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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8호 인터뷰] 노동 영상의 역사, 노동자뉴스제작단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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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4. 4. 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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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8호 인터뷰]


릴레이 안부인사(3) 

노동 영상의 역사, 노동자뉴스제작단을 만나다: 박정미, 배인정

 

진행 및 정리: 김주현, 개미 (ACT! 편집위원회) 

 

[편집자주] 독립영상집단을 만나보는 릴레이 안부인사가 어느덧 세 번째 코너를 맞습니다. 이번에는 노동자뉴스제작단을 찾아가보았습니다. 1989년에 만들어진 노동자뉴스제작단은 한국 미디어운동의 역사를 정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이름입니다. 2007년에는 극영화 제작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소식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활동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활동 소식이 뜸한 만큼 걱정반 기대반으로 찾아갔는데, 걱정과는 달리 지금도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찾아갔을 때도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습니다. 그 덕분에 인터뷰 진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역사 깊은 단체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책장에서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이라는 DVD를 발견하고 냉큼 한 장 사왔습니다. 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이라니 이런 작업을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아니면 그 어떤 영상 단체가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은 현재 인력난 재정난 등의 문제로 상황이 좋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오래 지속해서 노동운동의 든든한 기록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선동가로 계속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무실 앞에서 배인정 님(오른쪽 위), 박정미 님(왼쪽 아래)



ACT!: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은 어떻게 해서 처음 만들어졌나?

 

배인정(이하 인정): (노뉴단이 만들어진) 89년도 당시는 노동운동에서 대중 층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87년에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고, 수십 군데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나 요구를 주장하고, 안되면 파업 등 단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영상을 하던 친구들 중에 서울대 얄라셩’, ‘들풀이나 민족영화연구소가 있었고, 저는 서울영상집단(이하 서영집)’ 대표로 있었다. 대중운동이 활발했지만 기존 언론에서는 별로 안 다뤄지고 있어서 우리가 만나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노동자 투쟁들을 빨리 담아내자면서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연대감도 높이자고.

  893월에 첫 작품이 나왔다. 처음에는 노동자 뉴스를 만들기 위한 특위체 형태로 만들어졌던 것인데, 지금은 30년이 다 되어 간다. 실제로 노뉴단을 시작했던 해에 다양한 투쟁들이 많았다. 굉장했다. 그때 3월에서 8월까지 6~70분 되는 노동자 뉴스 4편을 만들었다. 꼭지가 열 몇 개씩 되었다. 자본이나 정권에 대한 폭로를 만화로 만들기도 하고,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무식하게 만들었다. 7~8명 정도가 있었고, 많을 땐 열 명 가까이서 활동했다. 그 이후에는 그다지 뉴스를 만들지는 않았다.

특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향후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들풀 쪽에서는 뉴스를 만들자고 했고, 서영집 사람들은 기획물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길이 갈라졌다. 그렇게 서영집이 분리가 되고 3~4명이 다시 노뉴단 이름을 걸고 활동하게 됐다.

 

ACT!: 박정미 감독이 노뉴단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뭔가?

 

박정미(이하 정미): 저는 노뉴단 시작하고 10년 후에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982월부터 활동을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얄라셩에 있었다. 그 때부터 극영화보다는 다큐 쪽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다큐멘터리를 하고,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게 별로 이상한 생각은 아니었다.

 

ACT!: 선배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노뉴단 활동을 시작하신건가?

 

정미: 아니, 면접 보고 들어왔다. 취직이 됐으면 노뉴단 일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졸업반일 때는 꼭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영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카메라 기자 시험을 봤다가 면접까지 갔는데, 그 때는 사람을 딱 한명 뽑았다. IMF 직후였고, 취업난이 극심했다. 당시에는 노뉴단이 꽤 안정적이었고 회원들에게 상근활동비를 막 지급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ACT!: 당시에는 노뉴단 멤버가 몇 명이나 있었나?

 

정미: 그 땐 많았다. 7명 정도.

 

ACT!: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정미: 현재 노뉴단에서 하는 작업들을 열거하자면, 철도노조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326일에 상영할 영상물 작업, 쌍용차 노조 5년간의 투쟁을 정리한 교육용 영상의 대본작업, 다음 주에 있을 화물연대 집회에서 조합원들을 조직할 목적의 선동물 작업, 미조직비정규노동자들 조직에 있어서 조합원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 한다는 금속노조 교육용 영상, 일반 시민들에게 화물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알려 법 제도 개선 개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홍보 영상 작업,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조합원 교육 시간에 쓸 영상 기획과 작업 준비,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교육용 영상 기획, 특수고용 9개 직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민주노총 교육영상 만들어뒀던 것을 열린채널 방송용으로 노동부 입장을 1분 추가하는 작업,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반기 노동안전보건 교육용 영상 기획,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50년사 역사를 담는 영상 작업 등이 있다. 그리고 노뉴단 성원 한 명은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는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사내방송이 있는데, 일주일에 이틀씩 그 쪽 공장으로 출근해서 방송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또 금속노조 경남지부 홍보 비디오도 아직 작업 중이다.

 

ACT!: 지금 안쪽에서 (배인정 님이) 여성영화제 작업하신다는 건 어떤 내용인가?

 

정미: 기륭전자 노동자 이야기로 여성영화제에 내려고 작업 중이다. 정규직화 했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해놓고 노동조합 몰래 회사가 사무실을 빼서 야반도주했다. 사실 합의할 때부터 나중에 사기칠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지만. 정말 웃기는 코미디 아닌가.

 

ACT!: 정말 작업량이 어마어마하다. 아까 이야기로 조금 돌아가서, 처음에 노뉴단 들어오셨을 때와 지금의 노뉴단은 달라진 점이 있나?

 

정미: 그때도 지금과 비슷하게 노동조합에서 필요한 영상을 만드는 작업들이 많았다. 지금과 제일 다른 것은, 그때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상적으로 촬영을 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당시에는 일상촬영을 많이 했다. 그 때는 IMF 직후라 구조조정이 많아 노동자 투쟁도 거의 매일, 매 주말 있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중요한 일이 있으면 가서 찍곤 했다. 98년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때문에 36일간 공장에서 파업을 했는데, 그러면 노뉴단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현장에 가서 붙어있기도 했고, 그 해 9월에 만도기계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는데, 그 때도 바로 가서 찍었고. 그런 촬영이 활발히 있었다.

 

ACT!: 초기에는 뉴스를 만들면 어떻게 배포가 이루어졌나?

 

인정: 그 때는 비디오를 만들면 가방에다 몇 십 개씩 담아가지고 다녔다. 많이 나갈 때는 VHS 테이프가 3~400개씩 나갔다. 맨날 포장해서 우체국을 다니곤 했다.

 

ACT!: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나?

 

인정: 직접 만나니까 아무래도 그랬다. 현장에서 무척 좋아했다. 노동자 뉴스 보여준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교육이 안 될 정도였다. 투쟁 천막 같은데서 상영을 하고 함께 봤다. 뉴스 1호가 나올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가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화면에서 막 투쟁하는 모습이 튀어나오고 그러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ACT!: 그 때부터 계속 그런 활동을 변함없이 해 오신 건가?

 

정미: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교육용 영상들을 만들어 온 건데, 이름은 여전히 교육용 영상이지만 그 형식이나 스타일은 많이 달라져왔다.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더 쉬운 교육용 영상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고, 2000년대 중반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다든가, 짧게나마 극화를 해본다거나 하는 나름 새로운 시도들도 했었고, 그런 게 극영화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방송을 하면서였다. 현대자동차 노조 방송이나 RTV를 하면서.

 

ACT!: 뉴스 작업은 계속하지 않은 것인가?

 

정미: 내가 있을 때쯤 되어서는 참세상 방송국처럼 속보작업을 하는 단체들도 있었고 현장에 영상패들도 굉장히 많이 생겨서, 우리는 속보영상보다는 교육물 작업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때가 노동자 투쟁을 소재로 한 본격 다큐멘터리 작업들도 했던 때였다. 그 무렵 나왔던 게 태준식 감독의 <인간의 시간>, 이지영 감독의 <철로위의 사람들>, <이중의 적> 같은 것들이다.

 

ACT!: 그 시기 그렇게 작품 호흡이 길어졌던 계기가 있었나? <인간의 시간>만 해도 장편인데.

 

정미: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당시 노뉴단이 안정기였고, 그래서 본격 다큐멘터리도 해보자고 할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 조건이 되니까. 활동도 안정적이고, 사람도 많이 있고.

 

ACT!: 그럼 호흡 긴 작업들은 97, 98년부터 시작된 건가?

 

정미: 그 전에도 (긴 호흡의 작품이) 있긴 있었다.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인연이 닿아서 작업했던 <해고자> 같은 경우가 그렇다.

 

ACT!: 그럼 그 당시의 작업은 집회가 있다고 하면 그걸 일단은 촬영부터 하는 거였나?

 

정미: 일단 촬영해서 갖고 있는 거다. 그러다가 교육용 영상 같은 거 제작할 때 그게 재료가 되기도 하고, 그런 촬영들 속에서 본격 다큐멘터리로 연결이 되기도 하고. <철로 위의 사람들>도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었다. 철도노조 민주화 관련한 내용인데, 당시 어용노조였던 철도노조를 민주화를 하자는 노동자들의 모임에서 이제 이런 투쟁을 할 거니까 와라’, 해서 작품이 시작된 거다.

 

ACT!: 다른 다큐멘터리 제작 단체와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정미: 우리는 노동조합에 필요한 영상을 만드는데, 사람들은 그 노동조합이 화제가 될 때 그 영상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작년 삼성전자서비스 출범식 때 상영한 영상도 사태가 알려지고 나니까 일반 사람들도 접하게 되더라.

 

ACT!: 노뉴단의 작업을 영상자료원에서 본 적은 있는데, 이게 어떻게 상영됐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자료가 없더라.

 

정미: 노동조합 조직라인을 통해서 배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조에서 당장 필요해서 만드는 영상들이니까. 예를 들자면 민주노총이 이번에 2.25 총파업을 조직하면서 그 조직을 위한 선전용 영상을 요구해서 노뉴단에서 만들었다. 그럼 민주노총이 산하노조에 뿌리는 것이다. 유투브에도 기본적으로 올리기는 하지만. 전국단위의 단체, 산별노조랑 작업하면 그렇게 영상이 뿌려지는 식이다.

  개별 사업장 노동조합 같은 경우에는 역사영상을 많이 만드는데, 자기네 조합원들이나, 신규입사해서 조합원이 된 사람들한테 역사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렇다. 단체협약에 조합원 교육시간이 있는데, 그럴 때 보여주는 거다. 작년에 현대중공업에 10여 년간 어용노조가 있다가 새로 민주노조가 된 것이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민주노조 집행부가 들어서고 나서 제일 먼저 영상 사업을 한 게 조합의 역사를 정리하는 영상 만드는 거였다.

 

ACT!: 아까 말씀하신 노동조합 사내방송은 어떤 것인가?

 

정미: 노동조합에서 사내방송을 하고 있는 곳이, 저희가 아는 한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노조, 두 군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사내방송 CATV로 식당에 트는 식이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어서 방송한다는 개념으로 했는데, 지금은 외부 전문가의 손을 많이 빌린다. 타임오프제도 때문에 전임자 수가 많이 줄면서 영상을 전담할 사람이 없어지니까. 특히 영상을 제작한다는 게 시간도 많이 들고 숙련도 필요한 일이다보니, 현장 노동자들이 다 감당하기 쉽지가 않다. 그래서 주로 기획과 촬영을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실제로 만드는 건 영상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편이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같은 경우에는 노뉴단 사람이 주 2-3일씩 상근하면서 방송을 만들어내고, 현대자동차는 일손이 좀 있어서 사정이 좀 낫다. 노동조합에서 영상실에 현장 조합원 2-3명을 상근으로 두고 기획, 촬영도 하고, 영상 제작만 담당하는 사람을 아예 한 명 채용하기도 한다.


 

▲ 2000년대 초반 노동자뉴스제작단 멤버들의 모습

 

ACT!: 2000년대 초, 중반 이야기가 좀 더 듣고 싶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영화제가 여럿 만들어지면서 사적 다큐멘터리도 많이 생기고, 한국 다큐에 변화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받거나 고민이 들지는 않으셨는지.

 

정미: 다른 사람들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고민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다른 노뉴단 사람은 있었을 것 같다.

 

인정: 노뉴단 자체보다는 사회가 변했으니까. 뉴스를 만들었을 때는 그것으로 역할을 다 했고, 지금 많이 하고 있는 교육용 영상은 뉴스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그걸 만들어내는 노하우를 구축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그 노하우를 구사하는 시점에 있지만, 사실 아직은 교육물의 성과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뉴스를 할 때는 앞에서 선도적으로 이끌어 갔다면 아직 교육물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교육물은 대중 조직에서 요구하는 것에 급급해서 홍보하는 수준에서 더 못 나아간 부분이 있고.

  하지만 작년에 만든 작품들 중에 곧 열린 채널에서 틀 것이 있는데(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내용), 그런 작품이 대중을 만날 때 사람들이 힐링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설득도 될 수 있는 그런 모델도 있다. 이렇게까지 오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개인적인 명예(작가로서, 감독으로서)를 가지고 커가는 것도 차단되는 면이 있고.

 

ACT!: 그럼 지금은 아예 교육용 영상 쪽으로 방향이 바뀐 건가?

 

인정: 과거에 뉴스 형태로 했던 활동은 지금은 정세물이나 선동물로 만들고 있다. 작년에도 선동물 네댓 개를 만들었는데, 예를 들면 박근혜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승인을 철회하는 것을 앞두고 전국의 노조 대표들이 결의를 다지는 자리에서 5~10분 정도 되는 정세물을 만들어 틀었다. 그런 것이 짧은 정세 선동물이라고 보면 된다. 직접 투쟁을 찍어서 내보내는 것보다는 그런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노뉴단 멤버들이 다 10년 넘게 활동한 사람들에, 살림하는 여자들이다보니 촬영 다닐 기동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그 외에도 의뢰받은 작업들을 진행하면서도 한 명 정도는 개인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필승 ver1.0 주봉희>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어느 정도 내부 상황이 좋을 때 가능하다. 노뉴단 사람들은 영상 활동가이고, 기본적으로 활동가라는 것은 운동이나 시대의 요구를 개인이 받아 안는 것 아닌가. 운동에 있어서 필요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일이 바로 우리의 활동이다.

 

ACT!: 그럼 <안녕 허짜대짜수짜님?>같은 극영화를 하셨을 때는 어떠셨나?

 

정미: 그건 사연이 길다. 2005년쯤부터 한 2~3년간 현대자동차 노조 방송을 같이 했었는데, 그 때 현장에서 드라마를 무척 하고 싶어 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에는 그런 드라마를 막 만들어서 상영도 해봤고, 거기 문화패가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현장 노동자들이 볼 만한 드라마를 만들어 노조 방송에 내보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이 생겨났다. 그래서 방송을 목표로 대본작업이나 기획을 해봤는데, 그게 극영화 기획으로 바뀌게 된 거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제작비 일부와 촬영 장소, 배우들을 대고, 현장에서 촬영도 하자고. 노뉴단에서 드라마 만들어서 현대자동차 노조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된 거였다. 연속극 드라마하고 극영화를 동시에 만든다는, 보통 극영화 만드는 방식과는 시작이나 기획부터 좀 달랐다.

 

ACT!: 배우도 다 노동자였나?

 

정미: 다는 아니었다. 근데 우리가 극영화를 제작해봤던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 호되게 맨땅에 헤딩해서 머리가 다 깨지면서 배운 거다. 실제로 사내방송에서 10분가량씩 쪼개서 드라마로 틀었었다. 완성된 영화로 내부 상영도 했고. 근데 당시에 현대차 노조에서 실제 돈으로 낸 제작비는 얼마 안 됐다. 전체 제작비의 아주 일부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질문자가 아까 영상자료원에서 노뉴단 작품을 봤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 영상자료원에서 노뉴단 작품을 많이 사갔다. 그래서 우리한테 목돈이 좀 생기면서 극영화 제작을 확대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 돈을 극영화 사업을 하는 시행착오를 하는 데에 다 썼다. 하여튼 우리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극영화 만드는 노하우를 나름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직후에 노뉴단이 많이 힘들어지면서 후속작업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게 많이 안타깝기는 하다.

 

ACT!: 극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기존의 교육영상과는 반응이 많이 달랐나?

 

정미: 글쎄. 극영화를 막 배급하던 시기에 제가 잠시 출산휴가를 갔다 와서... 현장에서 상영하는 건 몇 번 간 적은 있다. 다르다기보다는, 재밌게들 보더라. 노동자들이. 처음에 대상으로 생각했던 게 50대 정규직 남성노동자였으니까, 자기 이야기로 재밌게들 본 사람들이 많았다.

 

ACT!: 노동자들 영상제작 교육도 꾸준히 하셨나?

 

정미: 노동자 대상 영상교육은 미디어센터가 광화문에 있을 때 같이 했었고, 그 이후로 장기 교육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작년에는 그런 걸 좀 해보자는 시도를 하면서 공공운수노조 복지협동사업단하고 이야기는 주고받았지만, 실제 사업이 되지는 못했다. 미디어센터에서 청소년들 대상으로 한 강의에 가끔 강사로 가기도 한다.

 

인정: 체계적인 장기 교육보다는 현장에서 그 때 그 때 필요하면 몇 명씩 모으거나 영상패 사람들을 모아서 하는 단발적인 교육은 지금도 간간이 하고 있다.

 

ACT!: 노동영화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정미: 영화제까지 꾸려나가기가 힘들어 당분간 중단했다. 여력이 부족해서, 재정이나 인력이나. 사실은 관객 수도 너무 적고. 올해 잠깐 다시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대대적인 영화제는 아니라도, 김진균 선생님 추모사업의 한 프로그램으로 하자는 논의는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 지는 더 봐야 알 것 같다.

 

ACT!: 저번 인터뷰에서는 푸른영상을 만났는데, 푸른영상은 보통 일인제작방식이라고 들었다. 노뉴단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을 하나? 제작 과정에서 정치적 견해가 부딪치는 일은 없나?

 

인정: 노뉴단이 만나는 대중은 푸른영상이 만나는 대중과는 다르다. 노뉴단은 보통 노동조합원 대중을 만난다. 작업할 때 구성원 간에 의견을 조정해야 할 정도까지 구체적인 견해가 부딪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노뉴단은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고 의뢰하는 쪽도 노뉴단을 잘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 쪽으로 제작의뢰가 들어오는 작업들은 보통 성격이 명확하다. 그 시기 운동에, 혹은 의뢰한 조직에 꼭 필요한 작업들이기 때문에 의뢰를 받으면 금액 같은 것과 상관없이 거의 다 하는데, 현실적으로 작업이 가능한지를 논의하는 정도다.

 

ACT!: 작업은 협업 방식인가? 아니면 맡은 작업은 자기가 책임지는 식인가?

 

인정: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한명이 대본에서부터 전체작업을 하기도 하고, 나누어서 할 때도 있다. 편집 코디(편집 사전작업)와 편집까지 다 분리되는 경우도 있다. 교육물, 역사물 같은 것들은 전반적으로 조금씩 분업화가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분업을 해서 집중력을 높이지 않으면 동시에 2~3개를 볼만하게 만들기가 힘들다.

 

ACT!: 노뉴단 작업 외에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는 없나?

 

인정: 노뉴단 작업과 개인 작업이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 작업은 그렇게 추상적이지가 않다. 제작의뢰가 들어왔을 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작업에 투여해서 좀 더 욕심을 부리는 경우는 있지만, 개인 작업에 대한 허상이 있진 않다.

 

ACT!: 늘 이렇게 바쁘게 일을 하시는 건가?

 

정미: 지금이 조금 많이 바쁜 거긴 한데, 요 몇 년, 2~3년은 계속 그랬다. 그 전 시기에 지금 남아있는 노뉴단 성원 네 명 중에 세 명이 상태가 안 좋았다. 둘은 애를 낳고 하나는 몸이 아프고 해서, 예전처럼 일을 많이 못한 시기를 2~3년 겪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건데, 사람도 없는데 적은 제작비에 일을 많이 해서 많이 바빴다. 아무리 적은 돈을 준다고 해도 들어오는 일은 다 하게 되니까 무리하게 일하게 된다. 사실은 노동조합하고 일을 할 때 받는 교육용 영상 제작비가 옛날에 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절대적인 금액이 더 줄어들고 있다.

 

ACT!: 반대로 힘을 받거나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인정: 다른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품 만들어서 칭찬받고 좋은 소리 들으면 좋다. 작업을 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난다. 주로 노동자들인데, 노동자들도 여러 층위가 있다. 대기업의 정규직부터 영세한 사업장까지. 이런 다양한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들이 이 활동을 지속시켜나가는 힘이 된다.

 

ACT!: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는 힘이 된 사례가 있나?

 

인정: 그런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 사람들이 우리 영상을 좋아하고 너덜너덜할 때까지 틀 때가 있지만, 그것은 본인들이 필요해서 트는 것이다. 어느 감독의 작품이라서 본다거나 예술적으로 좋아서,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중요한 문제와 밀접한 주제를 중심으로 제작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초기에는 힘이 되고 기억에 남는 현장이 참 많았다. 하지만 결국 활동을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이 활동가로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활동을 선택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외부의 평가 때문에 계속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의미에서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일을 즐거워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봤을 때 여러 가지로 지금 노뉴단 내부는 피폐해져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힘든 점들이 이미 내재화되어있다. 사실 웃으면서 해체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망이다.

 

ACT!: 노뉴단의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정미: 교육물에 조금 더 집중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형태를 지키되 대중조직에서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부에서 기획하는 교육물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한 가지 계획은 자본론을 잘 아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자본론 배우기 영상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인 것이다. 강연 방식을 좀 다르게 한다거나 해서.

그런 생각도 한다. 저희가 금속노조랑 같이 2011년에 만든 작업물 중에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안내서, 노동조합>이라는 게 있다. 노동조합이 뭔지 알 수 있는 교육영상이었는데, 그걸 아주 잘 쓰고 있다고 들었다. 노동자 가족들에게 틀었을 때도 반응이 좋았다고 하고. 우리나라는 시민권으로서의 노동권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데, 그런 영상이 학교나 다른 교육에서 상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정: 빨리 해산했으면 좋겠다. 노뉴단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완료하고, 빚도 없어지고, 구성원들이 다 만족해서 더 이상 활동 안 해도 된다고 협의해서 해산했으면 좋겠다.

  몇 번의 고민을 통해서 뉴스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했을 때, 노뉴단은 자신의 사명을 다 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더 이상 투쟁 과제에 밀접하게 결합이 안 되던 시기에 해산 시점이 있었지만 당시 이런저런 이유들이 얽혀서 해산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웃음)

 

ACT!: 최근에 교육용 영상의 노하우를 정립하셨다고 했는데 왜 해산을 얘기하는 건가?

 

인정: 뭐든지 절정의 순간이 바로 내리막의 시작 아닌가. 그 시기가 곧 찾아와, 웃으며 해산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또 젊은 피들이 들어오고 더 잘 활동한다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ACT!: 배급 관련해서 다른 방식을 고민해본 적은 없나?

 

정미: 고민은 하고 있는데 손이 없어서 못하는 중이다. 구성원 네 명 외에 외부에 2명이 있기는 한데도 굉장히 허덕이고 있다. 그런(배포 관련한) 일을 내부에서 누군가가 일상적으로 해줘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신입회원 관리도 못하고 있고. 사실 회원을 받고 유지하려면 소소한 작품들도 만들어야 하는데.

 

ACT!: 후원회원 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정미: 하도 힘들어서 작년에 후원회원 벗바리를 만들었는데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홍보를 잘 하지 못했다. 후원회 모집을 왜 그런 식으로(소극적으로) 하냐고 욕먹고 있다(웃음).

 

 

▲ 노뉴단에서 제작한 한국노동운동사 '백년의 기록'과 최근 모집을 시작한 후원회원 제도 '벗바리' 리플렛

 

ACT!: 최근에 새로 들어왔던 활동가는 없나?

 

정미: 지금은 없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같이 2년쯤 하다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 강사로 가면서 노뉴단을 관둔 친구가 하나 있었고, 2007년에 한 친구가 들어왔었다. 그 친구는 <안녕 허대짜수짜님?>, <자본가 정신>, <심장이 필요한 남자>까지 세 편 작업하고 나서 삼성 반도체 황유미 이야기로 극영화를 만들어보려고 몇 년간 끙끙대다 결국 못하고 여의치 않아서 작년에 관뒀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했던 분이 있는데 결혼을 하면서 울산으로 내려가서 지금은 울산노동신문에서 활동하고 있다.

 

ACT!: 활동가 모집은 이제 안하나?

 

정미: 한 사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활동비를 지급할 여력이 없어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지는 못하고 있다.

 

인정: 하지만 적극적으로 찾는다고 해도 어렵지 않겠나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노동운동은 그다지 매력적인 활동이 아니지 않나. 오히려 최근 활성화된 NGO활동 같은 쪽에 많이들 관심을 갖고 있고. 노동운동 쪽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없다.


ACT!: 노뉴단의 작품은 어떻게 볼 수 있나?

 

정미: 가끔 논문을 쓴다고 사러 오거나, 연락이 올 때가 있기는 하다. 최근에는 철도파업 관련한 작품 때문에도 연락이 왔고, 그러면 공동체 상영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여력만 되면 작품들을 유투브에 올려서 볼 수 있게 하고 싶은데, 생각만 있고 일에 쫓겨서 못하고 있다. 연락 달라.

 

ACT!: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미: 자원활동가나 아르바이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모집한다. 노동운동과 다큐멘터리를 경험해보고 싶은 참신한 인재들이 연락을 주면 좋겠다


※ 아래 유투브 채널에서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작업 영상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tt_nUklVUeoSC7xKaWuyXw/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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