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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9호 연재-작지만 큰 영화제] 여성영화제 특집(광주, 부산, 인천, 제주, 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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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7. 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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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9호 연재-작지만 큰 영화제 2016.7.20]


지역 여성영화제들,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 광주, 부산, 인천, 제주, 천안여성영화제가 들려주는 이야기


성상민(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이번 호의 ‘작지만 큰 영화제’ 기획은 조금 특이합니다. 다섯 개의 영화제를 한꺼번에 다룬 것은 물론 단순히 지역 영화제의 이야기를 글로써 투고 받는 것을 넘어 직접 인터뷰를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체 지역 여성영화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고민과 꿈을 가지며 영화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요. 지역적인 특색은 물론 여성주의라는 관점에서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영화제, 지역 여성영화제들이 건네는 말들을 ‘작지만 큰 영화제’를 통해 깊게 살펴봤습니다.



 지난 6월 4일 오전 11시, 이대역 근방에 위치한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의 한 강의실에서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한창 신촌과 이대에서 활발하게 열리던 제 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부대 행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열린 행사였지만 어딘가 조금 성격이 다른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서울은 물론 인천, 광주, 천안, 광주, 부산, 심지어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사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역여성영화제 네트워크 간담회' 모습


 그 날 강의실에 모였던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활동가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이 만드는 지역 여성영화제들은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라는 이름의 모임에 속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매년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지역여성영화네트워크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고 서울까지 올라온 것이다.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는 2014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비롯한 전국 14개 지역의 여성영화제가 공동으로 결성한 연대체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12년부터 꾸준히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나 여성영화 상영회를 여는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간담회를 매해 영화제마다 열어왔다. 그러다 2014년 간담회를 기점으로 단순한 정기 행사를 넘어 상시적으로 모이는 것은 물론 함께 지지하고 연대하는 네트워크 조직으로 확대-발전한 것이다.


 비록 간담회는 2시간 남짓 정도로 비교적 짧게 마무리되었지만,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어디에 가도 쉽게 듣기 어려운 진솔한 생각과 경험들이었다. 지역을 막론하고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여성영화제들은 다른 영화제들이 그렇듯 인력과 인건비의 한계를 겪고 있었다. 특히 여성영화제의 특성상 여성/페미니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동시에 미디어 운동에도 손을 뻗은 활동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영화제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또한 제주여성영화제 활동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씨네 페미니즘’ 같이 영화제 기간 외에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아카데미 행사를 하고 싶어했지만 제주도라는 지역적인 문제로 강사들이 오기를 꺼려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지역 문화 행사, 지역 영화제들이 여성영화제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광주여성영화제는 모 지역 관계자가 비슷한 영화제들이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너무나도 쉽게 여성영화제가 다른 영화제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경산여성영화제와 제주여성영화제 역시 여성영화제를 단기성 행사로 간주하고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줄어드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문제와 고민들을 갖고 있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기왕에 각 지역의 여성영화제들이 모인만큼 서로가 힘을 합치고 뭉쳐 난관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에 수많은 영화 관련 모임은 있어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 영화제들의 모임이 흔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흔한 연대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ACT!는 이번 간담회에서 참석한 모든 여성영화제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단순히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단순하게 전달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기는 싫었다. 간담회에서 발언한 영화제들 중 인상 깊었던 지역 여성영화제의 좀 더 깊고 진솔한 말들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ACT!는 고민 끝에 이번 호 ‘작지만 큰 영화제’의 구성을 한 영화제에 한정하는 대신 광주, 부산, 인천, 제주, 천안, 이렇게 다섯 곳의 지역 여성영화제를 살펴보는 식으로 바꾸어 다양한 지역에 분포한 영화제들의 이야기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듣기로 하였다. 각 영화제들에 보낸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귀 영화제는 언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처음 개최하게 되었습니까?

2. 귀 영화제는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열려온 영화제이자, 해당 지역의 유일한 여성영화제로써 지금까지 계속 열려왔습니다. 영화제를 계속 유지하고 개최하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고민들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3. 귀 영화제는 지역영화제로써의 정체성과 여성영화제로써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어떤 노력이나 사업을 해왔었습니까? 또는 정체성을 발굴하고 유지를 하기 위해서 겪었던 문제 의식이나 고민 등을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4. 현재 귀 영화제는 각 지역 여성영화제들이 모인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에 참여 중에 있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며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른 지역의 여성영화제들과 함께하며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습니다.

5.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귀 영화제는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어떤 사업들과 프로그래밍을 해나갈 것인지 앞으로의 목표나 다짐을 적어주세요.



 과연 이 영화제들은 그간 행사를 개최하며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까. 지역의 작은 영화제, 여성영화제 모두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살리고자 고민했을까. 각 영화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 영화제들이 보내온 고민을 들어보도록 하자.




광주여성영화제




 광주여성영화제는 2008년 지역 여성단체 ‘광주여성센터’의 몇몇 회원들이 모여 영상제작 워크숍을 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신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지역 방송사를 통해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으로 전파를 타기 시작하자 워크숍에 참여한 회원들은 ‘영상창작단 틈’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이후 2010년 영상창작단 틈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김채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텃밭>이 광주와 부산의 시청자미디어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2010 영호남 시민영상페스티벌>에서 일반부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그간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모아 작은 상영회를 진행하고자 했고, 상영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광주 지역에서 보기 힘든 여성 영화를 함께 상영하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조촐한 상영회로 준비되었던 행사는 광주여성영화제라는 이름을 얻고 2015년 여섯 번째 행사를 맞이했고, 2016년 11월 6일부터 13일까지 일곱 번째 행사를 열기 위해 바삐 준비 중에 있다.



 광주여성영화제는 영화제가 시작된지 곧 7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주변으로부터 여성영화제가 왜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여성주의가 단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비록 영화제의 시작은 조촐했지만, 영화제가 지니던 문제 의식은 결코 작지 않았다. 지역에서 여성주의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선 매년 일 주일가량 열리는 여성영화제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들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제 기간 외에도 다양한 기획과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주의의 싹을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한 고민을 가지고 시작한 광주여성영화제가 진행했던 사업이 바로 ‘여성영화 해설가 양성과정’이다. 여성영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여성영화 상영회 및 토론회, 그리고 영화에 대한 평론을 작성하는 방법까지 배우는 이 양성과정은 자신들과 함께할 인재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지역에서 여성영화를 통해 조금씩 여성주의에 대한 공감을 넓히기 위해 만들고자 시행했던 프로젝트였다. 다만 2012년에 첫 과정을 진행한 이후 아직 2기 과정이 진행되지 못하고, 과정 이수를 통해 양성된 여성영화 해설가들의 꾸준한 활동 기반을 만드는 것을 고민스러워 했다.


 여성영화 해설가 양성 외에도 광주여성영화제는 또 다른 흥미로운 시도를 진행했다.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광주 지역의 여성영화인에 대한 현황 조사를 실사하고 그 중 21명의 여성영화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 ‘광주지역여성영화인 네트워크’를 결성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 분들이 자신들을 ‘여성영화인’이라 규정지은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들을 ‘여성 영화인’이라 호명하자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연대의식이 생기기도 하는 성과를 얻었어요.”

여성영화 활동가 양성과정처럼 상시적인 활력을 지니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영화제 측은 밝혔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광주지역여성영화인 네트워크는 2015년 6회 영화제 기간에 진행한 ‘관객 이야기 공모전’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지역 여성 감독과 영화인을 중심으로 극영화를 제작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영화인들은 전문성과 지속성에 어려움이 있어요. 이런 문제를 광주여성영화제의 이름으로 함께 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광주여성영화제가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에 참여한 계기 역시 자신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여성주의를 더욱 확대하기 위한 목표와 관련이 깊다. “우리의 경험을 신생단체들에게 공유하고 각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진행하면서 겪은 성과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서 벤치마킹할 수 있길 원해요. 각자 지역에서 어렵게 각개 격투를 하고 있는 여성영화제 일꾼들이 만나서 힘을 얻을 수 있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광주여성영화제는 여성영화제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해 수도권 외 지역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여성영화 관련 아카데미 강좌나 지역 여성영화제에서 활동하는 스태프들의 전문성을 공동으로 기획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영화제를 감싸는 상황들이 결코 쉽지 않은 마당에서 나름대로 인재 양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광주여성영화제는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 드러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앞으로 광주여성영화제는 어떤 길을 모색하고 있을까. “지역 여성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제작지원 사업이나 여성영화 해설가 양성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야죠. 궁극적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광주 지역에서 여성영화 전용관을 만들고 싶어요. 매년 11월에 열리는 우리 영화제 기간이 지역 안에서 여성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공공의 장으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부산여성영화제




 부산여성영화제는 1995년부터 부산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사단법인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이 2009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처음 개최되었다. 비록 1회 행사 이후로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12년에 열린 3회 영화제부터 모금으로 예산을 충당하며 격년으로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2011년에는 같은 지역의 미디어 운동 단체 ‘미디토리’와 함께 공동으로 여성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다큐 <전설의 여공 : 시다에서 언니되다>를 기획, 제작하기도 하였다. 2014년에 4회 행사를 열었던 부산여성영화제는 2016년 5회 행사를 열기 위해 지난 7월 1일 기금마련 바자회 및 경매 행사를 개최했다. 아직 구체적인 5회 영화제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의 모든 영화제가 순탄한 길을 굴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부산여성영화제가 한창 막을 올릴 때의 상황은 온갖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이미 부산에서 오랫동안 열려온 부산국제영화제가 있는데 굳이 우리가 영화제를 만드는 것이 맞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소위 ‘한국의 3대 영화제’라 불리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모든 작품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영화제 만이 구축할 수 있는 특성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여성영화제를 만들자는 제안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운운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내심 충격적이었다.

여기에 부산여성영화제를 기획한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이 여성주의와 관련한 문화 운동을 여러번 이끌었던 전력이 있지만, 막상 영화제를 만드려고 하니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런 저런 고민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왜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은 부산에서 여성영화제를 만들자고 결정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사례를 보며 영화가 매우 매력적인 매체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매체라는 점을 확인했죠. 여성 문제와 젠더 쟁점을 효과적으로 강력하게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바람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또 이제 한국의 여성 운동도 좀 더 다채롭고 상상력이 더해진 형식과 관점을 만들어 가야할 때가 왔다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그렇게 부산여성영화제는 2009년 정부의 지원을 적게나마 받으며 첫 발을 내딛었지만 정작 그 다음해 2회 영화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다시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정부의 지원이 갑작스레 중단된 것이다. 영화제를 더 이상 개최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에산을 줄이기 위해 1회 영화제에서 도입했던 공모전 프로그램까지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를 진행하는 것이 너무나도 벅찼다. 우여곡절 끝에 2회 영화제는 당시 부산 지역에서 ‘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팀과 연대하여 겨우 개최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2회 영화제를 마무리지었지만,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액수 자체가 많지는 않았지만 영화제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정부의 지원이 사라진 상황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지킬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아니, 그 전에 영화제 자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너무나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부산여성영화제는 2012년에 열린 3회 행사부터 부산 시민들의 모금과 사상구청의 극장 대관료 지원을 통해 개최되고 있다. 재정 문제로 영화제가 매년 열리지 못하고 격년으로 열리고 있지만, 부산에서 영화제를 통해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자는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의 희망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산여성영화제는 특히 사상구에서 영화제가 열린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1회 영화제와 2회 영화제가 부산의 번화가인 부산대학교와 서면에서 열렸던 것에 비해, 3회 영화제 이후 계속 거점으로 삼고 있는 사상구는 부산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해운대에 영화의 전당이 생긴 이후 완벽한 부산의 문화중심지구가 되었죠. 반면 사상구처럼 이전부터 문화에서 소외된 지역이 더욱 소외를 받는 문화 편중 현상이 심화되었어요. 부산여성영화제는 그래서 사상구에서 영화제를 여는 것이 지역 안의 문화 격차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상구에서 영화제가 열린다는 것 외에도 부산여성영화제는 영화제의 핵심 요소인 지역과 여성 둘 모두를 살리는 것에 많이 고심을 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지역, 여성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절실하게 바로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것은 물론 영화제를 개최하는 노하우나 어울리는 작품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대부분의 여성영화제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영향력 아래 만들어졌죠. 독립된 프로그램은 만드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어요. 게다가 우리 영화제 공모전에 들어오는 영화 대부분이 여성, 젠더를 말하고는 있는데 대부분 보편적인 무대를 상정하고 있어서 차이와 지역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도 별로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고민 아래 부산여성영화제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바로 2012년 3회 영화제에서 첫 공개한 <전설의 여공 : 시다에서 언니 되다>였다. 부산여성영화제처럼 부산에서 오랫동안 미디어 운동을 해왔던 단체 ‘미디토리’와 공동으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근현대 노동의 역사를 이야기에서조차 쉽게 소외되는 지역의 여공을 다루는 작품이자,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부산 지역에서 여성 노동자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구술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산여성영화제는 작품을 만들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이미지화하는 것이 심각한 오류이자 폭력일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60대 여성이 들려준 얘기처럼 그들은 고통에 흔들리기도 하였지만 즐거움뿐만 아니라 저항정신도 지닌 ‘뿌리 깊은 나무’였던 거죠.”


 인터뷰가 점차 끝나는 가운데에서도 부산여성영화제는 지역에 존재하는 여성영화제들이 지역적인 특색과 여성을 위한 영화제라는 특징을 살리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지역 간 교류가 좀 더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지역 여성영화제들이 재정상 어려움을 겪고 있을 텐데 이 문제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같이 만들어나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 비해 여성영화감독도 줄어들고 있고, 영화 만드는 현장에서 젠더 불평등 문제도 여전히 심각한데, 여성영화제와 여성영화인을 지원하는 문화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 다른 예술 장르도 많은데 너무 편향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



인천여성영화제




 2004년, 인천여성회를 비롯해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던 여성 활동가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접한 이후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도 이런 영화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천 지역에서도 여성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2005년 7월 인천여성영화제는 처음 발걸음을 떼었다.


 현재 인천여성영화제는 ‘모씨네 영화놀이차’라는 이름으로 지역 여성들이 영화를 배우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는 강좌, 이야기가 있는 여성영화 정기상영회 등의 정기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다. 2013년 이후로는 영화제 사무국을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기도 하다.


 또한 인천여성영화제는 곧 열리는 12회 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인천 지역의 유일한 공공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인 영화공간 주안에서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열리는 영화제는 <불온한 당신>, <헌팅 그라운드>, <야근 대신 뜨개질>, <위로공단>, <할머니의 먼 집>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상영할 예정이다.



 “12년 간 늘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왜 여성영화제는 있는데 남성영화제는 없냐.’ ‘이미 인천인권영화제가 있는데 왜 굳이 여성영화제를 하느냐.’ ‘여성영화제에서 여성이라는 말을 떼고 그냥 영화제가 되면 좋지 않냐.’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는 것이 차별이 될 수 있지 않나?’ 여성영화제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겠죠.” 다른 여성영화제들이 토로했던 것처럼, 인천여성영화제 역시 왜 여성영화제가 존재해야 하냐는 질문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나 계속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들어왔으면 이처럼 조목조목 질문을 자세하게 적을 수 있었을까.


 인천여성영화제의 어려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매년 7월 영화제를 열고, ‘모씨네 영화놀이차’와 같은 상시적인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해야 하지만 인력도 재정도 마땅치 않았다.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은 영화제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붓기엔 어려운 환경이에요. 생업을 따로 두고 영화제를 준비해야하기에 매년 영화제를 잘 치러내는 것 자체가 큰 목표이자 노력이죠.” 영화제 초기에는 인천시가 여성발전기금을 지원해 재정적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천시 차원의 지원은 전무해 오로지 시민들만의 후원으로 영화제의 재정을 마련하는 상황이다.


 영화제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을 거치며 계속 인천여성영화제가 거듭해 열릴수록 여성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생기게 되었다. “일반 상업 영화가 익숙한 보통 관객들에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은 ‘힘든’ 영화만을 상영하는 인천여성영화제는 다가가기 쉽지 않는 존재였을 거에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보러가는 관객들은 페미니즘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인천에서 여성영화제를 보는 관객들은 페미니즘을 물론 독립영화나 영화제 모두를 낯설어 했어요.”

그래서 인천여성영화제는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에 좀 더 집중을 기울이게 되었다. 물론 GV는 웬만한 영화제에서 다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인천여성영화제의 GV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학자나 영화 전문가가 아니라 지역에 거주하는 평범한 여성들이 GV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GV를 구성하게 되었죠. 아마추어이니 진행상의 어설픔도 존재하지만 오히려 관객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자신의 경험과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끄집어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어느덧 인천여성영화제의 특징이 되었다고 봅니다.”

인천여성영화제는 그렇게 자신들만이 지닌 특이한 GV 구성을 설명하면서 매우 유명한 구절,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말을 꺼냈다. “페미니즘에서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아포리즘이죠. GV라는 공간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사적 경험을 공적으로 발언하는 주체가 되었고, 여성들의 사적 경험은 여성영화라는 필터를 통해 정치적으로 해석 가능한 담론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전문가가 해석해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후 수다를 통해 관객 스스로 자신의 경험과 위치를 해석하는 역동적인 공간, 이것이 인천여성영화제의 GV입니다.”


 이렇게 영화제의 의도적인 아마추어리즘은 관객들과 영화제 사이의 문턱을 낮추는 좋은 효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월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활동가들이 동시에 지역 여성영화제를 꾸려가는 상황에서 ‘미디어 활동가’로써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동시에 ‘여성 미디어 활동가’라는 흔치도 않고 결코 쉽지도 않은 영역으로 개척해나가야만 했다. 그런 고민들이 있었기에 인천여성영화제는 자연스럽게 지역여성영화제네트워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여러 지역 여성영화제 주체들이 모여 같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힘이 되고 의미가 있었다고 봤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인천여성영화제는 자신들의 큰 목표가 ‘꾸준히 영화제를 지속해나가는 것’과 ‘자신의 사적 경험을 공적으로 발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꾸준히 영화제를 여는 것은 물론 관객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편한 영화제가 되면서도 전문성을 놓치지 않는, 결코 쉽지 않지만 영화제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잡아야 할 요소들을 잡길 바랄 뿐이었다.



제주여성영화제




 제주여성영화제는 제주 지역의 진보적 여성단체이자 2016으로 29주년을 맞는 오래된 여성운동단체인 제주여민회가 2000년부터 꾸준히 개최하고 있는 지역 여성영화제이다. 또한 한국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음으로 두 번째로 열려 꾸준히 이어지는 전통 있는 여성영화제이자,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여성영화제이기도 하다.


 제주여민회는 지속적인 여성운동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한 여성문화운동 전개를 목표로 2000년에 열린 제 1회 영화제의 슬로건을 ‘여성이 만든 여성들의 이야기’로 정한 이후 계속 제주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를 개최하며 여성 문제에 대한 공감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제주여성영화제는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17회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한국 땅 대부분은 문화에서 쉽게 소외되고 만다. 육지에 서로 붙어 있는 지역들도 그런 마당인데 바다를 건너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제주도의 상황이 너무나도 궁금했었다. 하지만 제주여성영화제의 인터뷰는 생각 이상으로 담담했다. “다른 지역에서 개최하고 있는 여성영화제와 대동소이한 환경 속에서 개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개최된 1999년에 이어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영화제를 개최했다는 자부심이 있죠.”

제주여성영화제의 답변을 보고 나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렇게나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떤 의미에선 지역의 상황을 마냥 낮게 인식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부끄러웠다. 비록 제주라는 지역이 문화 운동을 하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춰 움직이며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말한 고민도 다른 지역의 여성영화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역 특성 상 제주 지역은 2차 산업이 매우 미약해서 영화제에 있어서는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매년 예산확보에 어려움이 있어요. 지자체장의 문화적 관심이나 역량 문제로 예산이 삭제되었다가 광역의회 의원들의 협조로 예산 편성 막바지에 겨우 다시 예산이 들어간 적도 여러 번 있었죠. 한정된 인적 자원과 예산안에서 영화제를 개최하는데서 오는 피로감과 매년 영화제 후원 기업을 찾아다니는 일이 영화제 자체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보다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려 영화제 기획에 소홀해 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제주 지역의 상황이라 언급은 했지만 이러한 일들은 서울을 벗어난 지역의 중소규모 영화제들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상황이 된지 오래다.


 또한 제주여성영화제 역시 지역에서 어떻게 여성영화제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여성에 관한 사회적 환경이 제주 지역만 특별한 것은 아니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대한 이해와 문제인식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중성 확보를 위하여 영화의 선정에 있어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할 것인지, 지역 사회에서 공유하기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영화나 페미니즘 문제에 관심이 많은 관객 다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역에서 여성영화제들을 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대중성과 의제 확장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 밖엔 없어 보였다.


 다른 지역 여성영화제들처럼 인력과 예산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서울 다음으로 오래 열린 여성영화제라는 말에서 느껴진 자부심처럼 제주여성영화제 역시 큰 꿈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주 지역에서는 매년 4개의 영화제가 개최되고 있어요. 따라서 왜 우리는 여성영화제를 하려고 하는가, 왜 여성영화제인가를 지속적으로 물으며 동시대를 사는 여성들 간의 연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가능다면 제주여성영화제를 ‘제주여성축제’라는 큰 틀에서 준비하고 싶어요. 일 년에 한 번 제주에서 여성축제가 벌어지고 그 축제의 중심에 있는 제주여성영화제를 만들어 보는 거죠.” 그 꿈이 속히 이뤄지길 바랄 뿐이었다.



천안여성영화제




 천안여성영화제는 천안시와 충남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지역 여성영화제로 매년 7월 초에 열리는 여성주간(현,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첫 막을 올렸다. 충남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처음 시작한 영화제는 2016년 현재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와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문화홀, 야우리시네마로 상영관이 대폭 확대되었으며, 시민이 직접 영화제 행사는 물론 기획에 참여하고 운영하는 참여형 영화제를 모색하고 있다. 2016 천안여성영화제는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열릴 예정이다.




 천안여성영화제는 이번 기사에서 소개되는 영화제들과 다른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가장 역사가 짧은 영화제이기도 하지만, 시민사회운동단체나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었던 다른 지역의 여성영화제와 달리 관의 주도로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타 영화제들보다 상대적으로 예산을 마련하기 수월하지만, 동시에 관의 간섭에 쉽게 휘둘릴 수 있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양날의 칼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천안여성영화제 역시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안여성영화제는 자신들의 행사 정체성을 지역 내 시민들은 물론 여러 여성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영화제’라 소개했다. “지역영화제로써의 정체성을 위한 노력으로 가장 먼저 고민하고 노력했던 부분이 바로 ‘참여형 영화제’였어요. 다른 영화제들과 달리 시상이나 출품은 없지만 대신 해당 기간에 천안 시민을 초청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화 축제를 기획, 운영해왔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영화제 기획에 참여하기도 하죠. 장기적으로는 지역 내 여러 여성단체들과의 네트워크와 영화제 참여를 위한 노력과 고민을 하는 중입니다.”


 작년 천안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래밍에서도 시민들이 참여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 느껴졌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우먼 인 골드>, <하트비트>,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같이 비교적 대중성 있는 작품도 상영되었지만 <카트>나 <마돈나>, <위로공단>과 같이 영화제를 주최하는 관의 차원에서는 껄끄럽지만 분명 여성주의라는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작품도 상영되었다. 심지어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논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낙태나 여성 간 동성애(레즈비언)를 소재로 삼은 작품인 <자, 이제 댄스타임>이나 <어젯밤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같은 작품도 있었다. 다른 영화제라면 딱히 놀랄 것이 없는 구성이지만, 관 차원에서 주도하는 행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쉽지 않은 시도인 셈이다.

또한 대중성 있는 주제를 택하되 좀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을 택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1959년 윤봉춘의 연출작 <유관순>을 틀며 토론 행사를 같이 진행한 것이 바로 그 사례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물론 천안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상징인 유관순을 기리기 위해 상영된 작품이었지만 단순히 기계적으로 추모하는 것을 넘어,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같이 꾸준히 여성 문제를 다뤄왔던 이를 패널로 모시며 유관순을 단순한 독립투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여성’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다각적으로 유관순이라는 존재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지자체장의 성향에 따라 행사의 방향이 휘둘릴 수 있다는 관 주도 행사의 치명적인 약점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딱히 영화제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2015년에 보였던 천안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은 이 영화제가 단순히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식 행사가 아니라, 천안이라는 지역에서 여성주의의 담론을 높이기 위한 모색적인 자세로 평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이 행사가 주체성을 지니고 꾸준히 다양한 프로그래밍으로 지역에 뿌리를 내려 자리 잡는다면, 여느 지역 여성영화제 못지않은 독특한 성격으로 많은 지역 시민들은 물론 여성 영화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영화제가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각 지역 여성영화제의 상황은 저마다 제각기 다르다. 천안여성영화제 같이 지자체에서 주도하는 여성영화제가 있는가하면, 부산여성영화제나 제주여성영화제 같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여성단체가 만든 여성영화제도 있다. 광주여성영화제나 인천여성영화제 같이 여성 활동가들이 미디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따로 단체를 만들어 영화제를 만든 사례도 있다.


 하지만 각 영화제들의 세부적인 상황에 상관없이 인터뷰를 가진 지역 여성영화제들은 모두 공통적인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영화제들이 그렇듯 재정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었지만 또한 고민하던 문제는 지역에서 여성영화에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는 영화제 스태프나 관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광주, 부산, 인천의 사례처럼 이미 지역에 영화제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여성영화제를 만들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들은 곳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여성영화제들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사용해왔다. 광주여성영화제처럼 지역 여성 영화인들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제작 지원부터 모더레이터 양성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화제가 있는 반면 부산여성영화제와 같이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지역과 여성주의라는 맥락을 이으려는 곳도 존재한다. 하지만 각 영화제들이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영화제들 스스로가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 격차, 그리고 여성주의 인식의 격차를 해결하기엔 이미 너무나도 간극이 깊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여성영화제 활동을 해왔던 이들은 몇 년 전부터 계속 뭉치며 고민을 함께 말하다가 결국 네트워크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함께 속내를 털어놓으며 이야기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은 작지만 중요한 변화이다. 이번 ‘작지만 큰 영화제’ 기획을 통해서 지역 여성영화제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말했지만 동시에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꿈꾸기도 했었다. 지역 여성영화제들 간의 강고한 연대를 통해 수도권 외의 여성영화제들이 깊게 정착할 수 있기 바랄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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