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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길라잡이] 피로 사회와 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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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5. 12. 2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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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6호 길라잡이 2015.12.26]

  


피로 사회와 먹방        



이수미 (ACT! 편집위원회)



  언제부턴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한다. 내가 말하는 만큼, 당신도 한다. 서로를 탐색할 여유가 없는 당신과 내가 데면데면 일 년을 함께 보내고 이제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감하며 늘 하는 얘기지만, 지난 한 해 우리 정말 성실했는가? 진정 최선을 다했는가? 그런가, 그대? 고개 떨구지 마라. 연말이란 반성을 위해 존재한다. 더 나은 날들을 위해, 내일의 성공을 위해, 우리는 지금 한 해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나약한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한다. 연말이란 그런 거다. 그렇게 보내라 있는 거다.  


  그러나 피곤하다! 해가 바뀐다고 묵은 피로가 일시에 사라지거나 새해와 함께 상쾌한 새날이 둥실 떠오르진 않는다. 언제부턴가 ‘피로’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만성 질환이 되어버렸고, 소아당뇨처럼 조급한 성인병이 되었다. 지난 한 해 당신과 나는 하루 6시간쯤 잠을 잤고, 많은 날의 아침을 먹지 못했고, 하루 중 10시간이 넘게 일터에서 보냈으며, 일주일에 3번 야근을 했다.(*주1)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았고, 일에 지친 동료와 피로회복제를 나눠 마시고 파이팅을 외쳤다.(*주2)

  




            △ 신용카드 광고 중

                  긍정의 과잉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는 당신은 용감한 실천적 주체일 수 있지만,

                  광고에서 당신은 그러한 사유의 힘을 상실한 채 카드를 긁는 소비 행위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365일이란 물리적 시간 속에서 일주일은 때로 하루처럼 지나갔다. 줄어든 그 심리적 시간만큼 우리의 한 해는 버거웠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나가기 위해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자기 암시를 해야 했고,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누군가는 그러한 ‘긍정성의 과잉’이 자신을 소진하고, 피로를 극대화한다고 말한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성과주체로서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하며 피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우울증과 같은 신경성 질병에 빠지고 만다.(*주3)    




   △ tvN[삼시세끼-어촌편], JTBC[냉장고를 부탁해]

       모니터 속에 음식의 향연은 외로움을 배가시키고, 오히려 허기를 부추긴다.

       가족과 휴식을 잃은 사회에서 식탁의 평화는 사라졌다.


  피로와 무기력, 우울증, 그리고 외로움 곁에 남은 것은 끝없는 허기였다. 당신과 나는 TV 앞에 앉아 갖가지 현란한 요리가 퍼레이드 하는 먹방과 쿡방을 탐식했다.(*주4) 혼자 먹는 요리, 집에서 먹는 밥, 요리 전쟁, 맛집 탐방을 두루두루 거치고는 마침내 산골 외딴집에서, 또는 어느 섬마을에서 하루 세끼 밥을 지어 먹으며 소로우의 흉내를 냈다.(*주5) 스스로 사냥하고 농사지은 것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하고 가진 것 안에서 소비하는 가상의 삶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음식이 주는 위안은 근원적이다. 주린 배를 채워주던 젖가슴의 부드러움과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밥상의 따듯함은 감각의 저 아래에 숨어있다 음식의 향기와 온기로 되살아나 피로한 우리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러나 모니터 속에 음식의 향연은 외로움을 배가시키고, 혼자 먹는 밥은 오히려 허기를 부추긴다. 음식이 주는 포만감은 찌개 냄새, 기름 냄새 풍기는 부엌과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둘러앉은 가족들의 온기 속에서 비로소 생겨나기 때문이다. 가족과 휴식을 잃은 사회에서 식탁의 평화는 사라지고 끝없는 식탐만 남았다.  

 

  이제 다시 묻는다, 그대! 지난 한 해 우리 왜 그토록 열열했던가? 무엇을 향해 달려왔던가? 이제 무엇을 향해 나갈 것인가? 


  [ACT!] 96호는 송년호로 꾸며졌다. 먼저, 한 해를 마무리하는 편집위원들의 에세이를 통해 지난해를 돌아보고 삶의 질문들을 이어간다. 편집위원 각자의 삶의 기억과 고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차를 한 잔 준비해서 마주앉는 것도 좋겠다. ‘이슈와 현장’ 첫 번째 순서는 지난 10월 31일 청주에서 열린 미디어컨퍼런스 ‘체인지온 @공룡’의 소식이다. 행사의 섹션별 내용과 후기를 원광대 대안언론 ‘해우소’의 이은지 씨가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슈와 현장 두 번째 순서는 순천 지역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든 극영화 <순천만 아이들>이다. 지난 ‘한국영상문화제전’에서 상영되었던 이 작품은 순천만에 있는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갯벌모형을 위해 채집해온 짱뚱어를 살리려는 아이들과 담임선생님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감독 김민수 선생님과 배우로 출연한 김대희 학생의 글을 통해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이번 호 리뷰 코너에서는 2015년 발행된 [ACT!]를 되돌아보았다. 7년 간 ACT!의 열혈 독자였던 김수지 씨의 우호적인(!) 평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 코너 [Re:ACT!]는 영화 작업을 하는 신지현, 유은정 감독의 목소리를 담았다. [ACT!] 96호는 여기까지다. 

  지난 한 해 [ACT!]를 잊지 않고 찾아주었던 독자들과, 귀한 글을 맡겨준 필자들, 그리고 마감의 무게를 허리 휘게 지어준 편집위원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일은 오늘 보다 행복하기를! □     



*주1: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4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일상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기상 시간은 6시 48분, 수면 시간은 6시간 12분이었고, 응답자 중 55.5%가 아침을 챙겨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55분, 하루 평균 10시간 46분을 직장에서 보냈고, 일주일에 3.5일을 야근했으며, 직장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20.7%였다.(12월 11일 발표) 한편 2014년 한국 갤럽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3분이었고, 올해 통계청 발표(2014년 생활시간조사)에서는 평균수면시간이 7시간 59분이었다. 


*주2: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보고서(2015.12)에 따르면 2013년도 주당 소비 빈도가 가장 많은 음식은 커피로 12.2회,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커피 2잔씩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3: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주4: 먹방은 먹는 방송, 쿡방은 요리하는 방송(Cook+방송)을 뜻하는 신조어


*주5: 현재 먹방, 쿡방에는 MBC의 [찾아라! 맛있는 TV]를 비롯해 [식신원정대],[마이 리틀 텔레비전-고급 레시피], KBS[한국인의 밥상],[해피투게더-야간매점], SBS[결정 맛대맛],[백종원의 3대천왕], tvN[집밥 백선생],[수요미식회],[삼시세끼], JTBC[[냉장고를 부탁해], OLIVE TV[한식대첩],[오늘 뭐먹지?],[Tasty Road] 등 수 십 개에 달하고 포맷도 다양하다. 먹방, 쿡방 외에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먹는 장면, 요리하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방송하고 있어 방송에서 다루는 음식 장면의 비중은 매우 높다. 최근에는 먹방에서 쿡방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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