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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를 퀴어링: LGBTQ+ 대담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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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22. 4. 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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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국제 다큐멘터리 협회(International Documentary Association) 사이트에 게재된 Jessica Devaney의 글, <Queering Documentary: An LGBTQ+ Convers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 https://www.documentary.org/online-feature/queering-documentary-lgbtq-conversation)
본 대담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다큐멘터리 창작에 관한 퀴어로서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나눕니다.

본 기사의 내용은 ACT!가 지향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고,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다양성과 당사자로서의 퀴어 재현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번역했음을 알립니다. 다음 기사는 전문의 처음 부분이며, 순차적으로 뒷부분이 총 여섯번에 나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This article is a translation of Jessica Devaney’s writing, originally posted at the website of ‘International Documentary Association’. (https://www.documentary.org/online-feature/queering-documentary-lgbtq-conversation )
In this conversation, documentary filmmakers share their experiences and thoughts about making documentary films as queer.


ACT! is a non-profit Korean media activism journal that aims to promote progressive values. This article resonates with our agendas and needs to be discovered by the people in Korea who embrace diversity as their core value and play a part in cultivating better queer representation in documentaries. The following article is the first part of the whole text and the rest will be published in six articles in order. 

 

"나를 포함한 우리는 모든 것을 분리하게끔 조장하는 체제 안에서 자랐다. 대담에 참여하는 모두가 똑같이 느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 공간에서 우리는 퀴어이고, 또 한 공간에서는 아시안계 미국인이며, 다른 공간에서의 나는 오스틴에서 온 영화 제작자이다. 그러던 일순간, 나는 나를 위한 총체성이 있어야 하며 모든 것에 일체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ACT! 129호 미디어 인터내셔널 2022.04.11]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LGBTQ+ 대담 - 2

 

번역: 한진이 (ACT! 편집위원)

 

(128호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LGBTQ+ 대담 - 1' 기사에서 계속)

 

당신은 퀴어 영화 제작자인가, 영화 제작자인 퀴어인가?” 

 

얀시 포드: 내 생각에는 질문의 심부에 누군가의 온전한 자아(whole self)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려내지 못한 집단적 상상력의 실패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어떤 한 부분을 다른 부분들로부터 떼어내지 못하게 하는 불가능성 안에 감독, 편집자, 제작자(업계의 어떤 부분에 둥지를 틀었든)로서의 강점이 존재한다.

 

어쩌면 질문 자체가 질문하는 당사자가 무엇이 누군가를 그 사람으로 만드는지 충분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 하다. 만약 충분히 고심했다면 보다 간단하게 “(빈칸)을 만드는 것은 어땠나요?” 질문했을 것이고, 나는 나의 모든 부분 가운데 (빈칸)을 만드는 데에 관여한 부분을그것에 눈에 보이든 아니면 <스트롱 아일랜드>의 경우처럼 눈에 보이지 않든동원하여 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꽤나 늦게 커밍아웃한 탓에, 사람들은 종종 “<스트롱 아일랜드>는 퀴어 영화가 아니야.” 말한다.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렇다. “흥미로운 시선이네요.” 나는 절대 논쟁하는 법이 없지만, 그 안에는 정체성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다중 자아(multiple selves)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훨씬 더 확장적인 이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영화 제작 기술(craft of filmmaking)을 논하는 방식의 일부이기를 바란다.

 

▲ 퀴어 다큐멘터리 영화 <스트롱 아일랜드>의 한 장면 (출처: 선댄스 영화제 홈페이지)

 

 

비리디아나 리버만: 웃기게도 이 질문은 매번 내 뇌에서 합선을 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말한 모든 것이 내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나는 엄청난 할리우드 팬으로, 영화와 관련한 모든 것을 읽었다. 스필버그 포스터를 가진 애, 그게 나였다. 옛 할리우드 영화에 깊게 세뇌되어 있던 탓에, 빡빡 민 머리, 카고 반바지와 탱크탑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영화 제작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 영화 만들어, 그냥 그런 식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미 당당하게 커밍아웃한 상태이긴 했지만, 여전히 부끄러움 비슷한 것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집단 안에서도 나는 그냥 영화 제작자야. 이게 나고, 이게 내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고, 이게 내 견해(eyes)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청소년기의 나에겐 간절히 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고, 내가 지금에 와서 그것을 만드는 유일한 이유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이야.” 생각하게 된다.

 

이본 웰본: 사람은 자기가 되는 방법 밖에는 알 수 없고, 따라서 솔직한 심정으로 이 질문이 싫다. 가령, 흑인 여성이 된다는 것은 어떤 감각이냐고? 글쎄, 나는 흑인 여성 외에는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다른 어떤 감각이 가능했을는지 모르겠다.

 

퀴어 공간은 내 모든 정체성을 끌어 안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아프리칸-아메리칸 공간에서는 종종 나의 퀴어됨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나의 정체성 때문에 가능한 기회도 있는데, 특히 LGBTQ+ 세계 안에서 그렇다. 그야말로 포용의 공간이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도 한계가 있다. 어떤 공간으로 들어갈 때, 나의 경우에는 흑인 여성으로서 들어갈 때, 일련의 가정(assumptions)이 만들어지며 때로 그러한 가정은 여전히 존재하는 일부 고정 관념과 결합하여 기회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흑인 여성 과학자에 대한 시리즈를 만들고자 염원하던 때가 기억난다. 나는 맥도날드 해피 밀 장난감을 만든 여성을 찾아냈다. 매우 흥미롭고 든든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흑인 여성에 대한 영화에는 필히 병리(pathology)가, 일종의 문제가 있어야 했다. 긍정적일 수는 없었다.

 

 

제시카 데바니: 여러분 중 몇몇은 이미 다중의 정체성을 보유하는 것과 다중의 정체성에 걸쳐 주변화(marginalization)를 경험하는 것이 어떻게 희망하는 작업에 요구되는 접근성, 기회, 개인의 능력을 형성하는지 말한 바 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과 퀴어 미래주의(queer futurism)를 고려할 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다양한 정체성에 걸쳐 더 나은 동맹을 형성할 수 있는가? 특히 우리 모두가 함께 일할 때 소수자가 다수자가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앨라이십(allyship, 소외된 이를 위한 연대)을 통해 어떤 조직적 혹은 창의적 가능성이 구축될 수 있는가? 린지, 나는 포워드 독과 당신의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 세트와 미등록 이주민 영화 제작자 단체의 작업을, <시스터즈 인 더 라이프(Sisters in the Life)>에 담긴 이본의 심도있는 연구 및 시스터즈 인 시네마와의 현재 진행형 작업을, 피제이와 에이-독의 협업을 생각하고 있다.

 

 

이본 웰본: 실로 중요한 질문이기에 웃음이 난다. 사회 정의 운동과 신앙, LGBTQ+ 삶의 교차점을 응시하는 흑인 주도적이며 퀴어한 다큐멘터리, <더 뉴 블랙(The New Black)>과의 경험이 먼저 떠오른다. <더 뉴 블랙>은 초-교차적(super-intersectional) 영화로, 프레임라인(Frameline), 에이에프아이 독스(AFI Docs), 휴먼 라이트 워치(Human Rights Watch), 필리 큐 페스트(Philly Q Fest), 어반월드(Urbanworld) 등의 다양한 영화제를 몇 년에 걸쳐 순회했으며, 곧바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정말 훌륭하다.

 

문제는, 첫 순회에서, 백인 남성이 프로그래머로 있는 대부분의 성 소수자 축제가 이 영화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가 채택되는 데에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흑인 영화제의 경우, 영화를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금방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흑인에게는 너무 퀴어하고, 퀴어에게는 너무 흑인인 것.

 

종내에는 모든 곳에서 상영될 정도로 좋은 영화였지만, 그 모든 일이 단숨에 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마, 당신이 그리는 유토피아 세계에서는, 잠시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치를 바로 깨닫는다.

 

▲퀴어 다큐멘터리 영화 <더 뉴 블랙> 의 한 장면 (사진 출처 :&nbsp; 국제 다큐멘터리 협회)

 

“네 몸은 무엇인가?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네가 가지지 않은 것은?

 

피제이 라발: 퀴어 영화 제작자라 호명되는 것에 대한 이전 질문을 생각하니 재미있다. 나는 내가 백인 영화 제작자가 아님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필리피노-아메리칸 혹은 필리핑스 영화 제작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용어들을 사용하여 정체화한 이래 내가 받은 질문과 출연을 요청받은 패널이 젠더와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인종과 이민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모든 것을 분리하게끔 조장하는 체제 안에서 자랐다. 대담에 참여하는 모두가 똑같이 느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 공간에서 우리는 퀴어이고, 또 한 공간에서는 아시안계 미국인이며, 다른 공간에서의 나는 오스틴에서 온 영화 제작자이다. 그러던 일순간, 나는 나를 위한 총체성(wholeness)이 있어야 하며 모든 것에 일체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전 대답으로 돌아가서, 내가 항상 퀴어라는 단어에 애착을 느꼈던 이유는 거기에 매우 정치적인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역사와 정체성은 대부분 대립(opposition)에, 정치적 저항(resistance)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화 산업을 말하자면, 내가 제대로 된 LGBTQ+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LGBTQ+ 공간 안에 몇 번이나 있었는지 말로 할 수 없다. 다수의 단편 서사 영화를 제작 중이던 대학원생 시절, 게이 소년이 등장하는 코미디를 만들라며 나를 부추기던 다음의 대화를 기억한다. “이목을 끌고 싶으면 지금 만들고 있는 서사들보다 이런 걸 만들어야 돼.”

 

솔직해지자. LGBTQ+를 말한다고 하여 반드시 교차적 사고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여전히 매우 이성애 중심적(heteronormative)일 수 있고, 동성애-국수주의자(homo-nationalist)일 수 있으며, 여전히 자본주의자일 수 있다.

 

 

린지 드라이든: 이본, 당신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즉시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됨을 의미하는 퀴어 미래주의에 대해 말했다. 이를 생각하니 조금 북받쳐 오른다. 우리가 다큐멘터리 공간에서 장애에 관련하여 진행하는 많은 작업이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점이 가치 있으며 우리의 몸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제이, 당신이 말한 퀴어 정치, 그리고 퀴어가 의미하는 바와 우리가 장애인과 장애를 가진 몸을 위해 건설하고자 하는 미래 사이에 상당한 중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적 공간 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존재는 모두에게 이롭다. 이는 지속 가능성에 관한 것이고, 편리하거나 다듬어진 부분만이 아닌 온전한 인간 주체(whole human selves)가 될 수 있게 하는 작업 실천에 관한 것이다.

 

 

샘 페더: , 많은 생각이 든다. 트랜스임에 좋은 점 중 하나는 우리가 나이, 인종, 민족, , 국적, 종교, 장애(ability) 등 가능한 모든 인간 정체성의 교차점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우 작은 공간으로 축소되었으며 종종 그 경계를 따라 조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맞다, 트랜스 포용에 대한 퀴어 공동체 내의 반발은 비밀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확실히 많은 것이 변했다.

 

특히 트랜스 스토리텔링과 관련하여, 심지어 퀴어 공간 안에서도 여전히 슬픔에 대한 열망과 트랜스를 주변화하고 소외하는 권력 역학을 유지하는 접점(access point)에 대한 열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는 네 몸은 무엇인가? 네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네가 가지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하면 너에 대한 나의 지배력을 유지하며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로 대표되는 트랜지션 서사이며 우리가 빈번하게 맞부딪히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이것이 트랜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본, <더 뉴 블랙>과 관련하여 당신이 겪어야 했던 일에 속이 메스껍기까지 하다. 모든 퀴어 축제에서 내 영화를 빼버리고 싶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우리는 의사 결정자들에 영향을 미치는 힘의 역학을 끊임없이 의문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변화 없이는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LGBTQ+ 대담 - 3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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