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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3호 연재]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그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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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teditor 2016. 8. 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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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43호 / 2007년 7월 6일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그의 역사 (2)
 
윤상길 (꿈꾸는 미디어史家, cyrus92@dreamwiz.com)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그의 역사 (1) 

앞서 필자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를 사고하기 위해선 커뮤니케이션이나 정보에 대한 사고가 동반되어야 함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정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들은 도시라는 하는 멀티미디어 시스템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6. 교통과 커뮤니케이션학자들은 어려운 학술용어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개념을 설명하려 하고 있고 또 일반인들은 이 개념을 별다른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이 개념이 지칭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앞서 3장에서 설명한)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사고와 상통할 수 있을까? 필자는 커뮤니케이션이 의미하는 바를 궁극적으로 두 요소들 - 일반적으로 지역, 집단(공동체), 사람 - 이 서로 ‘연결’되어 특정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두 요소들 간에 ‘나눔(sharing)’과 ‘연합(association)’이 이뤄지고 또 그럼으로써 ‘공통’의 기반이 창출되는 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주1)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요소들 간의 ‘무엇’이 연결되는가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두 지역의 ‘그 무엇’, 두 집단 간의 ‘그 무엇’, 두 사람 간의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고려사항인 ‘그 무엇’을 일별하는 문제는 생각처럼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상식적인 수준에서야 ‘그 무엇’을 (지식이나 생각, 그리고 느낌까지도 포함한) ‘정보’(information)로 제시할 수 있고, 또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개념의 번역어로 ‘의사소통’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을 ‘두 당사자 간의 정보교환’에 국한하여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러한 사고 속에서 왠지 모를 편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사고 속에 숨겨져 있는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는 존 피터스(John D. Peters)라는 학자의 얘기에 귀 기울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19세기 후반서부터 ‘他者(즉, 다른 사람)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견지에서 스스로를 정의내리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타인과 충분한(때로는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 상황으로서 ‘영혼의 상호교섭’이나 ‘대화’에 도덕적인 특권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식의 사고경향이 등장하는 데 있어서 전신(telegraph)과 같은 전자적 미디어의 등장은 결정적이었다.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인하여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졌고, 따라서 이제는 커뮤니케이션이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새로운 종류의 준-물리적 연결(connec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조정되었기 때문이다.(*주2) 이러한 존 피터스의 지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인간의 ‘생각과 영혼, 그리고 정보 간의 상호연결’에만 국한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사고(*주3)의 역사는 길어보았자 전신이 등장한 19세기 중반까지 소급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 개념으로는 기나긴 인류문명에 있어서의 미디어 역사를 서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류문명에 있어서의 커뮤니케이션 역사, 그리고 미디어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선, 19세기 중반에 특권 지워진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확장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확장된 사고의 시발점으로서 앞서 제기했던 “두 지역의 ‘그 무엇’, 두 집단 간의 ‘그 무엇’, 두 사람 간의 ‘그 무엇’”을 정보에 국한시키기 보다는 상품이나 인간신체로까지 확장시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이해한다면, 전자적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시기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곧 인간의 물리적 이동을 지칭하는 교통(transportation)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전자적 미디어의 등장 이후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교통이 가지는 의미변화이다. 일반적으로는 전신과 같은 전자매체의 등장이 그동안 결합되어 있던 교통과 통신(telecommunication)의 분리를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주4) 그럼 이러한 견해대로라면, 전자매체 등장 이후의 교통에서는 커뮤니케이션적 의미가 통신에 의해 대체되어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주5) 사정은 그와 같지 않다. 전자적 통신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과 상품이나 사람을 전달해주는 교통이 기능분화를 하게 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경향이겠지만, 교통이 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적 의미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 교통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도시

그렇다면,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변용을 겪게 되기 이전 시기, 즉 교통과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같은 의미를 띠고 있던 시기에 도시의 미디어성(즉, 미디어적 성격)을 규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앞서 도시가 멀티미디어 시스템임을 설명하고자 했던 3장에서 밝힌 바 있듯이, 흩어져 있는 지역과 집단 혹은 공동체 사이에서 존재하면서 이들 사이에서 신체나 재화, 그리고 정보를 매개한다는 의미에서 도시는 미디어이다.(3장의 미디어로서의 도시 그림 참고) 여기서 도시의 미디어성을 규정하는 관건은 ‘관계를 매개하는 장’으로서의 도시가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도시라고 하는 ‘관계의 장’은 특정한 토지 공간상에 사람들이 집적되는 것으로서 실현되고, 토지성(土地性)과 교통성(交通性)이 얽히는 가운데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토지성’이라 함은 동일한 토지에의 귀속됨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주게 되어 사회의 공통성의 근거가 되는, ‘토지를 관계의 매개체’로 하는 사회관계나 사회질서의 존재방식을 의미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교통성’은 토지에로의 귀속됨을 초월한 인간이나 재화, 정보의 왕래에 결부된 사회관계나 사회질서의 존재방식을 일컫는다”.(*주6) 따라서 결국엔 (3장에서 얘기한 바 있는) 세 가지 수준의 관계맺음 - 즉, 1) 도시 내부의 각 공동체 사이, 2) 도시 내부의 각 공동체와 도시 외부의 지역 및 집단 사이, 3) 도시 외부의 각 지역과 집단 사이 - 에 있어서 토지성과 교통성이 어떤 형태로 얽히는가가 도시의 미디어성을 규정하는 핵심요인이 된다. 
대체적으로 (전자미디어의 등장은 차치하더라도) 철도와 같은 근대적인 교통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도시의 미디어성은 주로 토지성에 의존하던 단계로부터 교통성에 의존하는 단계로 점차 변용하고 있었다. 교통의 에너지원으로서 주로 인마(人馬)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사회관계에 대해 가지는 토지의 속박성은 매우 강렬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지성의 강력한 자기장에도 불구하고, 도시라고 하는 새로운 정주형태가 그 존립기반으로서 여전히 주변 인접지역과의 교통성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후지다 히로오에 의하면, 도시의 출현은 오랜 시간 어디에나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였던 촌락의 상황을 급변시켰다. “도시는 식량을 비롯하여 생활자료를 생산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촌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도시는 촌락에서 생산된 식량을 기본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출현과 더불어 촌락은 도시에 집적한 수많은 사람들을 부양해야만 했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농업생산을 향상시켜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도시는 촌락에 다양한 생활필수품의 생산을 요구했다. 이로부터 자급자족적이었던 촌락의 ‘농촌화’가 시작되었다”.(*주7) 이렇듯 도시는 식량을 비롯한 생활용품을 인접지역으로부터 수송하는 것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도시의 미디어성은 교통성의 기반을 내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교통은 기본적으로 토지 공간상의 이동경로인 길을 인간이 오고가는 것에 의해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교통성 또한 토지성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도시라고 하는 관계의 장은 도로나 수로, 해로와 같은 이동경로를 통해 엮여 있던 지역 네트워크나 집단 네트워크의 결절점(매듭, node)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주8) 그렇다면 여기서 도시가 결절점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지리학자들에 의해 탐구되어 왔는데,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한번 들어보았음직한 크리스탈러의 중심지 이론이 이에 해당된다. 도시 시스템(*주9)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심지 이론은 도시 시스템의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서 사람이나 무거운 물리적 재화를 운송해야 하는 불가피한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거리마찰’(friction of distance)이라는 관념은 핵심적이다. 거리마찰이란, 여행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 비용적인 측면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모두다 너무 비싸기 때문에 너무나 큰 거리는 (멀리 떨어진 두 지역 간의) 상호작용을 저해한다는 것이다”.(*주10) 쉽게 얘기하자면, 거리적 요인이 결절화의 중심이유라는 것이다.
기존의 도시의 미디어성이 근거하고 있던 ‘토지성-교통성’ 조합양식은 한편으론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상업경제의 성장으로 인하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증기기관과 같은 에너지원 활용기술의 혁신으로 등장하게 된 철도나 증기선 등의 근대적인 교통미디어로 인하여, 변용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상업경제의 성장과 근대적 교통미디어의 등장은 이 조합양식에서 있어서 교통성이 좀 더 강조된 형태로 변용되는 데 일조하였다. 가령, 르네상스 이후 서양도시에 시행되었던 “도시계획에서는 도시가 교통에 희생되었는데, 여기서 근린주구나 지구가 아닌 도로가 계획의 단위가 되었다. 획일적인 가로는 이동을 촉진하고 조용하고 자족적이었던 도시의 부분들을 혼란시켰고,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친근한 집합장소로서의 지방거점을 제공해 주기보다는 교통노선을 따라 연장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주11) 또한 산업화 이후 등장하였던 “상업적 도시계획의 특징은 축도로에 있었는데, 이것은 주로 차량통행을 촉진하기 위해 설계된 축상의 간선도로였다. 또한 값싼 역마차, 기차 및 전차가 발명됨에 따라 역사상 최초로 대중교통이 출현한 이후, 보행거리는 더 이상 도시성장의 한계가 되지 못하였고 도시 확장의 전반적인 속도가 빨라졌으며 도로단위나 가구단위가 아닌 철도노선단위, 교외지역단위로 도심부에서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 값싼 철도요금의 시대에는 돈 못 버는 노동자들에게 개인교통을 부릴 수 있는 사람들과 형평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이동성을 부여하였다”.(*주12)
그렇다면, 주로 우마(牛馬)나 사람이 교통의 주요 동력원으로 이용되었던, 근대적 교통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시기 한국의 경우엔 사정이 어떠할까? 그리고 철도의 등장이후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였는가? 시론적인 수준에서나마 잠시 살펴보자면, 아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상업경제와 교환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던 조선후기의 양상은 앞서 얘기했던 바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거리마찰에 의해 도시는 주변지역 네트워크의 결절점으로 존재하는 패턴을 보일 뿐만 아니라, 주요도시들 뿐만 아니라 장시까지도 육로의 이동경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래 경인선(1899년)을 필두로 경의선(1906년) 및 경부선(1905년), 그리고 병탄이후 경원선 및 호남선 등의 철도가 근대적 교통미디어로서 도입됨으로써, 기존의 육상도로를 중심으로 해서 등장했던 도시들은 그 지배적 지위를 철도가 통과하는 신흥도시에 내주게 되었다. 아래의 철도노선도와 도시 및 장시 분포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요 도시들은 철도노선도를 따라 재편되게 되었다.
8. 결론을 대신하며 : 누구를 위한 정보도시인가?인류문명이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듯이, 전자미디어의 등장으로 야기된 사회변화 역시 주로 도시에 집중되어 발현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내의 각종 미디어들의 협동을 전제로 하는 ‘미디어 다발’로서의 도시이기에,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기존의 ‘미디어 다발’에 편입되어 기존의 미디어생태계를 대체하는 새로운 미디어생태계의 창출로 결과되기 때문이다. 이후의 연재글들을 통해 인간이 적응해야 할 ‘인위적 환경으로서의 미디어 생태계’를 구성하는 여러 미디어들의 역사를 각론적으로 살펴볼 것이기에, 여기서는 전자미디어의 등장이 도시의 미디어성에 어떠한 변용을 가져 왔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전기통신이 교통으로부터 기능 분화해 감에 따라, ‘토지성’과 ‘교통성’의 조합으로서 도시의 미디어성은 기존의 미디어성과 차별되는, 거의 단절에 가까운 변용을 겪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전기통신기술은 교통에 있어서의 ‘거리마찰’을 극복해주는 ‘거리축소’(distance shrinking) 기술인 것일까? 또는 마뉴엘 카스텔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인류 공동의 경험이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나타난 공간조직인 ‘장소의 공간’(*주17)은 이에 대비되는 ‘흐름의 공간’으로 대체될 것인가?(*주18) 필자가 전개해 온 논리를 세심하게 따라온 독자라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뉴엘 카스텔이 지적하듯, 전자미디어 및 전자네트워크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흐름의 공간’ 또한 여전히 물질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자 네트워크의 물질적 토대로서 전자회로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장소가 존재하지 않지만, 여기서도 장소는 사라지지 않고 다만 장소의 논리와 의미가 네트워크 내로 흡수될 뿐이다. 그리고 소위 결절(node)과 허브(hub)로 구성된 전자 네트워크는 사회, 문화, 자연, 기능적 특성을 지닌 특정한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몇몇 장소들은 교환자, 즉 커뮤니케이션 허브로서, 네트워크에 통합되어 있는 요소들 모두간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하여 조정자 역할을 담당한다. 또 다른 장소들은 네트워크의 결절로, 네트워크 내에서 핵심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일련의 지역기반 활동과 조직을 구축하는 전략적인 중요성을 갖는 기능들이 입지하여 있다”.(*주19) 정보와 지식의 생산, 가공, 교환이 특화된 기능을 가지게 되는 ‘교류도시’(交流都市, transactional city)가 주로 관련 산업이 집적해 있거나 연구소, 대학 등 고급인력과 기술자문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도시에 입지하게 되는 것(*주20)도 이와 비슷한 이치이다. 이와 같이 과거에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여전히 장소에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얘기한 ‘흐름의 공간’이 점차 현대사회에서 지배적인 이해(利害)의 논리가 되어간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도시의 미디어성 변용은 지나치게 엘리트중심적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기술관료적, 금융적, 관리적 엘리트들은 그들의 이해와 실천을 위하여 물질적, 공간적 지원과 관련된 특정한 공간적 요구를 가지고”(*주22)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들 정보엘리트들의 이해관계에 잘 부합하는 것이 ‘흐름의 공간’이다. 마뉴엘 카스텔의 “엘리트들은 코스모폴리탄이고 인민은 지방적이다”(*주23)라는 말보다 이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있을까? 그리고 여기서 지난 연재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서울시의 ‘디지털미디어시티’ 프로젝트가 연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러면 도시의 미디어성에 있어서 나타나는 이러한 엘리트중심적 변용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어떠할까? 정보통신의 터널효과(tunnel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정보 엘리트들의 앙클라브(enclaves)라 일컬어지는 우수한 정보통신시설을 갖춘 지구(地區)들 - 인텔리전트 빌딩들이 들어선 이른바 디지털 지구(digital districts) - 은 멀리 떨어진 외국의 세계도시와 마치 지척에 있는 것처럼 연결된 반면, 자기 도시 내에 바로 이웃한 지구와는 터널의 안과 밖의 경우처럼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말”(*주25)이다. 정말로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도시 내 커뮤니케이션이 조화롭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연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또한 카스텔이 지적하는 바처럼, “우리사회의 기능이나 권력은 흐름의 공간으로 조직되는 데 반해 장소와 관련된 경험은 권력과 분리될 뿐만 아니라 지식과도 점차 분리되는, ‘장소의 공간’과 ‘흐름의 공간’ 사이의 구조적 정신분열증”(*주26)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의미를 선택할 기회로 이해할 경우, 이는 “개인적 선택과 사회적 선택의 비용을 줄여주고 이들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엔진으로서의 도시”(*주27)가 그 기능을 정지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핵심가치 중의 하나인 자유가 제한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의 엘리트중심적 미디어성 변용이 가져올 무엇보다 큰 위협은 자연생태계 파괴 못지않게 위협적일 수 있는, 인간존립의 기초라 할 ‘커뮤니케이션 균형’의 파괴(*주28)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정보화(情報化, informatisierung)의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보화는 무엇인가라고. 따라서 이후 연재글에서는 ‘미래편향적인’ 허울뿐인 정보화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정보화의 의미를 재점검하는 차원에서, 멀티미디어 시스템으로서의 도시를 구성하는 각 미디어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 주

1. 이러한 관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파악하는 대표적인 학자로서는 미국의 문화연구자인 James Carey가 있다. 그는 이러한 관점을 ‘의례적(儀禮的) 관점’(ritual view)으로 설명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Carey, James W. (1989), "A Cultural Approach to Communication", Communication As Culture : Essays on Media and Society, New York: Routledge를 참고하기 바람. 
2. Peters, John Durham (1999), Speaking into the Air : A History of Idea of Communication, Chicago & London : The Univ. of Chicago Press
3. 필자는 이를 일컬어 근대적 커뮤니케이션 사상에 있어서의 ‘관념론적 계보의 탄생’이라고 칭하고 싶다.
4. Thompson, J. B. (1995), The Media and Modernity : A Social Theory of the Media, Stanford & California Press)
5. 만약 교통의 커뮤니케이션적 의미가 통신에 의해 대체한다고 파악한다면, 이러한 인식은 (존 피터스의 용어를 빌린다면) 인간 대 인간의 활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단순한 기술적 견지에서 묘사하고자 하였던 19세기 이후의 사고방식에 의해 포섭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若林幹夫, ibid, pp.236.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는 하나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다른 제 영역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열려있는 ‘메타-장소’인 장소”인 것이다. 
7. 후지다 히로오 (1993), 이정형 역(1995), 《도시의 논리》, 서울 : 도서출판 국제, pp.69-70. 그는 도시와 농촌과의 관계를 아래의 그림과 같이 설명하려 하였다.
8. 若林幹夫, ibid, pp.236
9. 도시 시스템은 각각의 도시가 전체로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 시스템의 하부구성요소인 각각의 도시가 어떠한 규모를 가지고 있고 그 도시 간에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개념이다. 도시 시스템 연구는 일반적으로 결절점과 그 결점점들을 연계하는 역할을 하는 교통로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선 山口岳志[야마구치 타카시] 편, 김유혁 편역(1988), 《세계의 도시시스템》, 서울 : 선일문화사, pp.18-20
10. Graham, Stephen. & Marvin, Simon.(1996), Telecommunications and the City : Electronic Spaces, Urban Places, London & New York: Routledge, pp.55-56
11. 루이스 멈포드 (1961), 김영기 역(1990), 《역사 속의 도시》, 서울 : 명보문화사, pp.399
12. 루이스 멈포드, ibid, pp.462
13. 성준용 (1990), 《한국의 도시시스템》, 서울 : 교학연구사, pp.49
14. 신세계백화점 (1992), 《한국의 시장상업사》, 서울 : 신세계백화점 출판부, pp.131
15. 성준용 (1990), 《한국의 도시시스템》, 서울 : 교학연구사, pp.59
16. 성준용 (1990), 《한국의 도시시스템》, 서울 : 교학연구사, pp.64
17. 개념적으로 보면, 카스텔이 얘기하는 ‘장소의 공간’은 와카바야시(若林幹夫)의 ‘토지성’에 상응하는 개념이라 할 것이다.
18. Castells, Manuel (2000), 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 김묵한?박행웅?오은주 역(2003),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서울 : 한울아카데미, pp.494-555
19. Castells, Manuel, ibid, pp.537
20. 허우긍 (2002), 〈교통과 정보통신기술은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가?〉, 박삼옥 외 (2002), 《지식정보사회의 지리학 탐색》, 서울 : 한울아카데미, pp.216-217. 
21. 김태환 (2006), 〈도시와 정보통신〉, 김인, 박수진 편 (2006), 《도시해석》, 서울: 푸른길, pp.111
22. Castells, Manuel, ibid, pp540.
23. Castells, Manuel, ibid, pp541.
24. Graham, Stephen. & Marvin, Simon., ibid, pp.59.
25. 허우긍, ibid, pp.219.
26. Castells, Manuel, ibid, pp555.
27. Deutsch, Karl. W. (1961), "On Social Communication and the Metropolis", Daedalus, Vol.90. No.1.
28. 이정춘 (2000), 〈정보사회의 생태론(학)적 이해〉, 《미디어사회학》, 서울 : 이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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