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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4호 미디어교육] 최초의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이 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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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4호 / 2005년 9월 1일 

 

 

최초의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이 생기다!
                                                                                                                
       레 주 파

레주파가 탄생하기까지
 
 
여성이반 미디어 활동가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 ‘주파수 L을 잡아라'라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접한 건 3월 중순이었다. 미디액트,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여성영상집단 움, 시민방송 이렇게 4단체가 모여 기획한 교육이며, 아웃팅의 위험이 없을 테니 참여해 보라는 권유에 많은 생각을 했다. 미디어를 직접 만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과연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 말고도 아웃팅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교육과 라디오교육 중 그래도 아웃팅의 위험이 적은 것이 라디오이고, 또 라디오라는 매체에 매력도 느끼고 있던 탓에 4월 8일 첫 교육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약 두 달 동안 기획에서부터 원고, DJ, 편집에 이르기까지 1인 제작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는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웠다. 어떤 사람은 안양에서 금요일 밤만 되면 회사를 박차고 미디액트까지 달려왔고, 어떤 이는 용인에서 막히는 도로를 뚫고 왔다. 교육이 끝나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싶게 술을 마시며 교육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면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삶의 활력소가 되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레즈비언의 언어를 미디어로 표현해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였다. 처음 있는 레즈비언 미디어교육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교육 후 수료작으로 드라마, 피쳐, DJ구성, 다큐멘터리 등을 공동 제작하면서 많은 이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이렇게 재미있는 걸 우리만 하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훗날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교육 내내 목표로 삼았던 마포 소출력 라디오방송은 수료생들에게 희망이었고 출구였다. 그 사이 2005년 퀴어문화축제에서 수료작을 방송하면서 수료생들은 가능성을 느꼈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미디어에서 소외된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찾고, 언니들을 위한 신나는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 제작팀 레주파(lezpa)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마포FM에서 방송하는 것!!
 
마포FM이 곧 개국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마포FM에 편성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하게 제안서를 만들었고, 미팅을 가진 후 우리는 수요일 밤 12시부터 1시라는 시간을 편성받을 수 있었다. 소출력라디오 중 레주파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유일한 성적소수자 방송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기쁘면서도 왠지 모를 부담감이 밀려왔지만 그런 부담감은 접고 하루라도 빨리 방송을 준비해야 했다. 교육을 끝내고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감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우려도 되었고, 때문에 편성 사실을 알게 된 후 바로 워크숍을 통해 한 시간 분량의 방송을 각자 만들어 보고 부족한 점에 대한 평가회의를 가졌다.


           


레주파 멤버는 7명이지만 7명 모두 하고 있는 일이 있기에, 그리고 방송제작에 많은 참여를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기에 자기의 위치에서 각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역할을 파악하고 일을 분담했다. 그리하여 <L 양장점>이라는 여성이반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준비기간이 끝나고 마포FM의 8월 10일 첫 파일럿 방송을 위해 다 함께 모여 밤을 새워가며 한 시간 방송을 기획할 때는 걱정이 앞섰다.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포FM에서 처음 녹음을 하던 날, 우리는 진짜 우리가 방송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기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녹음을 마치고 10일 저녁 레주파 멤버 모두가 모여 <L 양장점>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이 방송은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내는 방송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올 땐 모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10, 17일 파일럿 방송을 무사히 마친 후에야 우리는 많은 레즈비언과 소통을 하며 우리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그동안의 고생과 걱정을 하늘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 많이 뱉어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레주파는 참 운도 좋고 시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 교육을 수료하고 바로 마포FM이라는 방송 출구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2기 양성과 방송제작비가 필요하다고 느낄 즈음 다음세대재단에서 프로젝트 지원 공모가 있다는 소식을 접해 지원서도 제출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엽기, 발랄, 우울, 전천모드의 레주파 매력녀들이 만드는 방송, 우리들의 DJ가 말하고 우리 이야기를 뱉어내는 방송, <L 양장점>이 앞으로도 계속 방송을 제작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멤버를 지속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레주파 2기를 교육하여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게 우리의 희망이다.


교육에서부터 방송을 하기까지 옆에서 많은 힘을 주신 미야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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