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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8호 연재-작지만 큰 영화제] 몫 없는 자들의 몫소리와 함께 – 인천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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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5. 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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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8호 연재 - 작지만 큰 영화제 2016.5.19] 


몫 없는 자들의 몫소리와 함께, 인천인권영화제


넝쿨(인천인권영화제)


인권영화제는 운동일까?


 1996년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서울에서 1회의 인권영화제가 열렸다. 사전심의를 거부하며 영화제를 열었기 때문에 상영장 대여불가 등의 압력이 초반부터 있었고, 2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레드헌트>라는 작품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이유로, 당시 서울인권영화제를 준비하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대표를 구속하기도 했다. 1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 후 14개 지역 도시에서 순회 상영회를 개최했는데, 이때부터 인천에서도 인권영화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21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치뤄지는 2016년에도, 서울인권영화제는 알되, 올해 11월에 치뤄질 21회 인천인권영화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인천인권영화제가 온전히 지역영화제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5회, 2000년부터다. 서울인권영화제의 지역순회상영 형태에서 인천에서 독자적으로 기획, 준비하며 운영한 것이다. 매해 2~5일 전후의 영화제를 진행했고, 시기에 따라서 극장에서, 혹은 거리에서, 회의실과 공연장에서 진행해왔다. 여타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새로운 활동가 모집과 교육에 힘쓰며 반디활동가(집행위원)/소금활동가(자원활동가) 체제를 실험하며 안착시켰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 즈음, 그러니까 2010년부터 인천인권영화제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인천인권영화제를 시작하며 품었던 생각은 ‘인권영화제는 운동일까?’ 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어떤 운동일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대기업이 영화관과 배급권을 독점하고 있는 기형적인 영화산업시장에서 배제되는 인권영화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문화운동일까? 온갖 탄압과 강요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일궈내는 인권당사자들, 현장 활동가들, 감독들과 시민들을 만나게 하는 인권운동의 또 다른 장일까? 영화를 통해서 기억, 감정, 생각들을 인권의 눈으로 읽고 나눌 수 있게 하는 토론과 교육의 장소일까? 아마도 ‘인권영화제’라는 것이 복합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지향으로 두고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어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좁게 시작하면, 나, 여기, 우리로부터.


 사소해 보이는 감정의 흐름과 사건도 인권의 이름으로 읽어내기를 연습하는 것이 활동가 인권학습이다. 매해 소금활동가들을 새로 모집하고 만나게 되는데, 소금활동가들과 처음 함께 하는 활동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인권학습이다. 주로 인권 전반에 대한 개념/역사와 관심 있는 주제(성/생태/평화 등)를 선정해 그 분야의 인권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활동가들끼리 온도를 맞춰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20회 인천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이던 ‘트다, 맺다, 엮다 – 존엄은 약속이다’에서 ‘존엄은 약속이다’라는 말은 그 해 인권학습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개인적으로 무릎을 탁 쳤던 말이기도 했다. 말이나 관념으로 떠도는 존엄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현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지는 구체적인 존엄이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의 과정을 통해 나온 이야기이다. 활동가들은 서로 이렇게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지나며 높낮이 없는 관계를 지향하고 쌓아나가려 노력한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 해의 슬로건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고, 상영작의 작품해설을 쓰고, 대화의 시간을 기획할 때 (나를 비롯하여) 멘붕에 빠지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인천인권영화제는 11회 즈음부터 11월에 진행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슬로건 토론을 하면 마치 각자 느끼는 ‘올 해의 인권흐름’을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해를 돌아보며 토론을 하다보면 좌절하게 되기도 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며 영화제가 올 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리해본다(어느 해에는 슬로건을 정하느라 활동가들이 1박 2일 동안 집에 못 갔다는 소문도 있다). 영화제가 점점 다가올수록 영원히 퇴근을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특히 대화의 시간을 기획할 때가 그렇다. 이 즈음이 되면 영화를 보고 또 보고, 기획안을 고치고 또 고치고도 집에 안가고 고뇌하는 피폐한 활동가들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어떤 현장을 어떻게 인권의 눈으로 읽어 내려가면 좋을지, 감독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어떻게 만나게 하면 좋을지, 상영장 또한 하나의 현장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골몰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교감이 많이 이루어지는 대화의 시간은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이 가장 공들이는 시간 중 하나이다. 



그리고 모두에게서, 결국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운동(運動).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화제라는 것은 영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특히 인권영화제는 인권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존엄을 지켜나가는 인간의 모습이 없다면, 그리고 그들을 담아내는 카메라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단 한명의 관객이라도 만나야 ‘영화제’가 성립이 된다.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인권감수성 확산을 목표로, 대안영상 발굴을 위해 노력하며 모두의 평등한 문화 향유를 위한 무료상영 원칙을 지키며 스무 해가 넘어가는 시간동안 수많은 인권 현장의 당사자들과, 인권활동가들, 영상활동가들, 감독들, 그리고 영화제의 활동가들이 손으로 발로 빚어낸 인천인권영화제는 결국 관객들과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문을 열어온 것이다. 그런데 ‘관객’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결국, ‘인간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열어가는 것이 인천인권영화제인데, ‘인간을 중심에 둔다’라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 살다보니 굉장히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일한 존재가 아닌 타인과 섞여 사는 인간, 그러면서도 독립적인 존재인 인간을 위한 영상, 그리고 자유를 향한 연대를 위해 21회 인천인권영화제는 올해에도 11월에 영화공간주안에서 열릴 예정이다. □






[필자소개] 넝쿨(인천인권영화제)


 대추리, 용산참사 현장 등에서 얼떨결에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다가 미디어 활동가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만나고, 인천인권영화제까지 흘러들어온 인간. 2010년부터 인천인권영화제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속이 되었다. 좀 허세스러운 제목들을 붙여가며 글을 썼지만, 결국 만나서 서로를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인천인권영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들렀으면 좋겠다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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