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01호 작큰영화제 2016.12.23]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 반빈곤영화제
이지윤 (반빈곤영화제 기획단)
[편집자 주]
연말입니다. 어느덧 날씨는 무척이나 쌀쌀해졌습니다. 하지만 추운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을 더욱 춥게 만드는 것이 주변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래저래 사회가 뒤숭숭한 가운데 여전히 돌아보는 이를 찾아보기 힘든 소수자의 권리 역시 찬 거리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이번 ‘작지만 큰 영화제’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영화제를 찾아 나섰습니다. 두 영화제 모두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열기는 어느 영화제 못지않게 뜨거운데요. 먼저 올해 처음 막을 올린 빈곤사회연대의 ‘반빈곤영화제’를 함께 살펴봅시다.
1017 빈곤철폐의 날과 영화제
△ 지난 10월 17일 진행되었던 2016 빈곤철폐 퍼레이드의 모습. (사진 : 최인기)
제1회 한국반빈곤영화제는 매년 개최되었던 10.17 빈곤철폐의 날 행사 중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10월 17일은 UN에서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그러나 빈곤은 누군가에 의해 퇴치되는 것이 아니라 빈민들의 행동으로 철폐되는 것이어야 하기에 빈곤사회연대는 여러 빈민단위들과 함께 매년 1017 빈곤철폐의 날 행사를 주관해왔다. 10.17 빈곤철폐의 날은 보통 세계주거의 날 행사와 민중열사 묘역 참배, 그리고 노점상, 철거민, 홈리스, 임차상인, 노동자, 행동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빈곤철폐 퍼레이드로 마무리된다. 2016년에는 다양한 빈민들의 이야기를 보다 심도 있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영화제가 기획되었다.
첫 걸음에 담긴 고민
행동하는 빈민들의 날인 10.17 빈곤철폐의 날 행사와 이어진 영화제이기에 방향은 명확했다. 스크린 속에서 빈곤은 주인공의 배경을 설명하거나 영화의 극적 장치나 감동을 위해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빈곤이 소재나 설정으로 소비될 때, 오히려 빈곤의 현실들은 가려진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고시원이나 옥탑에 살더라도, 주인공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는 따로 존재하기에 관객들은 비주택거주민의 거주 공간이나 주인공을 둘러싼 제도의 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 영화 속 철거지역이나 옥탑은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또는 장애인이 주인공의 영화들은 때로는 상당히 시혜적인 시선으로 주인공을 화면에 담아내기도 한다.
영화제 기획단은 빈곤의 현실이 주인공이 되는,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기획단은 행동하는 빈민들의 이야기와 현재 복지제도의 가장 큰 사각지대를 만드는 원인인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문제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담아내는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이에 영화제를 ‘쫓겨날 수 없는 삶’과 ‘버려질 수 없는 삶’이라는 두 가지 섹션으로 나누었다. 임차상인, 철거민, 노점상은 쫓겨날 수 없기에 싸운다. 그리고 장애인과 홈리스는 또다시 세상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행동한다. 이 두 가지가 제1회 한국반빈곤영화제가 가장 크게 다루고 싶었던 키워드이다.
△ 제1회 반빈곤영화제 포스터
싸우는 사람들이 직접 찍은 영화
가장 생생한 영상은 현장에서 나온다. 가게나 집, 노점에 대한 강제집행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설령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강제집행에 맞서 싸우는 과정은 항상 예측불허하다. 자신의 삶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내가 가던 단골집의 마지막은 어떠했는지를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어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공동정범>을 본 부산 만덕의 철거민들은 자신들 옆에도 영상 활동가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치열하게 지켜내고자 했던 공간을 영상으로라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많은 영상 활동가들이 쫓겨나는 가게에서, 철거 지역에서 치열하게 함께하고 있지만 모든 현장에 함께 있기에는 턱없이 사람이 부족하다. 제1회 한국반빈곤영화제에서 <현장카메라 공모전>을 기획하게 된 취지는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눈으로 직접 찍은 영상과 사진들의 시선과 생생함을 하나의 단일한 영화로 만들고자 함이었다. 분명 쫓겨나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저마다의 기록을 남겨왔다. 그것이 설령 세련되거나 매끄럽지 않다 하더라도, 찍은 사람의 시선과 현장에서 포착된 순간은 또 다른 매력과 의미가 있다. 이에 2회 반빈곤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기획단은 ‘현장카메라 공모전’을 강화하고자, 현장에서 카메라를 드는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을 준비해보고자 한다.
△ 반빈곤영화제 폐막식 때 관객석의 모습. (사진 : 이지윤)
좋았다는 말, 겹치는 삶
빈민들의 삶은 서로 중첩된다. 노점을 하던 한 60대 여성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탈락할까 걱정하고, 해고노동자는 복직이 되었을 때, 자신의 소득으로 노모가 수급에서 탈락할까 고민한다. 가게를 운영하던 임차상인은 가게에서 쫓겨난 뒤 노점을 알아보고, 직장을 다니던 한 청년은 재개발되는 지역에서 용역깡패들이 자신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자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기획단의 한 활동가는 반빈곤영화제 폐막작의 GV 시간이 참 좋았다고 한다. 보통 GV 시간은 영화와 관객, 영화의 주인공과 관객이 분리되어 서로에서 객관화된 질문들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객도, 주인공도, 감독도 함께 공유하는 동자동이라는 공간이 스크린에 던져졌을 때, 스크린과 관객석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서로 다르지만, 또 많이 중첩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고민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열어내는 것이 앞으로 한국반빈곤영화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일 것이다. □
[필자소개]
이지윤(반빈곤영화제 기획단)
인생이 흐르다보니 영화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술 먹고 춤추고 데모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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