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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8호 미디어센터ING]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 이런저런 방법으로 굴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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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28호 / 2005년 12월 31일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 이런저런 방법으로 굴러가다
 
황남순(마산MBC시청자미디어센터)

2003년 11월. 마산MBC에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문을 열었다.  편집용 컴퓨터 일곱 대, 카메라 다섯 대, 기타 기자재 이것저것 몇 가지, 책상 하나, 실무자 한 명. 끝! 엄청난 규모였다!!!
 “자, 이제 뭘 어쩐다!?”
 유일한 실무자 박군은 텅 빈 센터에서 혼자 소리쳤다.
 
 “쩐다~쩐다~쩐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빈 사무실 특유의 ‘벽 치고 돌아오는 메아리’ 뿐이었다.
 
일할 사람 만들기  
센터가 문을 열고, 당장 급한 것은 함께 일할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센터 근처에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미디어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에 강사 이력과 각종 프로그램 자격증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종종 있었으며, ‘에프터 이팩트’ 교육을 해야 한다며 자신의 실력과 교육자(?)로서의 안목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 한 과목 한 과목의 강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대 시민 서비스’에 소질이 있어야 했으며 (둥글둥글한 성격에 사기라도 칠 수 있는 말주변, 급격한 친화력), 무엇보다 퍼블릭액세스에 대해 공부할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이라야 했다. 시간에 상관없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면 더욱 좋았다. 실무능력이야 키워서 만들면 되는 거니까, 하루 종일 같이 앉아서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렇다. 백수들이 필요했다.
 “얘들아, 여기 와서 놀지 않으련?”
실무자 박군의 전화 몇 통에, 안 그래도 궁금했던 백수들(영상활동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헛, 코딱지만 한걸?”
월세 밀리는 바람에 편집실에서 쫓겨나 있던, 그 밖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백수생활을 하던 돈 없고 빽 없는 영상활동가들은 그나마 몸 부빌 곳을 찾은 듯, 센터를 내 집같이 드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 당시 베스트 상품이었던 라꾸라꾸 침대를 하나 들여놓았다.

 
밤새워 불 켜놓기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라꾸라꾸는 필수적이었다. 소문을 내고 그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슨 소문을 어떻게 낼까. 박군은 초창기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소박한 듯하면서도 역동적이고, 나름대로 순수해보이는 소문을 하나 만들어냈다.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는 24시간, 365일 열려있습니다. 절대 문을 닫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상활동가들과 라꾸라꾸를 기반으로 그 소문을 현실로 만들었다. 훗날 그 소문이 발목을 잡을 줄 모르고,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시민들은 정말로 밤 12시에 편집을 하러 센터로 찾아오곤 했다. 당장 내일 아침 학예발표회에 상영해야 한다며 야간자율학습까지 착실하게 마치고 찾아오는 고등학생부터 근처 함안, 밀양, 멀리 거제에서까지 밤길 마다않고 찾아오는 타 지역 시민들. 그나마 이렇게 저렇게 해서 센터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대 시민 출장 서비스 1
 
 회원들은 늘어만 가고, 할 일은 점점 많아졌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대 시민 출장 서비스’. 출장 서비스라 하니 그 유명한 ‘찾아가는 미디어교실’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완벽한 출장 서비스를 위해 네 차를 내놔라.”   
어느 틈에 유일한 실무자에서 소장 직함을 차지한 박군은 갓 들어와 어리버리한 엄군에게 신혼살림인 자가용을 희생하라고 강요했다.
 “기름값은 줄게.” “......네.”  
 차를 헌납하고, 엄군은 미디어교육팀장이라는 직함을 얻은 후, 각종 A/S맨으로 전락했다.
 
 “여기 청소년문화의 집인데요! 하드가 뻑 갔어요!”
 “예, 곧 갑니다.”
 
 “여기 여성장애인연대인데요, 프리미어 좀 깔아주세요!”
 “예, 곧 갑니다.”
 엄 팀장은, 흰색 레조에 컴퓨터 본체 대여섯 대를 싣고 오늘도 마산 시내를 달리고 있다.

 
대 시민 출장 서비스 2
 
 온갖 단체를 돌아다니며 A/S까지 하는 미디어센터가, 지역의 현안문제에 빠질 수는 없었다. 우선 얼굴 반듯한 나이트클럽 디제이 출신 차군을 섭외, 시청자 지원팀을 만들고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김해 가야축제부터 장애청소년들의 학예회까지, 문화재, 생활, 역사... 경남의 크고 작은 사회 현안문제부터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모든 활동에 투입해 영상자료를 축적해 갔다.
 완성된 영상자료를 보고 감동받은 단체들은 가끔 고마움의 뜻으로 후원금을... 쿨럭. 거절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미안해서 다 받는다. 이 돈은 모자라는 운영비를 요긴하게 채워주고 있다. (한달에 밥값만 200만원씩 들다보니...)  차군의 반듯한 얼굴과 함께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인지도도 반듯하게 굳어갔다.
 
퍼블릭액세스 활동주체 만들기
 
 엄군과 차군의 발품으로 지역사회와 시청자미디어센터의 관계는 날로 돈독해지고, 이는 곧 퍼블릭액세스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센터로 공문이며 관련 자료들을 팩스로 보내오고, 영상교육을 갓 수료한 시민들은 촬영할 게 없을까 하며 센터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다. 날아오는 팩스는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마산MBC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방송하던 10분짜리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은, 해를 넘기며 2005년 봄, 텔레비전부터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독립된 프로그램이니 만큼, 독립된 제작주체가 필요했다. 그동안 센터를 기반으로 활동해오던 시민들의 모임인 ‘시청자영상제작단’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선 프로그램 설명과 함께 시청자영상제작단의 역할을 의논하기 위해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영상활동가들, 센터 회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회의 한번 찐하게 해보려고 했더니, 조금 과장해서 자그마치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이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늦게라도 오겠다는 사람들을 말려가며, 우선 시청자영상제작단 활동에 대한 동의만 얻은 후 대표단을 따로 추려야 했다.
 
 라디오액세스 활동주체 만들기
 
 2005년 가을, 텔레비전에 이어 라디오 프로그램도 독립편성 되었다. 사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일반 시청자들보다 시민사회단체쪽 활동가들의 참여도가 월등히 높다. 아무래도 실무에 시달리며 카메라까지 들고 촬영 다니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라디오는 그래도 앉은 자리에서 원고 작성하고 한 두 시간 쪼개어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단체 쪽에서 활용하기가 더 편한 모양이다.
 시청자영상제작단 회의에서 기겁했던 경험을 곱씹으며, 이번에는 우선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1차 회의를 가졌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미디어센터 교육생이자 시청자영상제작단이기도 했으니 뭐 특별히 새로운 조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따로 이름도 정했다. “경남지역 공동체라디오협의회”.
 첫 번째 모임 이후, 센터는 고민에 빠졌다. 자그마치 일주일에 80분의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수많은 단체의 실무자들이 일이십 분씩 녹음하겠다고 일일이 센터로 찾아오는 것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귀찮아서 못하겠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옥션을 이용하기로 했다.  USB연결만 하면 컴퓨터로 녹음할 수 있는 5만 원짜리 마이크를 옥션에서 대량구입, 각 단체 사무실에 설치했다. 단체들은 각자 자기 사무실에서 녹음을 하고, 그 파일을 메일로 보내왔다. 센터는 그 파일들을 받아서 편집한 후 프로그램에 잘 배치하면 되는 것이다.
 아핫,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사전제작지원
 
자, 실무진 여덟 명, 언제든지 투입 가능한 든든한 외부강사 십여 명, 텔레비전 액세스를 위한 시청자영상제작단, 라디오 액세스를 위한 경남지역공동체라디오협의회, 더 이상 뭐가 필요할 것인가! 이제 이 조직과 규모를 가지고 우리가 나아갈 길은 오직 정진뿐이다.
정진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활동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 무언가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센터와 의논한다. 기술지원, 인력지원과 함께 제작비를 지원하는 것도 센터의 몫이다. 결과물에 대한 제작비 지원도 물론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센터 나름대로 돈을 마련해(각종 부업) ‘사전제작지원’을 시작했다.  이게 보통 효과가 있는 게 아니다. 받은 게 있다보니 수 틀렸다고 해서 중간에 때려 칠 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제작자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센터를 통해 만들어지는 제작물은 100% 완성률을 자랑하게 되었다.
 
지역사회 파고들기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센터에 먼저 연락하고, 컴퓨터만 고장 나도 센터로 달려오는 시민들. 5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전화벨.
 “카메라 빌릴 수 있나요?”
 “제가 만든 거 언제 방송 나가요?”
 “저희 홈페이지에 동영상 좀 올려주세요.”
 마산MBC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지역사회 깊이 파고들어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다. 어떤 행사에도, 어떤 사안에도 미디어센터가 관여하고 있으며, 센터의 교육을 통해 배출된 천여 명의 시민들은 이제 무슨 일이 생기면 “한번 찍어볼까?”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곤 한다. 시민들은 센터가 있음으로 해서 하나의 취미생활을 더 가지게 됐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센터가 있음으로 해서 하나의 활동분야를 더 가지게 되었다.
 “어힛, 자네 어디가나?”
 “아, 미디어센터에 커피 한잔 마시러.”
 하루 수십 명씩 출입하는 외부인들 때문에 언제나 긴장하던 마산MBC 안내실 요원들도 이젠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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