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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4호 이슈와 현장] 시청자참여프로그램, 그 애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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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4호 / 2011년 5월 30일

 
 
 
시청자참여프로그램, 그 애증의 관계
 
이진행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미디어연구소)

 

 

 

 

불방, 또 불방이다.

 

 

이번엔 지역 케이블방송이다.

 


지난 4월 25일 익산지역케이블방송국 금강방송이 익산지역공동체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공동제작위원회에서 제작한 [시민제작 프로젝트, 익산을 말한다]에 대해 방송 불가 통보를 했다.

 

퍼블릭액세스가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한국에 정착한 지 10여 년. 방송사 측에서 시청자들이 방영 요청한 작품을 불방처리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고, 그에 항의해서 성명서를 쓰고 선전전을 하고 집회를 하고 면담을 하고 토론회를 한 것도 수차례이다. 대개의 경우 방송사에서 방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작품들은 사회적인 쟁점을 담고 있거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자본(특정 회사)이나 권력(정부)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제작한 것도 아닌데 힘 있는 쪽의 불평불만을 감당해야 한다는 우려(어떤 방송사에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는 특정 기업의 전화나 공문 등이 접수되기도 했었다.) 때문에 방송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주류 미디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직접 전달되는 통로라는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의 취지를 지켜내고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는 주류미디어에 일침을 가하는 성격을 띠며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좀 특이하다. 방송사에서 눈치를 보거나 꺼릴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에 사회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내용이 거의 없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역의 이야기를 시민들의 시각에서 담아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익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 시민영상동호회 ‘영상바투’,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가 공동으로 제작한 것으로, 시민사회단체협의회 소속 단체인 익산참여연대에서 기획과 대본을 담당하고 영상바투에서 촬영, 편집을 하고 미디어센터에서 스튜디오 공간 및 기술 지원을 담당하는 형태로 역할을 분담하여 제작된 것이다. 이번에 제작된 영상은 사회자와 주부 패널 2인이 출연하여 익산참여연대 지방자치연구회장과 함께 "착한소비! 지역경제의 해법이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SSM(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의 문제를 지적하고 재래시장을 비롯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아냈다.


 


 


‘착한’ 액세스 영상도 방영하지 못하겠다는 금강방송

 


그렇다면, 금강방송에서 방송을 못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강방송은 △방송사가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과 주제가 겹칠 가능성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라 볼 수 없다. △“한 달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라는 MC 멘트가 적절치 않다. △방송사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방영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구두로 전했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강방송이 제시한 이러한 근거들이 불방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은 방송사 자체 프로그램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며, 문제가 되는 멘트가 있다면 수정을 하면 될 것이고,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입장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금강방송의 불방 사유에 대한 비판은 성명서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http://blog.daum.net/opentv-is/5 ) 그리고, 방송사와의 사전 협의는 방송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방송사의 협의를 통해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되묻고 싶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번에 프로그램을 제작한 세 주체는 작년에도 지역 현안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했었다. 그 때는 한 시간 조금 못 되는 긴 분량의 토론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아니라 별도의 편성을 요청했었다. 금강방송이 이 지역 유일한 방송사이고,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이 모여 만든 지역 현안에 대한 프로그램인 만큼, 지역채널을 통해 편성해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오판이었음이 밝혀졌다. 제안할 당시에는 아무런 부정적 답변을 하지 않던 금강방송은 방송물을 완성해서 제출하자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발뺌을 하며 편성을 주저했다. 자신들이 곧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할 예정인데, 이 프로그램과 포맷이 겹친다는 이유였다. 결국 제작주체들이 사장 면담까지 하여 겨우 한 번 방송이 성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익산 지역 시민사회는 금강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장된 시간,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활용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장 면담에서 제시된 방송사의 입장도 그랬다. 굳이 방송사에 별도 편성을 요구하지 말고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제출하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올해 제작한 프로그램은 애초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방송 분량 등도 미리 담당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었다.

 

협의의 문제는 그렇다고 치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으로 가져오면 그냥 틀어주자 싶었는데, 막상 완성된 걸 보니 그것도 싫다, 이런 이야기이다. 왜 싫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지역에서는 “분명 뭔가 이유가 있겠지, 설마 진짜 이런 이유로 안틀어줄까?” 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는 착한 영상. 자체제작프로그램과 주제가 겹치면 안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혹시 지역 사안에 대한 문제는 방송사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개인의 소소한 문제나 지역 축제에 대한 소개 영상 같은 것 이외에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방영불가 결정 이후, 싸움의 과정

 


금강방송의 방송 불가 결정 이후 제작에 참여한 세 단위는 성명서를 통해 방송 불가 결정을 철회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즉각 방영할 것,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하여 발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단위들의 성명서도 이어졌다. 퍼블릭액세스 실현을 위한 전북네트워크, 호남지역미디어센터네트워크,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에서 연이어 성명서를 발표해서 시청자들의 방송 접근권을 방해하고 지역방송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방송사를 규탄했다. 지역 신문을 비롯한 몇몇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이 사안을 보도했다. (사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침묵했는데, 이는 지역 언론의 네트워크 속에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를 비롯한 제작자 측은 관련 내용을 알려내고 항의를 조직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다. (금강방송 시청자자참여프로그램 불방 항의 블로그 http://blog.daum.net/opentv-is )

 


금강방송은 성명서 발표 이후 2주가 넘도록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우편으로 ‘운영위원회의 입장’이라는 문서를 전했다. 보낸 날짜가 5월 10일임에도 불구하고 4월이라는 일자가 표기되어 있는 이 문서에는 기존에 구두로 전달한 사유 이외에도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참여방송이라는 본질을 넘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방송을 통해 대변하고 여론을 형성할 목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방송 편성을 요구한 단체가 비영리단체가 아닌 특정단체라는 점에서 문제라는 입장이 들어있었다.

 

이쯤 되면 퍼블릭액세스,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시청자참여방송의 본질에 대해 전면적으로 이야기를 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생각하는 본질이 무엇이길래, “자신들의 목소리를 방송을 통해 대변하고 여론을 형성할 목적”은 본질에 어긋난다고 하는 건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할 참이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의 방영이 좌절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지역 미디어를 통해 소통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이다. 특히 금강방송이라는 익산 지역 케이블방송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방송사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방송사의 시각으로 재단하고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라 충격이 크다.

 


아직도 싸움은 진행 중이다. 제작자들은 이 문제를 지역사회에서 공론화하기 위해 다양한 소통의 통로를 활용하고 있다. 우선, 짧은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방송사에 액세스했다. 이 프로그램은 익산공동체라디오모임 ‘감감소식’에서 이 사안에 맞추어 급히 제작한 것으로, 5월 18일 원음방송 '아침의 향기'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었다. ( 라디오 액세스 듣기 http://blog.naver.com/gamnews/70108883717 )

 


또,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의 지원으로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영상활동가가 이 사안에 관한 영상을 만들어 전주MBC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열려라 TV]를 통해 액세스 할 예정이다. 한편, 방송사와 프로그램 운영위원회와의 소통도 계속 시도하려고 한다.

 

 

방송사와의 답답한 싸움을 하면서 미디어운동의 기본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지역 퍼블릭액세스 활동과 관련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지역사회에서의 지속적인 여론 환기와 토론의 중요성이다.

 

 

익산에서는 지역 케이블방송에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편성된 지 몇 해가 지났고, 시민영상동호회 영상바투가 활동하면서 많은 퍼블릭액세스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아직 지역 시민사회의 퍼블릭액세스에 대한 인식은 별로 높지 않은 것 같다. “원래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앞으로 상대 안하면 된다.”등이 단체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랄까. 그만큼 지역 방송을 시민들과 소통하는 채널로, 활동의 유의미한 통로로 활용하지 못해 왔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퍼블릭액세스를 활용한 단체와 그렇지 않았던 단체의 인식 차도 컸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 우리의 권리이며 지역 방송이 해야 할 당연한 보장해야 할 공간이라는 것을 더 많이 알려내고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가까운 전주 지역만 해도 전북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운동의 흐름이 있었고, 전주시민미디어센터의 설립 역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퍼블릭액세스와 시민들의 미디어 참여·활용에 대한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면서 이루어졌던 데 비해, 익산의 퍼블릭액세스는 이제 막 성격을 분명히 하게 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기존에는 방송발전기금 지원금을 통해 열려있었던 공간에 몇몇 주체들이 들고나던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이 프로그램을 퍼블릭액세스의 본래 취지에 맞게 다시 구성하고 채워넣 기 위한 활동을 기획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나마 미디어센터가 생긴 이후 다양한 교육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영상제작의 경험을 갖게 되고 퍼블릭액세스 지원제도 등을 통해 참여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체가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몇몇 단체와 영상바투의 오랜 활동을 통해 시청자참여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가면서 더 많은 사회적 발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의미를 짚어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퍼블릭액세스의 의의를 공감하고 참여하여 지역 미디어 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꾸어나가는 데에 함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독자적인 채널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전북지역 전체를 권역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 이외에 우리 지역의 미디어는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운영되는 케이블방송인 금강방송 밖에는 없다. 지상파 방송은 권역이 넓어 특정 지역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고, 지상파 방송의 특성 상 좀 더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케이블이 쉽고 친근하다. 정책적으로도 ‘매체별 특성’을 고려한 액세스 정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온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산 지역에 한한 이슈에 대한 영상이나 익산 지역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담은 영상은 주로 금강방송을 통해 방영되도록 액세스 했었다. 그런데, 이 금강방송에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시혜적으로 생각하고 시청자들이 만든 영상물을 자신들의 잣대로 규정하고 평가하며 자신들의 프로그램과 견주어 경계하고 배제하고 있으니, 시민들이 제작한 영상물은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주류방송사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성격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성격을 지역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로, 법적 규제로, 때론 협상과 타협으로 바꾸고 유지해 온 것이 우리나라의 퍼블릭액세스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힘들다. 인구 30만의 소도시.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고 이웃인 이 동네에서 방송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방송사에서 ‘장’ 자리 하나 차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권력이구나, 사람들의 입을 막고, 왜곡하고 매도하는 것도 참 쉽구나 하는 것을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시민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보다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게 ‘공동체 방송’을 꿈꾸는 이유, 공동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송을 꿈꾸는 이유가 아닐까.

 

 

[필자소개] 이진행
2002년부터 미디액트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퍼블릭액세스 활동에 참여했다. 2008년부터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재미 미디어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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