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89호 이슈와 현장] 우리는 찍을 권리가 있어!

전체 기사보기/이슈와 현장

by acteditor 2014. 6. 5. 10:59

본문

[Act! 89호 이슈와 현장 2014.06.25]


우리는 찍을 권리가 있어!

-4월 <한독협 회원의 날>에 다녀와서


송이(다큐멘터리 감독)


  나는 참 소심한 사람이고 싸움을 지극히 싫어한다. 내 촬영자리를 자꾸 침범하는 채증경찰에게 좀 옆으로 가달라고 상냥하고 조심스럽게 말할 만큼, 웬만하면 다툼을 피하는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꽤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대부분 심정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을 해왔다. 내 카메라를 반겨주는(적어도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찍어왔고, 물리적으로 격렬한 환경에선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선에서 도태되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촬영을 방해받거나 위협받은 적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렇지만 머릿속으론 종종 그런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곤 했다. 미리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하다가 촬영기회를 날려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날로달로 뻔뻔해지는 자본과 공권력의 작태를 보아하니 언제까지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 속이었음에도 나는 똑 부러지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찍을 권리가 있어라는 제목으로 현장의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을 때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어떤 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행사 당일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이 날 한독협 회원의 날 행사는 나는 찍을 권리가 있어란 제목으로 다큐멘터리스트 혹은 영상활동가들의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에 의해 촬영을 방해받는 현장의 상황과 관련한 이야기, 인터뷰이 등 영상의 등장인물과의 관계와 관련한 이야기, 공공장소에서의 촬영과 관련한 이야기 등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찍을 권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격렬한 사회적 갈등현장에서 현장의 카메라들이 경찰에게 방해받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고 단순한 방해를 넘어 모욕과 위협도 흔히 자행된다. 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무슨 법이니, 무슨 처벌이니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모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된 것은 공권력의 촬영 방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 현장에서의 촬영권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들이 말하는 (경찰에 대한) 초상권 침해 및 모욕죄는 법적으로 성립자체가 안 되는 이야기이며-국가기관 및 공무수행중인 공무원은 기본법을 보호하는 주체이지 기본법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막무가내 식 채증활동은 대법판례에 명시된 영장없이 가능한 촬영의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법의 측면이 있지만 관등성명 대지 않는다거나 휴대전화카메라로 촬영하는 등의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불법이라고 말하기에 애매한 점이 있다. 또한 공무집행방해 건에 대해서도 개별사안마다 다르게 판단되는 지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경찰의 초상권침해나 모욕은 개소리지만 다른 부분들은 법적으로는애매한 부분이 있고, 지금 한국은 국가기관이 국민은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성립이 불가능한대도!) 이상한 나라이기 때문에 직접 부딪치는 현장에서 서로 대거리를 할 때야 몇 마디 더 얹을 수는 있어도 결국 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장의 카메라들에게 필승의 전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의 경찰들은 법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을 따르기 마련이고, 법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법을 잘 몰라서 대응근거를 잘 찾지 못하나 싶었는데, 사실 알아도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법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관련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겠지만, 지금, 당장, 여기에서는 결국 당사자의 임기응변에 기대야 하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경순 감독이 발표한 <애국자 게임>의 사례는 합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결국 촬영을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찍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데, 실제로 민형사상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합법과 도덕의 논리로 위축되면서 그런 권력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폭력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 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푸른영상 김준호 감독


  그래서 찍는 대상이 사적인 개인일 경우 혹은 불특정 다수인 경우 또 다른 측면에서 고민이 생긴다. 찍히는 대상이 나와 (친밀한)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 경우 실제로 법적인 부분은 그다지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물론 계약서라는 방식으로 촬영자와 촬영대상자간의 권리와 책임을 명시할 수는 있고, 그것은 법적인 효력을 갖겠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정말 법적다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해외에서는 작품의 수익배분과 관련해 등장인물과 제작진간의 소송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그것도 독립다큐멘터리로 수익배분과 관련한 싸움이 일어날 여지는 거의 없고(이것은 다른 의미로는 매우 슬픈 현실이다), 촬영도중이나 작품 완성 후 상영과 관련해 갈등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제작자로서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법적으로 다툴 수 있을까? 이것은 특히 대중적인 공개에 민감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했을 때 쉽게 벌어질 수 있을 텐, 워낙 작품마다 다양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뭔가 표준적인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듯싶다. 내가 고민이 되는 지점은 오히려 불특정 다수를 촬영할 때이다. 이번 자리에서는 많이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박소현 감독의 사례가 이런 고민을 다루고 있었다. 망원시장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주인공을 팔로우 촬영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와서 자기는 찍히면 안 된다며 편집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는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만약 어떤 작품의 촬영과정에서 군중 리액션 컷으로 찍히게 된다면 나와선 안되는 것까진 아니겠지만 내 동의를 직접적으로 얻지 않았다면 매우 불쾌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오픈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찍을 때 미리 사전고지를 하지 않고 촬영한다. 심지어 줌으로 당겨서 단독 샷으로 찍기도 한다. 하지만 촬영 전에 동의를 얻기도 좀 애매하다. 내가 그 화면을 몰래 촬영한 것도 아니고 악의적으로 사용할 것도 아니지만, 내가 촬영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불쾌할 것 같기 때문에 찍긴 찍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지 궁금했는데 별로 이야기되진 않았다. 이걸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걸까?

 

▲ 토론을 하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정록 활동가


  소심한 마음과 싸움을 피하는 성격, 카메라에 찍히기 싫어하는 마음의 3박자를 고루 갖춘 나는 실제로 촬영을 할 때는 그냥 하긴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이것저것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울타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정말 싸워야 할 것에 대해 제대로 싸우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는 실제 사람과 면대면으로 싸우는 게 정말 싫은데 어쩌지? 이와 관련해 해외 사례를 보면, 이집트 혁명을 다룬 <더 스퀘어 (Al midan)>란 작품의 경우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촬영본을 압수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메모리카드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공유했다고 한다.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사실 난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 써먹을 만한 방법들을 좀 알고 싶어서 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행사 참여자분들이 법적인 부분에 대한 궁금증들이 많아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선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개인적으론 좀 아쉬웠다. 다큐멘터리스트의 찍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모여서 하자고 한 이유는 찍을 권리에 대한 보장과 쟁취가 개인의 배짱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함께하자는 의미였을 테고, 그런 측면에서 김일숙 활동가가 말한 한독협 차원의 불공정 저항기금같은 제안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독립영상활동에 대한 기본원칙 혹은 정책 등에 대한 정리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 개인들이 사용할만한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도 좀 더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덜컥 액트의 원고청탁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 나 글 못 쓰는 사람이었지.’ 다른 사람들은 카메라 찍지 말라고 할 때 어떻게 대처하나 노하우 좀 배워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에서 참석한 자리였고, 기대했던 것은 많이 얻지 못했지만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있었던 고민거리를 다시 끄집어내게 된 이야기들이었다. 어설픈 글로 지면을 채우게 된 액트에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며, 현장에서 고생하는, 앞으로 고생할 카메라들과 그리고 소심한 나에게 던지는 말. “우리는 찍을 권리가 있어!” □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