업에는 시민방송 RTV의 고정 프로그램인 '행동하라 액션V'가 동행했다.


우리는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정리하고, 지역 공동체 조사를 바탕으로 1차년도 사업을 함께 진행할 시범지역 세 곳을 선정했다. 시범지역은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는 단위가 있는 마을이나 지역 활동에 있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비교적 잘 이뤄지는 곳을 기준으로 선정됐다. 자, 그럼 지역 사람들을 만나러 가볼까?


세 지역의 반응은 같으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물론 세 곳 모두 공동체 미디어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도 어려워했고, 사업을 제안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사업계획서도 들고 오지 않은 것에 당황해 하면서도 지역의 공동체 미디어를 상상하면서 즐거워했다. 우리가 사업계획서를 쓰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어떤 설정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은 지역 사람들과 함께 이뤄져야 했다. 지역에 맞는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설정과 소통방식, 교육 프로그램까지도 말이다.


아직 어떤 단위와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결정된 곳은 없다. 하지만 세 곳 모두 긍정적으로 지역의 공동체 미디어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동네 말걸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인식할 때였던 것 같다. 그것이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난한 과정이 있어야 하더라도 말이다.


액션V는 그렇게 CAMF가 공동체 미디어 사업을 고민하면서 지역과 만나는 작업들을 영상으로 담아냈고, 지난 11월 14일 RTV를 통해 방영했다. 지역 사람들은 이번 경험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전파되는 경험을 하게 됐고, 그 경험은 CAMF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 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제작물들에 대한 채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채널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차후의 문제 같지만 공동체 미디어 사업 영역에서 동시에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다가오는 2009년에는 어떤 일들이?


올 7월에 처음 CAMF의 문턱을 밟았으니 이 달로 반년이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니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국은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경제는 추운 겨울 마냥 꽁꽁 얼어가지만, 지금이야 말로 우리의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아닌가라고 생각해본다. 2009년이 "설레인다"라고 하면 너무 오바겠지만, 그렇다고 암울하지만은 않다. 나는 바로 이곳, 내 삶터이면서 일터인 인천에서, 좀 더 나은 삶과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하자! 더 많은 미디어 민주주의와 소통을 위해서!


놀러오세요~주안홈페이지 www.juancamf.or.kr
공동체 미디어 관련 액션V 방송 볼 수 있는 곳 : http://cr09c.rtv.or.kr/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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