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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3호 미디어인터내셔널] 카오슝 대만 국제 노동영화제 : 세계화 시대의 노동자들 (2005.5.1 - 12 대만 카오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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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3호 / 2005년 8월 1일

카오슝 대만 국제 노동영화제 : 세계화 시대의 노동자들

(2005.5.1 - 12 대만 카오슝)
 
김 명 준 ( 미디액트 소장 )
 
지난 5월1일부터 12일까지 대만 남부 지역 카오슝에서는 <세계화 시대의 노동자들 - The workers under the globalization>이라는 주제하에 2005 카오슝 국제노동영화제가 열렸다.모두 11편의 작품이 상영된 이 영화제에는 개막작과 폐막작의 연출자인 이지영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과 함께 미디액트 소장인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소속)이 초청되었다. 작지만 의미있는 영화제의 안과 밖에서 있던 상영과 만남의 기회를 통해서, 대만 노동미디어운동의 상황과 과제를 정리해본다.
 
1, 또 하나의 국제노동영화제
 
아직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전세계적으로 ‘노동’을 주제로 하는 영화제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최초의 노동영화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이후 2005년 현재 미국에는 산타 크루즈, 보스턴 등 대여섯개의 도시에서 노동영화제가 매년 혹은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프랑스와 유럽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간헐적으로 노동영화제가 개최되고 있고, 남미에서는 작년 12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최초로 남미노동영화제가 열렸으며 (액트! 19호 "국경을 넘어서는 노동영상운동의 새로운 이정표 : 제1회 라틴 아메리카 노동영화제"참조), 올해에는 볼리비아에서도 같은 이름의 영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아시아의 경우 한국의 노동영화제는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게 되고, 일본 또한 매년 11월에 노동문화축제의 형식으로 노동운동 관련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카오슝 국제 노동 영화제는 지난 2001년에 첫 번째 영화제가 열린 이래 이번 영화제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국민당 정권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는데 한 축을 담당한 대만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카오슝에서 열린 이번 영화제는 카오슝 노동국 (우리나라의 노동부에 해당) 이 재정적 후원을 제공하고, 다큐멘터리 제작 활동가로 구성된 影者(영자)영상공작실유한공사가 주최했으며, 약 140석 규모의 전영도서관 (한국의 영상자료원에 해당하는데, 지방자치체가 운영을 맡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에서 모든 영화가 상영되었다.
프로그래밍을 위한 전문적 역량이 부족한 탓에 영화제 측은 개막 수개월전에 한국의 노동영화제에 프로그래밍 자문을 요청해왔다. 영자영상공작실이 미리 결정한 사항은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철로위의 사람들>과 <이중의 적>을 개폐막작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그 외의 모든 해외 프로그래밍은 서울국제노동영화제의 자문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결정되었다. (아래 일정표 참조)

5.1 개막식
      <철로위의 사람들> (한국)
      <Injury on job diary> (대만)
      <검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 (캐나다)

5.3 <메이드 인 차이나> (미국)
5.4 <갈증, 물은 누구의 것인가 ?> (미국)
5.5 <적자생존> (벨기에)
5.6 <The way we were> (대만)
5.7 <이중의 적> (한국)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베네주엘라)

5.8 <켄과 로자> (영국)
      세미나 - 세계화 시대의 노동자들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캐나다)

5.10 <That day, I lost my job> (대만)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베네주엘라)
      <갈증, 물은 누구의 것인가 ?> (미국)

5.11 <적자생존> (벨기에)
      <켄과 로자> (영국)

5.12 <이중의 적> (한국)
 
2, 전환기의 노동운동, 세계화 시대의 노동자들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날씨 속에서 비록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에 오지는 못했으나 관객의 태도만큼은 적극적이었다. 특히 개막작과 폐막작을 연출한 이지영 활동가에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험난한 제작과정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노동자뉴스제작단의 활동 방식, 한국 노동자 영상패의 활동 모델 등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고, 한국 노동자의 전투적 운동 방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비정규직화와 민영화의 공세에 대한 대응전략은 무엇인지 등 상영장소인 전영도서관은 노동운동와 노동영상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진지한 토론으로 달아올랐다. 이런 열기의 뒤에는 전환기를 맞이한 대만 노동운동의 특수한 (세계적 수준에서 보자면 보편적인 것이기도 한) 상황이 놓여있다.
최근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민진당은 지난 20여년간 지식인 중심의 반국민당 집단에서 현재의 대중정당으로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의 지속적인 투쟁을 기반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그 집권의 과정은 자신을 탄생시킨 대중운동의 파괴 과정이기도 했으며, 특히 국민당의 온정주의적 정책보다 더욱 반노동자적인 전면적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 이미 우리가 목격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자본의 세계화는 대만 노동운동에도 파괴적인 효과를 낳고 있으며, 민영화와 비정규직의 확산은 조선, 철강, 통신 노조 등 대만 노동운동의 중심적 노조들의 기초를 뒤흔들고 있다.
결국 대만의 노동운동은 이제 자신의 이해를 대표할 어떤 정치적 세력도 지니지 못한 채, 밀려오는 세계화의 물결을 감당해야 하는, 그를 위해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전략을 구성해가야 하는 힘겨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카오슝 노동 영화제는 이런 복합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카오슝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강력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 도시로서, 민진당에 대한 지지가 전통적으로 강한 지역이기도 했다. 민진당의 부상은 카오슝 지역 노동조합의 위상을 정치적으로 끌어올려줬고 그 결과 진보적 활동가가 지역 노동국장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지역 영상운동가와 노동국장의 협력에 의해 이 노동영화제의 조직이 가능해진 것이다. 말하자면, 민영화와 사내하청의 확산이 노동조합의 전통적인 조직력을 파괴하는 가운데에서, 지역 노동국은 역설적으로 친노동자적 정책을 시도하게 된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파트너쉽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민진당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대만의 독립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노동계급을 배신할 것이며, 국민당은 전통적 지배계급에 기반한 수구적 전통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며, 진보적 정치 세력 또반 부재한 상황에서 밀려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를 막아내기에 대만노동조합운동은 그리 강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들에게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전히 신화다)
 
3, 대만의 노동 미디어 운동, 전략의 수립과 연대의 확대
 
노동운동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만의 노동 미디어 운동은 이제 조금씩 자신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이번 영화제를 개최한 활동가들이 노동자뉴스제작단을 유일하게 영화제의 게스트로 초청한 배경에는, 지속적인 조직적 활동의 모델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깔려있는 것이었다. 독립적 미디어 운동이 경험과 공적 영역의 미디어 전략을 구상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만 노동 미디어 운동이 하나의 독립된 운동의 영역으로서 발전해갈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영화제 기간중 타이페이에 있는 한 활동가의 초청으로 개최된 토론회에는 노동조합, 산업재해,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과 관련된 많은 젊은 노동운동가들이 참여했으며, 한국 활동가들의 발표 내용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들은 이미 낮은 수준이나마 디지틀 비디오를 활용한 초보적 기록 및 선전물을 만들고 있었으며, 아직 체계적이진 않지만 정기적인 회합을 통헤서 서서히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결국 정치적 민주화가 부분적으로 제공한 새로운 공간 속에서,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따른 노동운동의 파괴를 목격하면서, 민진당의 배신과 수구적 국민당 사이에서 자신만의 독자적 운동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들의 상황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세계적 시야를 확보하고 타국의 운동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문제의식이 지속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운동이 성실하게 화답할 수 있다면, 희망을 찾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트워크의 확대를 위한 계기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제가 종료된 직후 대만통신노조 집행부의 베를린 방문길에 따라 나선 대만 활동가들은 한국측의 소개로 베를린의 개방채널을 방문하고, 독일 노동네트워크 활동가들과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다. 아직 공적인 영역에 대한 미디어 전략을 구상해내지 못하고 있는 대만의 활동가들에게 베를린 개방채널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대만 노동자의 투쟁과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들은 독일의 활동가들에게 예기치못한 선물이 되었다.
노동운동의 확대와 한몸인 노동미디어운동의 네트워킹은 바로 그렇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과 중국의 노동자, 나아가 노동운동의 향방이 이후 한국 노동운동 및 전세계적 수준의 변혁운동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젝 막 걸음마를 시작한 대만의 노동 미디어 운동은 지금은 작지만 가까운 미래에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될 태풍의 눈과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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