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CT! 1호 쟁점] (영상) 미디어 운동의 전략 가다듬기 Ver. 0.9 - 주류 미디어, 공공 영역, 대안(독립) 미디어의 상호 역학

본문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제1호 / 2003년 7월 18일

 

 


(영상) 미디어 운동의 전략 가다듬기 Ver. 0.9

   - 주류 미디어, 공공 영역, 대안(독립) 미디어의 상호 역학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 소장)


 

미디어 운동의 해묵은 과제 한가지는 진보적인 미디어 운동의 전망과 전략에 대한 엄밀한 이론적 검토이다. 현실의 변혁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뒤늦은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전망하며 어떤 선택이 필요한가를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그래서 치열하게 끝없이 싸우고 구상하고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에게 풍부한 사고의 근거와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그런 이론을 만드는 실천 말이다. 그 실마리를 푸는 하나의 계기로, 미디어 운동의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상호침투하는 영역들에 대한 가설을 세워보려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급하게 쓰여진 이 메모의 한계들은 뚜렷하다. 아직까지는 전체 그림 자체가 취약하기에, 불가피하게 시청각 매체를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가면서 거꾸로 커뮤니케이션과 사회변화의 문제를 탐구할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정보사회, 진보(적) 등의 기본 개념 자체가 명확히 규정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등 말이다. 이렇게 운동의 대상과 공간이 되는 개념에 대한 해명없이 영역을 탐구하고 전략을 고민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역동적인 계급관계에 의해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되는 현실에 대한 고려를 풍부하게 반영하는 이론이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개념을 놓고 머리를 싸매는 것은 결국 그 개념을 모호하거나 아무 실천적 가치가 없거나 아니면 주류 학계의 논리-현 체제와 공생관계인-에 근거한 것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이런 한계를 안고 가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어느 단계에선가 그 규명은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 과정의 하나로서 미디어 운동의 3대 영역을 다루어본다. 보편적인 원칙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당대의 현실이라는 자양분을 놓치지 않는 긴장을 유지하면서, 비록 상당수의 얘기는 가설적이고, 개념은 불확실하지만, 가까운 언젠가 제대로 가다듬어야 할 미디어 운동의 전략 구상을 위한 토론 근거를 한번 만들어보기로 하자.


1, 변화와 진보의 동력을 파악하기 위해, 무엇을 계기로 어떻게 질문해야하나 ?

 

어쩌면 지금처럼 우리에게 많은 질문이 필요한 시기도 없을지 모르겠다. 촛불시위의 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운동 영역의 등장, 한국 사회 전반의 거대한 정치적 변화, 전지구적 운동의 본격적인 출현 등 미디어와 사회와 운동을 둘러싼 최근의 사회적 변화는 80년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정말 급격하다.

그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미디어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주목할 지점중 하나는 이른바 공공 영역의 등장이다. 대안적인 미디어 운동의 성장을 바탕으로 하고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적 변화를 매개로 삼아, 그 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당분간 그 실현이 불가능해보였던 과제들이 조금씩 우리 앞에 물질로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통합방송법 통과와 함께 퍼블릭 액세스의 개념이 방송에 도입되었고, 영화진흥위원회의 변화를 계기로 3년여의 준비 끝에 영상미디어센터가 설립되었으며, 공공기구나 정부부처의 지원제도가 가시화되었고, 비판적 미디어 교육을 학교 공간내의 공식적인 교육 체계로 도입하는 것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등, 최근 3년간의 변화는 80년대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것들이다.

사실, 그동안 진보적인 미디어 운동에 있어서 법과 제도의 영역은 고려하거나 심지어 존중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거나 아니면 독립적인 미디어 운동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가 여타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법,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른바 공공적 영역을 둘러싼 논쟁과 투쟁을 곧바로 불러일으킨 반면에, 미디어의 영역은 비록 방송 및 영화 관련법의 개정운동이 있기는 했지만 공공적 영역의 유지 혹은 확보라는 의식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3년간의 변화를 통해서 이제 미디어의 (비록 모호한 개념이지만) 공공 영역은 매우 구체적인 실체로서 우리 앞에 빠른 속도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고무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기를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시청자 운동, 독립영화, 언론노조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미디어 운동 진영은 이런 문제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아직 정리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질문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질문되지 않거나 혹은 질문되더라도 조직적 토론과 이론적 공론화가 잘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논리적 추론의 부재와 논쟁과 토론의 실종은 결국 공공 영역에 대한 방기, 그리고 각각의 영역들간의 유기적 관계가 확보되지 못하는데 따른 고립과 실패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의 참담한 실패는 또한, 미디어 영역의 전략 혹은 강령을 방어적이고 수세적이거나 아니면 제한적인 내용 속으로 (독점 반대, 좁은 의미의 표현의 자유 등) 가둬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 한가지는 이런 새로운 공공 영역 그 자체를 고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운동 영역을 포괄해서 전체 미디어 운동의 지형을 다시 해명해내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영역 또한 재해석하며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고 그것의 총합을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과도기적 현재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디어 운동의 발전의 한 지표인 공공 영역의 출현을 계기로 삼아 (공공 영역이 중심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략을 보다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대안적, 독립적 실천 영역의 의미는 무엇이고 발전전략은 무엇이어야 할까 ? 좀 더 구체적으로 세상의 변혁은 대안적 운동의 고립적 발전으로 가능한가 혹은 그것과 등치되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이른바 주류의 영역은 어떤 한계와 어떤 의의를 지니고 어떤 전술이 필요한 영역인가 ? 공공 영역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그것은 보편적 서비스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가 ? 현재 미디어 운동의 역량 배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 초점 영역들은 무엇인가 ? 종합하자면, 현실에서 축적되어온 것으로부터, 당면한 현실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힘을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해가야 하는가?, ..., ...



2, 미디어 운동의 강화는 한국에서, 그리고 전지구적 수준에서 세가지 영역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모든 국가가 3영역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거나, 한국만이 3영역을 함축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는 전지구적 운동의 범위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파쇼체제가 아니라면, 말하자면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이 어느 정도 갖춰지는 나라의 경우, 독립적 미디어를 지하로 몰아넣지는 않으며 그렇다고해서 국가권력과 자본의 우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래서 다양한 미디어의 영역이 공존하는 현상이 일반적으로 벌어진다. 말하자면, 독립미디어의 경험에 근거해서 공적 영역이 확대되고, 주류 미디어가 일정한 변화를 일으키며, 자본 또한 목소리를 높이면서 국가의 공적 개입에 대항하는 복합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미디어 운동의 전략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운동에 대한 파악을 전제로 해야만 해명될 수 있다.


A, 대안적 체계 및 역량을 수립함으로서 주류 미디어의 정치적 변화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인 목소리, 내용과 형식, 그리고 컨텐츠 생산 주체를 가지는 것.

B, 주류 미디어 내부에 정치적 긴장을 형성하고, 최대한 그 공간내에서 진보적 의제를 확대시키는 것.

C, 공공적 영역을 확보하고, 그를 통해 전사회적인 공공적 서비스를 확대하며, 독립 미디어와 주류 미디어 양쪽의 진보적, 민주적 미디어 운동 역량을 지원하는 것.


(1)

A에서 언급된 운동과 연관된 명칭은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대안 미디어, 독립 미디어, 저항 미디어, 대항 미디어, 급진적 미디어, 혁명적 미디어 등 혼란스러운 명칭 혹은 개념이 사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영역이 현재의 체제와 때로는 적대적인 긴장관계를 지니고 있기에 불가피하다. 체제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성장하고 확립된 주류 체제와는 달리 지극히 가변적이고 내부의 다양성 또한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명칭 혹은 개념에 대한 정의는 차차 하기로 하고, 이 영역의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의가 가능하다.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이 운동을 대안 미디어 운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1) 대안 미디어는 중요하다.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과 미디어 / 커뮤니케니이션의 관계는 원래 중요하다. 운동은 어떤 특정한 변화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고 그것은 소통과 설득과 교육과 결정의 과정이며,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은 변화와 연관된 사람들이 (소수의 선구자로부터 궁극적으로는 그 운동에 동참하거나 영향을 주고 받게되는 다수의 대중에 이르기까지, 내부의 커뮤니케이션과 외부에 대한 설득을 모두 포함해서) 고안하고 실천하고 상호작용하는 모든 과정과 연관된다. 운동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그 운동의 독자적인 무기로서 대안 미디어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2) 대안 미디어는 현 시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첫째로는, (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운동의 주체나 세력이 흔히 이렇게 분류되게 마련인, 혹은 고유한 이슈 자체가 절대적으로 소수자일 수 밖에 없는) 비주류의 목소리가 정치적 위상을 점점 높이고 확장되고 있는 상황,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 미디어가 주요하고 필수불가결한 무기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 자본의 입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확산 과정에서 그것을 추동하고 그것의 결과이기도 한 ‘기술’의 발전은 대안 미디어에게 매우 새로운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현재의 체제가 자신에게 사망선고를 할 주체를 확대재생산하고 훈련시키는 것처럼, 미디어의 양면성은 대안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화한다.


3) 물질적 독자성과 이념적 독자성을 모두 포함한다.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가 중요하며, 독립적 메시지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독자성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하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며, 진보적 사회운동과 연대함과 동시에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대안 미디어는 정치적 관점과 미디어 지형을 파악하는 관점에 있어서 철저하게, 물적인 재생산 구조에 있어서 상당부분, 그리고 때로는 특정한 부문운동 및 조직과의 관계에 있어서 집요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4) 독립적이고 대안적인 미디어 운동이 없다면 다른 두가지 영역의 운동도 불가능하다.

대안 미디어가 취약하다는 것은, 미디어에 대한 전문적 경험에 기초해서 공공적 영역을 확보하고 그것을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이끌 전략과 주체가 취약하다는 것이며, 주류 미디어의 한계를 폭로하고 주류 미디어가 결코 시도할 수 없는 혹은 주류 미디어가 감당하기 힘든 실험을 거치지 않고는 시도할 수 없는 활동을 통해서 주류 미디어의 한계를 인식하고 부분적으로 그것을 돌파하게 하는 역동적인 발전과정의 계기가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역학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5) 남는 질문중 반드시 현재 수준에서라도 답변해야 할 것

주류 미디어가 아닌 미디어는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반드시 현재의 체제에 대한 의식적 극복을 목표로 삼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미디어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다른 대안 미디어 및 주류 미디어와 공공 영역과 각각 어떤 관계를 맺는가 ?


(2)

B에서 지목한 주류 미디어는 공영적 미디어, 상업적 미디어로 구분되지만 그 내부 분포와 특징은 국가에 따라 그리고 영화, 방송, 인터넷 등 매체의 기술적 성격에 따라 다르다. 이 영역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내부의 미디어 노동자의 자기 이해에 기초한 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해당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쟁의 조직화로 표현되며, 다음과 같은 논의가 가능하다.


1) 제한적이지만, 변화는 가능하며 필요하다.

  힘있는 미디어인 만큼 비판적 정보 유통에 대한 제약과 보수적인 의제의 압도적 우위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급진화에 따른 특정 주류 미디어 내용의 일시적인 정치적 전진이나, 혹은 전체를 규정하지는 않는 부분적인 진보는 가능하면서도 의미있는 변화이다. 그것의 대중적 영향력은 현실이기 때문에, 이 영역의 진보적 변화는 제한적이나마 긍정적인 것이다.


2) 대안 미디어와 전반적으로는 대립하지만, 부분적으로는 협력하거나 공간을 제공한다.

대안 미디어의 입장에서 주류 미디어는 공공 영역과 같은 새로운 공간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만드는 대상이 아니라 있는 공간의 구조와 의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협력 대상이다. 그러나, 접근권의 확대 및 독과점의 해소를 계기로 하는 대안미디어의 진출은 부분적으로 가능하며 진보적 (미디어) 운동의 담론에 시민권을 부여하고 아울러 대안미디어의 물적 재생산을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3) 내부로부터의 변화 동력은 주요한 근거이면서도 제한적이다.

미디어 노동자의 일반적 조건이 낳는 내부의 정치적 한계를 고려한다면,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주류 매체의 민주적 변화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개입은 언제나 내외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특히, 대안 미디어가 없다면 주류 내부의 고민은 심화되기 힘들며 긴장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4) 남는 질문중 반드시 현재 수준에서라도 답변해야 할 것

매우 개인적인 공간에서 소비되는 대중 매체일 수 밖에 없는 주류 미디어는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수용자와의 긴밀한 관계맺기의 방식에 있어서도 대안 미디어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매우 보편적인 사회적 의제는 대중 매체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공유가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적어도 현재의 인식 수준에서는. 그렇다면 주류 미디어의 지양된 형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


(3)

C는 현재 흔히 공공적 영역으로 표현되고 있는 공간과 연관된 운동이다. 이것은 상업적 혹은 관료적인 미디어 환경을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구조로 변화시키거나 혹은 (주로) 건설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이것은 새로운 영역의 의미를 지니며, 대안 미디어가 주도적으로 개척해온 영역이기도 하다.


1) 실험 공간이자 지원 공간이다.

공공영역의 창출은, 대안 미디어 입장에서는 물적 자원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던, 주류 미디어 입장에서는 구조적 한계로 결코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정책과 실천을 실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며, 아울러 진보적 미디어를 지원하는 보다 공식적인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지원의 규모와 방식은 주류 미디어와 비교했을 때는 협소하지만, 대안 미디어의 현실을 고려하면 획기적일 수도 있다.


2) 제한적이지만, 보편적 서비스를 기초로 하되 선택적 지원으로 확대 가능하다.

공공성은 언제나 보편적인 대상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의 개념은 변화하며, 그것은 때로 소수자의 개념, 현 체제의 불가피한 사회적 불평등을 인정하며 그 관계의 변화를 의제로 삼기도 한다. 공공 영역은 보편적 서비스라는 (그 자체로도 진보인) 형식적 민주주의에 기반하면서도, 진보적 사회변화를 목표로 하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대상에 대한 사업을 동시에 포함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세상이 바뀌기 전에 소외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연관되면서도 독자적인 두 개의 대상이 그것이다.


3) 전지구적, 초역사적으로 보편적인 영역은 아니다.

폭압적 체제인 경우 대안 미디어, 독립 미디어는 때로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마주할 때 주류 미디어를 심각하게 위협하거나 그 영향력을 극복할 정도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공공적 미디어는 옵션에 해당한다. 이와는 다른 상황에서, 정치체제의 퇴행적인 변화는 확보된 공공 영역으로부터의 퇴각을 낳을 수도 있다.


4) 보수적인 부산물이 존재한다.

운동의 발전에 따라 창출된 공공적 미디어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순탄한 사회적 변혁만이 가능하고 유효하다는 착각을 부산물로 제공한다. 아울러, 사회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는 (협소하게 정의된) 보편적 서비스는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하는 실천에 대한 지원에 상당한 자원을 소모할 수도 있다.


5) 질문

공공 영역이 보편적 서비스와 선택적 서비스를 결합시키기 위해 확보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가 ? 그것이 제대로 결합되고 있음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들은 무엇인가 ? 덧붙여, 그러한 조건의 확보 및 판단이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 말하자면 공공 영역의 주체들이 흔히 고립되고 정보를 독점하며 대안 미디어와의 긴밀한 연대를 상실하게 되는 경향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나?



3, 고립 혹은 연대

 

미래 사회의 미디어의 그림은 이 세가지 영역의 긴장과 연대, 그리고 유기적인 통일 속에서만, 급진적인 정치사회적 변화를 매개로 구체화될 것이다. 문제는, 그 실천의 발전과정을 어떻게 이론적 연구와 맞닿게 하고 토론을 활성화함으로서 운동 전체를 살찌울까하는 것이다. 비록 여전히 진보적 담론은 변화의 동력 속에서도 소수이고 열세이지만, 조중동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세상은 변했고 운동은 성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결과로서 착취와 불평등은 극심해지며 전쟁의 위협은 코 앞에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실천과 이론의 소통, 그를 위한 이론적 축적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다.

물론, 해묵은 과제와 새로운 과제가 뒤섞인 상황을 헤쳐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 영역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을 뿐이고, 대안 미디어는 독립적인 이념과 구조를 발전시켜야 함과 동시에 공공 영역과 연대하고 주류 미디어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하는 3중의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제를 안겨준다.

하지만, 발전된 기술, 매우 역동적인 사회운동, 그리고 짧지만 소중한 경험의 축적 등 한국의 미디어 운동은 - 민족주의적 관점에 제한되지 않는 - 매우 특수한 조건에 처해있으며, 그것은 흥미로운 실험의 과정이면서, 다른 나라의 미디어 운동에 대해 소중한 자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이 동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메모가 토론을 매개로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다시 갱신됨으로서 그 복합적인 과정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