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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미디어인터내셔널] 그들이 책임을 인정할 때까지, 우리는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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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11. 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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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91호 인터내셔널 2014.12. 01]





그들이 책임을 인정할 때까지, 우리는 거부한다

- EIDF 2014의 이스라엘 특별전 및 후원 거부 운동, 그리고 BDS




성상민(ACT!편집위원회)





  많은 다큐멘터리 애호가들은 매년 여름이 끝나갈 때 즈음을 기대한다. 인디다큐페스티벌, DMZ국제다큐영화제와 함께 한국의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인 EBS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EIDF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선댄스 영화제나 HotDocs 같이 세계 유수의 다큐멘터리 관련 영화제에서 찬사를 들었던 작품이 많으며, 특히 EIDF는 극장 뿐만 아니라 행사의 주최인 EBS를 통해 상영작 대부분이 자사의 채널과 인터넷으로 동시에 상영되는 세계 유일무이의 영화제이기 때문에 서울에 가기 어려운 비수도권 거주자에게 호평을 받는 행사이다. 이렇게 EIDF는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동시에 2004년 처음 개최된 이래 많은 부침과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려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올해 있던 논란은 그전까지 있던 논란과는 차원이 달랐다. 행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8월 6일 사회운동단체와 함께 영화인들이 행사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의사를 내비췄다. 거부의 뜻을 보인 영화인들 중에서는 [송환], [상계동 올림픽]의 김동원 감독이나 [마이 플레이스]의 박문칠 감독 같이 주목받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던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이미 EIDF에 작품 상영이 예정되어 있던 감독도 동참의 뜻을 표했었다. 거부한 이들의 특성은 모두 제각기 달랐지만 그들이 EIDF를 거부한 이유는 같았다. "올해 EIDF에서 열리는 이스라엘 특별전을 취소하고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도 거부하라!“


  사정은 다음과 같았다. EIDF는 다른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매년 다양한 특별전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그간 EIDF의 특별전이 매년 특정한 감독을 지정하여 감독을 모셔오는 동시에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작품들을 돌아보는 형식에 가까웠던 반면 올해 준비된 특별전은 달랐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협력으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감독을 초청하는 ‘이스라엘 특별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특별전을 명목으로 초청된 다큐멘터리는 모두 세 작품은 <슈퍼마켓의 여인들>, <루디의 마지막 유산>, <히틀러의 아이들>로 각각 노동, 근현대사, 홀로코스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작품의 감독들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에서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오던 이들이었다. 또한 작품 상영과 함께 이스라엘 텔아비브국제영화제, 이스라엘의 다큐 배급사 등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인사들이 참여하는 포럼이 예정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비롯한 몇몇 영화 감독들은 이 특별전에 전적으로 반대의 의사를 내비친 것이었다.


  한창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공습으로 논란이 되던 중에 이 사건은 당연히 화두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EIDF와 이스라엘 작품을 거부하는지, 그리고 왜 거부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왈가왈부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논란이 되던 중 사건은 의외로 간단하게 마무리되었다. 행사에 대한 보이콧이 제기되고 약 일 주일 만인 8월 13일, EIDF 사무국이 이스라엘 특별전과 관련 행사를 모두 취소하는 동시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 역시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특별전의 이름으로 상영이 예정되어 있던 작품들은 상영되지만 최소한 작품들에 '특별전'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는 동시에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도 철회했다는 점에서 EIDF 사무국이 거부하는 이들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확실했다. 요구했던 사항이 받아들여지자 EIDF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환영의 성명과 함께 보이콧을 취소했고 행사는 정상적으로 개막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표면적인 논란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을 것이다. 대체 왜 이스라엘의 작품들을 거부해야만 하는가? 그러한 행동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어떻게 시작되어 한국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일까. 이번 EIDF 이스라엘 특별전 거부 운동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거부 운동의 기반에는 'BDS'라는 이름의 이스라엘의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행동들을 막기 위한 전세계적인 운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BDS 운동을 상징하는 마크





  BDS는 각각 거부, (투자) 철회, 제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Boycott, Divestment, Sanction의 약자에서 딴 일련의 흐름이다. 이 세 단어가 의미하는 행동들은 마치 노동 운동이나 일반적인 사회 운동이 부당한 조직이나 정책, 사건에 저항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행동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약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침탈과 인권 침해를 규탄하기 위한 운동이 자기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운동은 2005년 7월 9일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이스라엘에 관련된 것들을 거부하고, 각국 정부에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 관련 계약의 철회와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호소하면서 시작되었다. BDS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행동에 사과하는 대신 뻔뻔스러운 자세로 더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성을 듣기 시작할수록 더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한국에는 이번 EIDF 거부 운동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지난 6월 20일 미국 장로교회에서 친이스라엘적 행태를 보인 HP(휴렛패커드), 모토로라 등의 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약 2100만 달러(214억 원) 어치의 주식 매각을 결정하고 노르웨이 정부가 연기금 투자에서 이스라엘 무기제조 업체를 제외시키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태이다. 이번 글에서는 BDS의 운동 갈래 중 문화적인 차원에서 벌어졌던 운동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이력들을 다루고자 한다.


  2005년 운동이 제안된 이후 2009년 2월 [상실의 시대]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스라엘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 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어 상을 받으러 갈 때 일본의 BDS 단체인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에서는 공개적으로 상을 받지 말 것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비록 하루키는 상을 받았지만 그는 수상 소감에서 대놓고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맹비난하는 등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난 것은 2009년 7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 행정수도인 라말라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유태계인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레너드 코헨(Leonard Norman Cohen)의 콘서트를 저지한 사건이었다. 당시 저지 운동을 주도했던 단체는 BDS 운동이 본격화되기 약 일 년 전에 창설된 라말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학자와 지식인 그룹인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학술 보이콧 캠페인 팔레스타인 본부’(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 이하 PACBI)였다. PACBI는 레너드 코헨이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에게 찾아가 위문 공연을 하는 동시에 공공연히 그들의 전쟁을 지지하는 표현을 했던 것을 문제 삼았다. 또한 라말라에서 벌어지는 콘서트는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콘서트와 이어지는 것이었기에 그 저의를 의심했다. 결국 콘서트의 주최자는 ‘콘서트가 너무 정치화되었다’는 이유로 행사를 전면 취소하였다. 이후 2010년에는 약 60여명의 이스라엘 연극인들이 이스라엘이 강제로 만든 팔레스타인 정착지에 설치된 극장에서 공연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EIDF처럼 영화제에 대한 반대 운동 역시 계속되었다. 2013년에는 영화 [몬순 웨딩]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성으로는 물론 인도인으로써도 최초로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감독 미라 나이르가 자신의 신작을 초청한 이스라엘 하이파 영화제의 참석을 BDS 운동에 동참하는 것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EIDF 보이콧 운동이 벌어진지 한 달 후인 8월 29일에는 영국의 브리스톨 영화제가 주영 이스라엘 대사관이 요청한 이스라엘 영화 제작자의 영화제 참석을 위한 이동비 지원을 거절하는 일이 있었다. EIDF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비교적 조용하게 넘어갔던 것과 달리 브리스톨 영화제의 이동비 지원 거부에 대해서는 영국의 이스라엘 대사관 대변인이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실망의 뜻을 표했지만 브리스톨 영화제의 뜻은 굽혀지지 않았다. 이외에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 영상물의 상영회가 거부 요청을 받거나, 그 요청을 받아들여 취소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화적인 차원의 BDS 운동은 2009년 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스라엘에서 주는 상을 받기를 반대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내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 행사 및 공연에 해외 게스트의 참여를 반대하는 식으로도 퍼져나갔다. 2010년에는 배우 멕 라이언와 더스틴 호프만이 예루살렘 영화제의 게스트 참석에 대한 거부 요청을 받고 불참석을 결정하는 일이 있었다. 2012년에는 매년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음악 행사인 ‘홍해 재즈 페스티벌’(Red Sea Jazz Festvial)에 참가하는 재즈 아티스트에게 행사 보이콧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였고 그 결과 미국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즈 밴드 ‘튜바 스키니’(Tuba Skinny)가 공식적으로 참가를 취소하는 일이 있었다. 같은 해 한국에서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행사에 초청받은 한국인 재즈 가수 나윤선에게 공개적으로 홍해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일이 있었으나 EIDF 거부 운동과는 달리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거부 운동이 마무리되었다. 또한 EIDF에 대한 보이콧 사태가 있기 바로 한 달 전 7월에는 가수 닐 영(Neil Young)의 이스라엘 텔아비브 콘서트를 저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비록 닐 영은 자신의 콘서트가 평화를 위한 것이며 콘서트의 수익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청소년을 위해 기부할 예정임을 밝히면서 콘서트 개최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콘서트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인한 보안 위기로 인해 취소되고 말았다.


  이렇게 2005년 시작된 BDS 운동은 미국, 유럽을 넘어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해서 모두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있던 반유대주의의 새로운 등장이라 비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도 이스라엘과 똑같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평화를 지체시키는 일이나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1년 미국에서 설립된 가수 단체 ‘평화를 위한 창조적인 커뮤니티’(Creative Community for Peace)에 저스틴 팀버레이크, 레이디 가가, 셀린 디온, 제니퍼 로페즈 등이 가입해 공개적으로 BDS 운동에 대한 반대 성명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번 EIDF 보이콧 운동을 보면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번 EIDF에서 초청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는 현지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사람들이고 다큐의 주제들 역시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왜 굳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를 찬양하지도 않는 이런 작품들에게 불똥이 튀어야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문들에 대해 지난 9월 16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활동하는 반디 씨는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 글 보기)에서 이렇게 답한바 있다.


“단지 이스라엘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와 다른 입장을 가진 시민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때로 우린 의도하지 않았으나, 폭력적 현실 앞에서 침묵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권력자(가해자)에게 힘을 실어 준 꼴이 될 때가 있다.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5대 5의 눈길을 보내며 객관을 가장한 판관 짓을 함으로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현실에 동참하게 될 때가 있다. (중략) 다큐멘터리는 시대의 진실과 진정성을 담지 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다. 마치 1910-40년대 한일 양국에서 나왔던 각종 문예 작품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칭찬하지는 않았으나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방관하거나 일부러 무시했던 작품들은 직접적으로 찬양했던 작품들보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도 시대에서 도피해 제국주의의 흐름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흐르게 놓아두었다는 전반적인 평을 받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의 문제적 행위를 칭찬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그에 대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는 동조하는 것으로 밖에 여길 수 없다. 게다가 ‘평화’를 전면에 내걸면서 이스라엘의 그러한 행동에 방관한다면 더욱 아이러니한 처사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10월 2일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공습을 중단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사과는 당연히 없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행동을 용서하고 행동하기 전까지 BDS 운동 또한 계속될 것이다.




[참고자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http://pal.or.kr/)

http://en.wikipedia.org/wiki/Boycott,_Divestment_and_Sanctions

http://en.wikipedia.org/wiki/Palestinian_Campaign_for_the_Academic_and_Cultural_Boycott_of_Israel

http://www.bbc.com/news/uk-england-bristol-28981867

http://www.bdsmovement.net/2010/meg-ryan-and-dustin-hoffman-cancel-participation-in-israeli-film-festival-2-2487

http://variety.com/2014/music/news/neil-young-cancels-tel-aviv-concert-due-to-israel-security-crisis-1201261886/

http://spme.org/boycotts-divestments-sanctions-bds/award-winning-director-boycotts-haifa-film-festival-to-protest-apartheid/1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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