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4호 작지만 큰 영화제 2017.07.14]
부산평화영화제, 매회 평화의 의미를 더 새롭고 단단하게 만드는 여정
황예지 (부산평화영화제 사무국 간사)
[사진설명] ‘평화는 광장’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올해 개최되었던 제8회 부산평화영화제 포스터.
부산평화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작은 소망 하나로 2010년에 첫 행사를 개막했었습니다. 통일, 인권, 환경을 비롯하여 차별, 폭력, 전쟁에 반대하는 그 해의 좋은 영화들을 상영했었죠.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작품 공모제를 도입하여 기성 감독의 작품뿐만 아니라 독립 및 학생 영화를 부산평화영화제의 이름을 통해 관객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제5회 부산평화영화제 경쟁부문 수상 감독. 왼쪽부터 임동익, 박수남, 서동일, 김도현 감독.
부산평화영화제는 예심을 통해 선정된 공식 경쟁작 가운데 ‘꿈꾸는 평화상’ 등 총 4개 부문에 상을 줍니다. 2014년 장률 감독님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영화 <옥쇄의 진실>이 꿈꾸는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며 피해자들의 증언을 고령의 나이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재일동포 박수남 감독의 작품과 삶이 부산평화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알려졌습니다. 그 후 <그림자들의 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등의 작품에 꿈꾸는 평화상을 수여하여 부산평화영화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평화영화제는 ‘부산어린이어깨동무’라는 시민단체가 만듭니다. 부산어린이어깨동무는 남과 북의 어린이가 신체와 정서적으로 엇비슷하게 성장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어린이어깨동무라는 친구 단체와 함께 북녘 어린이를 돕고, 부산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평화교육을 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평화의 가치를 삶 속에서 나누기 위해 중구 영주동과 보수동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영화제의 사무국도 보수동의 작은도서관에 있습니다. ‘작은’ 도서관과 ‘작은’ 영화제라는 점에서 둘은 무척 닮았습니다.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이 부산평화영화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분명 영화제를 유지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작은 시민단체가 독자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과 운영 면에서 여러 고충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영화제 실무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과 인원이 부족합니다. 매년 기업들에게 후원을 받고, 작년에는 이례적으로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았죠. 무척 감사한 일이었지만, 후원이 중단되었을 때 영화제의 지속성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산평화영화제는 영화제가 추구하는 작은 규모와 영화 선정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과 지자체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을 찾고 있습니다. 부산평화영화제를 지키는 시민 후원단인 ‘지킴이’를 모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부산평화영화제를 계속할 수 있는지, 그 이유와 방법을 집행위원과 프로그래머, 사무국원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합니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동기가 모여 아직 끝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영화제를 계속 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로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누군가는 시골 오두막 같은 정다운 대화의 장이 공동체의 자양분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산평화영화제의 소중함을 느끼는 관객의 수만큼 영화제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진설명] 제7회 부산평화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남순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모습.
‘평화’라는 열린 의미의 주제
부산평화영화제는 지금까지 평화라는 큰 주제 안에서 노동조합, 경쟁이 과열된 사회, 동성애, 분단의 아픔 등 다양한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우리는 관객이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억압에도 반대하며, 기존 체제를 벗어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비판과 투쟁의 의미를 담은 ‘평화’를 말합니다.
7회 영화제 때 청년문제를 다루며 남순아 감독의 단편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를 비롯한 청년 영화를 상영하고 청년 활동가에게 스스로 이 담론을 이끌어가도록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처럼 부산평화영화제는 매번 새롭게 시도하고, 그 안에서 열린 의미의 평화란 개념을 더 단단하게 구체화합니다. 주최 단체와 관련된 어린이, 남북통일, 한반도 평화란 키워드 뿐 아니라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생명과 환경에도 주목합니다. 평화라는 주제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 같습니다.
부산평화영화제를 방문한 게스트와 관객이라면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있어 평화란?” 개인의 평화부터 사회를 위한 평화까지 다양한 의미들이 쏟아집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 하나의 답은 없으며, 모두의 대답이 모였을 때 그 힘이 커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제라는 판을 펼친 것은 우리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 내용을 채우고 만들어가는 사람은 관객입니다. 영화제가 만들어지는 3일이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평화란 길을 잃으면서 길이 열리는 여정입니다. 고정된 의미가 아니며, 변화하고 흔들리며 만들어지는 정체성입니다. 부산평화영화제는 매번 새롭고 단단하게 의미를 만들고, 또 허물어 갈 것입니다.
작은 영화제, 평화를 말하는 목소리
2012년 부산평화영화제를 방문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안재훈 감독님은 오락 영화와는 다른 경험을 주는 작은 영화제와 그 공간이 유지되어야 젊은이들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극장에 온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도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인들과 함께 작은 영화제를 찾아주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 때 안재훈 감독님이 만난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어 올해 영화제에서 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올 리브 올리브>를 봤습니다. 처음 부산평화영화제를 만나는 어린이 관객도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부산평화영화제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만든 용기 있는 영화를 보고, 이 경험이 언젠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소중한 발판이 되면 좋겠습니다.
부산에는 크고 작은 여러 영화제가 열립니다. 부산평화영화제는 더 작은 영화제, 목소리와 연대하고 큰 영화제에서는 볼 수 없는 소박하고 정다운 분위기로 관객들과 즐기는 축제의 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
[사진설명] 제8회 부산평화영화제. 국도예술관의 담벼락을 이용한 ‘평화는 광장’ 방명록 앞에 어린이 관객이 앉아 있다.
[필자소개] 황예지(부산평화영화제 사무국)
부산어린이어깨동무의 사무국 간사이며 부산평화영화제 준비를 담당한다.
박홍원 집행위원장, 박지연, 허정식 프로그래머, 그리고 스탭들이 팀을 이루어 영화제의 주요한 일을 진행한다.
사무국의 다른 간사도 회계, 진행, 사회 등 각자의 역할이 있다.
못하겠다고 앓는 소리도 내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팀워크가 좋아진다.
영화제를 함께 준비하며 고생한 스탭, 자원활동가가 있었다. 그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기에 작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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