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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5호 이슈와 현장] 견뎌야 할 시간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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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ACT!> 제75호 / 2011년 7월 25일


 
 
 
 
견뎌야 할 시간이란 없다.
-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거운 행복한 상영회 -

 
 
류미례 (푸른영상,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영화를 한 편 만들 때마다 영화가 실천지침을 한 개씩 보여준다. 2004년 세 번째 영화 [엄마…]를 만들고 나서는 미디어교육에 전념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특히나 여성들이!) 마음 깊은 곳에 보물단지 하나씩을 가지고 있어서 미디어교육이 그걸 들여다보고 꺼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거라 믿었다. 이번에 완성한 네 번째 영화 [아이들] 또한 내게 길을 보여주었다. 거칠게 단어를 만들어보면 ‘여성들의 문화향유권 복원'이다. 나는 요즘 이 실천지침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생각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이다.
 
 
당신에게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독립영화는 제작 뿐 아니라 배급에 있어서도 상업영화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극소수의 선택된 영화만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뿐, 대다수 독립영화들은 바늘구멍만한 상영기회를 얻기 위해 영화제다, 공동체상영이다, 발품을 팔아야한다. 지난 여름, 부산영화제라는 마감시한을 지키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영화를 만들고 났더니, 웬걸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배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또 죽을 둥 살 둥 몸부림치며 상영을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극장개봉을 못해서? 아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극장개봉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세 번째 영화 [엄마…]가 운 좋게 극장상영의 기회를 얻었지만 정작 내가 만나고 싶었던 엄마들은 극장에 오지 못했다. 천만 관객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영화는 아무나 볼 수 있는 예술장르가 아닌 것이다.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극장은 멀고 먼 곳이다. 아기가 좀 자라서 어린이집에 맡겼다 하더라도 엄마들은 신데렐라처럼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톱니바퀴처럼 꽉 차인 일상을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극장 나들이는 ‘맘먹고 질러야'하는 일이다.


 
 

이번에 만든 [아이들]은 기획에서부터 완성까지는 6년, 영화 속에 담긴 시간은 12년인 나름 대작이다. 뒤집기 연습을 하고 첫 걸음을 떼던 어린 하은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의 시간들을 잘라 붙이며, 나는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엄마들을 간절히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엄마들은 아이 때문에 쉽게 나들이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더듬더듬 방법을 찾다가 문득 몇 년 전 어떤 여성미디어교육이 생각났다. 그 때 교육을 진행했던 선생님이 “미디어교육이 뭔지는 모르지만 아이 봐준다니까 왔다”고 말하던 아기엄마 얘기를 해주었다. 일주일에 단 두 시간이었지만 안심하고 아기를 맡긴 채 자기 시간을 갖고 싶어 하던 그 엄마의 열망을 나는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비밀상영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이들을 위한 연극놀이였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와서 엄마는 영화를,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것이다. ‘반짝'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는 분이 좋은 극장을 3시간동안 쓸 수 있도록 해주셔서 상영공간이 확보되자 나는 교육연극을 전공한 선생님과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이돌보미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극장사정상 공개적으로 홍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화와 메일로만 조용히 상영소식을 알려갔다. 초대를 받은 이들은 ‘비밀상영회'라며 나름 즐거워했다. 128석이라는 작은 소극장이 과연 채워질까 하는 궁금증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다는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치며 행사 당일을 기다렸다.

 

 

그 조용했던 놀이방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해서 행사 일주일 전부터는 참가신청을 받을 수 없었다. 특히 아기엄마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참가신청자들에게 나는 다음 기회를 꼭 마련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그리고 그 날이 되었다. 나도, 연극놀이 강사도, 그리고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모두들 아이들 놀잇감을 한가득 들고 와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극장에 함께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놀이공간에 남았다.

 


영화가 상영됐고, 이야기손님으로 오신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준비했던 모든 행사가 끝나가자, 행사를 함께 준비했던 친구가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나중에 그 친구가 말해주었다. “문을 여는데 애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극놀이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었어. 하도 집중하고 있어서 내가 문을 여는 줄도 모르더라.”

 


행사가 끝나고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멀리서 우리 막내딸 5살 은별이가 “엄마~”하고 뛰어오면서 물고기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정말 서로, 그리고 각자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좌충우돌 공개상영회

 


두 번째 행복한 상영회는 과천 ‘열리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세 번째 상영회는 영상자료원에서, 그리고 네 번째 상영회는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열렸다. 그렇게 씨를 뿌리듯이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던 네 번의 상영회가 모두 끝났다. 첫 번째 상영회가 끝난 후, 이름 모를 엄마가 “아이도, 저도 행복 했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주어서 행복했다. 세 번째 행복한 상영회 때는 GV시간에 한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를 키우는 동안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은 저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너무 좋았습니다.”라는 말을 해서 또 한 번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연극놀이는 일종의 수업이다. 교사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연령대의 아이가, 몇 명 오는지를 파악한 후, 참여자에게 가장 적합한 연극놀이를 짠다. 하지만 극장상영이었던 첫 번째, 세 번째 상영회 때에는 대략적인 인원만 예상한 채 놀이를 짰고 공간이나 인원의 변동 때문에 사전에 짰던 수업안을 폐기한 채 새로이 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네 번째 상영회 때에는 사전예약제를 실시했다. 이전까지의 상영회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처지였다면 네 번째 상영회 때에는 주최 측에서 사전에 선착순 30명을 정하고, 신청서를 받는 과정에서 참여인원과 연령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연극놀이 교사와, 인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그리고 나는 최적의 조건에서 연극놀이를 진행해보자는 약속 하에 영화제 일주일 전까지 예약을 받았다. 연극놀이 교사들은 사전에 취합된 정보를 바탕으로 놀이를 짰는데 그날 상영장에 있느라 가보진 못했지만 촬영을 진행했던 푸른영상 동료 말로는 첫 번째 상영회 때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재미있었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꿈이 현실로, 그리고 그 현실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견뎌야할 시간이란 없다

 


첫애 하은이를 낳고서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아기를 보느라 남편과 번갈아가며 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요즘 애기엄마들은 참 대단해. 어떻게 저런 어린 애를 데리고 식당에를 오냐? 애가 다 클 때까지 참아야지~!”

 


세 번째 영화 [엄마…]를 초청상영 한다고 해서 기쁘게 찾아갔던 영화제에서 내 영화 말고 다른 영화를 좀 보려고 했더니 자원봉사자들은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아기 업은 엄마는 출입금지라고 했다. 나는 초청받은 게스트라고, 아기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사정하자 자원봉사자 한 명을 딸려서 들여보내주었다. 말하자면 그는 감시인이었던 것이다. 그냥 돌아 나오는데 서러움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 뒤로 오랫동안 나는 식당에서 만난 아줌마 말처럼 ‘애가 다 클 때까지' 많은 것들을 참았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하는 걸까? 아기 키우는 엄마들은 ‘나는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 안의 욕망을 죽여야 하는 걸까? 보통 사람들처럼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면 안되는 걸까? 엄마가 아기와의 관계에서만 행복할 거라는 기대는 혹시나 강요는 아닐까?

 


나는 네 번째 영화 [아이들]을 가지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처음엔 돌보미 선생님만 모시려 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견뎌야하는 시간이란 없어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더듬거리며 길을 찾고 있다. 네 번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이 길을 꼭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게 성급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상영회 때마다 영화를 만든 나도, 연극놀이를 진행하던 선생님도 행복했다. 미래를 위하여 견뎌야할 시간이란 없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금 나는 간절히 꿈꾼다. 같이 꾸는 꿈이 길을 만든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당신, 당신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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